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모든 신을 받다-72화 (72/102)

# 72

72. 기분 좋은 꿈

태석과 태희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태희는 다소곳하게 무릎을 끌어모은 채 드라마를 시청 중이었고, 태석은 휴대폰으로 뉴스를 훑어보는 중이었다. 자신이 없는 사이 꽤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영양가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던 도중 눈에 뜨이는 기사가 있었다.

“오크 행성에서 오크들이 지구로 이동 중이라. 어째서 오는 거지?”

“그건 오빠가 더 잘 알지 않을까.”

“그게 무슨 소리야?”

“카락스라는 인물을 죽였다면서.”

“그렇…… 지.”

설마하니 카락스를, 자신의 동족을 죽인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걸까. 큰일이다. 어쩌면 태석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 피해 정도가 아니라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해?”

“카락스라는 인물은 오크 행성에서 어떤 인물이었지?”

“악인이었어. 테러범이었거든, 그 행성에서도.”

“그렇구나. 그러면 다행이네.”

카락스라면 당연히 그럴 거라 여겼다. 외계 행성 쪽의 상황에는 무지한 편이었기에 모르고 있던 것이다. 태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전쟁이 난다거나 그럴 일은 없겠네.”

“전쟁이라기보다는 전쟁을 종식시킨 거지. 카락스가 하려는 짓은 지구를 망가트리게 만드는 것이었거든.”

“또다시…….”

“그래, 오빠는 또다시 영웅이 된 거야.”

“영웅이라…….”

태석은 자신이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이 영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영웅은 자신이 정하는 게 아니야. 도움을 받은, 구원을 받은 타인이 정하는 거지.”

“그런 걸까.”

“그런 거야.”

태희가 티비를 계속 보고 있었다. 티비 속의 여자와 남자가 키스를 하는 장면이다. 태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보다 재미있네.”

“뭐가.”

“아니, 오빠는 언제나 비슷한 성격을 유지하는 것 같아서.”

“비슷한 성격이라, 어떤 점이?”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태희가 과자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다가 넘겼다.

“언제나 사건을 몰고 오고, 그걸 어떻게든 잘 해결한다는 점?”

“이번에는 솔직히 겐세 씨가 몰고 왔지만.”

“어찌 됐건, 오빠는 태풍의 눈이라는 느낌이야.”

“태풍의 눈?”

“그래, 태풍의 눈. 태풍은 바깥으로 갈수록 더욱 거세고 비바람이 몰아치지.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오빠는…… 고요한 장소에 있는 거야.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것은, 밖으로 기어코 나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태풍의 눈으로 끌고 오고, 다시 나가서 끌고 오고를 반복하는 거지. 마치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태석이 흠흠 기침을 했다.

“나는 최근 들어서 힘을 얻어서 힘으로 해결하는 거지 실제로 착한 건 아니야. 그저 큰 힘을 위해 책임을 억지로 지는 거지.”

“아닌 것 같은데.”

“맞아.”

“그러면 처음 능력을 얻기 직전, 은호에게 뛰어든 이유가 뭐야?”

“윽.”

맞는 말이다. 그 당시의 태석에게는 강철 반지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고.

“그리고 어렸을 때, 나쁜 사람들 혼내준다면서 형들한테 덤볐다가 된통 깨진 일은? 그러면서도 형들이 괴롭히던 아이를 데리고 도망쳤잖아.”

“음…….”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구해준 일은 기억 안 나? 몇 번이나 도와줬잖아, 나를.”

“…….”

할 말이 없다.

사실로 공격을 가하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드라마를 본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키스씬이 끝나고, 어느새 밥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오빠는 언제나 변함이 없었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그 사건이 있기 전에도 변함없는 사람이야.”

태석과 태희의 부모님과 모스키토가 등장했던 사건 때의 전에도 변함없이 정의로웠다.

“그러니까 오빠는 내가 죽었더라도 변함없이 남들을 위해 나섰을 거야. 그런 인물이야, 오빠는. 태생부터 구원자였던 거야.”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네.”

“적어도 나는 확신해.”

태희가 미소를 지으며 태석의 손을 포개어 잡았다.

“오빠는 내가 있든 없든 변함없이 착하고 성실하고 정의로워.”

“……고맙다.”

태석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꺄아아아아악!”

강지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태석이 서둘러 뛰어갔다. 뒤이어 태희가 걸어가 강지가 있는 침대가 있는 방을 보았다.

“무슨 일이야?!”

강지 쪽을 보며 소리쳤다.

강지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는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이불을 덮고 있었다. 아직 날은 덥지만, 얇은 이불 정도는 덮어도 견딜 수 있었다. 태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야, 강지야?”

“그, 그러니까…….”

강지가 꼼짝도 않고, 거의 잠들어가는 표정으로 잠꼬대 같이 말했다.

“움직일 수가 없어요…….”

“설마 흑수정의 영향으로……?!”

태석이 황급히 강지가 있는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태희 또한 따라오며 물었다.

“흑수정의 영향이라니?”

“지금은 정화된 흑수정 TOY. 그곳에서 흑수정 에너지가 강하게 방출된 적 있었어. 서울로 귀환하고 병원에서 진단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어쩌면 그 영향이 이제 반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그런, 이럴 수가…….”

태희가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가족을 또 잃는 건가 싶었다. 태석이 고개를 숙인 채 살짝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강지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너무 황홀해요오오. 너무 편해서 움직일 수가 없어요오오오오…….”

“……?”

태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황홀하다니, 뭐가? 편하다니, 침대가? 움직일 수 없다니……? 너무 편해서……?

“뭐야, 편해서 그런 거였어?”

“이런 편안한 느낌 처음이에요. 이건 분명 마약이에요. 흑수정을 조제해서 만든 마약일지도 몰라요…….”

“풉.”

태희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흑수정의 영향이라는 거야, 푸하하핫! 그냥 단순히 편해서 비명 지른 거잖아. 너무 편안한 건 처음이…… 푸하하하하!”

“너무 웃지 마. 조금 창피하니까.”

“방금 오빠 표정 엄청 멋졌어. 이러니까 여자 팬이 많지. 유명인 오빠. 좋은 여자 만나야 한다? 얼굴 보고 골랐다가는 똥 밟으니까.”

“내가 뭐가 유명하다는 거야?”

“오빠는 지금 세계적, 아니 범우주적으로 유명하다고. 벌써 몇몇 행성의 성천주들이 태석 오빠랑 만나고 싶어서 난리 법석이라니까. 왜, 전에 휴식기에도 태석 오빠한테 미인계 쓰던 성천주 기억 안 나?”

“그런 일은 있었지만…… 별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은데.”

“왜~ 좋잖아. 그렇게 이쁜 여자가 득달같이 달려드는데? 안 좋을 리가 없지. 오빠도 남잔데.”

그러면서 살짝 차가워진 표정으로 한순간에 미소를 굳히고 말했다.

“하지만 살짝 짜증이 났었어.”

뭔가 소름 끼치다. 방금 여동생이 아닌 다른 여자를 보는 표정이 들었다. 어쩌면 결혼하고 배우자에게 사고를 쳤을 때 이런 감정이 드는지도 모른다. 태희가 살짝 미소를 지었지만, 그 괴리감이 더욱 무섭다. 왜지, 이런 기분. 여동생 교육을 잘못한 느낌이 드는데…….

뭐, 됐다.

태석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우리도 잠이나 자러 가자고.”

“침대는 많으니까. 아쉽게도 각방을 써야겠네.”

태희가 각방을 써야 하는 걸 아쉽게 생각했다.

“뭐가 아쉽다는 거야.”

태희가 자신의 방으로 가면서 말했다.

“물론 정 못 참겠으면 내 방에 들어와도 상관 무.”

“안 들어가, 이놈아.”

태희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터벅터벅 태석의 방으로 향했다.

태석은 침대에 누웠다.

편안하다.

과연 강지가 어떤 느낌으로 비명을 질렀을지 이해가 간다.

잠에 빠져들려 한다.

하지만 그때였다.

우우우웅-.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전화였다.

태석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태석은 전화를 건 대상이 말을 안 하고 뜸을 들이는 것을 기다렸다. 무슨 전화지? 그보다 발신자 표시 제한이라니, 뭔가 수상쩍은 전화였다. 혹여나, 또 다른 악마들이 나타난 건가? 악마들은 종류는 7개의 죄악을 기초로 하고, 숫자는 엄청 많다고 한다.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기에, 인간의 숫자만큼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개개인이 강하기에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에 긴장하며 전화를 기다린 것이지만…….

[아이고~ 안녕, 안녕, 안녕하세요~! 태석 씨인가요오오~?]

“……누구시죠?”

지나치게 텐션이 높았다.

누구지? 이 사람은?

[저는~ 태석 씨를 아주 좋게 생각하고 있는~ 하레니아 크웰이라고 합니다~! 태석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요?]

“성천주입니까?”

[예~ 성천주 맞습니다, 맞아요~!]

“……음.”

태석은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하레니아 크웰.

한국의 성천주. 그것도 고란이나 겐세와 친밀하다고 알려진 사람이다. 겐세와 하레니아는 거의 불알친구 마냥 서로 장난질을 치는 친구 같은 관계이고, 고란의 경우 하레니아를 아주 존경한다. 고란이 존댓말 하는 몇 안 되는 성천주 중에 하나이다. 고란이 아이처럼 종종 쫓아다니는 장면을 뉴스에서 본 것 같았다. 컬트적으로 인기도 많아 이 세 명의 팬픽이나 팬만화가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아무래도 하레니아는 아름다운 아가씨라는 느낌이 강하니까.

물론 말투가 워낙 늘어지고 독특해서 외모를 보고 반했다가 목소리를 듣고 확 깨지는 경우가 많다.

하레니아가 통화로 말했다.

[제가 전화를~ 한 이유는~ 말이죠오~. 태석 씨를 성천주들의 축제에 초대하기 위함입니다아~.]

“축제?”

[코리아 에덴즈 화이트 피플! K.E.W.P! 케우프라고 부르는 축제인데요오~. 들어는 보셨죠?]

“성천주들 중에 일부가 가끔 참여하기도 하는 축제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맞아요~! 그리고 저와 고란, 겐세가 참여하기로 했지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이번 축제는 독특하게도 오크 행성 고위 인사들도 참여하는데요~. 저희가 거기서 태석 씨에게 상을 주고자 해요~. 테러범 카락스를 무찔렀으니까~.]

“……음.”

[참여하실 의향이 있습니까~?]

태석은 미소를 지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포상금은 있습니까?”

돈, 돈이 중요하다. 아무리 정의로운 태석이라도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인간이니까. 뭐, 돈이 없다 해도 참여할 생각이지만. 오랜만에 고란 홀도 만나고 싶기도 하고.

[많습니다!]

“참여합니다.”

[그러면 5월 4일! 그때 참여해주시면 됩니다! 장소는 말이죠~.]

장소를 말했다.

말이 너무 늘어져서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어떻게 잘 알아듣기는 했다. 정말이지 성천주들은 다들 독특하다. 욕쟁이에, 호색남에, 아줌마 같은 아가씨라니. 독특해서 성천주인 건가, 성천주라 독특한 건가. 모르겠다. 두 경우가 뭔 차이인지도 모르겠고.

너무 하레니아 크웰에게 휘둘려서 정신없지만 뭐…… 축제에 참여하는 것도 나름 좋을 것 같았다.

태석은 휴대폰을 대충 충전기에 꽂고 잠에 빠져들었다.

기분 좋은 꿈을 꿨다. 미소가 절로 흘러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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