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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모든 신을 받다-58화 (58/102)

# 58

58. Narcissism

“먼저 물어볼 건…….”

태석이 생각을 정리했다. 뭐부터 물어볼까? 오크가 입에 담은 카락스가 누구인지 물어볼까? 노예 인간을 왜 잡아다가 뭔가를 만들고 있냐고, 이유를 물어볼까? 아니면…….

제길, 생각이 복잡하다. 우선순위를 정하도록 하자. 태석이 마침내 말했다.

“우선.”

태석이 오크의 머리카락을 잡아 자신의 눈높이와 맞추었다.

“노예 인간들을 잡아다 놓은 이유가 뭐지?”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도구?”

태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확히 뭐에 쓰는 거지?”

“모른다.”

“모른다고? 거짓말치지 마. 현지 씨.”

“네.”

오크가 현지를 보고는 황급히 소리쳤다.

“자, 잠깐. 제대로 말할게. 오해야, 오해라고!”

“그래, 말해.”

“그러니까.”

오크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도구는 종류가 워낙 다양했어. 연구하는 동료들의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흑수정을 캐내서 만드는 건데, 그걸로 막대한 에너지를 쏘는 대포도 만들 수 있고, 뭐든지 살려내는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어. 그걸로 아직 동물은 무리지만, 식물은 살려냈어. 그 정도의 초미래 기술력을 흑수정을 통해 개발하고 있는 거야.”

“그 이유는?”

“이유?”

“그러니까.”

태석이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그런 이상한 도구들을 만드는 이유가 뭐냐고 묻고 있잖아? 빨리 말해.”

“아, 알았어.”

오크는 태석이 묘하게 험악하다고 생각했다. 오크는 몰랐지만, 태석은 그동안 많은 험한 일들을 겪었다. 자연히 특정 상황에서 날카롭게 신경이 곤두설 만했다. 전쟁터까지는 아니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낀 상황이 많았으니까. 오크가 말했다.

“그러니까 내 대장인 카락스 님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네.”

“무슨 이야기인데?”

“부모님과 여동생이 죽었어. 그래서 살리려고 하는 거야. 여러 가지로 개발하고 있는 것도 모두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이고.”

“……그래?”

태석은 살짝 표정이 어두워졌다. 태석도 부모님을 잃었다. 괴수에게. 그러니 그 심정이 이해도 간다. 언제나 태석은 자신의 부모님이 ‘서프라이즈!’를 외치며 현관문을 열고 통닭 한 마리 정도를 들고 오며 자신은 죽은 게 아니었다고 말하는 순간을 기다렸던 적이 있다. 물론 여태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현재 상황에서 카락스는 명백히 잘못되었다.

“카락스는 잘못되었어.”

“하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은…….”

“아니, 가족을 잃은 건 동정할 만해. 동정받기 싫을 테지만, 끔찍하고 불행한 일이라는 건 확실해.”

태석은 표정을 구겼다. 그리고 사나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태석이 오크의 목을 꺾었다. 의식이 끊겼다.

“아무리 그래도 다른 자들을 죽여서까지 가족을 살리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 모양이야.”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석을 보는 모두의 표정이 살짝 묘하다. 불쌍하다 이건가. 태석은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이런 시선은 익숙하다. 뭔가 묘하게 동정하는 느낌. 어렸을 적, 학교에서 어른들을 마주칠 때마다 보아온 표정.

하지만 더 이상 그런 과거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태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태석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흑수정 정화가.”

태석 일행은 걷고 있었다.

묘하게 일행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시연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태석이 가족을 잃었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그 가족을 잃은 모스키토를 자신의 손으로 처리했다는 것도. 여동생과 20년간 살아왔다는 것도, 그리고 이제야 헌터가 되어 복수를 할 수 있게 되어 기뻐한다는 것도.

하지만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시연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은 사실상 없을 리가 없다.

뭐가 태석 콜렉션이라는 말인가. 그의 심정 하나조차 이해하지 못하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태석이 그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고 현재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의 앞에 똑같은 고통을 받은 괴물이 존재한다. 그 괴물은 과거를 털어낸 태석과 달리 과거에 사로잡혀 가족을 살리려 하고 있다.

태석은 그런 그를 보고 뭐라고 생각할지, 슬프다.

시연은 문득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자신 또한 가족을 모두 잃고, 전쟁터와도 같은 다 무너진 건물에서 누워 있었다. 누구 것인지 모를 팔 한쪽을 들고.

그런 그녀의 앞에 나타났던 것은 바로 고란 홀. 성천주인 그녀는 시연을 키워주었고, 헌터로 각성하자 바로 부하 헌터로 받아들였다.

만약 시연에게 고란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좋은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한 일만 반복되고, 망가질 것이다.

태석에게 말했다.

“태석 씨.”

“왜 그러시죠?”

“그러니까…….”

이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로가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태석에게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표정에서 다 드러나니까요.”

“아…… 하지만…….”

“고마워요.”

태석이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정말로.”

시연이 어쩔 수 없다는 미소를 지었다.

태석은 이겨내고 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이겨내었고, 이겨냈고, 이겨낼 것이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설령 세상이 멸하더라도, 태석은 방도를 찾을 것이다.

주제넘게도 시연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보다.”

태석이 휴대용 지도를 꺼내 들었다.

“어쩐지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모양인데.”

“아, 그런가요. 낭떠러지 밑 동굴에서와 같은 일이네요.”

현지가 서둘러 앞섰다.

“그러면 시작할게요.”

펑!

“마력의 실을 일단 이 방향으로 박을 테니 모두 이곳으로.”

겐세, 시연, 대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겐세가 태석에게 물었다.

“뭐를 하는 거지?”

“길 찾기요. 아무래도 이곳은 몇몇 장소가 반복되는 저주 같은 것이 걸려 있거든요. 지나가려면 미리 지나간 길을 체크해 두는 게 좋아요.”

“그래서 마력의 실을 이용하는 거군. 흥미롭구나.”

겐세가 미소를 지으며 태석을 보았다. 역시 현지를 데려오길 잘했다. 너무 어려운 곳에 현지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팀에서 도움이 되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현지가 마력의 실을 다시 땅에 부착했다. 그리고 그 장소로 걸어간다. 태석 일행도 따라간다.

현지가 말했다.

“그보다 카락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뭐를요?”

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녀석의 과거에 대해서요?”

“네, 아무래도 태석 씨는 우리와 생각이 다를 것 같아서요. 시연 씨도 마찬가지고요.”

“뭐, 그렇죠.”

태석이 시연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시연 씨?”

“네? 아…….”

시연이 살짝 당황했다.

태석에 대해서만 고민했지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고민한 적은 드물다. 그보다 아픈 과거라 떠올리지 않기 위해 고란과의 생활에 집중한 느낌이다. 잠깐, 집중? 고란과의 생활에 집중? 뭔가 떠오른다. 잠재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무언가가.

“생각났네요.”

시연이 미소를 지었다.

“사람을 잃은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한 느낌이네요. 네, 그게 맞아요.”

“사람으로 치유? 그게 무슨…….”

현지가 이해 안 되는 모양이다. 시연이 피식 웃었다.

간단히 설명해보도록 할까.

“그러니까 저 또한 가족을 잃고 고통스러워했는데요, 고란 님께서 저를 거둬주셔서 그때부터 다시 행복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고란 님이 저에게 나름 츤츤거리면서 잘 대해줬거든요.”

“츤츤이라…….”

대한이 턱에 손을 얹고 생각을 했다.

“뭔가 이미지랑 매칭이 묘하게 잘 되는데…….”

“헛소리 그만하고.”

태석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봐. 거의 도착한 모양인데.”

대한이 고개를 돌려 어느 곳을 본다.

“확실히 도착한 것 같네.”

그들의 앞에는 깊게 패여 있는 지하굴 같은 느낌의, 천장이 뚫려 있는 거대한 광산을 보는 듯한 장소가 있었다. 멀리서 보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인간들도 벌거벗은 채 뭔가 열심히 나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겐세가 말했다.

“그래, 도착했다.”

그리고는 흑수정을 바라본다. 너무 크다. 건물 하나 정도의 크기일까. 저렇게 큰 흑수정은 살면서 처음 본다.

“흑수정, TOY에.”

흑수정 TOY에 도착했다.

태석은 그제야 실감이 들었다.

스카이가 하품을 쩌억 했다. 그리고는 기지개를 켰다. 피곤하다. 자도 자도 피곤한 것이 아직도, 팔을 잃을 때 같이 받은 상처가 아직도 쑤시는 탓인 듯하다. 악마에게 잠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지만, 자연 치유를 위해서는 잠을 자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팔은 치유되지 않는다. 육체가 파손된 것이 아니라, 영혼 자체의 팔 부분이 부수어진 느낌이다. 그래서 영혼 자체가 고통스러워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스카이의 오른팔 쪽에는 기계 장치가 있었다.

오토메일.

오크들의 기술로 만든 인공 팔이다. 감각 또한 명확하게 구현되어 있어 진짜 팔처럼 느껴진다. 피가 안 통하는 것처럼 멍멍한 감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통각도 느낄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적응이 빨랐다.

스카이는 그 오른팔의 오토메일로 커피 한 잔을 적당히 기계 버튼을 눌러 탔다. 그리고 입에 머금고 마신다.

곧이어 카락스가 일어났다.

“일어났나.”

“한참 전에.”

“그래?”

“그보다 너는 늦게 일어났네.”

스카이가 히죽 웃었다.

“너무 격렬했나?”

“딱히. 평소와 같아. 하지만…….”

카락스가 뭐하게 불안한 표정을 했다.

“뭔가 묘하게…… 불안하군.”

“불안해? 뭐가?”

“뭔가, 내가 그동안 쌓아온 것이 물거품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짜증 나는군.”

“그럴 만해. 태석을 처리하라고 보낸 오크 한 무리가 돌아오지도, 연락도 안 보내니까.”

“도망간 걸까?”

“아니, 죽은 거야.”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카락스가 살짝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내 오크들을 무시하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고.”

스카이가 히죽 웃었다.

“그 녀석들로는 태석을 죽일 수 없거든.”

“하긴…… 그렇지. 약한 녀석들이니까. 강신자 태석에 비해서.”

스카이가 기지개를 쭉 켰다. 이걸로 세 번 연속 기지개다.

“일단 피곤하네.”

“뭐가 그렇게 피곤한 거지?”

“영혼 자체가 다친 모양이거든. 아파 죽겠어. 태석이 나에게 엄청난 일격을 날려서 그런 모양이야.”

“태석은 얼마나 강한 거지?”

“정말로 불안한 모양이네.”

카락스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태석에게 불안감을 느끼는 걸까? 확실하다. 이건 불안이다. 태석을 향한 불안. 태석이 자신이 쌓아온 것을 망가트릴 거라는 불안.

그는 자신이 쌓아온 것들이 결코 부정적인 방법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이들은 생각이 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 노예들이 특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카락스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니고 있다. 자기 성애 성격 장애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남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화려한 로맨스를 추구하며, 남을 부수어서라도 자신이 얻어낼 것을 얻고자 한다.

지금 그는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머나먼 지구 땅을 밟아 흑수정 근처에 터를 지었다.

오크들의 기술력으로 계획은 차근차근 마무리되고 있다.

앞으로 며칠이면 계획은 성공한다. 가족을 살린다는 계획이.

입을 다물고 꽉! 어금니를 물었다.

“태석, 그 자식이 나를 방해하려 든다면.”

카락스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려쳤다. 콰직, 탁자가 부수어져 파편이 흩날린다.

“죽여버릴 거다.”

“그래, 좋은 생각이야.”

스카이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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