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90. 폭발과 위험한 동맹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뇌 내부에서부터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파, 아프다고. 죽을 것 같아. 이게 뭐야, 태석이 어째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 살고 싶다. 죽고 싶지 않아’,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밀려 들어왔다.
눈을 떴다. 순간 시각 신경계가 적당한 정보를 뇌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뇌의 기능은 정상일까?
뭔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핵폭발과 같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핵폭발에도 생존 가능한 것이 헌터라는 족속이다. 그 헌터들 중 S랭크이니 문제없을지도.
으윽.
일어나려고 하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눈도 보이지 않는다. 까맣다. 순간 시야가 벌겋더니, 더러운 먼지의 감각이 느껴졌다.
“커억! 콜록! 우우우우우우욱!”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피가 잔뜩 입에서 흘러나왔다.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감각이 없다. 주변에 피의 안개가 가득하다. 다른 이들의 피 냄새도 느껴진다. 도대체 얼마나 죽은 거지? 유일신이라는 녀석에게, 도대체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제기랄! 제기랄! 움직여, 움직이라고! 다리야, 팔아, 어떻게든 움직여. 지금은 위급한 상황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타인들이 죽는다. 이 상황에서도, 망가진 인격의 소유자였던 태석은, 본능적으로 타인의 안전을 추구하려 했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도 그는 어째서 타인을 구하려는 걸까?
간단하다.
어렸을 적 부모를 잃었을 때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그런 비틀린 감정의 성격을 형성했다.
언제나 여동생을 위해 살아왔고, 지금은 모든 타인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 태석이라는 인물의 죄의식에 의한 행동이다.
“콜록! 콜록!”
신은 멀쩡한가?
[토르가 멀쩡하다고 합니다.]
[로키가……]
[헬라…….]
[분노의 악마, 데리안이…….]
[오딘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스템창에서는 딱히 부정적인 메시지는 없었다. 태석이 소리쳤다.
“어서 튀어나와. 강신하라고.”
파직! 파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마력을 구성하는 성분조차 망가진 상태인지 강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니, 반쪽뿐인 강신이다. 처음 은호와 싸울 때의 강신과 비슷한 수준의 동기화밖에 되지 않는다. 이래서야 유일신과 싸울 수가 없다.
서둘러 정전기를 일으켰다.
파직! 파직! 파지지직!
“끄으으으으윽.”
몸이 천천히 움직인다. 겨우겨우 일어서려 했다.
아니, 이건 신경계의 작용으로 뇌가 반응하여 근육을 움직이게 하여 운동에너지를 방출하는 형태의 정상적인 움직임이 아니다.
그보다 근본적으로 외부에서 인형 놀이를 하듯이 움직이는 것이다.
태석이 전기를 근육에 직접 쏟아 부어 자신의 근육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강제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비틀, 비틀.
쓰러질 게 뻔하다.
다리가 전기 자극에 구어지고, 간신히 회복되고 하면서 겨우겨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움직이고 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상처를 내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몇 발자국 걷다가.
털썩.
넘어졌다.
태석이 걷히지 않는 안개속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시야를 최대한 넓히려 했다.
그때였다.
“정신 차려, 태석.”
스카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뭔가 작다.
스카이의 모습이 보였지만, 작았다. 키가 마치 어린아이같이.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 그래, 서양계 유녀 같이 생겼다. 옷은 어울리지 않게 청바지에 꽉 끼는 티셔츠 차림이다. 하지만 어린 유녀였기에 평소의 스카이와는 달리 볼륨감 따위는 없었다. 애당초 어린 유녀에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범죄라고 생각될 정도로 어려 보인다.
스카이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거지?
태석이 입을 간신히 움직여 말했다.
“스카이. 뭐냐, 그 꼴.”
“이거?”
스카이가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고는 한숨을 뱉었다.
“지나치게 어려 보이지?”
그리고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하 세계에서 악마들은 탐욕이나 색욕, 분노 같은 죄악을 세탁 받으려고 어린아이의 모습이 되어 버리거든. 그래서 내 본신은 이제 영영 이 모습으로 살아야 해.”
“뭐냐, 그건.”
“그보다, 태석.”
스카이가 말했다.
“이…… 말하기는 싫지만, 나, 너랑 같이 행동할래.”
“뭐?”
태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색욕의 악마가 어째서 태석에게 그런 제안을?
“무슨, 콜록, 소리지?”
태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드디어 말이 제대로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얼굴 쪽은 적당히 신체가 재생된 모양이다. 이런 거대한 폭발에서도 멀쩡해질 수 있다니, 헌터는 역시 사기였다.
“그러니까, 같이 행동하자는 이유는, 나에게도 목표가 있기 때문.”
“또 마왕이 될 거냐?”
“그건 맥거핀이 된 지 오래야. 나는 더 이상 그런 걸 원하지 않아.”
“……그러면?”
“나는…….”
“말 늘이지 말고 빨리.”
어딘가를 흘겨본 스카이가 서둘러 말했다.
“왔다. 어서 숨어 있어야 해.”
“뭔데?”
“콜렉터.”
“콜렉터라면…….”
“그래.”
스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킨 시레나의 4명의 헌터들. 세계 최강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그런 존재들.”
“세킨 시레나?”
“미국의 성천주, 모르나?”
“아니, 나랑 연관 없을 것 같던 인물이라.”
“태석, 너도 이제 저자들과 어깨를 마주할 만한 급이지만…… 지금은 상태가 안 좋잖아? 죽기 전에 어서 숨을 장소를 찾아.”
“악마와 헌터.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하지? 그 답은 분명하잖아. 헌터들은 내 편이고, 악마는 적이야.”
“병신아, 정신 차려. 저 녀석들은 너를 죽이고자 하는 거야.”
태석을 낑낑거리며 양팔로 잡아 질질 끌고, 태석은 기운 없이 끌려갔다. 그리고 어느새 만들어진 엄폐물에 몸을 숨기고, 스카이가 그쪽을 보았다. 콜렉터가 보인다. 형태만 보이고 얼굴이나 얼핏설핏 알아볼 정도였다. 태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엄폐물에 간신히 몸을 반쯤 눕고 고개를 돌려 콜렉터 쪽을 본다.
“일단 상황을 보고 내 적이 아니고 아군이다 싶으면 너를 버릴 거야, 스카이.”
“멋대로 해. 나는 이제 떠난 자라고, 지하 세계 주민이라고. 그래서 지하 세계를 원래대로 되돌려서 거기서 사는 게 내 목적인데, 그걸 유일신이라는 녀석이 방해하잖아.”
“아, 그게 목적인가?”
“그래.”
“이 세상도 망가트리고, 지하 세계에서 편하게 살 모양이야. 어서 콜렉터 쪽에 붙겠어, 나는. 너는 내가 멀쩡해지면 죽이겠어.”
“이 병신아, 콜렉터가 유일신의 부하들이라니까?”
“뭐?”
“잘 들어, 태석. 세킨 시레나가 유일신이야. 녀석이 변장한 거라고.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태석 네가 강해지기를 기다리면서. 신을 흡수하려고. 너를 영양제처럼 쪽쪽 빨아먹으려고.”
“……진짜냐?”
“진짜야!”
그때였다.
콜렉터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어~. 이야, 대박인걸.”
“무슨 소리지? 나는 너처럼 귀가 좋은 편은 아니라 무엇도 못 들었다.”
“아니, 그러니까 저쪽에서 뭔 소리가 들린 것 같다니까?”
“그러면 어서 가서 살펴봐라.”
“귀찮아.”
“그러면 폭발을 일으켜서 원거리 공격을 해라.”
“귀~찮아.”
“……내가 하겠다.”
콜렉터 한 명이 무언가 수류탄인지 하는 것을 집어 던졌다. 태석이 서둘러 토르를 강신했다.
파지지지직!
“끄으으윽?!”
간신히 근육에 전기를 가해 억지로 움직여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다른 엄폐물로 피신했다. 다행히 폭발의 안개 덕분에 아직도 태석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곧이어 태석이 이미 떠난 엄폐물이 펑! 하고 수류탄 같은 무언가에 터져 사라졌다. 형체조차 없다. 저것에 맞았다면 끝장이었다. 그때 콜렉터 중 하나가 말했다.
“뭐야, 태석은 없잖아?”
“현상 수배 내려지기 전에 먼저 잡으려고 했는데~.”
“만약 그게 된다면, 세킨 시레나 님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텐데, 아쉽군.”
“그러니까 말이야~.”
그렇게 수다를 떨던 콜렉터들이 천천히 떠나갔다. 태석이 참았던 호흡을 내뱉었다.
“하아, 하아.”
“어때?”
“뭐가.”
“나, 믿을 만하지?”
“아주 조금은. 하지만 이 모든 게 술수일 수 있으니 완전히 믿지는 않아.”
“그래, 그러도록 해.”
“그러면 설명해라.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스카이가 태석의 물음에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일단 이 장소에서 벗어난 뒤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후우, 후우.”
태석이 움직이려 하지만, 몸이 아직 말을 듣지 않는다.
“스카이, 도와줘.”
“오오, 드디어 나를 믿어주네?”
“믿으니까 어서, 내 크로스백에 힐링팩이 있어. 그걸 내 입에 들이부어.”
“그거면 되는 거야?”
“응. 대충 움직일 정도로 회복은 가능할 거야.”
스카이가 한숨을 뱉으며 크로스백을 살펴봤다.
“흠흠, 이런 걸 들고 다니는구나. 여동생이랑 찍은 사진 같은 거.”
“혹시나 죽을지도 모르니까. 지금 상황처럼.”
“야, 새끼야. 빈말로라도 그 말은 하지 마.”
“날 걱정하는 거냐, 스카이?”
“아니, 지랄은. 나는 그저 지하 세계를 살려서 거기서 생활하는 게 목적인데, 그걸 이루어줄 녀석이 죽으면 외톨이가 되니까.”
“외로움을 타나 보군, 악마 주제에.”
“악마도 사회성 동물이야. 인간을 괴롭히면서 양분을 빼앗는 사회성 동물.”
“그건 사회성 기생충 아닐까?”
“그거나 저거나. 솔직히, 모기라는 곤충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닐까?”
“도움되건 안 되건 보통의 인간은 모기를 보자마자 죽이려 들지. 어떻게든 약을 풀려고 하고.”
“그렇긴 하지만.”
“그러니까 이 일 끝나면 뒤지는 줄 알아.”
“이미 죽었는데? 그보다 내 손에 힐링팩 있다. 말 한마디라도 안 지려고 하지 마라.”
“후우…… 알았으니까 어서.”
스카이가 한숨을 뱉으며 짜증 섞인 미소를 짓고는 태석의 입에 힐링팩을 들이부었다. 원래 부착용으로 쓰는 거지만, 몸 내부에 흡수시켜서 몸 전체를 고루 회복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태석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천천히 걷다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몸 상태가 빠르게 호전된 것이다. 스카이가 서둘러 달려가려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예전보다 지나치게 짧아진 다리 때문에 뛰는 속도도 느리고 힘까지 든다. 머리도 몸에 비해 커서 균형 잡기도 힘들고.
7살쯤일까? 그 정도 발육이 되어버린 것 같은데, 너무 몸이 무겁다. 젠장, 스카이는 자신의 모습에 한탄했다.
태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꽤나 귀엽군.”
“죽을래. 섹스를 할 수가 없잖아, 이런 모습이면.”
“그러라고 지하 세계 가면 애 되는 거 아니야? 악마들의 욕구를 제거해준다며.”
“일종의 거세지.”
“여자가 거세라…….”
“죽을래, 태석?”
“아니…… 음.”
태석이 쓴 미소를 지었다.
“이상하게 악마만 만나면 내가 가학적이 되는 기분이야.”
“너는 악인이라고 판단하면 가차 없잖아. 죽이기도 엄청 죽였고.”
“그건…….”
“됐어, 너는 성격이 망가졌으니까. 듣고 나면 나까지 이상해질 것 같아.”
“반박하기 힘드네.”
태석과 스카이가 어떤 건물을 발견했다. 태석이 쓰게 웃었다.
“칸타로스.”
“아무리 봐도 폐건물인데.”
“무너진 칸타로스라고 해도, 만들다 만 햄버거 정도는 있겠지. 어서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태석이 칸타로스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갔다. 스카이가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나참, 패스트푸드 중독자 새끼.”
물론 스카이는 태석이 칸타로스를 좋아하는지는 모른다. 그저 마음에 들지 않아 한소리 하는 것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