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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모든 신을 받다-89화 (89/102)

# 89

89. 전범

“우선, 잠깐! 잠깐! 잠깐, 태석! 싸우려 하지 마?! 난 싸우려고 온 게 아니라니까!”

“이번 반응은 신선하군. 그래서 그동안 스카이 네가 나를 마주했을 때 무슨 짓을 했더라?”

“그…… 무슨 짓이었더라?”

“나와 처음 만났을 때, 남자 하나를 죽이려 했다.”

“따먹으려 한 거야!”

“이 변태 새끼! 아무튼, 다음 만났을 때가 북한에서였지? 그때 너는 나를 죽이려 했다. 내 얼굴 반쪽이 날아가던 장면이 선명해.”

“어쨌든 네가 이겼잖아!”

“그래, 내가 이겼지. 하지만 너도 진심이었을 텐데?”

“그, 그게 조금만 더 하면 내가 이길 수 있…….”

“…….”

찌릿.

“으윽. 죄송합니다…….”

“그래서 나와 싸울 게 아니라면, 그 우스운 꼴은 뭐지? 죽었다더니 이번에도 페이크였나? 이 페이커야.”

“뭐야, 그 게임 잘할 것 같은 이름은.”

“……?”

“아, 모르는 건가. 하긴 이 세계에서는 모를지도.”

“알 수 없는 소리 하고 있어.”

태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스카이의 모습과 유사한 오크를 보았다.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존재였다. 악마라는 것들은. 모두 머리가 이상한 존재들이다. 태석은 스카이가 이번에는 싸우려고 온 게 아닐 거라 보았다. 왜냐면, 싸우기에 적합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말만 하려고 온 것…… 인 듯하다. 확신은 못 하지만.

옆에서 지석이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것인지 반지에 불빛이 살짝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태석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스카이가 말했다. 정확히는 스카이가 조종하는 인형이.

“일단 나는 죽은 게 맞아. 그래서 지하 세계에 가 있어.”

“지하 세계? 거기는 어디지?”

태석이 궁금해서 물었다. 스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승. 신과 악마와 천사들이 가는 곳.”

“오케이. 이해했어. 너는 미친 게 확실하군.”

태석이 손을 뻗어 묠니르를 부르려고 하자 스카이가 허겁지겁 소리쳤다.

“진짜야! 진짜라고! 태석 님!”

“……진짜?”

“응! 응!”

“그래, 믿어주지.”

“지하 세계에서는 일반적인 사후 세계의 인식과는 달리 이 세계를 관찰할 수 있어. 그리고 그곳에서는 모든 걸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어. 그러니까……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런데 여태껏 나에게 찾아온 지하 세계의 존재들이 없는 걸까? 위기를 알려주고 싶어 할 텐데.”

“그래서 온 거야. 위기를 알려주고 싶어서. 사실…….”

스카이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하 세계에 나뿐이었거든. 원래라면 함부로 이렇게 접촉 못 하게 막는 존재도 있어야 하는데, 없어. 죽었을까? 지하 세계에서.”

“이상하군.”

문지기 같은 것들도 없어서 사후 세계와 현실 세계가 연동된다는 건가? 물론 신, 천사, 악마 한정이지만……. 확실히 이상하다. 여태껏 죽은 신이 꽤 있을 텐데? 어째서 아무도 없는 거지?

“누가 수를 썼군.”

“그래, 분명 세계에 위기를 불러올 녀석일 거야. 그 녀석이 지하 세계를 싹 다 비워놨어.”

“그리고 세계에서 추방시켰다. 내가 그 신들을 불러오는 강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강신자를 노리는 존재가 있다.”

“그래. 그렇다면…….”

“……강신자는 애당초 그 존재에 의해 만들어진 거나 다름없겠군.”

“그래, 그것도 그 존재가 강신자들을 통해 신의 힘을 잘 흡수하려고 영양제처럼 양식하는 거야.”

“포식자와 피식자…….”

“그래, 카알이 하려던 짓처럼, 녀석도 별반 다를 바 없어.”

“그건…… 확실히 괜찮은 정보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진 건 아니야.”

“그래서 말인데 지금 당장 이 우주선에서 탈출해. 내가 봤거든, 미래를……!?”

콰지지지직!

스카이의 인형이 부수어졌다.

태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지? 스카이!?”

지석이 차가운 눈으로 스카이가 있던 쪽을 보았다.

“뭔가 왔다. 태석.”

“도대체 뭐죠? 상황이 워낙 난잡해서 이해하기가…….”

“태석, 도망쳐라. 어서! 여기는 나에게 맡기고.”

“아뇨, 그럴 수 없어요. 뭔지 몰라도 저도 같이…….”

그때였다.

“아아.”

어떤 존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냘픈 미성이다.

아름답다.

태석은 그 모습을 보고 문득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하지만…….

너무나도 잔인한 목소리였다. 아름다움에 가려져 그 가시를 보지 못할 것이다. 속은 독으로 가득 찼다.

그 존재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아니, 설명할 단어는 단 하나뿐이다.

유일신.

그것이 태석의 눈앞에 있다.

“지석, 너는 꺼져라.”

팟!

지석의 모습이 순간 사라졌다. 태석이 지석이 있던 곳을 보았다. 아무도 없다.

유일신이 히죽 웃으며 태석에게 말했다.

“예전에 보았던 만화에서 이런 장면이 있었지.”

그리고는 손을 뻗어 손을 펼치고 주먹을 쥔다.

“예술은 폭발이다, 였나?”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폭발이 일어났다.

우주선을 포함해 한국의 절반을 날려버릴 폭발이.

너무 스케일이 커서, 솔직히 어설픈 CG 영화처럼까지 느껴진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대한민국 인구의 4분의 1가량이 날아가 버렸다.

태석이 폭발에 휘말려 의식조차 희미하고, 자신의 몸이 날아가는 건지 가만히 있는 건지, 아니면 빙글빙글 돌고 있는 건지, 여기가 현실인지 가상인지, 전뇌 세계인지 아니면 사후 세계인지, 아니면 뭔지…… 젠장,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폭발에 휘말려 몸이 타들어 가고 헌터의 힘으로 재생되고를 반복하면서 태석은 눈을 꿈벅였다. 그 눈앞에 유일신의 모습이 있었다. 아주 편안하게, 옥좌에 앉아 와인 한 잔을 기울이면서 히죽 웃으면서 대화한다.

“이봐, 태석.”

“왜 그러지.”

놀랍게도 목소리가 잘 나온다.

유일신이 말했다.

“나는 말이지, 정말로 신이 되기를 희망해.”

“이미 한 행동을 보면 신과 다를 바 없는데.”

“어딜 봐서?”

“지석을 바로 사라지게 하고, 내 눈앞에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고, 옥좌에 앉아 와인을 기울이며 나를 관찰하고 있잖아.”

“그래, 신이라면 모름지기 그 정도는 해야지.”

“그런데 너는 말했어. 정말로 신이 되고 싶다고. 지금은 마치 가짜 신이라는 것 같잖아.”

“이 세상에는.”

히죽 웃었다.

“관리자라는 것이 있어.”

“뭐?”

“너의 세상을 관리하라. Supervisioning Your Society. 통칭 S.Y.S. 알고 있어?”

“이미 들어 보았어.”

“그것은 말 그대로, 세상을 관리하는 집단을 뜻해. 관리자들. 이 세계를 제외한 여러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관리하는 집단들이 있어. 신들보다 더 높은 차원에 있지. 순식간에 나를 사라지게 하는 것도 가능할지도 몰라. 실제로 관리자들은 내 주변 사람들 몇을 사라지게 했어.”

“……관리자…….”

“그래, 그 존재들이 정말로 신이야. 나는 관리자에게 몇 가지 치트를 부여받아 그것을 흉내 내는 것일 뿐.”

“그래서 그 관리자가 되는 게 너의 목적인가?”

“당연히. 그렇게 되기 위해, 나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시험받는 중이야.”

“그 시험의 내용은?”

“세계를 부수라고. 신들의 힘을 모두 흡수하면, 세계를 삭제하는 게 가능할 거라고.”

“그래서 이 짓을 벌인 건가?”

“당연히.”

그리고 의식이 끊겼다.

[안녕하십니까. 부산 임시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방송의 진행을 맡은 김범수 기자라고 합니다.]

[오늘 알려드릴 소식은 헌터들의 활약상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는 4분의 1이 줄은 상태입니다. 수많은 인력들이 사고로 인해 사망하였기에 모든 면에서 한국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가에서 피해를 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은 괴멸 상태. 하지만 어떻게든 다시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존한 한국인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어쨌든 이번 소식은 희망적인 소식입니다.]

[대한 씨와 세희 씨에 대한 소식입니다.]

[한셀이라는 특이한 도구를 쓰는 오크를 살해하는 데에 성공했었다고 합니다.]

[또한, 시연과 현지 씨도 곤소라는 오크를 살해했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강지 씨의 경우에도 헌터는 아니지만 특유의 능력으로 병원들의 시설들을 유지하고 있고, 또한, 여러 설비들을 고치는 데에 힘을 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헌터들이 힘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속보입니다.]

[미국의 성천주, 세킨 시레나가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 동시 송출하는 방송입니다. 모두 영상을 보시죠.]

그리고 영상 화면이 전환되었다.

세킨 시레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측에도 대규모 폭발 사건이 일어났었다. 그래서 한국은 4분의 1이, 일본과 중국 측도 적지 않은 폭발에 휩쓸렸다고 하지. 러시아 측도 큰 문제가 있을 정도였으니 이건 무시할 일이 아니다, 인간들.]

그리고는 안경을 고쳐 썼다.

[우리는 이것을 여러 기관들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분석했고, 이 원인이 태석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는 사나운 표정.

[태석. 태석이 문제였다. 태석에 의해 수만 명의 생명이 죽고 말았다.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 이것은 가히 테러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강한 인간이 타락하면 어떻게 되는지 눈앞에서 보고 말았다.]

[전쟁은 멈췄지만, 태석은 전범이다. 오크를 불러온 것도 태석의 짓이라는 보고가 있어.]

[결국 자신이 영웅이 되기 위해, 전 우주적인 쇼를 하다가 결국 화를 불러일으킨 거다.]

[우리는 우주적 수배령을 태석에게 내린다. 태석을 발견한 자는 즉각 살해하거나 신고해라. 왜냐면, 태석은 우주적 테러범이니까. 수없이 많은 생명을 앗아갔으니까!]

[태석을 죽여라.]

영상이 끊겼다.

계속해서 칸타로스의 티비에서 영상이 나오고 있다.

와그작.

그리고 모자를 깊게 눌러 쓴 태석이 피식 웃으며 햄버거를 입에 넣고 삼켰다. 옆에는 유녀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콜라의 빨대에 입을 대고 쭉쭉 빨고 있다. 맛있어 하는 것 같다. 태석은 유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했다.

“어서 가자, 스카이.”

“그래, 좋아.”

스카이라고 불린 유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한숨을 뱉었다.

“색욕의 스카이가 이런 초딩 같은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니. 슬프네.”

“이제 그것도 옛일이지, 꼬맹아.”

“윽…… 젠장.”

태석은 서둘러 칸타로스에서 빠져나왔다. 더 시선을 끌기 전에 나온 것이다. 그리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일단 스카이, 확실한 거야?”

“뭐가?”

콜라를 양손에 들고 낑낑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스카이가 되묻자 태석이 말했다.

“지하 세계로 가는 법. 그게 맞냐고.”

“응, 맞아.”

“좋아.”

지하 세계에는 태석이 원하는 것이 있다.

이 상황을 뒤집고 반전시킬 그런 것이.

태석은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스카이가 낑낑거리며 걷다가 콜라를 마저 마시고, 바닥에 내팽개치고 전력으로 달렸다. 다리가 짧아 거리가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좋아, 세킨 시레나…… 라고 했던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태석이 생각한다.

‘반드시 막겠어. 너의 악행을. 모두의 행복을 위해.’

앞으로 해결할 일이 산더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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