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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모든 신을 받다-61화 (61/102)

# 61

61. 탑으로

팟. 팟. 팟.

가볍게 제자리 뛰기를 시작했다. 뭐를 하려는 거지? 태석은 일단 다리 건너편에서 태석 쪽으로 건너려고 하는 소녀를 가만히 본다.

멀리서 보니 강지의 모습은 유독 작았다. 아무래도 나이가 어린데다가 영양 불균형에 시달리다 보니 굉장히 말라 있다.

어떻게 건너려는 걸까?

그리고 그때였다.

팟, 팟, 팟-!

뒤로 슬그머니 몇 걸음 물러났다. 대한이 문득 중얼거렸다.

“뭔가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지만, 학예회에서 딸내미를 보는 기분이야…….”

“의외로 동감이에요. 대한 씨 치고는 훌륭한 비유였어요.”

고란 홀의 부하 헌터 아니랄까 봐 신랄하게 비판하는 성시연이었다.

“하하하…… 역시 자신을 믿어야죠. 그렇죠, 태석 씨?”

자신감 타령에는 일가견 있는 땅개, 견현지가 태석에게 동의를 요구했다. 태석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자신감이 중요하다. 뭐든지 자신 넘치게 행동해야 그나마 일이 잘 풀릴 것이다. 태석은 현지의 그런 정신을 본받고자 했다.

탓! 타다다다다다다…….

빠르게 발을 구르며 뛰는 소리, 강지의 뒤쪽에 모래 안개가 피워질 정도로 빠른 달리기였다. 놀라울 정도의 속도에 태석이 살짝 당황했다.

저 기계팔…… 다른 기능도 있는 걸까? 어쩌면 마법 비슷한 것으로 육체 능력 자체를 향상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태석은 주의  게 강지를 보았다.

타아아아아앙-!

강지가 뛰어올랐다. 꽤나 높이 뛰어올랐다. 이 정도 점프력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확신은…… 역시 들지 않았지만, 태석은 강지를 믿기로 했다.

어라, 강지가 추락한다. 역시 신체 강화 같은 것을 해서 빠르게 달려도 강지의 몸의 근육량 탓인지 한계가 있다. 닿지 못하고 떨어지려고 한다. 태석이 서둘러 달려들려고 할 때였다.

팡!

기계팔이 순간 대포와 비슷한 형태로 변했다. 아니, 대포가 아니다. 세 개의 거대한 총구 같은 것이 나 있고, 그곳에서 검붉은 불줄기가 흘러나왔다. 그 불줄기에 의지하여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따듯한 공기와 불 에너지로 공중으로 부유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기계팔…… 엄청나게 유용할지도 모른다. 과연, 어린 소녀를 여태껏 생존하게 만든 도구답다. 이것이 바로 흑수정으로 개발한 도구, 블랙 웨폰의 위력인가? 무시무시하다.

강지가 팡 하고 불줄기를 더욱 강하게 뿜어 건너편 다리, 그러니까 태석이 있는 쪽에 도달했다.

태석이 문득 대견해서 싱긋 웃었다.

시연이 걱정되는 표정이다. 걱정될 만하다. 눈치를 보아하니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듯하니까, 어린아이가 이런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것 자체가 신경 쓸 것 투성이일지도 모른다. 시연이 무릎을 굽히고 강지를 본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 무서웠을 텐데.”

“무섭지 않았습니다…….”

어째서일까.

강지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저, 정말로 혹여나 죽을 것 같아서 주마등이 스치는 기분은 아니어, 었어요.”

“그래, 그렇겠지.”

시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절대로, 진짜예요.”

강지의 말에 피식 웃는 일행이었다. 그들 중 시연이 말했다.

“묘하게 대한 씨 닮은 느낌도 있는데요.”

“……어째서 거기서 내가 나오는 거야.”

대한은 뜬금없이 자신을 말로 패는 시연이 미웠지만……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안 쓰기로 했지만…….

“저를 저 사람에게 비교하는 것은…… 무슨 의미십니까?”

“미안, 내가 잘못했어.”

“아니, 그러니까 왜 자꾸 나를 까냐니까?”

“그야.”

시연이 싱긋 웃었다.

“까는 게 재밌으니까? 특히 반응이요.”

“……울고 싶어졌어, 태석아.”

태석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냥 단념해라.”

“너까지.”

“뭐, 그러면.”

태석이 말을 돌릴 겸,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본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도록 할까. 어떻게 생각합니까, 겐세 씨.”

겐세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겐세를 보았다.

의외로 겐세의 역할은 중압감이 들지도 모른다. 태석은 묵묵히 겐세의 결정을 기다리기로 했고, 그 결정을 존중할 준비도 끝마쳤다. 이 팀의 리더는 어느새 태석이라는 느낌도 있었지만, 겐세가 이곳, 북한의 땅이었던 장소에 대해서는 확실히 안다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그의 말이 신뢰하기 좋아서였다.

“일단 저기 있는 탑 쪽에 가는 건 어떻게 생각하지?”

“탑?”

대한이 멍청하게 되물었고, 강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좋은 선택입니다.”

그리고 슬쩍 웃어 보인다.

“저 탑에는 보통 오크들이 거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카락스도 저곳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카락스라……. 이제 익숙한 이름이네.”

카락스.

오크이자 이곳 오크들의 대장.

가족을 모두 잃고, 비뚤어져서 엄청나게 큰 흑수정, TOY를 이용해 블랙 웨폰을 만들면서 가족을 되살리려는 목표를 지니고 있는 악당.

그 악당의 이름은 이제 익숙했고, 그자와 만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카락스, 반드시 처리하겠다.

태석이 마음을 굳게 먹었다.

카락스가 뒤처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탑 안에 들어가 있는 그가 끌고 온 자루의 크기는 정확히 성인 남성 하나가 가득 찰 정도의 부피였다.

실제로 카락스가 자루의 내용물을 꺼냈을 때, 웬만한 평범한 사람들은 구토를 유발할 정도로 잔혹하게 죽어 있었다.

대가리는 으깨져 있었고, 두개골 파편이 후둑 후둑 자루에서 굴러떨어졌다. 늑골은 찢어지고, 갈비뼈 내에서 멈춰서 검게 변한 심장 또한 보였다.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꽤나 징그럽군.

카락스는 간단한 감평을 속으로 내리고 시체의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아직 사후경직이 덜 풀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다리가 굽혀진다.

스카이 할 블랜드, 줄여서 스카이라고 불리는 색욕의 악마가 이 장면을 뒤에서 보고 있다. 오른팔은 기계 의수였으며, 강지의 것과 마찬가지로 흑수정이 손등 부분에 부착되어 있다. 스카이의 색욕을 먹고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끔 하는 기계팔이다. 오토 메일이라고 부르던가. 일반인들은 어감조차 생소한 명칭이다.

스카이가 미소를 지으며 시체를 하나하나 주워서 불구덩이에 집어넣는 모습을 보았다.

화륵, 화륵…… 화륵, 화륵…….

일정 박자에 맞추어 시체가 천천히 타들어 간다. 그 과정을 보며 스카이가 말했다.

“재밌네.”

“뭐가.”

퉁명스러운 말. 삐진 건가.

“어째서 삐진 말투인 건데?”

“그야 내 몸에 피가 튀었으니까.”

“인간이 오크의 몸에 피를 튀긴다라……. 보통의 오크들은 오히려 좋아하지 않을까?”

“그건 무슨 야만인이지? 오크들은 신사이다. 신사의 행성, 못 들어봤나?”

“그러고 보니 묘하게 발음이 콱 막힌 게 신사의 나라, 영국 특유의 발음 느낌도 나네.”

“이건 그저 이빨이 커서…….”

“뭐, 그런가?”

“그렇지. 나 같은 오크들은 이빨이 작을수록 예쁘장한 사람으로 취급되거든.”

“별로 관심 없어.”

“그런가.”

화륵, 화르르륵…….

무심하게 시체를 태우며 카락스가 말했다.

“어째서 너는 나를 따르는 거지?”

“따른다기보다 머물러 있는 거지?”

“어째서.”

“딱히 너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야. 그저 꽤나 쓸 만한 물건을 달아놓았길래 놀아주는 것일 뿐.”

“책임감 없는 쓰레기 오크다운 말이 여자 악마의 입에서 나올 줄이야.”

“뭐, 나는 임신 따위는 안 하니까. 그런 몸이거든.”

“그래서 정확히 뭣 때문에 남아 있는 거지?”

“태석.”

스카이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태석의 다음 행동을 알고 싶어.”

“왜 알고 싶은 거지? 그 고지식하기로 소문난, 천사로 변신한 녀석을.”

“그 이유는…… 태석에게서 뭔가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었거든. 뭔가 세상의 가호라도 받는 게 아닐까 싶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너무 딱딱 맞아 떨어지지 않아?”

“뭐가?”

스카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카락스가 뭐가, 라며 되묻는 것에 답을 해준다.

“위험에 처할 때마다 능력을 하나씩 얻어. 그자에 의해 구원받은 사람 수도 꽤 되지. 수백의 인원을 구한 적도 있어. 그런 존재라면…… 어쩌면 이 세상의 신과도 같은 무언가가 보호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그건…… 그저 악운이 좋은 남자라서 그런 거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지. 세상이 그렇게 맘 편하게 높으신 분들의 뜻대로 될 리도 없고. 애당초 나는 신에 가까운, 신의 사도라서 알고 있어. 신들은 태석에 대해 잘 몰라.”

“인간답군.”

“어쩌면 신이라는 존재는 우리와는 조금 다를지도.”

“그럴 수도 있겠고.”

스카이가 한숨을 푹 내뱉었다.

“그러면 이만 밑의 층에서 잠 좀 잘게.”

“그보다 왜 올라와서 구경한 거지?”

“고기 냄새가 맛있게 느껴져서.”

“그런가.”

하긴, 카락스는 속으로 동의했다. 지금 고기 굽는 냄새가 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면, 시체 또한 굳이 따지자면 육류였기 때문이다. 먹으면 윤리적으로 어긋나는 인육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카락스는 일을 마치고 자신도 잠이나 한숨 잘까 생각했다. 건강식으로 자기 전에 먹는 알약을 챙길까 생각하면서…… 시체를 천천히 태운다.

화륵, 화르르르륵.

스카이가 떠나간 자리에는 그저 불에 타들어 가는 소리만 요란하다.

대한이 풀숲에 숨은 채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태석이 대한의 머리를 밀어서 아래로 내린다.

“야, 너무 대놓고 드러내지 마. 눈치챈다.”

“아무리 그래도 오크들이 눈치챌 리가…….”

쓱.

고개를 돌려 태석 일행이 숨은 장소를 보는, 좁은 길목에 있는 오크.

정확히는 터널처럼 양옆이 꽉 막힌 길목이었고, 지나갈 수 있는 최단 루트였다. 탑에 도달하기 위한 최단 루트 말이다.

그렇기에 일단 숨어서 이제 어떤 루트로 가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태석이 겐세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계획이…… 탑 쪽으로 가서 경보장치를 울려서 혼란을 주고, 그 틈에 탑에 거주하는 카락스를 처리해서 오크 녀석들을 공황 상태에 빠트린다…… 맞지요?”

“그래. 맞다, 태석.”

“그런데 문제가…… 탑까지 어떻게 도달하냐인데…….”

탑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에는 오크가 지키고 있고, 제법 덩치가 크고 세 보인다. 아무래도 카락스가 있는 거주지를 지키는 모양이니, 제일 센 놈을 경비로 맡겼을지도 모른다.

이거 곤란하네. 저 녀석을 어떻게 돌파한다라?

태석이 잠시 고민했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을 찾았어요.”

그 말에 모두가 싱긋 미소를 짓는다. 강지 빼고. 강지는 태석이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르니까 그저 상냥한 아저씨라는 것만 알고 있다. 태석에 대한 세세한 것을 단숨에 이해할 만큼 강지는 똑똑하지 못하다. 어린애다운 지능을 지니고 있다. 사회성은 더욱이 모자라다. 공감 능력도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저도 모르게 미소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인간으로서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방법을 말해주십시오.”

강지가 딱딱한 말투로, 하지만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고, 태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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