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모든 신을 받다-86화 (86/102)

# 86

86. 신의 사도들

“잘 갔으려나.”

세연은 검은 모자를 눌러 쓴 채 하늘을 보았다. 우주선 쪽, 그곳에 태석이 있을 거라는 정보를 세연은 겐세와 고란에게 전달받았다. 성천주들과 강철 길드는 제법 활발한 소통을 하는 조직들이었고, 성천주들이 전시였기에 현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간략하게 얘기해준 것이다.

덕분에 빠른 판단으로 지석이 우주선 쪽으로 갈 수 있었다. 태석을 돕기 위해서였다.

해외의 성천주들과 헌터들도 빠른 속도로 한국 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그보다 너무하네. 다시 설명해보세요.”

세연이 강철 길드의 일원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일원이 말했다.

“현재 해외의 다수 지역에서 한국으로의 진입을 거절하는 중입니다.”

“그 이유는?”

“이동에 필요한 경비가 많다, 입니다.”

“거짓말.”

세연이 한숨을 뱉었다.

“결국, 한국만 위험한 상황이라 판단하고 최대한 늦장을 부리는 거잖아요? 자기들 전력인 헌터들 죽는 게 싫으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한국만 위험한 게 아닌데. 녀석들은 지구 자체를 노리고 있는데, 이렇게 단합이 안 되어서야…….”

세연은 잠시 고민했다.

이 상황에서 지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부길드 마스터였지만, 지석은 길드 마스터였고, 게다가 일을 위해 자리를 비운 적이 없기에 명령권을 세연이 가지게 된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다. 올해 4월 이후로 처음이라는 거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지석이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계속. 계속, 계속, 계속.

하지만 떠오르는 것은, 그녀에게는 소중한 로맨틱한 기억뿐이다. 세연과 지석의 관계가 발전되면서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 더욱 그러했다.

세연은 고개를 저었다.

‘키스했던 기억은 저 멀리에 치우고…….’

하지만 더욱 또렷하게 기억이 드러났다. 세연은 한숨을 뱉었다.

‘지석에 대한 것은 생각을 일절하지 말자. 우선은,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자.’

애당초 지석이 세연에게 의견도 많이 묻지 않았는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언제나 세연이 나섰다. 결국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브레인은 언제나 세연이었다.

세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모든 보급을 끊겠다고 말하세요.”

“보급이라뇨?”

“헌터 도구의 제작을 해외에서도 강철 길드가 나서고 있지요? 많은 도구 부품 제작에도 일수선하고 있고.”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러니까 해외의 모든 제작을 중단하고, 강철 길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만두겠다고 하세요. 해외의 헌터들이 나서주지 않는다면.”

“알겠습니다.”

“전달, 지금 당장.”

“네!”

일원이 달려갔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고 번호를 입력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전달이 거의 끝날 때쯤, 세연은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다.

‘이제 슬슬 연락이 올 텐데.’

세연은 기다리고 있다가, 전화가 온 것을 확인했다.

미국의 성천주, ‘세킨 시레나’다.

“세킨, 반갑습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아는 겁니까? 멍청한 인간.]

“압니다.”

[헌터 도구 제작 수급을 멈춘다면, 현재 원자력 발전소에서 이용하고 있는 도구 또한 수급이 불가능해지고, 세상은 아포칼립스를 맞이할 겁니다, 인간.]

“압니다.”

[그런 짓을, 어째서 하찮은 한국을 구조하기 위해 인질 삼아 협박하는 겁니까?]

“당연히 우리는 중요하니까요.”

[한국이 중요하다는 겁니까? 강철 길드는 해외 여러 구역에서도 활약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 지부를 철수한다고 해서 망할 리는 없을 텐데요, 인간.]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저희 인류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호오? 인류가 중요하다? 인간, 재밌군요. 계속 해보시지요. 인간 나부랭이가 어째서 중요한지.]

“그야 제가 인류에 속하니까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 아닙니까?”

[그렇다면, 성천주인 저는 성천주인 자신이 중요하니 돕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멍청한 것.]

“아니요.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강철 길드의 파업으로 인해 멸망할 겁니다. 그래도 좋습니까? 멸망한 세상에서 성천주들끼리 잘 지내보시죠.”

[……시발.]

“하하, 제 말에 감명하신 모양이네요.”

[그러고 보니 목소리가 여자군요? 지석 아닙니까?]

“부길드마스터, 세연이라고 합니다. 현재 명령권을 잡고 있죠.”

[지석이었다면, 이 실책을 저지르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은 멍청하군요. 지석은 어디서 뭘 하고 있죠?]

“마찬가지로 인류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멍청한 것들. 그러면 저희 미국 측에서는 헌터를 모두 보내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곧 후회할 겁니다. 고작 한국을 위해 이 난리를 부렸던 것을. 왜냐면, 후후.]

“네?”

[아닙니다. 기대하고 계시지요. 영웅이 몰락하는 것을.]

그리고 끊겼다.

세연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뭐하는 존재일까, 세킨 시레나는.

항상 인간을 혐오하고, 그러면서도 꾸준히 힘을 길러 수많은 헌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존재이니 한국이 위험한 이 상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결론적으로 그의 힘이 지구를 구할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세연은 자신이 실책을 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하다.

하지만 그때였다.

일원 중 하나가 소리쳤다.

“미국의 헌터들이 날아서 오고 있습니다! 증원입니다!”

“좋아! 우리도 더욱 박차를 가하자!”

일단, 눈앞의 일은 잘 풀리는 듯하다.

그러니 과거의 대화는 잊도록 하자.

지석과 태석이 서로 등을 맡긴 채 서 있었다. 태석이 한숨을 뱉었다. 묘하게 큰 등이다. 지석의 등은. 자신도 꽤나 성장한 줄 알았는데, 지석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을 보니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동경심이다.

지석이 말했다.

“태석, 그동안 잘 지냈나?”

“물론이죠, 형.”

“그러고 보니 아이언 월드 대회 이후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

“그렇…… 나요? 그러고 보니 한 반년 못 본 느낌도 나는 게…….”

“뭐, 책으로는 한 권 정도려나.”

“어떤 기준이에요, 그건.”

“일단, 싸움에 집중해라.”

“예, 하고 있어요.”

“아이언 월드 대회 때부터 하고 싶던 말이지만, 이제 해도 되겠구나.”

“뭔데요?”

“너는 너무 집중하는 게 문제야. 싸움이 아닌, 싸움 후에 있을 일을.”

“네?”

“아이언 월드 대회 때, 모든 관중이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자, 너무 급하게 몰아치는 경향이 있었어. 뭐, 그것도 화력으로는 좋지만, 오래 살기에는 나쁘지.”

“신경 꺼요. 이미 오래 살기에는 그른 것, 저도 아니까.”

“음, 그래, 신경 끄마.”

“하하. 아무튼, 형.”

“왜 그러지?”

“그동안 고마웠어요. 형 때문에 제가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그때 그들을 지켜보던, 둘러싼 오크 무리가 소리쳤다.

“잡담은 거기까지다!”

“감히 카알의 우주선에 침범하다니!”

“우리 오크 부대는 카알 대장님을 위해 싸운다!”

“인간 둘! 너희는 죽음이다!”

“이런, 잡담할 시간이 끝난 것 같은데요?”

“이제 수업 시간인가? 그러고 보니 태석.”

“왜요.”

태석이 속성 단검에 오딘의 힘인 금빛의 무언가를 씌우며 말했다.

“수업의 최대 모순이 뭔지 아나?”

“뭔데요?”

“듣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하기 싫다는 거야.”

“그게 왜 지금 나와요?”

“그러니까 싸움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싸움도?”

“그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싸움은 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싫다는 건가.

하지만 태석의 생각은 달랐다.

싸움은, 누군가를 지키는 쪽이 하고 싶다는 거다. 지켜야 하니까, 반드시.

그런 생각을 마음 속으로만 품고, 태석은 속성 단검을 무차별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오크 하나를 도륙 내고, 곧이어 다른 오크도 도륙 낸다. 그런 와중에 지석이 반지의 힘을 통해 오크들을 중력 조종으로 찌그러트리면서, 별다른 동작도 취하지 않고 오크 셋을 끝장낸다. 태석이 순간적으로 손을 모아 기도 자세를 취해 강철 보호막을 펼쳤다. 지석이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반지 아홉 개의 능력을 모두 개방하고, 땅바닥을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앙!

강철 보호막이 팡 하고 깨지며, 오크들 모두가 날아가 벽에 처박힌 채 의식을 잃었다. 순간적으로 검은빛과 금빛, 푸른 빛, 붉은빛, 오색찬란한 오색을 넘어서 십색에 가까운 빛들이 소용돌이치며 안개를 만들었다.

“그 말 안 해요?”

“무슨 말?”

“‘이것이 뭐뭐의 반지. 나에게 이길 자는 없다.’ 이런 거요.”

“윽.”

지석이 부끄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안 하시나 보네~.”

“그야, 아홉 개의 반지를 전부 읊는 것은 입 아프니까.”

“방금 아홉 개 다 쓴 거예요?”

“아홉 개의 기초적인 힘만 폭발시킨 거다. 위력은 제법이지.”

“아홉 개 다 쓰는 건 처음 보는데.”

“그렇게 중요한 상황이란 거다.”

지석이 고개를 돌려 카알 쪽을 보았다. 태석 또한 카알을 보았다. 카알이 인상을 찌푸렸다.

“꽤나 강하군.”

카알의 눈에서 노란 번개가 몰아쳤다. 안광은 아니었고, 눈 자체가 광원이 되었다는 느낌이다.

카알이 말했다.

“새로 온 인간, 너는 이름이 뭐지?”

“지석이다.”

“그래, 지석. 들어 보았다. 강철 길드의 길드 마스터라고 들었다.”

“그래, 나는 꽤나 유명한 모양이다.”

“유명까지는 모르겠군. 저 옆의 태석은 우주적 존재니까 알지만, 지석 너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태석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는 유명인이니까.”

카알이 입꼬리를 비틀려 올렸다.

“나는 영웅이 될 거다.”

지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는 영웅이 될 수 없어.”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태석을 죽이면, 반쪽짜리 강신자인 나는 진짜 강신자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세상의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나약하고 남을 돕는 멍청한 인간은 세상을 구할 힘이 없어.”

“내 생각은 다르다. 태석은, 내 친동생과도 같은 태석은 세상을 구할 힘이 있어.”

“뭐라고?”

“힘이 있다는 거다.”

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세상을 구할 수 있는 힘이.”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네 입으로 말했듯이, 태석은 많은 사람들을 구하려 하는 순수한 소년이다. 청년이다. 남자인 거다. 그런 순수함이 세상 또한 구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헛소리 집어치워라.”

“요컨대, 네놈 같은 냉혈한은 태석의 순수함에 집어 삼켜져 죽고 말 거다. 그러니 당장 이 침략을 그만둬.”

“이제 나는 물러설 곳이 없다. 이미 침략을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 한다. 이것이 내가 내린 선택이니까. 반드시 완수할 것이다. 지구를 파괴하는 것으로.”

“……말이 안 통하는군.”

태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석의 말에 동의했다.

“뭐, 지금까지 만나온 적들은 다들 이런 타입이었어요. 말은 오질나게 안 듣죠. 그러면 형.”

“그래, 동생아.”

“전력을 다해 싸우죠. 참고로 저 녀석도 저와 비슷한 힘을 쓰니까 조심하시고.”

“그러면 다른 힘도 추가로 써야겠구나.”

지석이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들었다. 백색의 반지였다. 태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처음 보는 반지인데?”

“그동안, 네가 없는 동안 나 또한 많은 일을 겪고, 싸우고, 죽을 뻔도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 반지를 얻었지.”

“무슨 반지죠?”

익숙하다는 느낌이다. 대체 무슨 반지일까. 궁금하다. 태석이 그렇기에 물었고, 지석이 답했다.

“천사의 반지.”

“……천사의 반지.”

“그래, 신의 사도인 천사, 그 힘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반지이다.”

“놀랍네요. 그런 것이 아이템의 형태로 있다니.”

“나도 놀랐다. 얻고 나서 써봤는데, 제법 활용하기에 좋겠더구나. 그리고 지금이 쓸 시간인 듯하다.”

지석이 반지를 꼈다.

“윽.”

가볍게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말이 안 되는 거다. 원래 보통의 인간이라면 죽어야 정상이다. 천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태석도 힘들었으니까. 신을 강신하는 거야 강신자라 가능하다 해도, 천사로 변신했을 때 죽을 뻔해서 로키가 도와줄 정도였다.

그런 천사의 힘을 간단히 받아들이다니.

순간 하얀 날개가 뻗고, 지석의 볼에 비닐 같은 무언가가 둘러싸졌다. 눈알 동공은 세로로 길기 찢어졌고, 동시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카알이라고 했던가.”

“그렇다.”

“이제 내 동생과 나에 의해 죽을 거다.”

“각오는 됐다. 나는 너희를 이길 준비가 되어 있다.”

태석이 피식 웃으며, 오딘의 힘을 다시 한 번 더욱더 강신했다. 금빛의 섬광이 태석의 몸을 감쌌고, 금빛의 지팡이가 다시 한 번 생겨났다.

그것을 쥔 채 태석이 말했다.

“좋아, 이 몸의 힘을 체감해라.”

말투까지 바뀐다. 평범하게 말하려 하지만, 뭔가 단어들이 치환되어서 중2병틱한 말투를 하게 된다. 부끄럽지만, 그만큼 힘은 엄청 강해지니까. 등가 교환이라고 치부하도록 하자.

태석과 지석, 카알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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