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78. 에덴을 노리는 자
세희는 생각했다.
‘대련장의 상태, 그러니까 필드의 상태는 그렇게 양호하지는 않고.’
태석이 드워프 한 명과 진창 싸운 탓이었다. 온갖 곳에 흠집과 패인 곳이 있었다. 미끄러지지 않는 까슬까슬한 바위로 이루어진 필드라 그런지 부서지기는 또 잘 부서진 모양이다.
‘태석의 상태는 언제나처럼 최고로 보이지만, 모르는 거고.’
태석은 기본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아도 숨기는 능력이 좋다. 속내를 감추는 것을 어찌나 잘하는지, 아이언 월드 대회 때 폭탄 설치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답지 않았다.
‘그리고 내 상태는 최상.’
그동안 이날만을 고대했다. 태석과 만나 싸울 날을. 그러니까 상태가 양호해야만 하고, 양호하다. 그러니 이길 수 있을…… 까?
확신은 들지 않는다.
세희는 현재 빛의 날개를 펼친 상태이다. 정령술 중 빛의 정령을 극한으로 다룬 결과, 그가 이미지로 하고 있는 빛의 정령왕의 모습에 가까워졌다. 솔직히 빛의 정령왕이라니, 그거 그냥 천사 아니야? 싶기도 하지만, 알 수 없다.
물론 태석처럼 천사로 변할 수 있다면 어찌나 좋을지 상상도 가지 않지만.
그때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태석이 자신을 구원해줄 때의 모습을.
그렇기에 이기고 싶다. 신을 꺾고 싶다는 감정을 태석이 알게 해주었다.
“반드시 이길 겁니다!”
세희가 그렇게 외치고는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한 손을 번쩍 들고 빛의 정령왕의 에너지를 모았다.
그 상태로 앞을 뻗어 한 손으로 다른 팔을 감싸 쥐고 에너지를 쏘았다.
파아아앙-!
세희의 몸이 대각선의 방향으로 밀려났다. 자칫하면 대련장을 벗어날 정도였다. 태석을 향해 날아간 에너지를 태석은 피해냈다.
‘저것에 맞으면 죽는다고 생각한 걸까.’
세희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석이 피할 정도이니 느린 공격이다. 빛의 정령왕을 따라 했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더욱더 동기화를 하면…….
에너지가 더 빠르게 모이고, 이동한 태석을 조준해 쏘았다.
파아아앙-!
태석을 향해 날아든 에너지, 태석은 정전기를 일으켜 미끄러지듯 피해내려 했고.
‘그렇게는 안 되지!’
세희가 손을 휘저어 에너지의 방향을 꺾었다. 회피한 태석을 재차 노리고, 포물선을 그리듯 빙 돌아 태석을 노렸다.
태석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쾅!
태석이 맞았다.
“좋아! 맞았다!”
세희가 기뻐서 비명을 질렀다.
빛과 태석이 충돌하여 안개를 만들어냈다. 주변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세희가 서둘러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겨우 이걸로 태석이 당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태석이 이를 악물었다. 안개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제법 아프군.’
토르를 강신하지 않았다면 상처 정도는 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토르의 힘을 강신했기에 견딜 수 있었다. 토르는 기본적으로 힘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기에 맷집 또한 좋은 모양이다.
[토르가 꽤나 녀석이 성장했다고 합니다.]
[헬라가 저런 녀석에게 지면 밥은 없다고 합니다.]
[로키는 드르렁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오딘은 눈을 감고 있습니다.]
[분노의 악마는 자신의 힘을 사용하라 합니다.]
‘참 사람 많아졌군.’
태석의 속에 다양한 존재들이 잠들어 있다. 굉장히 정신없고 혼란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혼란하지는 않다.
그들이 늘어날수록, 태석은 안심이 되는 것을 느낀다.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낀다.
마치 원래부터 자신의 것이었던 마냥, 어쩌면 이것이 그가 세계의 이질적인 존재, 이레귤러인 탓일지도 모른다.
태석이 한숨을 내뱉고 주먹을 꽉 쥐었다.
“하하.”
그리고는 안개가 걷히기 직전, 오딘을 아주 잠시간 강신한다. 마스크가 얼굴 반을 가리고, 금빛의 눈알이 반짝였다. 가면 속에서 드러난 눈알로 안개의 밖을 본다. 그리고 세희의 위치를 확인한 직후 금빛의 눈알을 닫는다. 그리고 그대로 토르의 힘을 강신한 직후 발을 내디뎌 하늘로 뛰어올랐다.
순간적으로 세희가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태석이 주먹으로 세희의 볼을 강타했다.
“큭!”
세희가 비명을 질렀다. 됐다. 맞았다.
여자를 때린 것에 죄책감 따위를 느끼느냐 하면, 그 여자가 탱크를 부술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S랭크의 헌터라고 대답할 준비는 되어 있다.
태석이 하늘에서 빙글 몸을 돌려 땅으로 착지, 그 이후 태석이 세희를 보며 말했다.
“아픈가요?”
“글쎄요.”
세희가 입가를 닦자 피가 가득 묻었다.
“조금?”
“이제 더 아파질 겁니다.”
태석이 손을 뻗었다. 꽈릉! 천둥과 함께 태석의 손에 묠니르가 들렸다. 토르의 망치였다. 태석이 히죽 웃으며 그 망치를 허공에 휘둘렀다.
파지직.
그 움직인 선을 따라 묠니르가 천둥의 궤적을 만들었다.
세희가 미소를 지으며, 살짝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 노려보았다.
‘쫄지 않아.'
세희가 자신에게 주문을 외우듯 그렇게 생각한다.
한편, 하레니아 크웰은 코도락과 마주하고 있었다. 장소는 음침한 곳이나 독방같이 좁은 공간이 아니었다. 태석과 세희의 대련장 근처,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이다. 그곳을 지나치는 사람이나 거기 서서 대련을 구경 중인 사람들이 코도락과 하레니아를 힐끔 본다.
유명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길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 신기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하긴, 유명 배우가 내 옆집에 산다고 하면 신기한 듯이,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레니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됩니다.”
“왜 안 된다는 거지?”
코도락은 요구했다. 에덴의 메커니즘을 알려주기를.
그리고 하레니아가 거절한 상황이다.
“왜냐면, 저희 또한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른다라. 그런데 어째서 에덴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지? 우리는 그게 필요해. 그것이 많이 양산된다면, 세상은 좀 더 평화로워질 거야. 세계의 위험을 막을 정도의 물건이 에덴이니까. 실제로 막았다는 설도 있을 정도니까. 그것만 있다면, 앞으로 들이닥칠 위험은…….”
“물론 좋은 목적으로 요구하는 거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에덴은 하늘의 신이 만들어낸 물건. 그렇기에 저희 인간으로서는 알 방법이 없죠. 저희라고 하기에는 나는 성천주이지마안…….”
중간에 말이 늘어진 것은 하품을 했기 때문이다. 코도락이 그 태도에 화가 났다.
“그래? 너희만 위기에서 살아남겠다 이 말이냐?”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너희들이라면, 에덴이 있다면 생존이 가능해. 2차 라그나로크에서.”
“2차 라그나로크?”
“우리가 정한 이름이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간의 북유럽 신화의 신을 다루는 인간, 그리고 시작된 위험 예지. 그 위험은 세계 자체가 멸할 정도. 그렇기에 북유럽 신화에서 따온 멸망의 사건, 라그나로크가 두 번째로 일어난 거라고 칭하기로 했다. 그러니 어서 내놔, 에덴을. 내가 조사해서 복제해주도록 하지.”
“……싫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코도락은 한숨을 뱉으며 초록색 피부를 덮는 로브를 둘러쓰며 태석을 향해 돌진했다.
“내가 뺏어내는 수밖에. 태석을 조져서라도.”
하레니아가 한숨을 뱉으며 무전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모두를 향해 말했다.
“멍청한 오크가 또 사고를 치고 있어요. 2차 라그나로크를 효율적으로 막기 위해 에덴을 내놓으라는데, 태석을 조지면 나올 거라고 착각한 모양입니다아. 그러니까 모두 코도락을 막으세요. 멍청하고 착하지만, 제법 강한 녀석이니까 조심하고요오.”
쾅!
그 순간, 대련장을 덮치는 폭음이 울렸다.
태석에게 공격을 가한 걸까, 아니면……. 하레니아가 대련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는 코도락은 태석에게 당한 것이 아니다. 세희에게 당했다.
세희가 볼을 얻어맞아 피를 흘리면서 다시 한 번 마지막 에너지를 분출했고, 새하얀 에너지의 구체가 태석 쪽을 향해 날아갔다. 그 상태로 갑자기 고라니 마냥 코도락이 습격, 태석에게 맞았어야 할 에너지에 정통으로 맞아 날아갔다. 벽에 부딪히고, 장기가 손상된 것인지 헐떡이는 숨을 내뱉고 들이마시다가 의식을 잃었다.
곧이어 수많은 관계자들이 코도락을 이끌고 병원으로 직행. 외계인이므로 많은 연구도 은근슬쩍 이루어질 예정이다. 아직 연구 대상인 생명체가 오크니까.
태석은 대련이 어설프게 중단되고, 갑작스레 출현한 오크가 병원으로 실려가는 꼴을 한참을 보았고,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나 참, 이게 무슨 일인지.”
“그러게요. 갑자기 오크가 왜 튀어나온 건지.”
세희가 한숨을 뱉으며 아쉬워했다.
“계속했다면 제가 이길 수 있었는데.”
세희가 그렇게 말했고, 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가 이겼을 겁니다만.”
“아니에요. 에너지, 그거 몇 발 더 맞추면 태석 씨가 넉다운 됐을 걸요?”
“제가 전력을 다해 오딘을 강신하면…….”
“안 할 거잖아요? 위험하다면서요?”
“그건 그렇지만…….”
“그러니까 대련에 있어서는 제가 이길 수 있었어요. 태석 씨가 전력을 다할 수 없는 상태가 바로 대련 상황이니까.”
“으음…….”
태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틀린 말은 아니다. 뭐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 태석이 한참을 그렇게 세희와 옥신각신 대화를 할 때였다.
투둑, 투둑.
시연이 태석과 세희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스크림 두 개 중 하나가 녹아서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양손에 아이스크림을 든 채 죽은 눈을 하고 있었다.
태석이 시연 쪽을 보았다.
왜 저러고 있지?
한편, 시연의 뇌 내의 생각.
‘무슨 일이지? 어째서 태석 씨한테 또 다른 여자가? 내가 모르는 새에 또 다른 사건에 휘말리고 여자를 구한 건가? 아니, 저 여자는 세희일 텐데? 게다가 태석 씨와는 한동안 연이 없었을 텐데? 그러고 보니 태석 씨가 세희와 대련을 한다고 했었고…… 가만, 어째서 대련을 한 거지? 설마하니…….’
시연이 소리쳤다.
“두, 둘이 설마…….”
“아, 시연 씨. 아이스크림이에요? 고맙습니다.”
태석이 활짝 웃으면서 시연에게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빼갔고, 시연이 어쩔 줄 모르는 좋아하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뭐라 중얼거렸다.
“다른 게 아니고, 태석 씨가 힘들까 봐 당분 보충용으로 가져왔어요. 그리고 영화 표 한 장이 있는데 같이 보는 것은…….”
“안 듣고 있는데요, 태석이.”
시연이 고개를 돌려보니 태석과 세희가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시연이 암담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왜 갑자기 저년이 나타나서…….”
대한이 그 상황에 다시 대꾸했다.
“점점 집착이 되어 가는데요.”
하지만 시연은 대한의 말을 듣지 않는다. 혼자만의 세상에서 어딘가 비뚤어진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대한이 한숨을 뱉으며 생각했다.
‘아까 전까지는 그렇게 싱글벙글하던 여자가……. 태석이 대체 뭐길래.’
어째서 대한은 태석처럼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 고민을 하며 복도를 혼자 걷기 시작했고, 대한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저마다 대한에 대한 일화들을 나열하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한 또한 유명인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언 월드 대회 2등에, TOY 정화 팀의 일원이었고, 대한이 지칭한 가즈 나이트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KEWP에서 상까지 받았으니…… 유명인이 아니라면, 할리우드 배우는 모두 시장통의 관객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의 경외감이 드는 모습 탓에 그에게 섣불리 다가가 사인이나 다른 것을 요청하는 사람은 없으니 대한은 눈치채지 못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