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63. 오염 정화
키메라들이 둘러싸고 있다. 숫자는 몇일까? 하나, 둘, 셋…… 세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게다가 저 뒤에서 달려오는 녀석들까지 대략 열 마리 정도 추가.
태석은 입을 다물었다. 생각보다 힘들겠군.
애당초 TOY를 통제할 정도 규모의 조직이다. 이 정도 전력은 이미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많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태석은 한숨을 뱉었다.
그러면 여기서부터가 고비겠군.
예전이라고 하기도 뭣하고, 며칠 전에 겪었던 일이 있다. 태석이 낭떠러지에 현지와 함께 추락했을 때의 일이다.
뭔가 게임 같다고 생각했다. 묘하게 일이 누군가의 의지대로 벌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운명, 그래 그런 느낌. 운명의 뜻대로 사건이 벌어진다는 느낌이다. 간접적으로 그 운명이 태석을 옭아매고 있다. 태석의 주변인들을 괴롭히고 있다.
하지만 그런 운명에 치이지 않고 싶었다. 태석은 속성 단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잘하면 이길 수 있다. 살아남을 수 있다. 녀석들을 무찌를 수 있는 것이다.
팟.
태석이 속성 단검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마력의 실을 통해 빙빙 돌렸다.
치직, 치직, 치직, 치직!
전격을 머금은 속성 단검에 모든 것이 번갯불처럼 타들어 간다. 정확히는, 키메라의 전 부위가 숯 더미가 된다.
크르르르르르!
남은 녀석들이 으르렁거리며 덤벼들었다.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원거리에 있으면 태석이나 기타 인물에게 당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이야아아!”
대한이 흑마법을 대규모로 펼쳤다.
콰강! 콰강! 콰강!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규모 있는 흑색의 안개 더미가 키메라들을 공습했다.
키에에에에엑!
키메라들이 괴성을 지르며 쓰러진다. 헉헉거리며 호흡을 거칠게 쉬고 살아있는 녀석들도 있다.
숨통이 붙어 있는 녀석을 시연이 달려들어 처리한다.
시연의 백마법을 두른 한손검에 약해진 녀석들이 단숨에 베이고 처리된다.
태석이 소리쳤다.
“나이스!”
“으아아아아아!”
현지가 비명을 지르며 키메라들에게 마력의 실로 공격, 찌른 후에 조종을 개시한다. 조종당하는 키메라들이 다른 키메라를 공격하고, 그중 쓸 만하게 부품이 붙어 있는 녀석을 추가로 조종한다. 현지가 비명을 지르는 이유는, 두통이다. 마력의 실로 상대를 조종하는 것은 관절의 움직임, 근육의 사용, 또한 그것을 통해 행동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고통스럽다. 머리를 지나치게 과부하를 주는 일이다. CPU 한 개로 컴퓨터 수십 대를 돌리는 꼴과 같은 것이다…… 라고 현지가 태석에게 말해주었다.
태석이 소리쳤다.
“조금만 힘내요!”
“으,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현지가 제일 전력에 도움이 되었다. 그렇군, 다수와 싸울 때는 현지의 능력이 최고로 효율이 좋았다. 반면 태석은 대인전에 능숙하다. 여러 마리와 함께 싸우는 것은 적성이 아니다.
어찌 됐건.
겐세가 기적을 통해 키메라들을 모조리 정화했다. 흑수정들이 키메라들에게 박혀 있었고, 그것들이 모조리 하얀 돌로 변했다. 태석이 그것을 입에 넣고 씹었다.
기계팔을 달고 있는 소녀, 강지 또한 키메라가 정화되는 모습을 보며 묘한 눈을 했다. 어떤 감정이 샘솟고 있는 걸까. 알 수 없다. 강지의 표정은 태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식의 마음을 알 수 없는 부모의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야 그럴 것이 강지는 너무 어렸으니까.
강지가 말했다.
“일단락 난 것이겠죠…….”
“……그래.”
태석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으아아아악!”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태석이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본다.
강지가 놀란 눈을 하며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여자아이는 쓰러진 채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파 보인다. 얼마나 아픈 거지? 땀을 질질 흘리고 있다. 식은땀인가? 그리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무슨 일이 생기는 거지? 죽는 건가? 죽으면 안 된다. 태석이 서둘러 달려가 강지가 붙잡고 있는 여자아이를 본다. 그리고 강지에게 묻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몰라요, 몰라요. 도대체 왜 갑자기…….”
“누구, 누구 아는 것 없습니까?”
겐세가 강지의 손과 태석의 손을 치우고 여자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새하얀 빛이 여자아이와 겐지의 손에서 새어나온다. 그리고 눈을 감고 무언가 명상과 비슷한 자세를 취하던 겐세가 태석과 강지를 차례로 보고 말했다.
“그렇군.”
“무슨 일입니까?”
“간단한 병이다. 흑수정에 노출된 일반인이 걸리는 현상…….”
“오염이군요.”
“그래, 오염.”
“하지만 그걸 치유하려면…….”
“두 명의 성천주가 필요하지."
"두 명?“
“그래. 한 명은 오염을 정화하고, 한 명은 영혼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사히 치유가 가능해.”
강지가 슬픈 눈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는 성천주가 한 명뿐 아닙니까. 제 친구의 생명은 이제…….”
“아니.”
태석이 고개를 젓는다.
“내가 하면 돼.”
“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강지는 태석이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야 그럴 것이 태석은 성천주가 아니잖아? 평범한 헌터잖아? 가능할 리가 없다. 성천주 둘이 필요한 일을 한 명이서 할 수 있을 리가…….
하지만 태석은 말해왔다.
“그야 내가 성천주가 되면 되지.”
“……네?”
뭔 소리냐고 묻기도 전이었다.
겐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재촉했다.
“그래, 어서 변신을.”
“네.”
“네? ……네? 잠시만, 지금 뭐라고…….”
태석이 미소를 지었다.
“간단한 이야기야. 내가 성천주가 되면 돼. 그러면 겐세 씨까지 포함해서 두 명이야. 그러면 고칠 수 있어. 살릴 수 있어. 구할 수 있어.”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해피 엔딩을 위한 한 발을 내디딜 수 있어.”
강지는 어렸을 때부터 노예였다.
오크들에게 감금당해서 적당히 죽지 않을 정도로 먹을 것을 지원받고, 제대로 된 사회생활도 하지 못한 채 감옥에서 자신의 또래 아이들과 그저 지옥 속에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끔찍하다고도 생각할 수 없었다. 왜냐면, 태어날 때부터 자유가 없었기에 자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꼬마 남자아이가 있었다. 강지와 비슷한 나이.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이름이 없었을 수도. 이름은 그때 강지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감옥에서 나와 드디어 일을 시작할 때였다.
남자아이는 언제나 몰래 강지의 옆으로 와 같이 흑수정을 캐내는 작업을 했다. 그러면서 몰래 수다를 떨곤 했다.
“야.”
“왜입니까.”
“우리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무슨 소리…… 입니까?”
“역시 바보같이 존댓말만 해대는구나.”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 이라니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기에 자세히 듣고 싶었다. 남자아이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간단한 이야기야. 우리는 노예잖아. 노예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심정에서 한 말이고.”
“노예가 아니면…….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지금이 좋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고, 자유도 없는 지금이……?”
“…….”
“잘 생각해봐.”
“네.”
“너는 잘 모르고 있어. 이곳 밖의 생활이 어떨지. 그리고 이곳에서 생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마나 끔찍한 생활인지.”
“…….”
“그러니까 밖으로 나가자.”
“하지만 밖에서라면 어떤 일이 있는지,저는 몰라요. 더 끔찍한 곳이 기다리고 있다면 어떻게 하죠?”
“그러면…….”
남자아이가 쓰게 웃었다.
“그래, 우리 이름을 짓자.”
“이름?”
“그래, 이름.”
“어떤…… 이름입니까.”
“강지. 강지 어때? 너는 머리가 좋아 보이니까 지혜의 지를 쓰는 것도 좋을 거 같아.”
“강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이곳 근처에 강이 있더라고.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태어났으니까.”
“……강지…….”
좋은 이름이다, 라고 생각했다. 강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지, 좋은 이름입니다. 행복…… 이 뭔지 알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남자아이는 도망치는 데에 실패했고, 강지는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팔이 잘려나갔고, 강지는 기계팔을 장착했다. 그리고 강해졌다.
그렇게 이곳에서의 몇 달간의 생활 후 강지는 태석 일행과 마주칠 수 있었다.
이런저런 회상을 하던 강지는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보고 놀랐다. 태석의 눈매가 변했다. 약간 빛이 난다고 해야 할까. 몸 전체에 후광도 돋고 있었다. 멋있다. 동경하게 된다.
슈퍼맨이 아닐까. 강지는 슈퍼맨이 뭔지 모르지만 동경하고 말았다.
태석은 현재 성천주로 변신한 상태였다.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네.’
성천주로 변신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십 분. 그 안에 여자아이를 구해야 한다. 태석이 겐세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되죠?”
“영혼을 붙잡는 것은 내가 하겠다. 너는 치유해라. 기적으로.”
“알겠습니다.”
태석이 눈을 감고 집중한다.
기적을 끌어낼 준비를 한다.
[S.Y.S에 접근.]
기적을 쓰려할 때 알 수 없는 것에 접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시스템 알림도 떠올랐다. 또 SYS다. 예전 아이언 월드 대회 때, 악마 추종자들과 싸울 때 보았던 문구였다. 정확히는 천사로 변신하기 직전 아카식 레코드를 통해 보았던 정보였다.
[S.Y.S에서는 당신을 환영합니다.]
[세상의 시스템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언젠가 위험을 해결해낸다면.]
[그러기 위한 운명은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노력해주십시오.]
[세계의 끝을 위해서.]
‘세계의 끝? 운명? 시스템? 위험? 해결?’
알 수 없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말이 된다.
태석은 직감했다.
언젠가 위험이 닥칠 거라고,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그리고 세계의 끝에 도달할 거라고.
하지만 그것은 후의 일.
……어째서인지 성천주나 천사가 되면 이런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히는 느낌이 든다. 겐세 또한 이런 느낌을 느끼려나? 하지만 겐세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태석은 지금의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여자아이의 오염을 정화하는 일에.
“어서 준비해라.”
“네, 알겠습니다.”
태석이 손을 뻗어 여자아이의 몸통 쪽에 손을 얹는다. 겐세 또한 여자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먼저 겐세가 시작했다.
팟.
기적이 흘러나오고, 소녀의 영혼을 움켜쥔다.
두근, 두근, 두근.
영혼이 맥박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의 소리라고 해야 할까. 영혼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느낌이다.
[무서워.]
[추워.]
[어두워.]
[여기는 어디야? 어디길래 이렇게 고통스러워?]
[강지야, 강지야. 도대체 어디 있는 거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아무것도 만질 수 없어.]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태석이 손을 얹고, 기적을 발동한다.
그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점화된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소녀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태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괜찮아.”
소녀가 손을 뻗는다. 태석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천천히 끌어당긴다. 소녀의 몸과 함께 태석의 몸이 저 하늘의 빛으로 날아간다는 그런 착각이 들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고, 태석은 눈을 떴다.
“성공했다.”
겐세가 선언했다.
소녀의 오염이 해결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