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모든 신을 받다-91화 (91/102)

# 91

91. 소년과 소녀

칸타로스에 도착한 태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타들어 가는 냄새가 났다. 뭐 이리 더러운 냄새가, 화약 냄새니 뭐니 하는 것들과 고기 특유의 타는 썩은 내가 진동하여 인상을 펼 수 없게끔 했다. 스카이 또한 동감하는 것인지 먼저 말했다.

“썩은 내.”

“그래도 네 몸에서 나는 냄새보다는 나아.”

“뭐?”

스카이가 자신의 몸을 과시하듯, 허리를 쭉 폈다.

“나의 볼륨감 넘치는 몸매가 뭐 어때서…… 라고 하기에는, 젠장.”

“그래, 잠깐 네 현재 모습을 잊어버렸었구나.”

“지하 세계는 편안한데 이게 문제야. 악마들에게 너무 막 대한다고.”

“네 업보라고 생각해.”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싶지만, 스카이와 투닥거리는 것이 의외로 재밌다. 왜, 현재의 절박한 상황을 어느 정도 풀어주는, 긴장감 완화 역할을 해준다고 할까? 어린아이와 놀아준다는 느낌이라 재밌기까지 하다.

태석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 보자, 쓸만한 게…….”

“쓸만한 건 없어 보여. 쓰레기통 속에 들어 있는 느낌이야.”

“닥쳐, 스카이. 어디서 악마 아니랄까 봐 부정적인 게 아주 심하네.”

“어디서 훈수질이야.”

“이제 몸 상태도 괜찮고, 강신도 문제없는 상태야. 이제 스카이 네가 갑이 아니라고.”

“윽…….”

스카이가 살짝 움찔했다. 태석이 안광을 흩날렸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전기를 방출할 수 있을 정도로, 미약한 강신을 한 상태이다. 잠을 반쯤 자고, 반쯤 깨어 있는 상태와 비슷하다. 강신이라는 것에 발을 걸쳤기에 위급한 순간에 바로 힘을 쓸 수 있다. 그간 많은 강신을 하면서 터득한 잔재주였다. 스카이는 그런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스카이가 흠흠 기침을 하며 말했다.

“찾아보자. 뭐 먹을 거 같은 거.”

“넌 죽었으니까 필요 없지 않을까? 나는 산 자라 먹을 게 필요하지만.”

“기호로 먹을 거야. 왜, 인간들이 담배나 술을 마시는 것처럼.”

“담배나 술은 안 하는데, 아쉽게도.”

“그러면 너는 무슨 재미로 살지? 속세에 있는 인간 주제에 그런 걸 즐기지 않다니? 사회적 거세라도 당한 거야?”

“그러면 너는…… 흠, 이건 별로 반박할 게 없네.”

태석은 재미없는 삶인 듯 보이겠다고 생각하며, 적당히 점원들이 서 있는 곳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핀다. 내부는 숯덩이가 따로 없을 정도로 검었지만, 운 좋게 타들어 가지 않은 부분이 있다. 칸타로스는 역시 설비가 튼튼하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다운 햄버거집이다.

역시 대단해, 라고 생각하고는 적당히 타지 않은 부분에서 음식들을 집어 들었다. 빵과 고기를 찾아 쑤셔 넣고, 야채를 넣고, 멀쩡한 소스를 적당히 내부에 뿌려 넣었다. 햄버거 두 개가 만들어졌다. 무슨 메뉴인지는 모른다. 그저 손에 들리는 대로 쑤셔 넣었으니. 태석이 멀쩡한 테이블을 찾았다. 숯처럼 검었지만, 아직 단단하다. 앉아서 빵을 씹을 정도는 된다. 태석이 그곳에 햄버거 두 개를 떨궈놓고는 고개를 숙이며 장난스레 말했다.

“공주님, 햄버거 대령했사옵니다.”

“무슨 지랄이야?”

“너, 꼬마 아가씨잖아. 공주 대접받고 싶지 않아?”

“그게 무슨 지랄이냐고.”

“공주님, 입을 벌려 보시지요. 햄버거를 집어넣겠습니다.”

“그래, 시발. 되는 대로 해보자. 아아.”

태석이 입을 벌린 채 장난질에 동참한 스카이를 향해 햄버거 하나를 통째로 쑤셔 박아 목구멍 근처까지 처넣었다.

“우욱, 우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

“처먹어라.”

“이 개새끼가아아아아?!”

그러면서 간신히 입에 물고 씹고 맛을 음미하더니, 방금 전 화내는 것은 온데간데없이 해맑게 웃었다.

“맛있네.”

“단순하군.”

“뭐가?”

자각 못 하는 건가. 태석은 한숨을 뱉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네가 아는 정보를 전부 말해봐.”

“뭐? ……아, 맞다. 그래, 설명할게.”

스카이가 햄버거를 우물거렸다. 그리고 한 입 삼킨 후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단순했다.

“우선 지하 세계에서 나 혼자 있을 때 역사책을 봤어.”

“역사책?”

“응, 미래의 역사가 적혀 있는 역사책. 거기에는 인류를 비롯한 이 세계의 모든 인물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아주 상세하게 적혀 있어. 다 받아들이기에는 뇌 용량이 부족할 정도로.”

“응, 그래. 벌써부터 스케일이 남다르네.”

“거기에는 펜도 있는데, 어떤 대가를 지불하면 역사 개변도 할 수 있는 모양이야.”

“펜으로 뭔가를 적으면 되는 건가?”

“역사책의 특정 시간대에 육하원칙을 얼추 맞춰서 한 문장을 쓰면, 그것대로 역사가 변형되어 새로운 역사가 써지는 거지.”

“좋군. 그걸로 유일신을 죽이면 되는 건가?”

“비슷해. 그래서 너는 지하 세계에 가서 유일신을 죽이는 것과 비슷한 무언가를 쓰면 되는 거야. 역사 개변으로.”

“유일신은 내 힘으로 죽일 수 없으니까?”

“응, 그런 셈이지.”

태석은 잠시 고민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그 지하 세계로 가는 법을 찾아야겠군. 어떻게 가는 거지?”

“지하 세계로 가는 법…… 간단하지만은 않아. 어려운 편이지.”

“알고 있어. 신들이 죽으면 가는 곳이잖아. 인간은 절대 못 가는.”

“하지만 너는 강신자니까 가능할지도 몰라.”

“신을 강신해서 들어가면 되는 건가? 하지만 나는 신을 많이 강신해봤지만, 강신 세계를 제외한 다른 세계에는 접근해본 적이 없어.”

“그래서 또 다른 것이 필요하지.”

“뭐가?”

“잘 생각해봐. 모든 걸 알아낼 수 있는 녀석, 그런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그런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녀석이 세상에 어디 있…… 아, 있구나.”

스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도 알고 있겠지.”

그리고는 스카이는 햄버거를 전부 입에 쑤셔 넣었다.

“에덴.”

“에덴…….”

에덴. 에덴의 조각으로 만들어진, 하늘의 신이라는 고대의 인류가 만들어낸 물건. 그 물건으로 세상을 지키고, 하늘의 신은 세상에서 추방당했다. 그리고 에덴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고대의 인류에게 발설 금지 기적을 벌이면서까지 에덴에 대한 정보를 모두 감추었다. 에덴을 다시 모아 한국에 에덴이 생겨난 지는 이미 오래. 지구를 노리던 존재들 중 대다수는 이 에덴을 얻기 위해서 침략을 노리고 있었다. 물론 이미 죽은 카알의 경우, 태석을 죽이기 위해 침략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에덴은 중요하고, 뭐든지 가능한 ‘고성능 분석 특화 장치’라는 것이다.

“에덴에게 방법을 물어보면 된다는 건가?”

“그래. 그리고 에덴을 통해 지하 세계에 들어가는 거야. 그나마 인간 중 가장 지하 세계에 접근하기 좋은 게 강신자인 너니까.”

신을 강신할 수 있으니 신들의 세계에 접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 논리였다.

“그보다 너.”

“응.”

태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스카이를 노려본다. 어리숙한 모습의 스카이가 움찔 떨었다.

“미래를 봤다고 했지?”

“응, 이제부터 30분 후의 미래까지는 알고 있어.”

“말해봐, 이번에는 나에게 또 무슨 나쁜 일이 생기는지.”

“그러니까…….”

스카이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말했다.

“앞으로 5분 후, 칸타로스를 둘러싼 헌터들이 등장할 거야.”

쿵쿵!

그때였다.

태석과 스카이가 있는 칸타로스의 폐건물, 그 외부에서 쿵쿵거리는 걷는 소리가 들렸다. 태석이 순간 스카이를 밀치고 벽을 엄폐물 삼아 대문 쪽을 보았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다-!

총탄이 퍼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헌터들이 총탄을 퍼붓는 건가? 태석이 순간적으로 토르를 강신하여 놀랍도록 향상된 신체 능력으로 총탄의 모습을 눈여겨본다.

“설마하니 총탄의 종류가…….”

“무슨 종류인데?!”

“헌터들에게 쥐약인 헌터 도구로 만든 총탄이야. 명칭이 있었는데…….”

“헌터 킬러?”

“응, 어떻게 알았냐.”

“미래를 전부는 아니지만, 너의 시점에서의 미래 정도는 봤거든.”

“미래 봤다는 거, 정말 기분 나쁘네. 죽은 놈들은 우리의 미래를 샅샅이 알고 있다는 거 아니야?”

“나처럼 접촉이 가능한 경우는 없지만.”

“아무튼, 네가 제일 기분 나쁘다고.”

“개새끼가.”

태석이 한숨을 뱉었다.

투다다다다다다-!

총탄이 다시 퍼부어진다.

“외부에서는 우리가 아직 보이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나와 어린 유녀를 못 본 거지.”

“그래, 칸타로스 유리창에 검은 먼지가 잔뜩이었으니까 내부도 외부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어.”

“그런데 어째서 녀석들이 총탄을 퍼붓는 걸까?”

“그야……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주변에 숨기 좋은 멀쩡한 건물은 이것밖에 없거든.”

“그러니까 이 안에 내가 있을 거라고 여기고 공격하는 거겠지. 나는 왜 이리 인기가 많은 걸까?”

“네가 인기 많은 건 아닐 텐데. 네 능력이 인기 많은 거지.”

“스카이, 자꾸 진지한 상황에서 지랄하지 말아 줄래.”

“음…….”

스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석의 몸에서 녹색의 안개가 피어올랐다. 스카이가 놀란 것인지 소리쳤다.

“뭐야, 뭐에 당한 거야? 태석?”

“당한 게 아니고 강신이다.”

“와, 존나 악당 같다. 네가 악마인 거 아니야? 내가 악마가 아니라.”

“어딜 봐서 악당이라는 거냐.”

스카이가 그 물음에 답했다.

“그야 녹색 하면 악당의 색 아니야?”

“지금 그린 무시하는 거야?”

“……뭐, 그런 건 아니고.”

스카이가 한숨을 뱉었다.

“그 녹색 안개 피워서 뭐하게.”

“잠깐, 스카이, 네 지금 모습 좀 눈여겨볼게.”

태석이 스카이의 어깨를 잡고 정면으로 스카이를 쳐다보았다. 스카이가 그 시선을 마주 보다가 부담스러운 건지 부끄러운 건지 고개를 휙 돌렸다. 태석이 그 턱을 잡고 고개를 자신 쪽으로 했다.

“흠. 알겠다.”

얼굴이 벌게진 스카이를 뒤로하고 태석이 눈을 감고 집중했다.

“좋아, 변신이다.”

화르르륵!

녹색의 연기가 태석을 휘감고, 태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어린 소년의 모습이 되었다. 하얀색 후드티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소년이었다. 태석이 소년의 모습이 된 것이다.

“뭐야, 그게?”

“너로 변신한 거야.”

“그런데 왜 남자냐?”

“몰라. 로키의 변신은 원래 성별이 바뀌거든.”

태석은 한숨을 뱉었다.

“하지만 변신이라 그런지 몸이 너무 깨끗해졌네.”

태석은 땅바닥에서 숯 더미를 긁어모아 몸에 덕지덕지 발랐다. 그리고 숯 더미에 몸을 굴려 아예 숯댕이처럼 검은 옷으로 변질시켰다. 그리고 스카이에게 말했다.

“너도 굴러.”

“뭐? 내가 왜! 싫어!”

“닥치고 굴러.”

스카이의 머리채를 잡고 엎드리게 한 다음, 소년의 몸에서 나온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으로 이리저리 굴려댔다.

스카이가 비명을 질렀다.

“뭔 짓이야?!”

“어서 빠져나와야 하니까.”

“애당초 소년 소녀의 모습으로 어떻게 싸울 건데?”

숯댕이가 된 스카이를 만족스러운 눈으로 본 태석이 답했다.

“그야 소년 소녀로 속이고 전쟁통 같은 이곳에서 벗어나겠다고.”

“뭐?”

스카이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고개를 갸웃했다.

이 남자가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지? 이런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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