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55. 평범하지만 특별한
견현지라는 인물이 어떠한 인물인가.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모른다기보다는 관심이 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녀는 평범했으니까.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도 제일일 것이다. 평범의 극치였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잘살지도, 못살지도 않는 부모님의 밑에서 태어나 중산층이면 누구나 부담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유치원에서 친구를 사귀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른 학생들처럼 가끔 학원을 빼먹기도 하고, 시험을 망쳐서 혼나기도 하고, 또 시험을 우연히 잘 보아 용돈을 받아 그걸로 화장품을 샀다가 등짝을 맞기도 하고…….
평범 그 자체였다.
현지는 그런 자신이 너무나 좋았다. 아니, 싫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좋았다고 하기에는 조금 그랬다.
자극이 없는 삶은 의외로 따분한 것이다.
그렇기에 따분했던 그녀는 자신을 억지로 밝게 꾸몄다. 정확히는, 자신감 넘치는 소녀로 치장했다.
일부러 밝게, 일부러 장난을, 일부러 모르는 척, 가끔은 귀여운 척을.
그렇게 특별함을 연기하던 그녀에게 닥쳐온 축복. 바로 그것이 헌터가 된 것이다.
하지만 랭크가 문제였다. F랭크. 대규모 괴수를 잡기에는 역부족인 랭크. 허나 먹고 살기에는 아주 충분한 랭크.
헌터가 되어서까지 평범해야 하는 거야? 조금이라도 그녀는 특별해지고 싶다. S랭크의 헌터가 되어 모든 이들의 우상이 되고 싶다.
어쩌면 현지의 운명은 특별하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저주를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과정에서 현지는 보았다.
천둥을 다루는 한 청년을. 변신도 하고,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심지어 이번에는 악마까지 모종의 방법으로 처리한 청년을.
특별하다.
그에게 닿고 싶다.
현지는 그를 동경한다.
그렇기에 손을 뻗어 지금 눈앞의 태석에게 손을 뻗는다.
태석의 몸에서 붉은 귀기가 흘렀다. 뿔 하나가 난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붉은 귀기가 이마 쪽에서 뿔처럼 툭 튀어나와 있다.
악마일까.
태석이 악마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태석이 아닌…….
그렇게 의심했을 때였다.
“현지 씨.”
태석이 말했다.
평상시처럼 신중하고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어서 잡아요!”
꽈악-.
밧줄 묶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잡아 든 손.
태석은 그 손을 당겨서 밀어 넣는다.
동굴의 입구 쪽으로.
그 뒤를 이어서 바위가 현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아, 또 구해준 거구나.
현지는 쓰게 웃었다.
자신은 결코 특별하지 않았다. 눈앞에는 특별한 남자가 있다.
그런 그에게 뭔가를 배웠을까. 어쩌면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이번 사건이 끝나면 다시 평범한 나날을 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은 특별하다고 현지는 확신했다.
태석을 바라보는 삶을 살겠다.
그를 동경하겠다.
구원받은 소녀는 청년을 동경한다.
그렇게 태석과 현지는 기존 일행과 다시 합류하게 되었다.
스카이는 눈을 떴다.
순간 오른팔에 통증을 느꼈다. 잠깐, 오른팔? 스카이에게는 이제 더 이상 오른팔이 없다. 하지만 통증에 인상을 찌푸린다.
‘태석에게 당해서 그런 건가.’
“일어난 거냐.”
카락스가 눈을 꿈벅이며 잠옷을 입은 채 주욱 기지개를 켰다. 밖을 보았다. 새벽의 공기가 차다. 입구를 다시 닫고 카락스는 오크답게 취익 소리를 한 번 내고는 한숨을 뱉었다.
“해가 떴군.”
“윽.”
“어디가 아픈 거야?”
스카이와 카락스는 외계의 기술로 만든 휴대용 건축물 안에 있었다. 그 안에는 웬만한 스위트 호텔보다 더 좋은 품질의 숙박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게다가 냉장고 비슷한 상자에서 음식을 꺼내 음식 용기의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요리를 완성할 수 있다.
카락스는 ‘아플 때 먹으면 좋은 오크 요리사. 한 손 코로스의 음식, No.1’을 꺼내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음, 스카이.”
“언제나처럼 먹는 걸로 조리해줘.”
“설익은 육류로 말이지?”
“응, 다 익은 건 맛이 없더라고.”
“하긴, 영계를 좋아하는 게 너니까.”
“굳이 따지자면, 모든 남자를 좋아하지만. 특히 크고 굵은 남자.”
“……괜히 물어보았군.”
변태. 카락스는 한숨을 뱉으며 그리 생각했고, 용기의 조리 방법 세 가지 중 첫 번째인 설익은 육류로 설정하여 버튼을 눌렀다.
십 초 후, 음식이 완성.
카락스는 서둘러 음식을 스카이에게 건네주고 자신은 직접 공수한 소젖물을 그릇에 넣고 휘휘 저었다. 그리고 단백질 보충제 같은 것을 넣고 휘휘 젓는다.
“왜 그렇게 맛없게 먹는 거야?”
“몸 관리 중이거든.”
“흠, 네가?”
“나름대로 오크들 사이에서는 맑고 근육질이 많은 편이야. 그러니까 내가 이곳 무리의 대장이 될 수 있었지.”
“정말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종족이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카락스는 피식 웃었다. 묘하게 지금의 그는 상냥하다. 어쩌면 지금의 모습이 본 모습이고,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위압적일지도 모른다.
스카이의 없는 팔 쪽을 힐끔 본 카락스가 말했다.
“의수를 달 생각 없어?”
“아니, 없어.”
“어째서지? 더 편하고 전투에도 도움이 될 텐데.”
“태석 님이 만든 영광스러운 상처니까. 어쩌면 깊은 뜻이 있을 수도. 이런 취향일지도 모르고.”
“뭔 변태야, 그건.”
“그보다.”
스카이가 한숨을 뱉으며 고기를 질겅질겅 씹었다.
“계획은 어떻게 되어가?”
“흠.”
“흠 거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TOY를 이용하는 계획은 얼마나 성공했지?”
“반 정도. 이제부터가 승부수야.”
“그래, 네가 뭘 하려는 건지는 잘은 모르지만…….”
스카이가 기지개를 쭉 켰다.
“오고 있어. 태석 님과 그 졸개들이.”
“오고 있다고? 그보다 그 녀석들은…….”
“그래, 나를 이 꼴로 만든 집단이야.”
“조심해야겠군.”
“그리고 너처럼 과거에 사로잡히지도 않았고.”
“과거에 사로잡혔다라. 하긴 그렇지.”
TOY를 이용하는 목적도, 과거에 사로잡혀서 그 과거를 고치고 싶어서였다. 카락스는 스카이가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저 자신의 과거를 바꾸기 위해, 정확히는 과거의 실수를 고치기 위해 현재를 갉아내고 있는 짓을 하고 있었으니까.
머나먼 땅인 지구까지 와서 이 난리 통이니까 그렇게 볼만하다.
그러니 인정.
카락스가 취익 소리를 냈다.
스카이가 그 꼴을 잠시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리안도 사라졌네. 기척이 없어.”
“그건 네 계획인가?”
“완살을 원했는데, 그 계획도 틀어졌어. 조금 사건이 복잡해지고 있어.”
어쩌면 마왕이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태석이 편법을 알아냈을지도 모른다. 죽이지 않고 소멸시키다니, 아니 다른 곳으로 보낸 걸까? 너무 깔끔하게 스카이가 있는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느낌이다. 무슨 일일까. 역시 대단한 남자였다.
스카이는 히죽히죽 웃으며 호흡을 가파르게 했다.
“이봐, 카락스.”
“왜 그래?”
“내가 다른 남자 이름을 부르면서 너를 범해도 될까.”
“……좋을 대로.”
“태석.”
카락스와 스카이가 몸을 섞기 시작했다. 악마와 오크의 성교라니 전투적인 장면이 연상된다. 어쩌면 물건 한두 개는 부서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들이 사는 건축물 내부는 거의 망가진 상태였으니까.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을지도.
태석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끼룩, 끼룩.
닭 한 마리가 보인다. 야생 상태에서 자란 닭인지 몸집이 얇고, 날개로 멀리까지 날 수 있는 듯했다.
태석은 현재 시연과 함께 있었다. 사냥 중이었고, 음식물 조달을 위해 오늘의 사냥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기차는 망가져서 철도 재건축에 들어간 상황이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으니까 이렇게 야영을 하면서 TOY에 접근하려 한 것이다.
어찌 됐건, 태석은 손을 들어 시연에게 신호했다.
그와 동시에 태석이 눈을 감고 마력의 실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더욱 쉽게 생성되었다. 급박한 전투 도중에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기습을 위해 천천히 준비할 때는 유용하다.
마력의 실이 빠르게 뻗어 나가 닭의 목의 신경 정중앙을 뚫었다.
그리고 다시 마력의 실을 회수. 자신의 마력 내부에 비축한다.
닭이 순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입만 뻐금거리면서 몸을 가누지 못했다.
태석이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사냥 끝이네요.”
“저는 구경만 한 느낌인데.”
“뭐, 그럴 수도 있죠. 이게 더 효율이 좋으니까.”
“역시 태석 씨는 대단해요! 그러니까 이참에 이 기회를 삼아서 둘이 대화를 하는 건 어떨까요.”
“무슨 대화요?”
“으, 음, 글쎄요?”
시연은 태석을 잃을 뻔했다는 기억이 있어서인지,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하지만 역시 표현법이 서투르고 문제가 많아 태석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녀는 활짝 웃었다.
뭐 어때. 시연은 지금의 상황이 좋다.
태석과 함께하고, 태석의 콜렉션도 순조롭게 모으고, 나름대로 친한 지인의 관계가 되었으니까.
이걸로 만족…… 일까? 더 가까이 가기 두렵다는 느낌이다.
어째서 두려운 걸까. 그것은 시연도 알기 힘들었다. 애당초 알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연은 태석을 다시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묘하게 급하게 구는 경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위기의식이 생겼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시연이 눈을 꿈벅였다. 잠이 많은 시연이었기에 지난 며칠간의 강행군은 힘겨웠을 도 모른다.
태석과 시연은 야영지로 돌아왔다.
대한과 겐세, 그리고 현지가 반겼다.
대한이 소리쳤다.
“족장님 오셨네!”
“그래, 족장님이다, 이 자식아.”
태석이 피식 웃었다.
시연은 어느새 옆에 주저앉아 잠에 들었다. 피곤이 쌓인 걸지도 모른다.
“으으, 태석 씨.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고기를 주세요…….”
잠꼬대를 하고 있다. 태석이 쓴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보았다. 대한이 말했다.
“역시 시연 씨는 잠이 많다니까.”
“그러고 보니 예전보다 시연 씨 더 밝아진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 너 때문일지도 몰라.”
“나 때문?”
태석이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겐세가 피식 웃으며 대신 답했다.
“시연이 얼마나 슬퍼했는지 모른다. 확실히, 태석 너를 좋아하는 것 같군.”
“그런…… 가요.”
뭔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현지는 태석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게이?”
“아닙니다.”
“아닌데요.”
태석과 대한이 동시에 말했다.
현지는 어색하게 웃었다.
더 의심되잖아, 이러면.
“그러면…….”
태석이 화제를 돌리는 김에 본론으로 넘어갔다.
“이제 며칠 후 우리는 TOY에 도착합니다. 정확히는 TOY를 지키고 있는 오크 일당들에게 도달하는 거죠.”
“그렇지.”
태석이 대꾸한 대한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시작인 겁니다. TOY 정화가.”
태석이 자신의 품에 넣어두고 있던 상자를 보여주었다.
“겐세 씨의말에 의하면, 이 상자 안에 있는 것은 아마도 성물,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죠. 맞죠, 겐세 씨?”
“맞다.”
“이 성물이 든 상자를 해체하려면 TOY 정화를 통해 나오는 물질로 상자를 반강제로 해체하면 된다는 것도 맞죠?”
“그렇다.”
“그러니까 우리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태석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크 일당과 싸울 준비를. 그리고 TOY에서 어떤 괴수가 튀어나와도 싸워서 이길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거죠.”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TOY 정화와 그것을 지키고 있는 오크 일당과의 싸움.
그것이 가능할지 여부는 상관없다.
반드시 가능해야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의지를 다잡고 며칠 후에 있을 대규모 전투를 위해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