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85. 가족
[아아, 전부 들어라.]
“뭐야?”
“무슨 일이지?”
“저 목소리는…….”
많은 오크들이 수군덕거렸다. 정확히는 카알이 타고 있는 우주선 내부의 오크들이 그런 것이다. 왜냐면, 우주선 선내 방송에서 태석의 목소리가 돌연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우주선 내부 조종장치실이라는 곳에 있다. 이 방송이 들리는 우주선 내부에 있는 거다.]
“어서 잡아!”
“어서 뛰어!”
“태석을 잡아라!”
“태석에게는 현상금이 걸렸다. 어서 잡아!”
오크들이 분주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 장면에 카알은 군복을 입은 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방관하듯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눈은 웃고 있다. 지나칠 정도로 선명하게 웃고 있는 것이다.
감히 카알의 영역에 침범하다니. 버르장머리 없는 놈. 카알이 히죽 웃었다.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오냐, 네 녀석이 바란다면 쳐들어가 주마. 조종장치실이라,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다. 카알이 몇 분 걸으면 도착할 거리였다.
하지만 그 전에 다른 오크들에게 꼬치 신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버티더라도 카알은 자신의 손에 그가 죽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입장에서는 옳을지도 모르지. 그것이 오크들의 삶의 방식이라면. 싸우는 것이 너희의 방식이라면, 죽고 빼앗고 약탈하는 것이 너의 방식이라면!]
카알이 히죽 웃었다.
맞아, 이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카알이 걸음 속도를 빨리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너희의 침략을 바라지 않아. 그야 우리가 너희에게 많이 죽어 나가고 있거든.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서, 너희는 너희의 입장에서. 우리는 너희를 전력으로 막을 거다. 너희는 우리를 전력으로 공격해라.]
그리고는 낄낄 웃는 소리가 들렸다. 사나운 웃음소리였다.
[우리는, 우리의 전력으로, 우리의 신념을 담아, 신조를 담아 너희를 묵사발 낼 것이다. 우리의 영역에 침범한 너희를 우리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우리는 너희를 없앨 거다. 이것은 우리의 선전포고다. 너희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우리도 너희와 싸울 수 있다고! 그러니…….]
순간 고요해졌다. 태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카알을 죽일 거다.]
“어서! 어서 가라! 어서 태석을 죽여!”
“감히 카알 대장님을 죽이다니 용서할 수 없어!”
“너희들 어서 무기를 들어라! 겁먹지 말고!”
“하지만…… 하지만 저 녀석은 카락스를 죽인 엄청난 놈이라고!” “맞아! 저 녀석에게 갔다가는…….”
겁에 질린 오크들에게 카알이 외쳤다.
“다들 닥쳐라.”
모두가 조용해졌다. 카알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 카알은 태석 네놈의 선택을 존중한다. 내가 너를 죽이고 영웅의 자리에 앉겠다. 세상을 구원하겠어.”
그리고는 조종장치실 문을 열어재끼고는 그 안에 있는 태석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니 숨어 있지 말고 나와라.”
태석이 히죽 웃으며 마이크를 뽑아서 버리고는 말했다.
“숨은 적 없어. 숨은 건 너야.”
태석과 카알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태석의 눈에 푸른 안광이 돋아났다. 푸른 천둥이 몰아쳤다.
태석이 노려보고 카알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먼저 움직인 것은 태석이다. 태석이 천둥을 휘감고 속성 단검을 휘둘렀다.
팟!
속성 단검이 카알의 몸집에 박히려 한다. 좋아, 좀더 찌르면…… 하지만 그때였다.
탁.
속성 단검을 카알이 손으로 툭 쳤다. 속성 단검이 순간 비틀어졌다. 다시 자가회복을 통해 정상으로 돌아온 속성 단검이지만, 태석이 일단 뒤로 물러났다.
‘뭐야, 저 몸. 엄청 단단하잖아?’
위험하다. 이제 와서 자신의 죽음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태석의 죽음은 단순히 일개 인간의 죽음과는 다르다.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태석의 등에 남겨졌다. 태석의 죽음은 인류의 죽음이다.
마치 노아의 방주를 몰고 있는 것 같았다. 태석이 인상을 찌푸린 채, 생각했다.
‘어쩔 수 없어. 오딘을 강신한다.’
[오딘이 태석의 선택에 존중합니다.]
[오딘이 동기화율을 올립니다.]
[오딘, 강신.]
파아아앙!
금빛의 섬광이 태석의 눈알에 적중했다.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얼굴의 반을 가리는 가면이 드러나, 눈을 가렸다. 가린 눈을 뜨자 금빛과 푸른빛이 섞인 눈알이 보였다. 태석이 미소를 지었다.
‘아아, 그런 거군.’
카알의 약점이 보인다. 카알의 약점은 뒷목, 그곳은 유일하게 단단해질 수 없는 부위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초커 같은 것을 목에 두르고 있는데, 그리 단단한 것은 아니다. 태석이 서둘러 움직였다.
돌진했다.
다리야, 움직여라.
더욱더, 더욱더 빠르게.
파앙!
“그렇게는 안 되지.”
카알이 주먹으로 태석의 몸을 쳤다. 태석이 비틀거리며 물러나려 했지만, 이를 악물었다. 속성단검으로 초커를 부수기 위해 휘둘렀다. 금빛의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퍽!
카알이 태석을 눈으로 좇고 몸을 움직였다. 주먹으로 태석의 속성단검을 후려쳤다.
빠각!
속성 단검이 부수어졌다.
태석이 그 상태로 날을 손으로 잡았다. 그 날조차 손째로 잘라버렸다. 카알이 자른 것이다.
윽, 아프다.
태석이 비틀거리며 피를 흘리는, 없어진 오른손이 있는 곳을 보았고, 순간 풀에서 손이 돋아나 완벽히 신체가 재생되었다.
“괴물이군.”
“괴물은 아니야.”
“생각해본 적 있나?”
“무엇을?”
“그야.”
카알이 히죽 웃었다.“애당초 신이 쫓겨난 상황에, 갑자기 너 같은 존재가 탄생한 것이 웃기지 않나?”
“그렇긴 하지. 하지만 세상의 위기를 막기 위해, 강신자들은 계속 한 명씩 생겨났어. 이번이 30번째였나 몇 번째였나. 아무튼, 그런 것으로 알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카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강신자는, 자연 발생이 아니다. 어떠한 존재의 조작으로 태어났다. 강신자는, 그자에게 힘을 모두 빼앗기기 위해 태어났어. 너는 필멸할 거다.”
“닥쳐!”
깡! 태석이 주먹으로 카알의 볼을 후려쳤다. 피 한 방울이 떨어져 나갔다.
카알이 잠시 볼을 만지다가, 주먹을 휘둘렀다. 태석의 복부에 명중했다.
“커어어어억?!”
태석의 몸이 날아가 벽에 박혔다. 태석이 서둘러 몸의 자세를 가다듬고, 벽을 밀며 아크로바틱에서나 나올 법한 화려한 회전 후에 카알의 어깨 위에 안착했다. 그리고 왼손을 뻗어 순간적으로 오딘의 지팡이를 만들고, 카알의 목을 찔렀다.
푹!
“컥.”
카알이 호흡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야, 목구멍이 지팡이로 찔려 나갔으니까. 그럴 만하다.
태석이 생각했다.
끝났나? 아니다. 절대 끝이 아니다. 카알이 비틀거리며 몸을 움직여, 태석의 발을 부여잡고 휭휭 돌린 후에 날렸다. 태석의 몸이 종이짝처럼 날아가 박혔다.
태석이 히죽 웃었다.
“더욱더, 더욱더.”
그리고는 사납게 웃으며.
“나에게 동화되어라, 오딘.”
파아아아아아-!
순간 금빛이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태석이 사납게 웃었다. 표정이 바뀌었다. 카알이 당황했다.
뭐지?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는데? 그래도 인간은 인간. 카알이 손쉽게 당할 인물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태석이 말했다.
“이 몸에게 손대지 마라.”
태석의 얼굴이 광기에 물들었다. 오딘을 너무 강신한 결과, 광기에 물든 상황이었다. 카알이 그 순간 주먹을 휘두르기 위해 손을 뒤로 뻗었고, 태석이 더 빨랐다.
퍽퍽퍽!
태석이 카알의 턱과 복부와 대가리를 후려갈겼다. 파앙! 카알이 비틀거리며 이명을 느꼈다.
뭐야? 갑자기 강해졌잖아? 역시 오딘. 자신이 강신해왔던 다른 신들과는 다르다. 카알이 말했다.
“나 또한 신을 강신해보았다. 그렇기에 오딘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겠군.”
“뭐? 강신?”
강신은 태석의 고유 권한일 텐데? 저 녀석이 전대의 강신자라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강신자는 모두 죽었다던데?
“나는 본래 강신자였다. 너처럼 신들을 부리던 존재였지. 하지만 어떠한 괴물이, 내가 힘이 강해졌을 때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 나의 신의 힘을 모두.
“…….”
“그런 거다. 그러니까 너 또한 그 신을 조심해야 할 거다. 그 전에, 내가 너의 힘을 빼앗겠다. 죽여서 영웅이 되겠다.”
“나는 죽지 않아.”
“글쎄, 누구나 죽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그리고 전쟁을 일으키는 미치광이는 절대 강신자가 될 자격이 없다.”
“그것도 그렇군.”
카알이 히죽 웃으며 주먹을 뻗었다. 태석이 날렵하게 고개를 밑으로 하여 피하고, 공격을 흘려내면서 관절을 꺾었다. 그리고 주먹으로 카알의 복부를 꿰뚫었다.
“커억.”
카알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괴성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카알이 죽어가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카알의 눈이 흰자만이 보이고, 그 흰자가 새하얀 빛을 뿜었다. 몸의 모든 부위가 섬광으로 뒤덮였다.
뭐하는 거지? 괴물인가? 카알 또한 악계자인가?
“너는 악계자인 거야?”
안정되어 흰빛과 네 번 꺾인 검을 들고 있는 카알을 향해 태석이 물은 것이다.
카알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그러면 너의 정체는 뭐지?”
“오크 대장. 이천여 개의 행성을 망친 자. 태석을 죽이고 자신이 영웅이 되려는 오크. 강신자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신을 잃은 이전 대의 강신자.”
“거의 대부분? 아직 신이 남았다는 거냐.”
“그래, 남았어.”
카알이 히죽 웃었다.
과거에 그는 강신자였다.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세상을 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어떤 괴물이 망가트렸다. 카알의 힘을 빼앗고 자신이 더욱 강해지고자 했다. 지금도 그 녀석은 강신자가 생겨날 때마다 힘이 강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강신자를 잡아먹었다. 그 녀석은 자신을 유일신이라고 지칭했다.
카알이 소리쳤다.
“나는 신을 강신하는 강신자. 오크들 중에서도 최강의 오크이다. 그것은 변함없어.”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어.”
“아니, 그것은 인간의 시점에서 보았기에 그럴 뿐이다. 이 세상에는 여러 이종족의 시점이 있어.”
“그렇다 해도 이건 옳지 않아.”
“예를 들어보지. 네가 만약, 동물들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우리를 잡아먹지 말라고, 닭들이 소리치면?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고 소리치면? 너는 놓아줄 거냐?”
“아니, 절대로.”
“그런데 왜, 인간들은 오크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두려워하고 반발하는 거지?”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원하니까.”
“뭐?”
“너희는 우리를 잡아먹으려 하는 포식자이고, 우리는 피식자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최후의 반항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야. 멧돼지가 인간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최후의 난동을 부려 탈출하거나 상해를 입히듯, 우리 또한 최후의 난동으로 너, 카알을 죽일 거다.”
“그거 말이 되는군.”
“그래, 세상은 여러 가지의 시점이 있는 법이고, 각자의 시점이 소리 높여 난동을 부리는 것으로, 세상은 교묘하게 균형을 이루어. 그것이 바로 세상의 이치라는 거다.”
“인간 주제에 세상의 이치를 논하다니.”
“그래, 주제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니야. 우리는 계속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성장하고, 우리의 입장에서의 행복을 위해 싸워야 해.”
“잘 들었다.”
기나긴 대화 끝에 카알이 히죽 웃으며 꺾어진 검을 휘둘렀다.
꽈르르릉-!
전격이 울려 퍼졌다. 노란 전기가 카알의 몸에 부딪혔다. 그리고 일제히 터져나가 태석을 공격한다. 태석이 견뎌냈다. 푸른 천둥을 몸에 휘감고, 그 공격을 견디려 한다.
하지만 경험의 차이가 컸다. 카알은 힘을 대부분 잃었지만 그래도 많은 경험의 강신자였고, 태석은 이제 1년 차인 신입이다. 게임이 될 리가 없다.
그렇기에 서서히 힘이 풀리고, 밀려날 때쯤.
“똑바로 서라, 태석.”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석이 고개를 들어 노란 천둥이 모두 사라진 것을 깨닫고, 앞을 보았다. 등이 보였다.
카알의 등이 아니다.
그가 아주 잘 아는 등이었다.
여태껏 바빠서 만나질 못했지만, 아주 중요한 ‘형’이다.
마치 가족과도 같이, 자신을 보살펴진 친형 같은 존재.
그리고 처음 헌터가 되었을 때 많은 도움을 준 자.
태석이 소리쳤다.
“지석이 형.”
이지석.
도복을 입은 채 양손에 아홉 개의 반지를 낀, 지석이 대답했다.
“그래, 내가 왔다. 그리고…….”
지석이 미소를 지었다.
“너를 돕기 위해 이 장소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