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모든 신을 받다-66화 (66/102)

# 66

66. 종지부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으앗!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카락스의 비명. 카락스가 정신없이 발키리들과 싸우면서 생각했다.

뭐야, 이 기세? 이 공격? 이 반격?! 도대체가 싸울 수가 없잖아. 싸움이 되지 않는다. 카락스 쪽이 완전히 쳐 발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그야말로 끝장. 오크로서의 자존심이 살아나지 않는다.

발키리들이 정신없이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며 카락스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미 장갑은 부수어졌고, 팔이나 다리나 몸통 등 다양한 신체의 부위를 상처입히고 있었다.

카락스는 어떻게든 반격하기 위해 자신의 온 힘을 다했으나, 오크들 중에 제법 강한 편인 그조차도 발키리 하나를 처리하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 절대로 불가능하다. 발키리 하나하나는 S랭크 헌터를 초월하는 힘을 지녔고, 카락스는 그만큼의 힘이 없었으니까.

태석이 천천히 걸어왔다. 카락스를 향해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적당히 거리를 둔 채 태석이 말했다.

“카락스.”

“왜,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냐아아아! 그냥 내버려두고 꺼져!”

“안 돼, 그건. 왜냐면, 나는 네가 붙잡은 노예들을 구해낼 것이기에.”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타인의 일이잖아!”

그렇다. 타인의 일이다. 태석과는 하등 상관없는 타인의 일. 허나 그렇기에 태석은 신경 쓰는 것이다.

“그래, 타인의 일이지.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신경 쓴다.”

“뭐?”

“이기적인 이타심. 나는 노예들을 구출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미친 새끼!”

아무리 들어도 카락스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카락스는 태석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가족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그 기점으로 카락스와 태석의 선택이 갈렸다. 아무것도 없던 카락스는 가족을 살리고자 모두를 희생하는 것을 택했다. 반면 태석은 하나뿐인 가족을 지키면서 타인들 또한 지키는 삶을 선택했다.

대체 무엇이 그들의 선택을 갈라놓았나. 이렇게 다른 사상으로 각자 대립하게 만들었나. 신들은 대체 무슨 장난을 쳤나. 아아, 신이라고 하니 떠오르는 것이 있다.

카락스도 악마의 사도, 악계자였다는 사실이.

카락스는 쳐 발리면서도 어떻게든 싸워 이기고자 했다. 악계자의 힘을 쓰지 않고도 이길 방법을 찾고자 했다. 색욕의 악마의 악계자로서 그 힘을 쓰지 않고 이길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역시 힘들다.

태석이 더욱 압도했다.

“이봐, 카락스.”

발키리들의 공격 속도가 두 배 더 빨라졌다. 카락스가 당황했다.

-뭐야, 더 빨라지는 거야? 방금 전까지는 전력이 아니었던 거냐? 봐주고 있었던 거냐? 카락스를 뭘로 보고 그러는 걸까. 하지만 카락스는 더욱 절망에 빠졌다. 카락스 만의 힘으로는 발키리 한 마리조차 처리하지 못한다…….

콰직!

팔 한쪽에 감각이 없다. 발키리가 잘라낸 것이다. 그리고 오딘의 힘을 받은 태석이 시킨 일이다.

카락스가 괴성을 질렀다.

“그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서, 어서.”

태석이 재촉한다. 마치 더 열심히 싸우라는 듯, 왜 열심히 싸우지 않냐고 보채듯, 마치 어린아이에게 뛰어 보라고 시키는 듯이 태석은 재촉했다.

“어서, 어서, 어서!”

태석이 사납게 웃으며 지팡이를 허공에 휘두르며 소리쳤다.

“어서 나를 죽여라!”

그러면서 발키리들이 일제히 검과 창으로 온갖 곳을 동시에 찔렀다.

“컥, 커억.”

카락스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팔이, 다리가, 발목이, 팔목이, 머리도, 코도, 눈도, 손도, 온몸이…….

갖가지 무기에 찔린 채 카락스는 피를 토해내며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미친 새끼야.’

카락스가 속으로 조소했다.

‘너 따위로 강한 새끼에게 흠집조차 내는 것도 힘들다고…….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태석이 어이없게도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을 원하면서도 너무 강해 카락스는 건드릴 수 없었기에 카락스가 쓰게 웃으며 속으로 외쳤다.

‘악계자의 힘을 받아들인다.’

콰르르륵.

붉은 피가 일제히 녹아 사라지기 시작한다.

무기가 강철이 밀어내듯 뽑혀 나가고, 발키리가 뒤로 물러났다. 태석이 사납게 웃으며 소리쳤다.

“드디어! 드디어! 나를 죽이고 싶어진 거냐!”

“닥쳐, 미친놈아.”

카락스가 얼굴이 뜨거운 것인지 한 손으로 덮은 채 사납고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태석을 집념이 어린 눈으로 노려보며 소리쳤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나를 위해 살아왔다! 너 같이 쓸데없이 착실하게 살아오지 않았어! 언제나 나를 우선해서 생존해왔던 거다!”

“그래, 그래! 그러니 어서!”

“오냐, 내가 어떻게든 너를 죽이고 도망치겠다. 지구에서 발을 뜨겠다. 다시 시작하겠다. 여기서 죽는 건 싫으니!”

“어서 나와 싸우자!”

태석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발키리들이 일제히 태석의 뒤쪽으로 왔다. 태석이 히죽 웃으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짚으며 비틀비틀. 허나 미친놈처럼 실실 웃으면서.

“이제부터 내가 나선다.”

“오냐, 어서 붙자.”

카락스가 붉은 열기를 뿜으며 주먹을 쥐고 권투를 하듯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발키리를 제치고 태석과 카락스의 육탄전이 시작되려 했다.

어라?

카락스는 자신이 어느새 천장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 의식이 끊겼다. 붉은 열기는 여전히 피어오른다.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그런데 어째서 악계자의 힘을 강신한 자신이 쓰러졌다가,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것인가?

그 의문에 태석이 답하듯, 태석이 발로 카락스를 내려찍었다.

“어서 일어나라! 나를, 이 몸을 쓰러트리겠다고 호언장담하지 않았느냐!”

“크아아아아아아아악!”

퍽! 퍽! 퍽! 퍽!

카락스가 괴성을 지르며 일어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했다. 카락스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주먹을 쥐고 있다. 하지만 태석이 가볍게 지팡이를 휘두르자 금빛의 찬란한 빛이 흘러나와 카락스를 강타한다. 태풍에 비견할 정도의 힘이다.

파아앙!

“끄어어어억!”

카락스가 공중으로 날아가는 도중에 악계자로서의 힘을 분출했다. 공중에서 자세를 바로잡아 태석에게 돌진했다.

좋아, 이대로 주먹을 뻗으면!

주먹을 뻗어 태석의 면상에 공격을 강타.

푹-.

허나 공격은 그대로 막히고 말았다. 태석이 지팡이를 들어 올려 카락스를 향해 가볍게 찌른 것이다. 그대로 명치가 날아갈 듯한 충격이 느껴지고, 카락스의 몸이 허공을 날아 이곳저곳 부딪치며 고통스럽게 굴렀다.

“크어어어어어어어어억!”

위험하다. 의식이 더욱 흐리다. 회복이 더디다. 실제로, 잘려나간 팔이 재생된 건 둘째치고 상처가 터져 피가 잔뜩 난다. 팔을 재생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팔 쪽의 감각이 흐렸던 것이다. 신경 재생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무려 악계자의 힘을 강신했는데!

“젠장…….”

카락스는 어떻게 해야 좋은가 생각했다. 쓰러트리겠다는 생각은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가장 좋은 생각, 도주하는 방법.

어떻게 해야 태석 일행에게서 도주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구질구질하게 목숨을 구걸할 수 있나. 그렇기에 소리쳤다.

“노예들을 모두 풀어줄 테니까 나를 살려줘!”

그렇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뭐?”

“너는 그렇게 쉽게 노예를 풀어주어서는 안 돼.”

“……?”

“왜냐면, 그렇게 하면 내가 불행해지지 못하기 때문이야.”

“뭔 미친 소리냐?!”

오딘을 강신하더니 정말로 광기의 신처럼 된 것인가? 일시적인 일일 테지만…… 역시 신의 힘을 강신하는 것은 정신 나간 일이다. 신들이 얼마나 극단적인 감정으로 움직이는 작자들인 것인지 카락스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오딘은 광기 하나로 모든 것을 내다 버린 미친 신이다. 그런 신을 강신한 태석이, 안 그래도 정신이 건강치 못한데 더욱 미친 것이다.

카락스가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미친 소리냐고!”

“간단한 논리. 나는 불행해져야 하고, 모두는 행복해져야 한다. 거기에 악인인 카락스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힘겹게 카락스를 이겨야 하고, 노예는 해방되어야 하고, 카락스는 살해당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정한 결말이다. 이 몸이 정한 결말이라는 거다.”

“무슨 그런…… 그러면 내가 항복하는 건…….”

“허락되지 않는다!”

“시발! 어쩌라고!”

도망갈 방법이 없다. 적어도 항복을 하여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면 남은 것이 뭔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정확히는, 머리가 새하얗다. 태석에게 미친 소리를 들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카락스가 많이 다쳐서 머리까지 피가 전달되지 않는 것인가. 아무래도 머리에 산소가 부족한 탓이다. 전부 문제일 수도 있다.

카락스가 비틀거리며 뒷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땅으로 내던졌다.

피슈우우웅-!

빛이 터졌다. 그리고 카락스가 그 빛을 섬광탄 삼아 탑 위로 도주하려 했다. 탑 위로 가서 뛰어내리면 된다. 탑은 무너뜨리자. 탑을 무너뜨릴 방법은 탑의 주인인 카락스에게는 간단한 일이다. 모든 설계 구조는 카락스가 알고 있고, 탑 무너뜨리는 버튼도 옥상에 마련했으니까. 게다가 지금도 가지고 있는 스위치로 무너트릴 수 있다.

그러면 어서, 태석이 눈이 부셔 자신을 못 보는 동안…….

그때였다.

빛을 뚫고 태석이 달려온다. 태석의 가면 쓰지 않은 눈은 닫고 있다. 그러나 가면을 쓴 눈은 황금빛의, 고대 문자가 새겨진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태석을 똑바로.

설마 저 가면 속의 눈은 뭔가 특별한 것인가?

“섬광. 아주 좋은 도주 방법이다. 허나 이 몸에게는 부족하다. 불행하게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어서 전력을 들어내라!”

카락스가 괴성을 지르며 탑의 폭파버튼 기계장치를 들고, 버튼을 눌렀다.

쿠르르르릉.

카락스가 신고 있는 특제 신발을 제외하고, 모두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태석도 마찬가지였다. 카락스가 비틀거리며 탑의 옥상 쪽으로 향했다.

태석이 쓰게 웃었다. 오딘의 힘이 풀렸다. 마력을 모두 소진했다. 태석이 서둘러 마력 보충제를 입에 넣고 씹었다. 오딘을 다시 소환할 수 있는 마력이 생성되었다. 이대로 5분 정도는 오딘을 소환할 수 있다.

하지만 소환하지 않는다.

자신이 미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이기적인 이타심이 극대화되는 상황 속에서 태석은 태석이 아니었다. 오딘의 광기가 지나쳤기에 더욱 강신한다면 태석에게 위험할 수 있다. 그러니 태석은 자신의 뒤춤에서 속성 단검을 꺼내 들었다. 마력의 실을 속성 단검에 부착하고, 천장에 붙어 있는 샹들리에를 맞추어 떨궜다. 그러자 천장의 판까지 떨어져 태석 일행과 태석을 가로막는 벽을 만든다. 태석 일행이 소리쳤다.

“뭐하는 거예요! 태석 씨! 이러면 저희가 진입할 수가 없잖아요!”

“죄송합니다. 이 일은 제가 혼자 처리하겠습니다.”

미친 소리일지는 모르지만, 왠지 태석이 혼자 해야 할 것 같았다.

이것은 오딘의 의지인가, 태석의 의지인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태석은 일단 탑의 위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 일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