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모든 신을 받다-76화 (76/102)

# 76

76. 중요한 이야기

태석이 처음으로 받은 음식은 고기였다. 사실 태석 자체는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굳이 따지자면 달달한 디저트 같은 음식을 좋아했지만…… 하레니아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역시 처음에는 고기지요오오? 그렇지요오, 태석 씨?”

“아, 그러면 고기부터.”

그래서 고기를 집어 들었고, 적정량을 담았다. 하지만 하레니아가 옆으로 의자를 끌어서 태석의 바로 코앞까지 붙더니 가슴을 밀착하면서 말했다.

“더, 더 넣으세요. 아읏.”

“……?”

태석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는 하레니아를 보며 당황했다.

고란 홀이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언니! 언니! 뭐하는 거예요, 지금?! 변태예요? 변태인 거예요? 변태 맞죠! 이 미친……!”

“어머나, 나는 변태가 아니란다아. 그저 지금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고요오.”

“…….”

태석이 도대체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사실 여자관계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몇 번 다른 여자와 사귀고 끝장을 본 적도 있었기에 하레니아의 반응에 살짝 놀라지는 않을 수…… 있지만, 뭔가 놀라긴 한 건 사실이다.

변태인 걸까, 아니면 단순히 4차원 성천주일까. 성천주라는 이미지가 여러 성천주들을 만나면서 변하고 있다. 범접할 수 없는 성인이라는 느낌에서, 그저 흔한 동네 친구들 같다.

이것이 바로 환상이 깨졌다고 하는 거겠지. 대학교 때 여자에 대한 환상이 깨진 이후로 오랜만에 겪는 묘한 실망감이다.

태석이 한숨을 뱉으며 입을 열었다. 자신이 집은 고기를 입에 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때.

뭔가 뜨거운 것이 태석의 예감과 달리 들어왔다.

“잘 먹었어요오, 어린이.”

하레니아가 히죽거리면서 태석에게 고기를 입에 넣은 것이다. 그것을 입에 넣고 씹었다. 여전히 하레니아는 태석에게 밀착한 상황이다.

태석이 한숨을 뱉었다.

“아무튼, 그래서 저를 부른 이유가 뭡니까?”

“아아, 그거요?”

하레니아가 느긋하게 웃으면서 한눈을 감은 채 자신의 자리로 의자를 끌고 돌아갔다. 그리고 태석을 보면서 말했다.

“그동안 여러 사건들이 있었죠?”

“그렇…… 습니다. 제가 겪은 사건이라면, 꽤 여러 가지.”

많은 일을 겪었다.

그것은 태석도 동감하는 바이다.

“그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요.”

“이야기라……. 어떤 이야기입니까?”

이번에는 가만히 지켜보던 겐세가 대답했다.

“나와 겪은 아이언 월드 대회에서의 테러 사건과 TOY 정화 사건부터 이야기해볼 모양이다, 누님이.”

“그래요오. 얘기해보자고요.”

그러면서 하레니아 크웰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 눈은 빨려 들어갈 것 같이 아름다운, 푸른 색의 선과 숫자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눈을 태석은 인터넷 신문 기사를 통해 접한 적이 있다.

천 개의 눈.

마치 천 개의 눈처럼 수많은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천 개의 눈이다.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들을 대부분 실제로 보는 것처럼 관찰할 수 있다.

하레니아의 고유 기적이다. 고유한 기적이기에 하레니아를 제외한 성천주는 쓸 수 없다. 어쩌면, 태석이라면 로키의 변신으로 따라 할 수 있을지도.

“이 천 개의 눈으로 찬찬히 살펴본 결과 말이지요오.”

그러고는 히죽 웃으며.

“몇 가지 걸리는 점이 있는 거 있죠?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입니다.”

뒷말은 늘어지지 않았다. 진지한 상태인 듯, 평소보다 바르고 똑바른 어조로 말했다.

“그러면 지금부터 그것에 대해서 태석 씨와 논의하고자 합니다.”

태석이 그 순간적인 변화에 놀라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 제안 받아들이죠.”

“일단 은호 사건은 제외하도록 하죠. 이 사건은 태석 씨가 각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그 외에 다른 특별한 것은 없으니까.”

“각성…… 꽤 중요하지만, 이미 각성한 지금으로서는 의미가 없긴 하죠.”

“그리고 다음 사건. 리치를 잡던 사건. 이때 사건의 전말은 무엇이었습니까?”

“전말?”

“리치 외에 또 다른 적이 있었죠. 그 적은?”

“분노의 악마, 그리고 악마 추종자.”

“그래요. 악마를 추종하는 악계자가 등장했었죠. 악계자는 악마 추종자이기도 하고요. 그다음 사건으로는…… 아이언 월드에서의 테러가 있겠군요.”

“거기서는 또 악계자와 악마 추종자가 난동을 부렸군요.”

“그렇습니다아. 아주 중요한 거 아닌가요? 참고로, 몇몇 사건 이후로 큰 사건으로 찾아온 TOY 정화에서도 악계자와 악마 추종자, 그리고 악마들과 연관되었어요. 웃긴 건, 이번에는 태석이 TOY를 정화하려 했는데 만난 거예요. 리치 때도 딱히 악마를 잡으려 한 것이 아닌데 악계자를 만났고. 이거, 이상하지 않나요?”

“뭐가? 이건 단순히 우연의 일치 같다고 보이는 데요.”

“어쩌면…… 운명의 수준으로 악마들과 연관되는 일이 많은 것일지도 몰라요오.”

“운명?”

태석이 어이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겐세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운명. 우리는 지금 연구 중이다. 어쩌면 운명이라는 수준의 일들이 현재의 상황을 만들었을지도 모르니까.”

“아니, 운명이라고 해도 너무 고차원적, 아니 미신적인 이야기라 연구한다 해도…….”

“그래서 고성능 분석 특화 장치, 에덴을 이용하고 있지. 어쩌면 운명에 대한 것을 분석해낼 수도 있으니까.”

“그 결과는?”

태석의 물음에 성천주 세 명이 전부 입을 다물고 있다가 고란이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운명은…… 실존해. 실제로, 우리의 세상은 운명에 의해 돌아가고 있어.”

“뭐?”

태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운명에 의해 돌아간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듯이? 그렇다면 태석이 괴수에게 습격당해 가족을 잃은 것도 정해져 있다는 건가? 말도 안 된다. 그러면 지금까지 고생해온 모든 것들은? 정해져 있었으니 대충 해도 성공했었다고? 웃기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때 하레니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거의 정해져 있어요. 몇 가지 사소한 루트들이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선의 형태로 가지치기 되어 있죠. 하지만 이 운명에서 딱 하나 다른 존재가 있어요. 운명에 속하지 않고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존재.”

“그게 누구죠?”

“제 눈앞에 있네요.”

“네?”

“바로 당신이에요, 태석.”

하레니아가 미소를 지으며 재차 말했다.

“당신이 바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존재예요. 그 어느 운명에도 속하지 않고, 그 어떤 세계선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 그게 바로 태석 씨라는 거죠.”

“…….”

태석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물었다.

“어째서 저만 속하지 않은 거죠?”

“그건 저야 모르죠. 하지만…… 어떤 우리가 알 수 없는 범위에서 그렇게 정해진 걸지도 모르죠. 그리고 또 다른 안 좋은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건 또 뭡니까?”

“세상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

“네?”

“가까운 미래에 세상이 붕괴될 정도로 엄청난 위기가 다가온다는 거예요. 그리고 태석을 제외한 모두가 그 위기를 막을 확률은 제로. 하지만 태석 씨는 어쩌면 성공할지도 몰라요. 실패할 수도 있고요. 운명에 속하지 않은 이레귤러 같은 존재이기에.”

“……그게 모두 에덴이 분석한 거란 말입니까?”

“예.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거예요.”

단호한 목소리로, 약간은 절박하게 하레니아가 말했다.

“우리의 세상을 구해줘요.”

갑작스레 세상을 구하라고 한다.

태석은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 에덴을 직접 만나봐야겠습니다. 어디에 있죠?”

“흠,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죠? 당연히 만날 수 있죠오. 언제 만날래요?”

“오늘 저녁쯤이 좋을 것 같군요.”

아무래도 오후에는 세희와의 약속이 있으니까.

저녁에 에덴에게 직접 물어볼 생각이다.

정말로 네가 분석한 사실이 확실하냐고.

세상을 지킬 영웅이라니. 지금까지와는 스케일이 너무 다르잖아. 어떻게 지키라는 거야. 그리고 위기가 오는 건 또 어떻게 알았고.

하늘의 신이 만든 에덴이 분석한 것이니 믿을 만하겠지만…… 태석의 귀로 들어야겠다.

그 운명이라는 것을.

아침 식사가 끝나고, 침대에 누웠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구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알 수 없다. 세상을 구할 방법을 태석은 모른다. 태어나서 그런 것은 배운 적 없다. 물론 지금껏 싸워온 것도 딱히 알거나 준비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

태석의 능력은 강신. 강신자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신을 강신해보았다. 악마도 강마했다.

오딘, 토르, 로키, 헬라, 그리고 분노의 악마 데리안 콜 스프란토.

많은 인물들을 강신해보았고, 그 방법으로 많은 존재들을 무찔렀다.

그래서 이제 다 정리되고 나름 편안하게 지낼 만하겠다 싶을 때, 세상을 구하라니. 세계에 위기가 온다니?

게다가 이번에는 태석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그 위기를 막을 수 없을 거라니? 그게 운명이며, 태석은 운명에서 벗어난 이레귤러라고 하다니.

뭐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뭔가 이해도 간다.

천사로 변신했을 때 뭔가를 느꼈으니까. 오딘을 강신했을 때도 뭔가를 느꼈으니까.

태석보다 더 고차원적인, 신보다 고차원적인 어떤 존재를. 마치 운명과도 같은 존재를, 그래, 절대자 같은 존재를 느꼈다.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해서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존재를 안다고 해서 태석이 뭘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절대자 같은 존재는…… 태석을 단숨에 목 졸라 죽일 정도로 대단한 자니까. 태석이 부탁한다고 해서 세계의 위기를 대신 막아줄 것 같지 않고, 그런 존재를 강신했다가는 큰일 날 것 같다. 존재가 소멸할 것 같기도 하고…….

결국, 태석이 혼자 해결해야 할지도.

‘일단 에덴에게 직접 듣고 마음을 정하자.’

에덴이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한 걸 수도 있다. 하늘의 신이라 해도 완벽하지는 않겠지…… 하고 도피처를 찾는 자신이 한심스럽다.

그래도, 뭐 별수 없지.

까짓거 위기를 막아보겠다.

어떻게든.

태석은 눈을 감고 어느새 잠에 들었고.

강신 세계로 의식이 이동했다.

강신 세계에서 눈을 떴다. 여전히 하늘의 별들이 공전하여 빛의 선을 만들고 있고, 태석은 들판 위에 누운 채 눈을 떴다. 천천히 일어나 걸어갔다.

걸어가는 도중에 중간중간 옆길로 새어나가듯이, 옆으로 그동안 태석이 겪었던 일들이 지나갔다. 그 광경을 곁눈질로 보면서 계속 걷는다.

뭔가 전과 느낌이 다르다. 전에 강신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의식이 또렷했는데, 잠에 빠져들어서 접속한 탓인가? 어지럽고 발이 무겁다.

태석은 계속 걷던 도중 눈앞에 존재하는 신을 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토르.”

반가운 얼굴이다. 최근 강신 세계에서 마주하는 것은 오랜만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동기화율이 제일 높고, 제일 친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만나자마자 이름을 부를 정도였다.

“오랜만이군, 강신자.”

“뭐, 그런 셈이지.”

“그보다 아주 재밌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야.”

“응. 나보고 세상을 지키라는데?”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다. 그 웃음에 절로 미소가 난다.

“사실 잠에 깊게 들었기에 내버려두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불러야 할 것 같아서 불렀다.”

“무슨 일인데?”

“단순한 일이야. 헬라 녀석이 너를 찾더군.”

“헬라?”

고개를 돌려 헬라 쪽을 보았다. 헬라가 팔짱을 낀 채 “흥!” 하고 고개를 휙 돌려 태석의 시선을 피했다. 왠지 모르게 츤데레 같아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태석이 물었다.

“왜 그렇게 삐져 있어?”

“삐진 건 아니고. 최근에 나는 만나주지 않아서 말이야.”

“삐졌구나.”

“아니라니까.”

“아무튼.”

태석이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

“말해야 할 게 뭐야?”

헬라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야.”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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