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69. 유일신
스카이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꼈다. 무려 15층 높이의 탑에서 떨어졌으니 당연히 그럴 만하다. 그렇기에 마음 편하게 완살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즐긴다.
사실 악마는 완살이 힘들었다. 하지만 힘들 뿐이다. 수없이 많이 공격을 가하면 언젠가 죽는다. 많이 죽이면 언젠가는 진짜로 죽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악마는 불멸의 존재는 아니었다. 반은 필멸, 반은 불멸이었다. 신이 아니라 그런 것이다.
스카이는 피식 웃었다.
-아아, 여기서 죽는 건가.
마왕이 되고 싶었는데.
-마왕이 되어서,세상의 진리를 알아내고 싶었다.
진리를 알아내서 뭐를 하려고 한 걸까? 세상을 점령하는 것? 아니면 세상을 부수는 것? 아니면 대체 뭘까?
간단하다.
“내가 탄생한 이유를 알고 싶었어.”
스카이는 악마의 탄생이 어째서 이루어진 건지 알고 싶었다. 그렇기에 마왕이 되고, SYS의 일원이 되어 언젠가 그 비밀을 알고 싶었다.
왜 자신이 악인이어야 하는 것인지. 태어날 때부터 악행을 하도록 탄생한 것인지. 그렇다면 스카이 자신은 필요없는 존재가 아닌지. 세상에, 아니 이 우주에서 필요 없는 존재여야 하는 것이 아닌지 그것이 통탄스럽고, 궁금했다. 사실이 아닐 거라고 믿으면서.
스카이는 손을 뻗었다. 스위치였다. 카락스의 몸에서 빼낸 것이다. 이것을 통해 탑 내부에 괴수를 풀어놓을 수 있다.
정말이지 탑에 별거를 다 설치해뒀어. 마치 언젠가 부수고 내빼야 한다는 듯이, 마치 태석의 등장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스카이는 버튼을 눌렀다.
콰르르르르륵-!
탑 위쪽에서 괴성이 들렸다. 괴수 ‘악마를 바라는 자’였다. 스카이가 피식 웃었다.
“나는 죽지만, 너도 죽을 거야, 태석.”
그리고는 눈을 감고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려 했다.
편안하다.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 분명 죽을 때가 오면 뭔가 미련이라도 있을 법했는데, 미련은 없다. 오히려 후련하다. 기분 좋고, 이 쾌락이 영원토록 지속되었으면 했다. 죽음이라는 쾌락.
그렇기에 미소를 지을 때였다.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태석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태석의 일행도 아니다. 처음 보는 남자였다.
남자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잘했어, 스카이.”
그리고는 스카이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유일신인 나에게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도록 해.”
총에서는 마치 흑수정의 에너지처럼, 검붉은 연기가 새어나왔다.
남자는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검은색 선이 각진 장식을 하고 있다. 머리는 금발이었으며, 피부는 새하얗다.
남자의 이름은 없다.
“너는 대체…….”
그렇기에 스카이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유일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진짜 신이 될 존재이다.”
“설마…….”
“그래, 고대의 인류들을 쫓아낸 것은 나다. 이제 곧 내가 신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이상한 놈이 자꾸 신을 불러들이고 있더군. 고대의 인류라고 불리는 신들을.”
“설마…… 악마나 천사를 만든 것은.”
“그래, 나 유일신의 짓이다.”
유일신.
아아, 드디어 어느 정도는 알겠다.
스카이의 탄생의 이유를.
신 놀이에 푹 빠진 유일신의 놀음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시시한 이유네. 이제 죽어도 되겠어.
스카이는 눈을 감고 스르륵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유일신은 씁쓸하게 웃고는 탑 쪽을 본다.
“그래, 아직은 만나기 싫어.”
히죽 웃으며.
“더 강해지면 만나도록 하자.”
그리고는 유일신이 녹색의 안개와 함께 사라졌다.
태석은 쿨럭 피를 토했다. 토혈이다. 처음 겪는 일이지만, 왠지 놀랍지는 않았다. 태석만큼 싸웠으면 몸 곳곳이 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거 전치 몇 주쯤 나오려나? 태석은 S랭크 헌터이니 의외로 금방 회복이 가능할 것이다.
물약을 대충 입에 욱여넣고 삼켰다. 조금 몸이 나아졌다. 태석은 강지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어째서.”
“당연히 와야 하니까요.”
“……위험…… 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나도 위험한 짓을 많이 했으니까.”
“정말 바보 같은 아저씨네요. 왜 그렇게 무모하게 굴어요?”
“그냥,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
“저희도 해야 할 일이었어요.”
“내 멋대로의 행동이야.”
“이기적인…… 이타심이라고 하셨나요? 정신 차려요. 일단 그 얘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고.”
“그래, 빠져나가야지.”
“그래요, 빠져나갑시다.”
강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계단이라 부를 법한 것은 모두 무너져 내렸다. 뛰어 내려서 바닥과 바닥에 착지하는 것이 중요할 듯했다.
강지가 천천히 주변을 보다가 바닥을 발견했다. 이 정도라면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다.
“어서, 이곳으로.”
“끅.”
태석이 움직이면서 신음을 뱉었다. 고통스럽다. 도대체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긴 건지 믿기 싫다. 하지만 일단 풀썩 뛰어내렸다.
“크으으으으윽.”
떨어지면서 장기에 손상이라도 간 건지 출렁이는 소리와 함께 고통이 느껴졌다. 장을 비틀고 꼬아서 가위로 살살 건드리는 듯한 통증이다.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태석 아저씨.”
“왜.”
“태석 아저씨는 어떤 어려움을 겪은 거죠? 그런 이상한 가치관을 갖게 된 계기가 뭐에요?”
“부채 심리.”
“부채 심리?”
“여동생을 힘들게 했다는, 그 감정 탓이야. 누구든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 거지.”
“여동생만 힘든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이기적이 된 거지. 나만 쓸데없이 이겨낼 수 있었다. 가족이 죽은 것을 어이없게도 여동생이 더 힘들어했기에 나는 그게 미안해서 내가 불행해지기를 바란 거야.”
“정말 복잡한 심리네요. 이해하기 힘들어요. 머리가 어질어질 거리는 느낌입니다.”
“뭐, 어리니까. 나중에 천천히 이해하도록 해.”
“어린 애 취급하지 마세요. 저도 어른이니까요.”
“아무리 봐도 애인데?”
“겉보기에는 그렇지만…….”
강지가 기계팔을 커다랗게 하여 바닥을 뜯어냈다. 밑에 착지하기 좋은 바닥이 보인다. 그곳으로 태석과 함께 뛰어내렸다.
“커어어억!”
피를 토해냈다. 태석이 피를 닦아내고는 비틀비틀 일어났다.
“괜찮겠어요?”
“죽지는 않았으니까. 괜찮겠지.”
“너무 무리는 하지 마요.”
“무리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야.”
“……정말이지 쓸데없이 짜증 나네요. 강하지 않은 태석 씨는, 돈 없는 부자예요.”
“……의외로 신랄하구나. 혹시 고란 홀이라고 알아?”
“아니요.”
“둘이 잘 어울릴 거야. 나이도 비슷해 보이고.”
“몇 살인데요?”
“어림잡아 20은 넘은 것 같던데.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데 저랑 어떻게 어울려요. 나이 차이가 나는데. 설마하니 동안인 거예요?”
“장난 아닌 동안이지. 대략 열넷 정도로 보일걸?”
“……바깥 세계에는 신기한 게 많네요.”
“내 입장에서는 네가 살던 오크들과 노예들이 더 생소한데. 뭐야, 그게. 노예가 아직도 실존하다니.”
“다른 행성에는 더 많다고 하던데요.”
“그렇기야 하겠지만…….”
태석이 고개를 돌렸다. 쿵!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안 좋은 감이 든 태석이 강지를 밀려고 했다. 자기 혼자 뭔가에 덮침 당하려고 한 것이다. 그때, 강지가 기계팔을 변형하여 거대한 방패를 만들었다. 띵! 요란한 강철음과 함께 덮치려 들던 거대한 것이 뒤로 펑하고 날아갔다.
그리고 벽에 부딪혀 벽에 거대한 웅덩이 같은 조각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비틀비틀 일어난 녀석을 보던 태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괴수다.”
“이름이 뭔데요?!”
“나도 몰라!”
[악마를 바라는 자, 라고 신들이 일제히 발언합니다.]
“아, 알았다. 악마를 바라는 자!”
“모르는 게 대체 뭐ㅖ요! 솔직히 감탄하겠어요!”
태석이 속성 단검을 꺼내 들었다. 흑수정의 파동이 끝났다. 그러자 몸이 비상식적으로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다친 온몸의 장기나 겉의 피부 같은 것이 재생하여 멀쩡한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강지 또한 신체 자체의 컨디션이 좋아진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악마를 바라는 자 또한 강해져 있었다. 흑수정의 영향이 더 이상 없었기에 일어난 변화였다.
태석이 토르를 강신했다.
파지지지직-!
푸른 천둥이 태석에게 직격, 그리고 전류가 흐르고 속성 단검이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찌이이이이익-!
강지가 그것을 보고 감탄했다. 아무리 봐도 대단한 광경이다. 푸른 안광이며, 푸른 천둥을 두른 모습 하며 멋있기 그지없었다. 강지는 기계팔을 좌악 펼쳐 거대한 총구의 형태로 바꾸었다. 그리고는 괴수에게 들이밀었다.
“자, 어서 처리하고 갑니다.”
“알았어.”
악마를 바라는 자와 태석, 강지. 일대일의 대결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유일신은 그 광경을 아주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하늘 위였다. 구름보다 위에 날아서 선 채 손을 활짝 펼치며 소리쳤다.
“대단하군, 대단해!”
비꼬는 듯한 말투였다. 그는 그 멀리에서 태석을 보고 있었다. 막힌 벽 따위 시야를 차단하는 가림막도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탑 안의 태석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탑 안에서 태석은 악마를 바라는 자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싸우는 중이었다.
그리고 좀 더 멀리에서는 대한과 겐지, 시연, 현지, 이렇게 네 명이 노예들을 구출하고 있었다. 대한이 어색하게 소리를 질러대고, 겐지가 멀뚱멀뚱 어쩔 줄 몰라 하고, 시연이 제일 열심히 구출하고 있고, 현지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하나하나 보내고 있었다.
“정말이지 너무 어이없구나, 태석.”
태석을 다시 보았다. 태석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옷은 온통 찢어지고, 피부는 재생되었으나 혈관이 돋아져 보일 정도로 아직 완전히 재생이 안 되어 있다.
“너 같이 약한 존재가 강신자라니. 이전 35마리의 강신자들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싶을 정도야. 강신자는 본래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뭔가 하나가 강해야 하는데, 너는 둘 다 그렇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이레귤러일지도 모른다고 하는 걸까. 유일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재미있을 수도 있겠지.”
재밌을지도 모른다라……. 유일신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신조차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 완전한 신이 아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고대의 인류를 몰아내고 신이 되고자 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신이 되려면 멀었다.
하지만…… 눈앞의 태석보다는 강하다.
그는 하늘 위에서 빙그르르 돌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태석, 기다리고 있겠어. 나는 완전한 신이 되기 위해 강해진 너를 잡아 먹겠다.”
그렇게 하여 가두어진 모든 신들을 먹어 치워 최강의 유일신이 되겠다.
유일신은 그렇게 생각했고, 사건은 계속 진행 중이었다.
태석과 TOY를 둘러싼 사건이.
태석은 카락스를 무찔렀다. 색욕의 악마 스카이 할 블랜드를 완살했다. 그리고 앞으로 악마를 바라는 자를 처리하고, 노예를 구출하고, TOY를 독점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정화할 때쯤에는 많은 일들이 태석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어쩌면…… 태석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사건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