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81. 선전포고
카알은 오크였다.
지구와는 다른 행성에 살던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지구상에는 판타지 소설이라는 것이 있고, 고대의 인류가 얼핏설핏 오크라는 존재를 알려주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판타지 소설에서 오크가 나왔다. 뭐, 그런 뒷이야기는 제쳐 두고.
카알은 우주에서 전쟁을 벌이는, 지구로 따지면 징기즈칸과 비슷한 자이다.
빼앗은 행성 1,024개.
부수어버린 행성 315개.
테라포밍한 행성 32개.
여기서 빼앗았다는 것은 식민지화 시켰다는 것이다.
카알은 여러 우주 행성을 순회하면서 다짜고짜 싸워서 행성을 뺏고, 쓸 수 없는 행성을 부수고 쓸 만한 행성은 테라포밍해서 오크들의 정착지로 이용했다.
그런 그들에게 반발하는 존재들은 다른 오크들과 연합을 이루었지만, 최근에 부수어졌다.
그렇게 부수어진 결과, 카알은 좀 더 멋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지구를 식민지화시킬 정도로 힘을 한곳에 집중시킬 수 있는 거다. 반 카알 세력이 부수어져서 가능한 일이다.
카알은 우주선에 탄 채 지구를 보고 있었다. 지구와의 거리, 대략 달과 지구와의 거리와 비슷한 정도.
우주선 수백 척을 멈추어 세운 채 지구 쪽을 향하고 있었다.
카알의 부하가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사복을 입은 오크였고, 카알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군복의 모자를 각지게 돌려쓰면서 카알이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진입한다.”
“지구로 말입니까?”
“그래, 지구.”
카알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부터 지구를 침략한다.”
전쟁이 선포되었다. 비공식적으로는 이미 확정적으로.
태석은 대한과 대련을 하고 있었다. 태석이 KEWP에서 상을 받고 돌아와 태희와 강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6월이 온 시점이었다. 그 시점에 이미 에덴이 5분 뒤에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측한 것을 대련 중인 태석은 모르고 있었다.
대한이 대련을 중단하는 신호를 보냈다. 이유? 간단하다. 태석이 대한을 쓰러트린 채 목에 천둥을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완패였다.
“겁나 세네. 항복!”
대한이 그렇게 소리치자 태석이 천둥을 일제히 거두고 강신을 거두었다. 그리고 대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대한이 손을 잡고 일어났다.
“세지? 많이.”
“그래, 많이 세다.”
대한이 하품을 길게 했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보다 요즘 엄청 춥지 않아? 6월인데, 한창 더울 때인데.”
“그렇긴 하네.”
태석이 코트를 고쳐 입으며 말했다. 검푸른 코트를 입고 있는 태석은 가슴팍에서 허리춤까지 대각선으로 그어져 있는 크로스백을 매고 있었다. 한 손에는 속성 단검을 역수로 쥐고 있었다.
“많이 춥네. 어째서 이런 걸까?”
“사실 말인데, 조금 상황이 안 좋아.”
“상황이 안 좋다니?”
대한이 조용히 귀에 대고 말했다.
“현재 오크들이 우주선을 정박한 채 한 달 가까이 머물러 있는 모양이야. 그 뒤로 계속 냉전 상태고, 실제로 지구의 기온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
“기온이 떨어지는 건 어째서 그런 거야?”
“지석의 예상으로는…… 테라포밍.”
“테라포밍?”
“그러니까 지구를 오크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뭔가 우리가 알 수 없는 기술력을 동원하는 거겠지.”
“뭐? 그걸 왜 이제야 알려주는…….”
“방법이 없으니까. 지구 측은 힘이 없거든. 먼저 쳐들어갔다가는 우주적으로 적대 세력이 늘어날 거야. 선전포고를 하는 것도 힘센 종족들이 할 수 있는 짓이거든.”
“그런…….”
태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부디 싸움을 저지르려 하는 게 아닐 거라고 믿고 싶지만…….”
태석의 머리에 뭔가 스치고 지나갔다.
‘이것이 위기인가?’
고개를 저었다. 겨우 이게 위기일 리 없다. 태석만이 막을 수 있는 위기는 이것보다 더욱 엄청날 것이다.
‘그보다 불길하군.’
태석은 차가워진 하늘을 보았다. 벌써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6월에.
“응?”
그때 태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늘에 뭔가 떠 있다.
그것을 본 태석이 곧바로 토르를 강신하고, 비바람을 몰아 날기 시작했다.
“야! 야!”
대한이 화들짝 놀라 날아가는 태석을 향해 소리치고, 대한 또한 하늘에 떠 있는 무언가를 보고 중얼거렸다.
“뭐야, 진짜로 전쟁인 거냐……?”
시연과 현지는 칸타로스라는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햄버거를 섭취하고 있었다. 시연은 비싼 한우불고기버거를 먹고 있었고, 현지는 가장 싼 햄버거를, 심지어 단품으로 먹고 있었다.
“그렇게 싸구려 먹어도 돼요?”
“역시 칸타로스는 불고기버거라고요. 가장 맛있거든요.”
“하하, 그런가요?”
시연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보다 시연 씨.”
“왜 그러세요?”
“그 남자랑 어떻게 되어가요?”
풉.
콜라를 뿜을 뻔했다. 시연이 헛기침을 하여 진정하고 물었다.
“어떤 남자……?”
“그러니까 시연 씨가 마음에 품고 있는 남자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아, 그 남자요. 그러니까…….”
시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맨날 어딜 그렇게 바쁘게 다니는지 좀처럼 마주칠 틈이 없다고 해야 하나. 갈수록 저보다 멀리 있는 곳으로 떠나가는 느낌이라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기분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가까스로 그룹에 소속되어서 가까워지나 했더니 우주적으로 유명인이 돼서 도저히 다가갈 수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런 대단한 남자라면, 역시 여자친구는 있겠죠? 이참에 단념하는 게…….”
“아뇨, 여자친구는 없어요. 인터뷰에서도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그런 남자가 왜 여자친구가 없는 거죠? 우주적으로 대단한 남자라면…… 잠깐 설마 그분?”
“눈치챘죠. 태석 씨예요.”
“우와아.”
시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모르고 있던 걸까? 시연은 태석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에게 태석을 좋아한다고 티 내고 다녀서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지가 눈치가 없는 건가? 뭐, 상관없다.
그보다 태석, 태석이 문제다.
도대체가 어떻게 된 것이, 그 정도로 유명세를 얻고 돈까지 많이 번 남자가 여자친구가 없는 것은 내버려두고, 왜 시연이 좋다고 하는 데도 만나줄 생각이 없는 거지? 적어도 몇 마디 대화 정도는 괜찮잖아. 매번 바쁘다고 하고, 물론 정말로 바빠서 그런 거긴 하지만 그래도 좀 더 친해지고 싶은데, 다른 이것저것 재밌는 일도 태석과 하고 싶은데…….
우우, 짜증 나.
시연은 콜라를 부글부글 기포를 내면서 짜증을 냈다. 현지가 당황했다.
“콜라 넘쳐요. 테이블 더러워지겠다.”
“짜증 나…….”
“저라도 짜증 날 것 같지만, 아무튼 진정을…….”
시연과 현지가 한창 꽁트를 하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꽂히기도 했다. 그녀들도 유명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시연이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고는 인상을 굳혔다.
“저건…….”
뭔가가 보인다. 저게 뭐지?
세희는 원룸에 앉아 있었다. 영화를 보고 있었다. 이제 성천주의 부하 헌터가 아니다 보니 프리랜서가 되었다. 며칠 간 괴수 사냥을 한 뒤에는 휴식차 티비 앞에 앉아 VOD를 통해 철 지난 영화들을 보고 있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다. 첩보물인 모양이다. 세희가 그 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아니지. 저기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세희는 영화 속 헌터가 좌충우돌 뛰는 장면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답답해.”
세희보다 영화 속 인물이 못 싸우니 훈수를 두고 싶을 정도였다. 정말 귀찮을 정도로 직업병이 심하다. 심지어 S랭크 헌터다 보니 더 그랬다.
싸우는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실전과 비교하여 평가하곤 한다. 헌터로서 거의 반평생을 살다 보니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냐옹.
세희의 앞에 고양이가 털푸덕 주저앉았다. 흔히 식빵을 굽는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발까지 감춘 채 네모난 식빵 모양으로 엎드려 있는 고양이를 보며 세희가 말했다.
“해피버드, 심심하니?”
냐아아앙-.
세희의 말을 알아듣는 건지 아닌지, 뚱뚱해진 해피버드가 하품하듯 냥 소리를 냈다. 세희가 피식 웃었다.
“심심하나 보구나.”
냐아아-.
해피버드가 고개를 푹 숙이고 아예 옆으로 누워버린다. 세희가 그런 해피버드의 옆구리를 간지럽힌다.
냥!
해피버드가 팍 하고 승질을 부리며 창가 난간에 올라타 다시 앉았다. 세희가 그것을 보며 피식 웃다가 창가 뒤편에 있는 것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저건.”
설마 그건가?
세희는 하늘 높이에 아주 거대한 우주선 한 척이 떠 있는 것을 보고는 당황했다.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옷을 갖춰 입고 헌터 도구 몇 개를 들고 서둘러 밖으로 달려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주선을 보고 사진을 찍거나 구경하고 있다.
“비켜요! 헌터입니다! 비켜요!”
세희가 서둘러 사람들을 밀치며 달려갔다. 그리고 공터에 섰다. 우주선이 아주 크다. 세희가 서둘러 빛의 정령을 부려 빛의 날개를 만들었다.
펄럭! 펄럭!
빛의 날개를 휘두르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태석이 토르를 강신하여 비바람을 몰아 날기 시작했다. 우주선 벽면에 도착한 태석은 우주선의 입구 쪽에 선 채 묠니르를 소환해 들었다.
“누구냐, 너희는!”
알면서도 물어본다. 아마 오크들이 이제야 우주선을 끌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구에 도달했다. 태석이 묠니르를 금방이라도 휘두를 준비를 마치며 말했다.
그때 우주선의 스피커 장치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걸쭉하고 가래 섞인 카알의 목소리였다.
[나는 카알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너희들에게 경고와 선전포고를 하고자 한다.]
태석이 묠니르를 꽉 움켜쥐었다.
[너희들에게 자유는 없다. 이제부터 모든 것을 오크들에게 관리받아야 할 거다. 너희들에게 선전포고를 하여 행성의 주도권을 빼앗고, 너희들의 행성을 식민지화할 것이다.]
“그렇게는 안 돼.”
태석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우주선의 입구가 열리고, 오크들이 땅으로 일제히 뛰어내렸다. 특수한 우주의 도구를 이용해 땅으로 안착한 그들이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민간인들이었기에, 잔혹하게 상처를 입고 죽기 시작했다. 도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태석이 그것을 보다가 입구 쪽에서 아직 땅으로 내려가지 않은 오크를 보았다.
태석이 소리쳤다.
“네가 카알이냐?!”
“그래, 맞다. 내가 카알이다.”
그리고 손을 뻗어 기계 장치를 장착한 것을 작동하여 에너지 포를 쏘았다.
피슝!
태석이 그것을 정통으로 맞고 날아갔다. 비바람을 뚫고 몸을 가격한 것이다.
미처 반격하거나 피할 틈조차 없었다. 카알은 멀리 날아가 땅으로 추락하는 태석을 보며 말했다.
“너조차 인간에 불과하다. 우리 오크들의 기술과 힘에 굴복하라.”
카알이 히죽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태석이 땅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추락하다가…… 질퍽, 뭔가 질척거리는 소리를 잠깐 내고 땅의 어딘가에 나동그라졌다.
사람들이 비명이 들린다.
오크들이 사람들을 도륙한다. 도주하는 자들을 붙잡아 머리를 자르고 팔을 자르며 반토막까지 낸다.
전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