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60. 광기와 기계 의수
“그 팔로 뭘 할 수 있는 거야?”
대한이 물었다. 시연이 대한을 째려보았다. 대한은 그 시선의 의미를 깨달을 수 없었으나 태석의 말을 듣고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실례지. 신체를 훼손하면서까지 얻어낸 물건이니까 함부로 묻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태석의 말이 옳다. 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 이야기를 그저 흘러가는 말로 넘기려고 했지만…….
“이 팔 말입니까. 꽤나 쓸만합니다.”
“쓸만하다라. 어떤 점에서?”
강지가 제대로 말해줄 생각이 있는 것 같으니 태석은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팔의 존재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고, 흑수정을 박은 것도 신경 쓰이는 데다가 실제 전력에 얼마나 활용될지도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태석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강지가 차가운 표정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당신 님들은 이 물건이 처음인 듯하군요. 흑수정으로 만든 물건들.”
“흑수정으로 물건을 만든다고?”
“그렇습니다. 흑수정에는 막대한 에너지와 자유롭게 새길 수 있는 회로판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모든 컴퓨터 부품을 만들 수 있는 가상의 돌멩이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컴퓨터가 뭔지는 알아?”
태석이 문득 궁금해서 물었다. 강지는 북한의 동떨어진 장소의 노예 출신이다. 그런 걸 직접 본 적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북한이라도 컴퓨터 정도는 있다고요.”
“아아, 그래, 미안.”
“됐고, 아무튼 계속 팔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 흑수정으로 만든 도구들을 오크 새끼들은 말하고 있으십니다. 블랙 웨폰이라고.”
“블랙 웨폰…….”
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수정은 막대한 에너지와 무궁무진한 도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흑수정 도구를 블랙 웨폰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강지의 오른팔은 불그스름하지만 기본적으로 흑색이었다. 흑생에 유광이 있어 한결 기계스러움을 강조한다. 나름대로 아름다운 이상적인 기계였다. 순간 치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 소리지?”
“기계가 피를 빨아들이는 소리입니다.”
“피?”
“네. 제 몸에 있는 피를 빨아들이며 기능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래…….”
순간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어쩌면, 기계팔을 달고 있는 것 자체가 생명의 위협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적당량의 피를 빨아들여서 멀쩡할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 강한 힘을 쓸 때면 힘을 엄청 빨아들이지 않겠는가? 자칫하면 빈혈로 쓰러지고, 죽고 말지도 모른다. 기계팔만이 살아 움직이고…….
젠장, 화가 난다.
오크들이 미웠다.
“그런데 강지. 너 정도의 힘이라면 도주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하지 않은 거야?”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뭐를?”
“당연히 저와 같은 인간들을.”
“그래, 이해해.”
태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보다 당신 님들은 어디서 오신 겁니까? 남쪽에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뭔가 어감이 이상한걸.”
남쪽에서 왔다니. 마치 예전 북한이 존재할 때 서로 견제하던 상황이 떠오른다.
강지가 미소를 지었다.
“남쪽이라……. 그곳에는 큰 도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동차가 공중을 난다면서요?”
“……?”
자동차가 공중을 날다니. 물론 개발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상용화는 아직 멀었는데. 어디서 뭘 들은 건지.
“그리고 거대한 케이크가 도시 곳곳에 비치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그래?”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 포롱이 또한 살아서 움직이고 있고요.”
“……어디서 그런 걸 들은 거야?”
“제 친구들한테, 어렸을 때.”
“……그 친구들은 어디 출신인데?”
“저와 같이 날 때부터 노예였습니다.”
“어…….”
태석은 문득 어렸을 때 자신이 부모님에게 산타클로스가 실존하냐고 진지하게 묻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 부모님이 지금의 자신과 비슷한 심정일까.
‘젠장,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고 말았다…….’
이 아이의 순수한 동심을 지켜주고 싶다. 지켜야만 한다. 하지만 자신은 포롱이라는 캐릭터가 어디에 존재하는 녀석인지도 모르고, 생김새조차 모른다. 그러면…… 그래, 그렇게 하는 거다.
태석이 말했다.
“살아 움직일 거야. 아직 본 적은 없지만…….”
“그런가요. 반드시 살아 돌아가 수십 명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꼭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강지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인다.
태석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래, 그렇게 하자.”
어쩐지 싸우기도 전에 힘이 풀리는 느낌이다…….
“어라, 저기 봐!”
대한이 손으로 정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태석이 강지에게서 시선을 떼고 앞을 본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 장소에서는 제법 있을 법한 것이 있었다.
“이런, 큰일이네.”
그래, 큰일이다.
큰일이라기보다는 골치 아픈 일일지도 모른다.
다리가 있었다.
사람의 신체인 다리가 아니라 사람이 딛고 건너는 다리. 한강을 잇는 자동차가 지나는 다리보다는 작고 짧지만, 그래도 다리가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이 다리 밑은 낭떠러지였으며, 실질적으로 다리는 반쯤 무너져서 건너기 곤란하게 되어 있었다.
다리가 무너지지 않은 최대한도로 깊게 들어갈 수 있는 장소에 서 있던 태석 일행.
그들 중 겐세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방법은 없나, 다들?”
“있습니다.”
대답한 것은 강지였다.
강지가 방법을 가지고 있다라.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기계팔을 이용하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기계팔로 어떻게? 아니면 어디 개구멍이라도 아는 것일까? 강지는 그 의문에 답을 하듯이 기계팔을 주욱 뻗었다.
“윽.”
팡.
뭔가 마력이 터지는 느낌이 들었고, 흑수정이 팡 하고 기운을 뿜었다.
“어지러워…….”
강지가 휘청였다. 태석이 걱정되었다.
쓰러지는 것 아닐까? 피를 너무 소모한 것 아닐까? 그런 걱정을 한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도울 방법은 없을까. 도울 방법이라면 제일 간단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역시 강지에게 마력을 전달하는 방법일 것이다.
“예상외로 피를 많이 소모하는 방법이네요. 다른 무기를 만들 때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면적을 지나치게 넓혀야 하기 때문일까요…….”
“그 흑수정에 마력이 전달되지 않을까?”
“마력? 하지만 평범한 인간의 마력으로는…….”
“예를 들자면, 악마의 마력이라던가. 안 그런가요, 겐세 씨?”
태석의 물음에 겐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유별나게도 태석의 몸속, 정확히는 태석의 강신 세계에는 악마, 데리안이 감금되어 있다. 분노의 악마의 마력을 강마를 하여 사용할 수 있다.
그것으로 강지의 기계팔에 박혀 있는 코어, 흑수정에 악마의 마력을 전달하면 된다.
[데리안이 미쳤냐고 묻습니다.]
‘얘들아.’
[토르, 헬라, 로키가 데리안에게 겁을 줍니다.]
[야 이 새끼야? 말 안 들어?]
[내 조카가 많이 화가 난 모양이군, 허허. 참고로 나도 화나지 않은 건 아니야.]
[내 딸내미 말을 들어. 쓰레기야.]
[젠장, 알았다고! 알았어! 태석에게 힘을 주면 되는 거 아냐?!]
[데리안이 강마를 할 수 있는 허가를 내려줍니다.]
‘땡큐.’
태석은 눈을 감고 강신 세계에 말을 전달하곤 손을 뻗었다. 강지의 기계팔의 코어, 흑수정에 손을 얹었다.
흑수정 특유의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
‘…….’
강지가 뭔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다. 태석이 쓰게 웃었다.
이 어린아이를 오크 일당들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어째서 이 어린아이가 자신의 팔을 자르도록 내몬 것이냐.
태석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강지를 보호하고 싶었다.
나약하지만 강한 무기를 품고 있는, 차가운 소녀를 구원하고 싶다.
그런 느낌이 들었고, 눈을 감고 강마를 한다.
붉은 기체 형태의 뿔이, 태석의 이마에 길게 돋아났다.
그리고 눈가가 살짝 고양이 눈처럼 동공이 찢어져 있다.
이것이 강마일까. 태석은 한숨을 푹 내뱉었다.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다.
사악한 것이 자신의 몸에 내재 된 느낌. 독기를 품고 있다는 느낌. 하지만 지금은 가장 필요로 하는 힘이다. 악마의 힘은 사악하지만 강하다. 그러니까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여정에.
그 힘에 지배당하지 말아야 한다. 지배해야 한다. 자유자재로 분노를 컨트롤 하는 것. 그것이 태석에게 중요한 것이다.
붉은 마력이 흑수정에 솟아난다. 태석의 마력이 전달되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건…….”
“공교롭게도 천사의 힘이나 성천주의 힘은 아니야.”
겐세가 문득 말했다.
“설마하니 태석, 너는…….”
“악마의 힘을 쓸 수 있게 되었죠.”
태석이 싱긋 웃으며 흑수정에 나머지 마력을 몰아넣었다.
쾅.
그 순간 뻗고 있는 강지의 손이 넓게 퍼졌다. 그리고 다리 형태의 철판이 강지의 팔이 변형되어 다리를 만들었다.
강지가 소리쳤다.
“어서! 건너십시오!”
태석 일행, 그것도 태석을 포함한 모두가 빠르게 건넜다. 그리고 강지는 태석 일행이 건너편 다리에 도착하자마자 능력을 풀었다. 기계팔이 다시 팔의 형태로 돌아왔다.
가만, 이렇게 되면 강지는 어떻게 건너야 할까?
“너는 어떻게 건너려고?!”
태석이 소리쳤고, 강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방법이 있습니다.”
상냥한 미소라고, 태석은 문득 생각하고 말았다.
강지가 덧붙였다.
“아주 좋은 방법이.”
카락스가 있었다.
현재 북한에 거주 중인 오크들의 대장인 그는 길거리를 순회하고 있었다. 길거리라고 해도 오크들이 멋대로 터를 잡고 노예들을 부려 흑수정을 캐내고 있는 TOY 근처에 대충 지은 움막 같은 집들이다.
유일하게 카락스가 거주 중인 곳 근처에는 탑이 있고, 카락스의 거주지는 제법 쓸 만한 건물 오피스텔과 비슷했다. 카락스는 기지개를 켰다.
아침이 제법 찌뿌둥하다.
건강식을 최근 다시 먹고 있었고, 그것으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중이었지만…… 아무래도 뭔가 부족한 걸까?
철분, 혹은 비타민C? 아니면 뭐가?
카락스가 그런 생각을 하며 노예들이 있는 곳을 걷는 사이에도 수많은 인간 노예들은 비쩍 말라 비타민C는커녕 칼로리조차 제대로 보충하지 못한 채 강제적인 노동을 하고 있었다. 주로 몸을 쓰는 일. 원래라면 오크들이 개발한 기계들을 이용하는 작업들을,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인간 노예를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화 과자 공장에서 모든 과자를 수작업으로 만들면서 보수를 주지 않고, 먹을거리도 제공하지 않는 것과 같다. 포장부터 과자 조제 가공까지, 전부.
노예들 중 하나가 순간 쓰러졌다. 심한 과로에 사망한다. 노예들의 비참한 말로 중 하나이다. 그런 죽음에 카락스는 존경을 표한다. 그들 덕분에 자신이 편하게 먹고살 수 있으니까. 심지어 자신의 목표도 이룰 수 있게 돕는 자들이고.
그러니 존경하는 거지만…….
풀썩.
잘못을 용서할 수는 없다. 특히 노예가 쓰러져서 자신의 몸에 피와 땀을 튀긴 행위를.
“화가 나는군.”
카락스는 한숨을 푹 내뱉었다. 쓰러진 노예는 의식이 없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차갑게 식어간다.
죽은 것이다.
“죽으면 모든 게 해결되나?”
카락스는 자신의 몸에 튄 피를 대충 닦았다. 녹색 피부가 드러났다. 카락스는 발을 들어 노예를 미친 듯이 짓밟기 시작했다. 이미 죽어서 사후경직이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부수어지고 파편을 튀겼다.
한참 동안이나 그 행위는 진행되었고, 인간과 오크들은 모르는 척했다. 오크들은 카락스의 부하라 그러했고, 인간은 노예라 그러했다.
이것이 당연한 일이다.
시체가 미친 듯이 훼손되는 현장이다.
광기의 사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