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65. 태석, 최강의 신이 되다
S랭크 헌터, 강신자, 아이언 월드 대회의 우승자, 최초의 천사, 헌터로서 성천주가 될 수 있는 자.
엄태석을 따라다니는 여러 수식어이다. 이미 태석은 여러 의미로 최고의 위치에 올라 있었고, 수많은 성천주들은 아카식 레코드에서 그를 자신의 부하로 삼을 방도를 찾기 위해 많은 수작을 부리고자 했다.
몇몇 미녀 성천주들은 태석에게 미인계로 유혹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 태석이 북한의 TOY 정화를 나서기 전, 몇 달간의 공백기에 태석에게 접촉한 적도 있을 정도.
그 정도로 대단한 태석이 어째서 아무의 소속도 되지 않는 걸까?
분명 태석이 어느 누군가의 소속이 된다면 분명 대단한 권력과 부와 여자를 누릴 수 있을 텐데, 영웅에 걸맞는 대접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도를 닦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아무에게도 소속되지 않고 혼자가 되려고 하는 걸까?
마치 불행해지고자 노력하는 것처럼, 능력에 걸맞지 않게 불행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처럼.
아아, 태석 자신도 깨달은 모양이다.
오딘의 힘을 받아들인 태석은 문득 생각했다.
태석은 자신이 불행해지고자 한다. 그는 이기적인 이타심이 강한 사람이다. 자신이 불행해지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상황을 즐기고 있다. 그것에 도리어 ‘행복’을 느낀다.
어째서 노인이 위험에 처했을 때 괴수 ‘은호’에게 덤볐을까? 그것은 자신이 불행해지면서 노인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모두를 대신하여 자신이 언데드, 리치와 단신으로 덤빈 것일까? 그것은 자신이 불행해지면서 그곳의 헌터들과 고란 홀이라는 성천주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추락하는 현지를 안고 같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진 걸까? 그것은 자신이 불행해지면서 현지를 살릴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아아, 이제 알았다.
태석은 남이 행복해지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변태나 다름없었다.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불행해지면서 남이 행복해지는 것을 바란다.
어째서 그런 걸 바라는 거지?
그때 태석의 눈앞에 모스키토의 모습이 보이는 착각이 들었다. 어린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자신이 보인다.
아아, 그때 분명 뭔가, 뭔가 있었어.
태석이 기억하지 못하는, 아니 방어 기제로 지워버린 기억이.
태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니 태석과 태희라는 남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무슨 힘든 일이 있었기에 태희는 그 날 이후 며칠간 태석을 피한 것일까?
뭔가 알 듯 말 듯하여 짜증 난다.
그때, 오딘이 머릿속으로 말한다.
[나는 광기의 신, 오딘이다.]
“그래, 광기의 신. 드디어 북유럽 신화의 제우스와도 같은 자를 강신했어.”
[나를 강신하는 강신자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 어떤 우주의 강신자도 나를 강신하지는 못했어.]
“그런가.”
[그렇다. 강신자는 이 우주에서 단 한 명이 존재하지. 하지만 강신자가 살해당하면 다른 강신자가 등장한다. 강신자는 한 명으로 주욱 유지되는 거야. 그리고 36대 강신자가 바로 태석 너인 것이다.]
“그런 걸 알다니 역시 오딘이라고 해야 할까. 대단해.”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고대의 인류. 너희들이 아직 문명도 이루지 못했을 때, 뛰어난 과학력으로 너희들에게 여러 도움을 주고, 어떤 사태에 의해 쫓겨났다.]
“쫓겨나다니? 어째서? 어디로?”
[세상에는 위험이 닥쳐온다. 언젠가 반드시. 그리고 우리 고대의 인류는 세상의 위험을 반반의 확률에서 이겨내어 구했다. 그 대신 쫓겨났다. 세상의 밖으로, 세계의 끝으로.]
“…….”
세상에는 위험이 닥쳐온다. 그것이 세상의 진리이자, 피할 수 없는 운명인 듯하다.
공룡들은 거대한 운석이 충돌한다는 위험에 멸망했다. 폼페이는 화산 폭발이라는 위험에 의해 멸했다. 그리고…… 그리고 여러 문명들은 가장 찬란한 시기에 갑작스러운 위험에 의해 멸했다.
그것이 진리라는 걸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걸까.
그리고 그것들은 정확히 반반의 확률로 피할 수 있다. 위험을 비켜나가게 할 수 있었다.
고대의 인류는 자신들의 힘으로 그것이 가능했으나, 세상에서 쫓겨나 세계의 끝이 된 것이다.
[세계의 끝에 도달한 우리는 갇혀 있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세계, SYS라는 조직이 만들어낸 세상에.]
“그런 너희들을 강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나, 강신자.”
[그렇다. 그리고 오딘인 나까지 강신할 정도의 강신자는 지난 삼십오 개의 존재들이 이루지 못한 성취다. 네가 신기록을 세운 거지.]
“그러면 묻겠어. 너의 어떤 신화가, 내가 너를 강신하게 한 거지?”
[지나친 이타심.]
“뭐?”
광기의 신은 현재 기준으로 인격 파탄자다. 발키리를 혹사하여 전사의 영혼을 모으고, 라그나로크를 일으키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대의가 있어 라그나로크를 막고자 한 것이지만…… 이해 안 되는 짓을 많이 했다.
그런 존재에게 이타심이라니? 그런 이기적인 존재에게?
[나의 이기적인 이타심과 너의 이기적인 이타심이 동기화를 이루어냈다.]
“그렇군……. 그건 분명 그 신화…….”
[그래, 내가 나를 위해 나를 바친 신화. 나를 제물로 하여 나를 강화한 신화. 그 신화에 의거하여 너와 나의 동기화율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강신자.]
“하하하하.”
태석이 싸늘하게 웃었다.
눈앞에 있는 카락스가 긴장했다.
카락스는 생각했다.
‘지금의 태석은 미쳤다. 알 수 없지만, 위험해졌다는 걸 알 수 있어.’
광기가 느껴진다. 희미하게 웃고 있고, 기운 없이 슬퍼하고, 조용히 슬퍼하고 있다.
그리고 잘려나갔던 얼굴 반신은 재생되었고, 금빛 가면으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다. 가면에는 음각이 새겨져 있다. 알 수 없는 고대의 문자들이었다.
손에는 역수로 든 단검 따위는 없었다. 그것은 가방에 넣어둔 채였고,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지팡이는 그의 손을 휘감아 마치 한 몸이라는 듯 장식되어 있었다. 그 지팡이에서 끊임없이 불길한 보랏빛의 괴상한 기운이 흩날리고 있었다.
뭐지? 대체 저건…… 위험하다. 무섭다. 두렵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카락스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하지만.
카락스는 태석의 뒤편에 있는 수많은 날개 달린 말을 탄, 갑옷을 입고 있고 저마다의 무기를 들고 있는 발키리들을 보며 소리쳤다.
“태석! 나는 나의 정의를 관철한다! 모두를 희생하여 나의 행복을 이루겠다!”
모든 인간이건 오크들을 노예로 부리고 멋대로 죽여대어, 그러니까 모두를 불행하게 하여 자신의 행복, 그러니까 자신의 가족을 살리겠다.
그러니 모두를 불행하게 하여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그런 의지를 관철하여 소리쳤다.
오딘, 아니 오딘을 강신한 태석이 싸늘하게 웃으며 지팡이를 들어 카락스에게 들이밀었다. 카락스가 그 광기에 부들 하고 떨었다.
태석이 소리쳤다.
“카락스, 이 몸 또한 이 몸의 정의를 관철한다. 모든 인간들을 구원하여 이 몸의 불행을 자초하겠다.”
모든 인간들을 구원하고, 멋대로 구해내서, 그러니까 모두를 행복하게 하여 자신의 불행, 그러니까 자신의 희생을 자초하겠다.
태석이 싸늘하게 웃으며 그렇게 선언했고, 카락스가 웃어댔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
카락스가 장갑을 낀 주먹을 세게 쥐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미쳤군! 단단히 미쳤어! 광기 그 자체와 다름없군! 너는 망가졌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 불행을 자초하겠다니? 그런 영웅은 이 망할 세상에는 필요하지 않아!”
흑수정에 의해 지구 상의 인류는 1분마다 100명씩 죽고 있다. 괴수들이 인간들을 도륙하고, 뒤늦게 헌터들이 흑수정을 정화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건 힘들다. 그저 카락스는 자신의 것만 행복해지면 된다는 주의였다.
그런데 태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말도 안 되게도 그런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도 만인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겠다고 하고 있다.
쓰레기다. 상상도 못 할 머저리다.
그러니 카락스는 태석을 죽인다. 저런 정신병자 따위 어찌 되건 알 바 아니다. 죽는 편이 낫다.
태석은 그저 침묵했다.
“너에게는 교육이 필요하겠군.”
오딘의 발키리들이 일제히 카락스를 향해 돌진한다.
카락스가 괴성을 지르며 장갑을 땅에 내려찍었다.
쾅!
두 집단이 격돌한다.
오딘의 발키리들이 카락스의 몸을 잘라내기 위해 칼을 휘둘렀다. 창을 휘둘렀다. 태석은 그것을 특유의 오딘의 복장을 갖춘 채 쳐다보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군주. 이 세상에 강림한 신을 보는 모양새였다.
태석과 함께하던 일행들은 달라진 태석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다. 신이 강림한 듯한 모습에 강지는 멍하니 그 모습을 본다.
멋지다.
하지만 동시에 보면 볼수록 슬퍼진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태석에게는 묘한 불행이 느껴졌다. 대단한 능력에, 대단한 인맥의 소유자는, 태석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한다는 가치관이 자리잡혔기 때문이다.
어쩌면 연인은 갖지 않고 스스로 고립되고자 하는 것은 그의 가치관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연이 문득 중얼거렸다.
“이게 뭐야…….”
도대체가 태석은 얼마나 바보인 걸까.
“저는 태석 씨가 멋있는 히어로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백마 탄 왕자님이 있다면, 바로 태석 씨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막 나도 태석이가 그런 녀석이라고 생각한 참인데. 잠깐, ‘했어요?’ 그러면 지금은?”
대한이 살짝 방정맞은 말투로, 허나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시연이 답했다.
오딘의 모습을 한 태석의 등을 보면서.
“하지만…… 지금은 그저 불행한 남자로 보여요. 많은 것을 짊어진 불행한 사람. 가족을 잃고, 모든 걸 잃어서 망가졌던 사람. 간신히 일어났지만, 비뚤어진 가치관으로 자신의 능력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모두 마다하면서 스스로를 계속 추락시키는 사람. 그러면서도 불행하게도 뛰어난 능력으로 끊임없이 억지로 비상당하는 남자. ……그런 걸로 보여요.”
“아아.”
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그리고는 대한이 쓰게 웃었다.
“태석은 천성적으로 그런 성향의 아이였거든요.”
그런 대한의 눈은 태석을 보고 있지 않았다. 태석의 과거를 생각하는 듯, 약간 시선이 밑으로 내려가 있었다.
대한이 쓰게 웃었다.
‘뭐, 그걸로 네가 만족할 수 있다면 나는 불만 없다, 태석.’
그리고는 주먹을 쥐었다.
‘어쨌든, 지금은 카락스를 조져라. 그것이 대의를 위한 길이니까.’
절대악이라고 볼 수 있는 카락스를 조진다. 태석과 태석 일행의 공통적인 목표가 되어 있었다.
카락스의 괴성이 들렸다.
“으아아아아아아! 죽어라아아아아아!”
카락스의 괴성은 조금 고통스럽게 들릴 정도로 안쓰러웠다.
전황은 어떻지? 대한이 대충 보아도 카락스에게 참담할 정도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만큼 태석은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해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대한은 다시 한 번 아이언 월드 대회의 결승전에서 태석과 붙는다면 1분을 견뎌낼 자신도 없었다. 즉사하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그만큼 태석은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