# 92
92. 신의 기사들
태석의 모습은 어린 소년이었다. 나이는 열 살 정도로 보인다. 반면 스카이의 모습도 소녀였다. 일곱 살 정도로 보인다. 스카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 같았다. 태석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폐건물에서 소년 소녀의 모습으로 총알이 빗발치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자, 이제부터 조용히 입 다물고, 내 손잡고 따라와.”
총알이 계속 박히고 있다. 태석이 그것을 잠시 보다가 총알이 끊기고 장전이 시작될 때 스카이의 손을 확 낚아채어 잡았다.
“우왓?!”
“입 다물라고 했지.”
“아파, 아프다고! 살살! 난 이제 어린아이의 몸이라 몸이 약하다니까?”
“신경 안 씀.”
“이 개새…….”
태석이 스카이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칸타로스의 폐건물 문을 열고 나와 양손을 번쩍 들었다. 스카이는 손을 잡히고 있었기에 한 손이 확 들렸다. 플래시의 불빛이 스카이의 눈을 부시게 하는 듯했다. 눈을 질끈 감을 뻔했기 때문이다. 태석이 그것을 보다가 자신도 눈을 살짝 찌푸린 채 말했다.
그리고는 최대한 어린 소년의 목소리로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생존자예요!”
그 소년 소녀의 모습을 보고 어떤 반응을 할까. 태석은 최대한 순박한 표정을 지으며 헌터들을 보았다. 헌터들은 군인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총기류나 검 같은 무기를 잔뜩 장비하고 있었다. 헌터와 군인의 혼합이라고 보면 될 정도였다.
군인 하나가 손을 들었다. 총구를 들이민 채 경계만 하고 있다. 태석에게 오라고 신호했다. 태석은 스카이를 잡은 채 천천히 걸어왔다. 스카이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군인 헌터가 말했다.
“건물 안에 누가 있지?”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아무도 없는 것 같다라. 젠장, 놓쳤나 보군.”
“뭐를요?”
“꼬맹이는 몰라도 된다. 그보다 어서 멀리 가라. 이곳은 위험하니까.”
“무슨 일이 있는데요? 그보다 부모님이…….”
“이곳에는 태석이라는 테러범이 존재해. 이 사단을 낸 녀석이 태석이다.”
“그런…… 가요.”
“그래. 어서 가, 어서. 태석에게 당하기 싫으면.”
길을 열어주었다. 태석이 스카이와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카이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태석을 보았다. 태석은 한숨을 뱉으며, 서둘러 뛰어갔다.
군인 헌터들이 소리쳤다.
“어서 주변을 수색해라! 태석을 찾아야 한다! 테러범, 태석을! 전범을!”
태석과 스카이가 최대한 멀리까지 뛰기 시작했다. 군인들 한둘을 길을 걸으면서 마주쳤지만…… 소년으로 변장한 태석을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
스카이가 말했다.
“나 참, 로키의 변신 하나 못 알아보면서 무슨 태석 새끼를 잡겠다고…….”
“잡히길 바라는 모양이야, 스카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뭔가 멍청해서.”
“멍청이라……. 뭐, 세상은 의외로 멍청한 사람들이 활약하기도 하니까.”
“그렇긴 하지.”
“왜 날 보면서 말하냐?”
“아니야, 네가 멍청이에 병신 새끼라고는 생각 안 했어.”
“뒤질래?”
“룰루~.”
스카이가 헛소리를 했다. 태석이 한숨을 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참이나 걸었더니 지쳤다. 게다가 뭔가 아픈 감각이 느껴졌다. 태석이 어깨 쪽에 손을 뻗으니 자신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총탄이 박힌 상처가 있었다. 어깨 때문에 하얀 셔츠가 빨갛게 물들었다. 태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아픈걸.”
“그 총탄, 헌터들에게 독극물과도 같은 거야. 어서 빼내자.”
“그래, 빼내야겠어. 어디 숨을 장소 같은 곳은 없나?”
태석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물들이 모두 무너져 있지만, 어느 한 건물은 멀쩡할 것이다. 계속해서 주변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찾았다.”
멀쩡한 건물을 찾았다.
태석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스카이도 따라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스카이가 간단한 감상을 뱉었다.
“이야, 멋지네. 쓰레기장 같아.”
“그래도 도시 자체가 난장판이 된 상황에서는 호텔급이라고. 이런 곳 찾기 쉽지 않다니까?”
“뭐, 지하 세계보다는 깔끔하네.”
“거기는 얼마나 난장판이길래.”
“보면 알아.”
“어서 볼 수 있으면 싶군.”
“그래, 태석. 지하 세계를 원래대로 되돌렸으면 하는데.”
“나는 유일신을 잡아야 하고.”
“우리가 서로의 목표를 완료하면, 서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
“그래, 이 대학 조별 과제 같은 녀석아.”
태석과 스카이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멀쩡해 보이는 집 문을 발로 동시에 차 부수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거실 쪽에 앉은 채 태석이 크로스백에서 힐링팩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어디 보자…….”
“뭘 찾고 있어?”
상대적으로 키가 더 작은 스카이가 이제 다시 어른의 모습이 된 태석을 보고는 물었다. 태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집게 같은 거. 가위도 괜찮아.”
“뭘 하려고?”
“총탄 빼려고.”
“무슨 뭐였더라, 철로 인한 감염은 신경 안 쓰는 거야?”
“응, 헌터니까.”
“하긴, 인간치고는 강하고 악마치고는 약한 것이 헌터지.”
“그렇지.”
태석이 가위 하나를 집어 들었다.
“찾았다.”
“우웩, 저게 살을 파고 총탄을 끄집어내는 거야?”
“응. 왜?”
“아니…… 나보다 끔찍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 같아서.”
“부럽냐? 너도 해줄까?”
“아니, 지금의 내 몸 상태로는 정말로 뒤질지도 몰라.”
“왜 그렇게 약해졌어. 너는 약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었잖아~.”
태석이 장난스레 그렇게 말하고는 가위를 어깨 쪽에 푹 넣은 뒤에 뒤적뒤적 속을 뒤졌다. 이미 겉 상처가 회복된 채 총탄만이 안에 박힌 상황이라 어깨에 상처를 내어 총탄을 흐집어 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카이가 인상을 확 구긴 채 구역질을 했다.
“뭘 그렇게 구역질을 해, 이런 상처 처음 봐?”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의외로 비위가 약하구나.”
“그러니까 이런 거야. 나는 악마니까, 인간, 그러니까 인간의 입장에서 벌레 새끼가 지 상처 흐집어내서 새하얀 내장들을 들어내는 걸 보는 기분이라고.”
“혐오스러운 존재가 혐오스러운 짓을 한다, 이렇게 보인다는 거구나.”
“그래, 그러니까 빨리 끝내.”
“싫은데? 더 혐오스럽게 할 건데? 아예 복부도 흐집어 낼까.”
“미친 새끼.”
“물론 귀찮으니 안 할 거지만.”
“귀찮은 거야?”
태석이 인상을 확 구기고 말했다.
“찾았다.”
그리고는 가위를 잡은 손을 몇 번 더듬거리고는 확 조이고 뽑았다.
“크윽.”
총탄이 빠져나왔다. 거의 반액체 상태가 되어 뭉클뭉클한 느낌이 드는 총탄이다. 그것을 집어 던지고 한숨을 푹 뱉으며 힐링팩을 부착했다. 순식간에 어깨의 상처가 아물었다.
“다 끝난 거야?”
“기다려봐.”
5분 정도 기다리자 태석의 어깨가 깔끔히 아물었다.
“뼈가 살짝 안 맞네.”
태석이 어깨를 움직여보고 무언가 이물감이 있었다. 태석이 스카이에게 말했다.
“잠깐 어깨 좀 잡아봐.”
“응.”
태석이 그리고는 확 자신의 어깨를 밑으로 내리치듯 움직였다.
뚜득!
뼈가 맞아 들어갔다.
스카이가 물었다.
“뼈 맞춘 거야?”
“응.”
“대단하네. 혼자서 이런 지랄도 다 하고.”
“한두 번 다쳤어야지. 이런 건 이제 기본으로 한다고.”
“흠.”
태석이 한숨을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보다 이 꼴이면 누가 봐도 엄태석이겠네.”
자신의 꼴을 보며 태석은 태석스러운 복장에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는 코트를 집어 던졌다. 윗옷도 벗어 던지고는 상체를 드러낸 채 집 내부를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찾았다.”
검은 후드티였다. 그 후드티를 걸쳐 입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검은 모자를 발견했다.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후드티의 검은 모자를 다시 덮었다. 하체는 그대로 내버려두려는 모양이다. 찢어진 청바지에 숯이 묻어있는 꼴이 의외로 스타일이라는 느낌이 든다. 최근 청바지는 더럽게 치장해서 입는 것이 유행이니까.
스카이가 말했다.
“뭐야, 그게.”
“도망자 패션.”
“흠…… 뭔가 인상이 다른 느낌도 드네. 양아치 같아.”
“그러냐?”
태석이 거울을 보았다. 살이 그 짧은 새에 주욱 빠져 있는 수준이 아니다. 뭔가 인상 자체가 달라진 느낌이다. 뭐가 딱히 크게 달라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묘하게 피하고 싶은 인물상이 되었다. 어쩌면 도망자라는 상황이 태석을 더욱 몰리게 하여 인상을 바꾼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스카이.”
“왜?”
“앞으로 30분 내에 어떤 일이 일어나?”
“잠깐만, 기억을 되짚어보고.”
“여기서 기억이 안 난다는 헛소리를 하면 괴롭힐 거야.”
“아니, 기억은 나는데 설명하려면 어려워서.”
스카이가 서둘러 말했다.
“자, 잘 들어봐.”
“그래.”
“세킨 시레나가 유일신이라고는 얘기했지?”
“응, 그 녀석이 변장한 채 수년을 살아왔다고.”
“그러니까 세킨 시레나가 너를 잡기 위해 헌터를 우리가 있던 곳에 보내고, 콜렉터까지 보냈었잖아.”
“그랬지.”
“그러고 나서는 못 잡게 돼서 방송을 내보낼 거야. 네가 전범이라고, 이 폭발의 원흉이라고, 즉시 사살하라고.”
“으엑, 큰일인데.”
“응, 큰일이지. 그러니까 우리는 그 위험을 피하고는 에덴에 도달해서 지하 세계로 가야 해.”
“그렇구나.”
“응, 그렇지.”
태석과 스카이가 한숨을 뱉었다. 태석이 순간 움찔했다.
우웅- 우웅-.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기 때문이다. 스카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야, 설마 도망 중에 휴대폰을 켜놓은 거냐?”
“너무 익숙해서. 이제 버려야지.”
“어서 버려. 전화도 받지 말고.”
“잠깐.”
태석이 전화를 보니, 대한이었다.
대한의 전화를 받았다.
“야! 야!”
스카이가 소리치는 것을 무시하고 태석이 말했다.
“대한.”
[지금 어디야? 뭐 하고 있는 거야?!]
“아, 지금 상황이 조금 복잡해.”
[어떻게 복잡한데? 카알은 어떻게 되었어?!]
“죽었어. 그리고 유일신이라는 녀석이 등장했어.”
[유일신? 그게 뭔데?]
“누군지는 모르지만…… 세계를 부술 정도의 녀석이야.”
[그래서 지금 상황이 이렇…… 구나.]
“그렇지. 그 녀석이 한 짓이야. 하지만 그 녀석은 세킨 시레나의 모습으로 내가 이 사태를 만들었다고 할 거야.”
[그게 무슨…….]
“잘 들어. 이제부터 가즈 나이트들에게 명령할게.”
[…….]
가즈 나이트.
대한이 만든 장난스러운 명칭이지만, 이제 장난이 아니게 되었다. 실제로 외부 사람들은 가즈 나이트를 실존하는 조직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들은 조직적으로 태석을 위해 움직이는 단체나 다름없었으니까.
태석이 말했다.
“나를 도와줘. 너희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필요해. 내가 전 우주적인 수배범이 되어도 너희만은 나를 위해 싸워줘.”
[……그래, 반드시 그럴게.]
“그리고…… 죽지 마. 나는…….”
[모두의 해피 엔딩을 원하니까, 이지?]
“……하하, 그래.”
태석이 쓰게 웃고는 말했다.
“그러면 이 전화는 폐기할게.”
[그래, 어서 폐기해. 내가 가즈 나이트들에게 말할 테니까.]
태석이 그렇게 말하고는 휴대폰을 단숨에 토르의 전기로 지져서 가루로 만들었다. 한숨을 푹 뱉었다.
“좋아.”
태석이 스카이를 보았다. 스카이가 움찔했다. 어쩌면 표정이 너무나도 사나워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나 참, 인상이 얼마나 나빠진 거야. 태석이 그리 생각하며 일어났다.
“어서 도심지로 이동하자. 공중전화가 필요해.”
“어째서?”
스카이의 물음에, 태석이 답했다.
“에덴을 호출하는 전화번호를 내가 알고 있거든.”
전쟁이 일어나고, 겐세가 하는 것을 봤다.
그러니 가능할 것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