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모든 신을 받다-64화 (64/102)

# 64

64. 오딘과 발키리

강지가 엉엉 울면서 여자아이를 부둥켜안았다. 여자아이는 입을 다물고 멍하니 있다가 조심히 안았다.

강지가 소리쳤다.

“무서웠습니다. 당신도 잃을까 봐. 그때의 그 남자아이처럼.”

남자아이라, 누구를 말하는 건지는 몰랐다. 하지만 태석은 어찌 됐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과 겐세의 힘으로 강지의 친구를 구할 수 있었으니까. 설령 강지의 친구가 아니라도 구해낼 것이었지만.

강지가 태석 쪽을 보고는 몸을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됐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이타적이시군요.”

“?”

강지가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그저 생각 난 단어를 말했을 뿐입니다.”

“일단 이 여자아이를 적당히 탈출시킬 경로를 찾아야겠어.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까…….”

“탈출이라. 간단하지.”

겐세가 미소를 지으며 태석이 방법을 찾고 있을 때 답을 안다고 말했다. 태석이 겐세 쪽을 보았다.

“방법을 압니까?”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무슨 방법인데요?”

“내가 기적으로 중력을 조종한다는 것은 알겠지.”

“예.”

“그러니까 나는 항상 중력을 조종해 비밀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어.”

“비밀 공간이라면…… 아.”

이제 알겠다.

중력은 기본적으로 물질의 만유인력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 원리로 인해 공간마저 휘는 것이고. 그러니까 예전에 강철 길드 길드장 이지석이 중력 반지로 공간을 휘게 만들기도 했었다. 그런 중력장으로 비밀 공간을 만든다라…….

상상도 못 했던 일이지만, 가능하다고 여겼다. 성천주니까 당연한 것이다.

천사의 사도니까.

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 방법을.”

“좋다.”

겐세가 손을 뻗어 중력 기적을 사용했다. 공간이 휘고, 순식간에 여자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 셈이다. 그러면 어서 탑 안으로 진입하도록 하지.”

“좋습니다.”

대한이 씨익 웃으며 주먹을 손으로 탁 쳤다.

“좋아, 그러면 이제 드디어 시작이네.”

“그러게요.”

시연이 드물게 상냥하게 말했다.

현지 또한 입꼬리를 잔뜩 올리며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뭐든 좋게 끝날 거예요!”

그리고는 그들이 한 걸음 탑 안으로 발을 들이밀 때였다.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온 거지?”

탑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거슬리는 목소리였다. 쇠 긁는 소리와 함께 굵직한 목소리였다. 숨을 헉헉 내뱉는 소리도 들렸다.

어떤 녀석이지? 생각할 것도 없다. 태석은 그자의 모습을 보고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너는…… 카락스?”

카락스가 탑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채, 태석을 보며 피식 웃었다.

카락스가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송곳니는 길고 얇다. 그것이 턱 밖으로 삐죽 나와 있었다. 머리는 벗겨지지 않고 올백으로 묶고 있었고, 옷은 신사복을 입고 있었다. 악마 추종자들도 그렇고, 이 지역 오크들의 드레스 코드라도 되는 듯싶었다.

그런 카락스는 탑 안쪽의 내려가는 계단에 선 채 한 손에 장갑을 끼고 있었다.

‘블랙 웨폰이다.’

척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손등에 검은 흑수정이 박혀 있고, 장갑 또한 검다. 그리고 치이익거리는 특유의 피를 빨아내는 소리까지. 완벽히 블랙 웨폰이다.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 걸까, 저 장갑에는.

카락스가 손을 뻗었다.

“엄태석.”

“왜 부르지?”

“너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이야기?”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렸다.

“첫 번째로, 네가 낭떠러지 밑, 악마 추종자들의 던전을 F랭크 헌터와 함께 돌파한 이야기를 들었다. 대단해. 미리 준비한 것도 아닐 텐데 거기서 살아남다니.”

“그거야 간단한 일이지. 너도 내 힘에 굴복할 거야.”

“그리고 두 번째로, 나의 TOY를 정화하려 한다는 거다. 함부로 정화하지는 못할 거다. 왜냐면, 나는 이걸로 해야 하는 일이 있거든.”

“뭘 해야 하지? 아아, 알고 있어. 가족을 살리려 한다고 했던가?”

“그렇다.”

카락스가 숨을 들이마시었다.

“너도 알겠지. 가족을 잃은 슬픔이 어떤지. 나는 그 가족을 살리고 싶다.”

“수십의 생명을 죽이면서?”

“그렇다. 그리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웃기는 소리하지 마.”

“너는 기술이 없기에, 가족을 살릴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

“기술이 아니라 기술이 있어도 그런 비도덕적인 일은 하지 않겠어.”

카락스가 태석의 말에 킥킥거렸다. 뭐가 비도덕적인 일은 하지 않겠다는 거지? 태석은 왜 이렇게 카락스와는 달리 착한 척을 있는 힘껏 하는 걸까? 정작 자기도 가족을 살릴 수 있다면 살리려는 상상 정도는 했을 것 아닌가? 그러니 실행으로 옮긴 카락스가 더 대단하다. 카락스가 소리쳤다.

“제안이 있다.”

“무슨 제안?”

“아주 좋은 제안이야.”

카락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너의 가족도 같이 살릴 수 있어.”

“……?”

시연이 태석을 봤다.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왜냐면, 태석의 눈동자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가족을 살릴 수 있다고? 이번에는 시연도 눈이 떨렸다. 정말로 그게 가능한 걸까? 어떤 부작용도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일인가? 그렇다면, 어쩌면 시연도 자신의 어릴 적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건…….

“넘어가면 안 됩니다, 시연 씨.”

“……네.”

태석이 조용히 그렇게 말하고는, 시연의 손을 포개어 잡았다. 따듯한 눈빛으로 시연을 한 차례 보고는 고개를 돌려 카락스를 봤다. 카락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뻗었다.

“너는 나의 힘으로 너의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지겹도록 지독한 괴수와의 싸움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돼. 너는 헌터니까 모스키토에게 다시 가족을 잃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지금 당장 나와 함께 가족을 살리는 거다.”

분명, 좋을지도 모른다. 아니, 마음만으로는 수백 번은 넘게 시도해봤던 상상이다. 가족이 살아있거나, 살려내는 상상은 수없이 했다. 왜냐면, 가족을 잃은 상실감은 크니까. 괴로운 것이다. 그러니 고민은 든다.

하지만 전혀 떨림 없는 눈으로, 그런 눈으로 카락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거절한다.”

그 표정은 단호하고, 그 어떤 흔들림은 없다.

“너를 막겠다. 모두를 구원하겠어.”

그것이 태석의 선택이다.“

카락스가 손을 뻗었다. 장갑을 낀 손을 뻗었다. 마치 로봇 영화에 나오는 주먹을 보는 것 같았다. 주먹에서 붉고 검은빛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팡 하고 터져 퍼트렸다. 그 순간, 검붉은 미사일 같은 것이 태석의 눈동자를 노리고 날아갔다.

이 정도라면 피할 수 있다. 태석이 몸을 돌려 피해냈다. 그리고는 달려들었다. 카락스를 향해. 주먹을 노린다. 주먹의 장갑을 파괴하고, 그다음에 차례차례 약점을 공격하는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이동하여 카락스의 주먹에 다가가고, 밑으로 몸을 수그리고 파고들어 역수로 잡은 단검으로 주먹의 장갑을 향해 팡! 쳤다.

주먹의 장갑이 살짝 깨졌다.

하지만 카락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분명 장갑을 부수면 된다고 생각했겠지.”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을 뻗었다.

“하지만 말이다.”

이런, 뭔가 불길하다.

태석이 서둘러 몸을 돌려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 겐세가 중력 마법으로 태석을 끌어당겼다.

그렇게 끌어 당겨지는 순간, 장갑을 끼지 않은 카락스의 손에서 붉은빛이 팡! 솟아 나와 태석을 노렸다.

“장갑만 멀쩡하다면, 몸 어디서든 붉은빛을 터트릴 수 있다.”

“윽!”

쾅!

태석의 오른쪽 눈에 공격이 가해졌다.

어라?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어딘가 보는 것이 불편하다.

휘청.

몸이 뒤흔들린다. 반고리관에 이상이 생긴 듯했다. 어째서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태석씨! ……태…… 씨…… 석…….”

말이 끊겨 들렸다. 앞에서 카락스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계단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태석이 자신의 손을 얼굴로 짚었다.

얼굴 반쪽이 없다. 정확히는 오른 눈을 기점으로 머리가 날아가 있었다.

무슨 일이야? 태석은 믿기 힘든 상황 속에서 의식이 흐려졌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태석은 여태껏 괴수를 죽이겠다는 신념으로 싸워왔다. 그리고 TOY를 정화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성물이 어떤 열쇠 역할을 할 것이라는 말만 믿고 이곳에 왔는데.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절대로.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카락스를 향해 다가가려 했지만, 몸이 굳은 것처럼 뻣뻣하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이 끊겨서 느껴진다. 생각을 할 수 없…….

의식이 사라졌을 때였다.

[오딘이 말합니다.]

[광기의 신, 오딘을 강신하였습니다.]

콰가가가가가강-!

그 순간, 태석의 의식이 뚜렷해지고 사라진 얼굴 반쪽이 재생되었다. 몸 또한 멀쩡히 움직일 수 있었다. 거센 폭풍이 몰아치고는 태석의 속으로 얌전히 들어갔다. 몸이 가만히 있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다. 광기가 느껴졌다. 몸이 빨라진 것 같았다.

태석이 손을 뻗어 말했다.

“발키리, 나에게 힘을 빌려주어라.”

발할라에서 죽은 전사들의 혼을 모으던 자들. 그들이 바로 발키리이다. 발키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개가 달리고, 갑옷을 입고, 투구를 둘러싼 날아다니는 인간들이 창이나 검을 들고 태석의 뒤에 서 있었다. 태석은 어느새 지팡이 하나를 짚고 있었다. 눈은 광기에 가득 차 있었다. 오른 눈을 감고 있고 왼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카락스가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보다가 아예 몸을 돌려 태석 쪽을 보았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오딘을 강신했다.”

“뭐?”

알 수 없는 소리였다.

오딘을 강신하다니?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란 말인가?

“오딘은 본래 광기라는 단어가 근원이 되어 지어진 이름.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쳐서라도 자신을 최강으로 만든, 스스로를 인신 공양한 미친 신이다. 발키리를 통해 끊임없이 싸움만을 계속하는 발할라라는 괴상한 세상을 만들기도 했지.”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전부 공상과학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들인데. 발할라라는 게 실존하지도 않고, 오딘이라는 것은 실존하지도 않아. 그런데 어째서 너는…….”

“그런 존재가 실존한다고 믿으면서까지 강신이라는 쇼를 하냐고?”

“그래, 맞아! 신이라는 게 진짜로 있을 리가…….”

“진짜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와 달리 실존하고 있다.”

태석이 마침내 성천주로 변신했을 때 느꼈던 SYS에 대해서 드디어 어느 정도 정리된 모양인지 답을 내리듯 말했다.

“우리 선조의 인류, 고대의 인류들이 바로 신이다. 우리가 문명을 이루기 직전에 있었던 그들이 바로 신이다.”

고대의 인류가 존재했고, 그들이 신이었다.

태석의 말이었고, 모두가 경악했다.

“자, 그러면 고대의 인류를 가두어 쓰는 나에게 죽을 준비를 해.”

태석이 히죽 웃었다.

이제 전설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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