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모든 신을 받다-77화 (77/102)

# 77

77. 빛의 날개

“방금 전 하레니아와 대화했지?”

“하레니아?”

“그래, 하레니아. 천 개의 눈을 소유한 성천주.”

“천 개의 눈을 소유한 성천주라. 그래, 만났어. 그게 왜?”

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성천주는 오래전 내가 설계한 성천주야.”

“뭐?”

“정확히는 위 측의 허가를 받았어.”

“위 측의 허가?”

신의 위라니? 태석이 생각하는 높은 곳이라는 의미라면, 이상하다. 신보다 위라니? 어떤 존재를 말하는 거지?

“그 위 측이 뭘 하는 존재인지는 몰라. 어쩌면 존재라고 칭하기에도 거룩한 것일지도 몰라. 세계의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렇다면 그 위 측을 너는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 거야?”

“몰라. 날 때부터 알게 되었어. 무언가 능력을 쓰거나, 기적을 쓸 때는 늘 그 위 측에게 통보를 하고 즉석에서 쓰는 형식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래, 그 기적은 그 어떤 위 측이 만들어내는 거야.”

“S.Y.S…….”

“뭐?”

태석은 이제 모든 것이 짜 맞추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S.Y.S.

Supervisioning Your Society.

너의 세상을 관리하라.

마치 신이 기적을 쓰면서 관리하는 것을 S.Y.S에서 허가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이 들고 말았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너무 억측이다. 그리고 이 정보가 다른 이들에게 새어나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일단은 태석 혼자 알고 있도록 하자.

“아무튼, 하레니아라는 성천주를 네가 위 측의 허가를 받아 기적을 일으켜 만든 거라는 거지? 천 개의 눈이라는 능력도 네가 만든 거고.”

“그래. 그래서 하레니아가 능력을 쓸 때면 항상 나에게 어떤 정보가 들어와. 그리고 며칠 전, 하레니아가 천 개의 눈을 쓰면서 본 장면을 나 또한 최근에 보았어.”

“그래, 어떤 장면이었지?”

“세상이 멸하는 장면. 정확히는 지구가.”

“……?”

태석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헬라가 세상이 멸한다고 했다. 정확히는 지구가 멸한다고 했다. 무슨 소리지? 설마하니 그것이…….

“그게 이번 세기에 찾아오는 위기…….”

“그래, 네가 막아야 할 위기야.”

헬라가 미소를 지으며, 살짝 슬픈 눈으로 태석을 보았다.

“우리가 해냈듯이, 너도 해낼 수 있어. 세상을, 부디 세계를 지켜줘. 이 ‘강신의 세계’를.”

“강신의 세계…….”

“그래. 이제 와서 밝히는 거지만, 이 세계는 위 측으로부터는 강신의 세계라고 불리고 있어.”

“강신의 세계라니? 다른 세계가 또 있는 거야?”

마치 우리와 같은 세계가 또 있다는 듯이 말한다. 태석이 그렇기에 이상해서 물은 것이었다. 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다른 세계들이 또 있는 것 같아. 강신의 세계에서만 살고 있어서 모르겠지만, 어쩌면 마음만 먹으면 나 또한 다른 세계와 교류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는 말은…….”

“또 다른 지구, 또 다른 태석. 그러니까 강신자인 태석이나, 강신자가 아닌 태석, 가족을 잃은 태석이나, 가족을 잃지 않은 태석 등등 수많은 세계가 존재하는 거야.”

“다중 우주…….”

“그래, 평행 이론이라고도 부를 때도 있지. 어찌 됐건, 수많은 세계 중의 고작 하나에 속하는 세계가 강신의 세계지만…… 나는 이 세계를 사랑해.”

헬라가 태석의 머리를 손을 올려 쓰다듬는다. 키가 워낙 작기에 태석의 머리에 닿기 위해서는 까치발을 들어야 한다. 뭐야, 우습잖아. 태석이 그 꼴이 웃기고도 귀여워서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지만, 어째서일까, 눈물이 흘렀다.

“부디 힘을 내줘.”

헬라가 씁쓸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마치 그동안 행복하게 지내오던 연인을 떠나보내듯이, 그렇게 쓸쓸하게. 하지만 희망을 가지고.

“그래, 알았어.”

태석은 그렇게 강신 세계에서 벗어났다.

현실로 돌아왔다.

째깍- 째깍-.

KEWP의 숙소 내부였기에 평상시와는 다른 시계 소리가 울려 퍼진다. 태석은 눈가를 어루만졌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어째서 눈물이 흐른 걸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미 멸망한 세계를 겪었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강신 세계에 자주 접촉한 나머지 다른 세계의 기억이 흘러들어온 걸 수도 있다. 서울이 불에 타고, 태석이 천둥을 휘감고, 오크들에게 대립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마치 그가 처음 보는 소설의 프롤로그를 보듯이, 그 장면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적어도 태석이 사는 세상에는.

뭐가 여러 세계가 공존한단 말인가. 뭐가 태석이 없는 세상과 있는 세상도 존재하고, 수많은 세계가 다중 우주로서 존재한단 말인가. 그런 건 상관없다.

태석은, 자신의 세상만을 지키면 된다.

그가 평생을 애착을 가지며 살아온, 이 ‘강신의 세계’를.

"까짓거 구해보겠어.“

언제 찾아올지도, 정말로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태석은 눈가를 닦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지금 시각은…… 대략 오후 1시경. 세희가 찾아오기로 한 시각이다. 그보다 벌써 시각이 이렇게 되었나. 오전 10시에 아침을 먹었으니 아직도 배가 부르다. 평소보다 아침을 늦게 먹은 탓이다. 성천주들과 밥을 먹는 것은 제법 오래 걸렸으니 사실 점심을 먹은 것과도 같다.

태석이 문을 열었다.

세희가 문앞에 있다.

“아.”

“오셨네요.”

태석이 미소를 지었다. 이런, 미소가 너무 어색한가? 세희의 표정이 오묘하다. 뭔가 살짝 놀란 눈을 하다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왔습니다.”

“그, 그래요.”

“대련을…… 하기로 했었죠.”

세희가 재차 미소를 지었다.

지금 컨디션은?”

“좋습니다.”

“그닥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믿을게요. 태석 씨니까.”

태석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세희 또한 따라 걸었다.

그보다 세희는 왜 그렇게 태석을 믿는 걸까. 뭔가 고마워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너무 좋게 본다는 눈치였다. 울고 있는 걸 들킨 모양인데, 꼴사나워 보이지도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를 믿고 있는 겁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뭔가, 역시 태석 씨라고 해야 할까. 범상치 않은 물음이네요.”

세희가 다소곳하게 손을 모은 채 걷고 있었고, 태석이 그 모습을 잠깐 보다가 다시 앞을 보았다.

“아니, 가끔 생각이 들어서요. 주변 사람들은 항상 저를 믿고 의지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게 싫어요?”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태석이 볼을 긁적였다.

“저는 그렇게 믿음직하지 않거든요.”

“어떤 점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항상 제멋대로 행동하고, 제멋대로 위험한 상황에 빠지고, 또 운이 좋아서 겨우겨우 살았지만, 몇 번이고 죽을 뻔했어요. 그런 무모한 사람을, 주변 사람들, 그러니까 시연이나 대한, 현지나 겐세, 고란 같은 분들이 왜 그렇게 저를 믿나 해서요. 항상 보면 저에게 모든 걸 맡기고 손발이 되어주는 느낌이라…….”

“자랑이네요.”

“자랑은…… 아니지만. 아무튼.”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지금 태석 씨는 그거예요. 심리 상태가…… 그러니까…….”

세희가 잠시 말을 정리했다.

“예를 들어, 너무 이룬 것이 많은 금메달리스트 선수가 자신이 그동안 얻은 성취는 모두 우연과 운으로 얻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음.”

“그러니까 그동안 자신이 한 노력과 열정, 그리고 피땀이 흐르던 고생은 모두 폄하하고, 자신의 이룬 결과가 자신의 노력보다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거 말도 안 되네요. 결국 노력했기에 남들을 이긴 거잖아요? 충분히 기뻐해도 되는데.”

“거봐요. 답은 알고 있네.”

“……?”

“태석 씨는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 거예요. 솔직히 노력보다 조금 받고 있는 것 같지만.”

“이거 한 방 먹었군요.”

세희가 무표정하지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역시 아직 웃기에는 마음의 상처가 큰 걸까. 뭐, 세희는 한스에게 학대를 받아왔으니 그 상처가 클 수도 있다. 하지만 나아지고 있다.

“태석 씨, 그보다 도착했네요.”

와아아아아아!

함성이 들린다.

태석이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죠?”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 거지? 오크, 드워프, 엘프, 그리고 인간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대련장을 중심으로 관중석에 앉아 있는 것이다.

“S랭크 헌터 둘의 싸움. 그리고 예선전에서 만나서 멋진 경기를 펼친 세희와 태석의 싸움. 게다가 태석은 몇 번이고 영웅이 된 적 있는 인물이니까 대련 신청을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마자 모인 것 아닐까요?”

“그런…….”

“뭐, 참가비까지 준다니까, 우승하면 돈도 더 준다니까 우리 서로 이겨보도록 노력하죠.”

태석이 그 말에 쓰게 웃었다.

잊고 있었다. 태석은 유명이고, 세희도 유명인이다. 그 유명인들끼리의 대련이니 그 승부가 궁금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자신의 값어치를 너무 폄하해 온 것 같다. 태석은 그 점을 깨달았다.

어쩌면, 자신의 능력은 자신이 생각해오던 것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세계의 위기 따위 그동안 노력해온 성과들을 통해 해결하고 말겠다.

태석이 대련장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세희와 거리를 두고 서로 쳐다보았다.

“자, 그러면 시작합시다.”

태석이 천둥을 휘감았다.

“역시 처음에는 항상 천둥이시군요.”

“이게 편하고, 꺼내기도 편해서.”

“그렇다는 말은, 천둥이 주공격이고 그다음이 변신, 그리고 뭔가 중2병 코스프레군요.”

“중2병이 아니라 오딘입니다만.”

“아무튼, 중2병이에요. 그거 커뮤니티에서 굉장히 유명한 거 알아요?”

“아…… 부끄럽습니다…….”

“참고로, 저 그거 관련 팬아트 몇 장 수집하고 있어요. 방에도 걸어놨는데, 이번 대련에서 봤으면 좋겠네요.”

“그건 이제 안 꺼냅니다. 쪽팔리고, 또 딴 이유도 있어서요.”

다른 이유는 간단했다. 오딘을 꺼내면 뭔가 성격이 바뀐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태석 속에 있는 광기가 퍼져 나와 난동을 부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걸 완벽히 제어하기 전에는 오딘은 절대 안 꺼낼 생각이다.

태석이 그렇게 말하며 오딘을 꺼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세희가 무뚝뚝하지만 묘하게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뭔가 시연 씨랑 비슷한 성격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곧장 기운을 차리고는 손을 양옆으로 화악 펼쳤다.

“그리고 제가 연습한 기술.”

세희의 뒤로 하얀 날개가 돋아났다. 아니, 날개가 아니다. 하얗지만 밝다. 빛인가? 그래, 빛이다. 빛을 날개처럼 휘감아 자신의 몸에 장착한 느낌이다. 빛의 정령을 이용한 건가? 정령의 느낌이 나는 것을 보아 태석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태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름답군요.”

“태석 씨가 저를 언데디에이션으로부터 해방시켜줄 때, 그때 보았던 장면이 아직도 떠올라서요. 그래서 연습했어요. 언젠가 태석 씨와 싸우며 보여줄 날을 떠올리며.”

“…….”

태석은 의외로 많은 인물들에게 영향을 준 것일지도 모른다고, 태석은 문득 자각하고 말았다.

쓰게 웃었다. 그는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가? 많은 인물들이 놀라고 경악하고, 또 롤모델로 삼을 정도로?

그렇다면, 이번 경기에서 절대 질 수 없다.

태석을 비롯해 많은 인물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희망을 잃지 않도록.

어느새 태석은 태석만을 책임질 시기는 지나 있었다. 태석은 모든 인물들의 우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뭐야, 신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고. 태석은 쓰게 웃었다.

강신자, 태석이 싸움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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