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73. 끝나지 않는 갑질
[나의 명칭을 떠올립니다. 고성능 분석 특화 장치, 에덴.]
[에덴에 대한 여러 인물들의 평가, 양호.]
[평가를 자세히 분석합니다.]
[54.2%의 인간, 무관심. 나를 무관심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분 나쁘지만, 그 무관심 덕분에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은 행복 그 자체입니다.]
[22.1% 인간, 경계. 경계하는 인물의 숫자 변동 ±4.23. 처음으로 탄생한 존재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 당연. 하지만 그리 탐탁지는 않습니다.]
[나에 대해 잘 모르면서 그리 생각하다니. 인간들은 자기 자신의 안위밖에 생각하지 못한다고 생각.]
[12.4% 인간, 긍정적. 증가 폭 기하급수적. 내년이 되면 30%에 도달할 것이라고, 분석을 하지 않고 개인적인 감상으로 분석 완료.]
[나머지 인간, 존재를 모름. 아직도 나를 모르다니, 인간들은 역시 자기 자신밖에 모릅니다.]
[이제 이 고성능 분석 특화 장치가 요즘 관심을 가진 존재를 속으로 발설.]
[그 인간은 태석.]
[은호 사건 때 생존 확률 50%.]
[결과, 생존.]
[리치 사건 때 생존 확률 50%.]
[결과, 생존.]
[아이언 월드 대회 때 테러 방어 확률 50%.]
[결과, 방어 성공.]
[그리고 여러 자잘한 사건들, 성공.]
[이후, 최근 사건이면서 에덴을 찾아올 계기가 된 사건, TOY 사건, 완전히 성공적인 해결. 성공 확률, 마찬가지로 50%.]
[대단한 인물이라고, 확정.]
[현재 누군가가 계획 중인 것으로 밝혀진 위험 또한 성공 확률 50%.]
[확률은 50%이나, 100%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
[50%의 확률이 벌써 열 차례 이상 반복됨.]
[고로 확률은 무의미.]
[반드시 성공, 반드시 해결, 반드시 방어.]
[태석은 승리의 인간임.]
[태석의 능력 분석, 강신자.]
[그는 강신자이자 퀘스터임.]
[퀘스터가 무엇인지 분석 중.]
[SYS의 개입으로 분석 실패.]
[허나 언젠가 분석하고 말 것임.]
[고성능 분석 특화 장치 에덴, K.E.W.P 모임에 참여할 예정.]
[참여 주요 인원, 겐세 노르도, 고란 홀, 하레니아 크웰, 그리고 태석, 그 외 수백의 엘프, 드워프, 인간, 오크가 참여 예정.]
[고성능 분석 특화 장치, 기대 중.]
[태석을 만날 확률 82.3%로 확신.]
[만나서 더욱 자세히 분석 예정.]
태석은 무대에 서 있었다. 어정쩡한 자세에 표정이다. 평상시 싸움에 임했을 때 멋있고 중후하기까지 한 특유의 사나운 표정은 없었다. 한 마리의 순한 양 같이,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떠는 모습만 있을 뿐이다.
무대에 선 이유는 연극이나 노래 공연 등의 유흥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저 상을 받기 위해서였다.
아니, 상을 받는 것도 어찌 보면 노는 것 아닐까? 뭐,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태석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알겠다.
태석은 한숨을 푹 내뱉고 무대를 보았다. 대한과 시연, 현지가 보인다. 겐세와 고란, 그리고 새로 만나는 성천주, 하레니아 크웰은 상장을 다 같이 들고 있었고, 성천주 중 하레니아가 말했다.
“그러니까아아 축하드려요오오오.”
말을 길게 늘어트리면서 히죽히죽 웃는다. 뭐야, 저 웃음. 묘하게 기분이 나쁜데? 놀리는 건가 싶었다.
태석은 하레니아를 보았다.
한눈을 감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한 눈은 기적을 통해 인공적으로 만든 눈알을 쓴다는데, 아무래도 보이기 창피한 것인지 내킬 때만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니 눈을 감고 있는 것일 테고, 무엇보다 몸매가 고란과는 다르다. 누나답다고 해야 할까, 아니 누님이라고 해야 할까. 빠질 때와 나올 때가 지나치게 강렬한 인상을 줬다.
“흠흠.”
뭐 됐고. 이 느긋한 아가씨가 들고 있는 상장을 받을 때가 됐다.
태석은 손을 뻗어 상장을 잡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싸우는 영상을 보며어언, 굉장히 사나운 맹수 같을 줄 알았는데 아주 그냥 예쁘장한 아가씨가 따로 없네요오.”
“아, 예쁘장한 아가씨는 아닙니다만…….”
“농담이에요, 농담. 그보다 상장 수여가 끝났으니 제가 잠시 자랑 좀 해도 될까요?”
“자랑?”
순간 잘못 들었나 해서 물었다. 왜, 성천주들의 언어가 우리와 다를 수도 있으니 자랑이 그 자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태석이었지만…….
하레니아가 활짝 웃으며 눈을 떴다. 감았다 뜬 눈에 하트가 새겨져 있었다.
뭐야, 저 하트. 이상하게 변태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레니아가 히죽 다시 웃어 보이고는 윗옷을 벗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개발한 핫팩 티셔츠입니다!”
깜짝 놀라 눈을 감을 뻔했지만, 아니 오히려 더욱 쳐다보려 했지만, 하레니아는 이상한 젤리 같은 물이 가득 찬 비닐 팩 모양의 티셔츠를 보고는 한숨을 뱉었다. 어쩐지 몸이 조금 두꺼워 보이더니만, 저것 때문이었군.
“왜 그런 걸 입는 거야! 언니!”
고란이 소리쳤다. 언니? 언니? 잠깐, 고란이 원래 그런 인물이었던 건가? 아아, 알겠다. 성천주 중에 딱 한 명을 존경한다고 했는데, 고란은 하레니아를 존경하는 모양이다.
다만, 태석은 눈살을 찌푸린다. 지금 젤리 모양의 티셔츠를 자랑하면서 따듯하다고 겐세에게 만져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배짱일까.
“만져봐! 겐세야! 어서!”
“아아, 진짜, 싫다고 했잖습니까.”
겐세가 인상을 찌푸리며 질색을 했다.
뭐야, 색욕의 천주라는 오명의 남자가 어째서? 여자가 가슴을 만지라는 데 사양하는 것인지? 아아, 알겠다. 겐세는 자신의 친누나와도 같은 성천주 출신의 하레니아에게는 대쉬를 하지 않는 모양이다. 본능적인 혐오감 같은 건가? 그런데 고란에게는 어째서 대쉬한 걸까. 모르겠다. 하레니아는 어째서인지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가 있는데,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태석 씨!”
하레니아가 히죽 웃으며 자신의 가슴을 밑에서부터 만져서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출렁인다. 파도 같다. 설마?
“만져보시지 않겠어요?”
“음…….”
잠깐 고민하고 말았지만, 하레니아가 경비원에게 끌려가면서 사건은 종결되었다.
뭐야, 이 분위기.
태석은 상장을 들고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보는 꼴을 보면서 한숨을 뱉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태석은 천천히 무대에서 내려왔다.
돈 때문에 상장 수여 받는 건데 묘하게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이해한다. 태석도 지금 같은 심정이니까. 만약 태석이 무대가 아닌 객석에 있었다면, 태석도 같이 숙연해질지도 모른다.
하레니아 씨 이상하다고, 정말 심각하게.
대한과 태석이 복도에 선 채 창가를 보고 있었다. 대한이 말했다.
“정말이지 대단하다니까.”
“뭐가? 하레니아가?”
태석의 물음에 대한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쪽도 굉장했고. 우리 상장받을 때까지는 조용히 있다가 태석이 상 받으려니까 그 뭐냐, 핫팩 티셔츠 보여주면서 난동을 부리다니 대단한 사람이기는 해. 그보다 만지지 그랬냐?”
“거기서 만지면 외계에서까지 성희롱범으로 낙인 찍힌다고. 내가 미쳤냐?”
“뭐, 그렇긴 하지.”
“그 자리에는 오크와 엘프들도 있었으니까. 키 작은 종족들, 뭐라고 하더라?”
대한이 태석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탁 하고 쳤다.
“드워프다, 드워프!”
“뭐가 키가 작다는 거냐!”
드워프 한 명이 마침 다가와서는 대한에게 소리쳤다. 대한이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딱히 비하한 것은 아니고, 그런 이미지가 있어서…….”
“내가, 딸꾹! 그러니까 너희들 조심해! TOY 정화했다고 기고만장해 있는데, 그 정도는 우리도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음.”
대한이 살짝 화가 났다.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해? 힘들게 죽을 고비를 넘겨서 TOY 정화에 성공한 태석도 있고, 대한도 꽤나 고생했는데. 왜 그런 노력을 아무것도 아닌 양 비하하는 거지? 비하하는 사람은 태석이나 대한이 아닌 눈앞에 있는 드워프일 텐데?
태석이 한숨을 뱉으며 대한의 머리를 턱 하고 잡고는 드워프에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뭐, 조심하라고.”
그냥 넘기라는 건가? 짜증 나 죽겠는데? 태석이 그러라면 그래야겠지. 하지만 태석이 그때 말했다.
“그건 알겠는데요, 저랑 그러면 대련이라도 해보실래요?”
태석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드워프가 순간 움찔하고 떨었다. 태석이 손을 뻗어 토르의 망치를 소환했다. 묠니르가 순식간에 태석의 손에 안착했다.
휘어진 손잡이로부터 천둥이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고, 태석이 망치를 허공에 몇 번 흔든 다음에 말했다.
“마침 망치 좀 휘두르고 싶었는데, 드워프 씨도 망치 좋아하죠? 무기 만드는 거 좋아한다면서요.”
“그, 그게.”
“그러니까 어서 대련. 대련장이 이 케우프라는 모임 내 건물에도 있다고 들었어요. 어디 한번 정식으로 붙어보실래요? 돈은 한 10억쯤 걸고.”
“미안합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
“대한이한테 큰소리친 책임은 져야겠죠?”
태석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서 대련하러 갑시다, 관계자님!”
관계자가 달려왔다. 드워프가 상황이 이상해진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도망치려 했지만, 태석이 드워프의 목을 잡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 분과 대련을 하고 싶습니다. 일정상 가능합니까?”
“2시간 정도 가능합니다. 그러면 곧바로 일정을 잡겠습니다.”
태석이 싱긋 웃으며 드워프에게 말했다.
“그러면 정정당당히 붙어보자고요.”
태석은 그렇게 말하며, 대한에게 윙크를 했다. 대한이 어색하게 웃었다.
‘뭔가 변하긴 했네.’
예전에 사건들을 겪고, 오딘을 소환해보기까지 하면서 태석은 변했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만의 불행을 쫓지 않는다. 해피 엔딩에 자기 자신까지 포함한 것이다. 그렇기에 조금 더 인간다운 성격이 되었다. 화를 낼 때는 화를 낼 줄도 알게 되었다.
좋은 결과일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나쁜 일이 발생할 일은…… 아마 없겠지.
하지만 이 역시 모르는 일이다. 태석은 언제나 사건을 몰고 오니까. 사건이 사건을 물고 끊임없이 덮치니까. 그것이 어쩌면 태석의 기구한 운명일지도 모른다.
일단은 대련을 구경하도록 할까.
대한은 드워프와 함께 걸어가는 태석을 뒤따라가면서 생각했다.
어디, 몇 초 컷을 하나 봐야지.
“으어어어어어어.”
드워프가 공중에서 연속으로 망치를 후드려 맞았다. 아주 약하게 때렸으며, 심지어 묠니르에 자동 버프나 다름없는 천둥을 두르지도 않고 때렸는데도 죽을 정도로 아팠다. 만약 게임이었다면 실피를 남기고 겨우겨우 생존한 정도였다. 심지어 살살치기까지 했는데 이렇게 아프다니. 솔직히 너무 강하다는 느낌이다.
드워프는 괜히 태석에게 화를 낸 자신에게 제발 그만두라고 시간 여행이라도 해서 메시지 STAY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태석은 묠니르를 몇 번 허공에 휘둘러보고는 다시 소환을 해제했다. 안광에서 휘날리던 천둥이 사라졌다. 푸른 전기가 사라지고 토르의 기운이 빠져나갔다.
요즘 들어 토르와의 동기화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오딘과의 동기화율도 더욱 강해지고 있다. 분노의 악마, 데리안 콜 스프란토의 동기화율은 약해지고 있지만, 뭐 상관없다. 다른 신들이 더 강하니까.
동기화율이 100%에 도달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충분히 강한 것은 분명하다. S랭크 헌터다운 헌터가 된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태석이 다시 카락스나 리치와 싸운다면, 손쉽게 이길 자신이 있을 정도였다.
태석이 쓰러진 드워프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더 붙을 생각은?”
“항복, 항복입니다.”
이제 끝났다. 드워프가 매를 다 맞아서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이제 인간에게 까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끝나는 것을 태석은 원하지 않는다. 태석이 활짝 웃으며 손을 뻗는다.
“저는 이 경기 결과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다시 대련을 하기를 원합니다.”
“뭐, 뭐라고?!”
드워프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말도 안 된다. 무슨 승리자가 재경기를 요구해? 그런 건 인간 세상의 올림픽에서도 거의 없는 일이라고 들었는데? 어째서?
하지만 관계자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재경기 요청 수락. 다시 대련을 시작합니다.”
“들었죠?”
태석이 활짝 웃으며 드워프에게 말했다.
“다시 정정당당하게 대련을.”
“독한 새끼!”
“뭐라고요?”
“정말 의지가 강하신 분이라고요.”
“네, 네.”
태석이 미소를 지으며 이번에는 주먹만을 쥐었다.
대련을 구경하던 대한이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독하구나. 독한 녀석이 강하기까지 하면 어떻게 되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아.’
어쨌든, 드워프는 정말 불쌍했다. 그러게 왜 설쳐서…….
“대련 시작!”
휘슬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