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모든 신을 받다-70화 (70/102)

# 70

70. 분석 특화 장치

태석은 토르의 힘을 강신했다. 토르가 기쁜 것인지 평소보다 더욱 강력한 천둥을 쓸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동기화율이 올랐기 때문이다.

[오딘을 강신할 수 있게 되었기에 악마를 제외한 모든 신의 동기화율이 올라갑니다!]

[신의 능력을 10% 활용 가능!]

[마지막까지 파이팅입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언제부턴가 나에게 말을 거는 식으로 응답하는 느낌인데.’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알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 시스템이란 무엇인가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하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가 뜨고는 거대한 거인 모습의, 검은 안개를 둘러쓴 괴인을 본다. 녀석은 악마를 바라는 자. 이름은 알지만 정확히 뭘 하는 놈인지 모른다. 다만, 흑수정에 의해 탄생한 괴수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태석은 속성 단검을 쥔 손에 힘을 더욱 주었다.

-태석은 괴수를 혐오한다.

왜냐면, 괴수가 가족을 죽였기에, 여동생만을 남기고 모두 죽였기에 그가 보기에 괴수는 혐오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으니까.

찌지지지지직-!

속성 단검에서 푸른 천둥이 휘감기고, 미칠 듯이 찢어지는 비명을 외쳤다.

태석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는 다시 달려들었다. 이전에는 카락스를 향해, 다음에는 스카이를 향해, 이번에는 악마를 바라는 자라는 평범한 괴수를 향해.

치익-.

감기는 듯한 베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악마를 바라는 자가 손을 내밀고 태석이 있던 곳으로 주먹을 내질렀지만, 무르다. 너무 느려. 이렇게 느려 가지고 태석을 함부로 헤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철저히 오산이다. 완전히 오류투성이의 확신이다.

태석은 그 상태로 속성 단검에 마력의 실을 박았다. 악마를 바라는 자를 향해 속성 단검을 집어던졌다.

푸슉! 치지지지직-!

악마를 바라는 자가 피를 토해냈다. 그리고 천둥에 휘감겨 감전된 채 부들부들 떨었다. 태석이 공중에서 빙글 돌아 착지했다. 그리고 멈추지 않았다. 다시금 발을 움직였다.

더 빠르게, 빠르게, 빠르게!

뭐가 괴수를 처리하는 헌터라는 거냐. 이렇게 느려서야, 이렇게 약한 적을 상대로 느려서야 헌터라고 할 수 없다. 좀 더 정신 차려, 태석. 태석은 자신을 향해 쓴소리를 하고는 마력의 실을 잡아당기며 그 반동으로 더욱 빠르게 괴수를 향해 돌진, 그리고 맨손에 천둥을 휘감았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이-.

푸른 천둥이 미친 듯이 손안에서 난동을 부렸다. 그리고 그대로 주먹을 꽂았다.

푹.

됐다! 주먹이 꽂혔다. 이제 쓰러지는 건가? 혹여나 쓰러지지 않는다 해도 강지가 나서면 된다. 강지가 기계팔로 어떻게든 하면…….

푸슈우우우욱-.

주먹이 그대로 악마를 바라는 자의 머리를 꿰뚫었다. 머리가 터져나간 악마를 바라는 자가 쓰러졌다. 앞으로 고꾸라진 것이다. 그리고 숨이 멎고,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태석은 땅에 선 채 강지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자, 돌아가자.”

“어디로요?”

“내 집으로.”

“……뭔가 묘하게 위험한 발언 같지만…….”

강지가 피식 웃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뭐, 믿고 맡기겠습니다.”

태석은 쓰게 웃었다. 뭐가 위험하다는 거지? 믿고 맡긴다니 상관은 없지만, 조금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강지가 오랜만에 웃는 모습으로 자신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왠지 모르게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심정. 그런 심정으로 태석은 손을 흔들었다.

“그래, 가자.”

태석과 강지가 탑의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태석이 1층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시연이 울면서 달려들었다. 시연이 어찌나 세게 덮쳤는지 그대로 뒤로 넘어가 머리를 부딪쳤다. 끄으으윽. 머리가 아파 비명을 지르는 것을 참고 시연을 보았다.

시연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소리쳤다.

“대체, 대체, 대체!”

시연이 태석의 가슴을 주먹으로 쿵쿵 내려찍었다.

“왜 멋대로 희생하려고 하는 건가요?! 대체 왜!”

“하하…….”

태석이 가슴팍을 얻어맞으면서 바보 같이 웃었다. 시연이 제풀에 지쳐 떨어지고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잘 돌아왔어요.”

“하하, 그렇네요. 잘 돌아왔어요.”

“그렇게 남 일처럼 말하지 마요.”

겐세가 진지한 표정으로 태석에게 다가왔다. 태석이 물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뭐가?”

“인명피해요. 여기 있는 노예들 중 생존자는?”

“이전에 죽은 자를 제외한다면 오늘은 사망자, 부상자 모두 없다.”

“다행이군요. 설마하니 저를 안심시키려고 하는 소리는 아닌 거겠죠?”

“자의식 과잉이다.”

겐세가 스스로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사실만을 말할 뿐.”

“그렇게 말하니까 이야기 속의 악마 같은데요.”

대한이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네가 그렇게 멋대로 군 다음에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갑자기 흑수정이 이상한 기운을 내뿜고, 인간들 구출하느라 힘들었다고. 중간에 죽을 뻔한 적도 있을 정도야. 전원 구출인 게 신기할 정도고.”

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맞아요. 이번 일은 솔직히 자신감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해냈어요.”

“잘했습니다. 잘했어.”

태석이 상냥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고, 시연이 투덜거렸다.

“나 참, 저렇게 사람 좋게 말하니까 화낼 수도 없고…….”

“아무튼.”

태석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였다. 그러니 겐세를 보며 말할 수밖에 없다.

“TOY의 정화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언제든.”

겐세가 무표정한 얼굴로 입만 웃으며 말했다.

좋아, 이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북한의 최대 규모 흑수정, TOY를 정화하는 일이 남은 것이다. 그렇다면…… 태석은 자신의 크로스백에 들어 있는 상자를 꺼내 들었다. 흑색 빛이 은은하게 나는 상자는 분명 흑수정일 것이다. TOY를 정화하면 이 상자 속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이걸로 뭘 할 수 있을지, 이 성물로 뭘 할 수 있을지 기대되면서 긴장되는 순간이다. 부디 모든 흑수정 정화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 출발하도록 한다.”

겐세가 모두를 향해 말했고, 태석을 비롯한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석은 TOY의 영향권 내에 들어와 있었다. 사람 열 명이 죽 일렬로 올라타 서 있어도 TOY보다는 작을 것이다. 그만큼 초거대 흑수정이었다. 거의 건물 하나 크기였다. 대체 얼마나 큰 거지? 이런 것에서 괴수가 나왔다간 악마를 바라는 자만큼 약한 녀석이 아닌 강한 것들이 튀어나올 것이다. 이러니 중국에서도 못 건들지. 문득 태석은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일에 가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래 TOY를 정화하려면 그 속의 괴수를 끄집어내 기운을 낮추고 그 상태로 정화해야 한다. 악마급의 괴수 세 마리는 끄집어내야 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지금은.”

“많이 약화된 상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카락스가 많은 에너지를 여기서 빼간 상태거든. 금방 정화될 거다. 정화되면 그 부속물이었던 상자도 정화되어 열 수 있게 될 테고.”

태석은 자신이 들고 있는 상자를 보았다.

낭떠러지 밑, 던전에서 구해낸 상자이다.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정황상 뭔가 중요한 물건, 요컨대 겐세가 찾고 있는 성물이 있을 지도 모를 뿐이다.

겐세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 정화를 시작한다.”

그리고는 새하얀 기운이 겐세를 감쌌다. 겐세의 뒤쪽으로 바람을 형상화한 느낌의 날개가 돋아났다. 그리고는 푸르고도 하얀 기운이 뻗어져 나와 흑수정에 부착된다. 그리고 그대로 기운을 쏟아 부었다.

치이이이익-.

천천히 흑수정이 하얗게 변질된다. 새하얀 빛과 함께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신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어쩌면 성천주나 악계자도 옛날 아무것도 모르던 시대에 탄생했다면, 신화로서 자리매김할지도 모른다. 인간은 마술과 구분 안 되는 과학을 목격하면 과학이 아닌 신화로 여기고 신격화시키기 마련이니까.

어찌 됐건.

정화가 끝이 났다.

“뭔가 되게 허탈한데.”

대한이 추욱 늘어진 채 정화된 흑수정을 보았다. 새하얀 빛의 형태가 되어 있었다. 겐세가 피식 웃으며 그것들을 일제히 터트렸다.

팡!

빛이 터지고, 이곳에 있는 헌터, 그러니까 태석 일행에게 쏜살같이 달려들어 신체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모두 공평하게 흡수되었고, 힘이 더욱 강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더 오랫동안 강신이 가능할 것 같은데.’

물론 태석도 강해졌다.

겐세는 손을 뻗어 태석을 불렀다. 태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찬가지로 하얗게 빛나는 상자를 열었다.

그 상자 안에는, 뭔가 열쇠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상자 안에 열쇠라니, 뭔가 언밸런스한데.”

“뭐가요?”

대한이 자신의 말의 의중을 물어본 시연에게 답했다.

“그야 상자를 잠가 놓고 그 안에 열쇠가 있는 건 순서가 바뀐 것 같아서.”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태석이 그들의 말을 들으며 피식 웃고는 열쇠를 꺼내 들었다.

칭-.

하얗고 푸른 기운을 내뿜는 열쇠였다. 유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맨들맨들하다. 자칫 놓칠 뻔했다.

“이게 대체…….”

뭘까? 알 수 없다.

뭐에 쓰는 물건이지 모르겠고, 왜 상자 안에 하필 이것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여기서 한 명, 겐세만은 표정이 달랐다.

뭔가 경이로운 물건을 본 듯한 표정. 놀랍다는 표정이다.

“고성능 분석 특화 장치, 에덴. 알고 있는가?”

“아아, 그거야 당연히 알죠. 지구상에서 에덴을 이용해 많은 것이 가능해졌잖아요. 미래 예측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들었는걸요.”

“그 에덴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아나?”

“당연히 알죠. 왜냐면, 인간이 개발…….”

“아니다. 아니야.”

겐세가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불가능해.”

“그렇다면……?”

태석의 물음에 겐세가 대답했다.

“본래 에덴은 지구상에서 갑자기 나타나, 각지에서 나타나 조금씩 모아서 만든 것이다. 에덴의 조각이라는 걸 말이지.”

“에덴의 조각?”

“그래. 흑수정과 성천주가 생기면서 에덴의 조각도 같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그것을 하나하나 모아서 고성능 분석 특화 장치 에덴이라고 이름 짓고 우리가 이용하기 시작한 거야. 그러니까 에덴은 발명한 것이 아니라 발견한 거지.”

“그런데 지금 여기서 에덴의 조각이 있는 건…….”

“그래, 에덴은 완성되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아직 아니었어.”

겐세가 그리고는 열쇠를 노려보며 말했다.

“자물쇠는 완성되었지만, 열쇠는 발견되지 않았던 거야. 그 열쇠로 세상이 뒤바뀔 수도 있다.”

태석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열쇠를 보았다.

이런 것으로 세상이 바뀐다고?

이런 작은 열쇠 하나로?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태석은 고민했다.

“이걸 국가기관에 바치면…….”

“이를 갖고 에덴을 완성하겠지. 정확히는 에덴의 속을 보기 위해 열쇠로 열어보겠지.”

“하지만…….”

“그건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면 역시 우리가 숨기고 있어야 할지도요.”

“그래, 맞아. 숨겨야 한다.”

겐세가 전원을 보면서 말했다.

“우리는 에덴을 감춘다.”

겐세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에덴을 열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 거지.”

TOY를 정화하여 에덴의 속을 볼 수 있는 열쇠를 얻었다.

허나 그것을 함부로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그런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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