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50. 불가능
현재 거대 거미가 하얀 갑주를 둘러싼 상태.
태석은 바닥난 마력을 회복하기 위해 크로스백에 있는 환약을 입에 욱여넣었다.
콰직!
입에서 터지는 소리가 나고, 순식간에 마력이 회복된다. 태석은 단검을 역수로 고쳐 쥐어 거대 거미를 노려본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녀석은 현재 더 단단해진 상태이다. 움직임은 방금 전의 갑주를 쓰지 않았을 때보다 느렸지만, 아무래도 저 하얀 갑주를 뚫고 유효타를 먹이기는 힘들 것 같았다.
현지라면 가능할까? 그래 마력의 실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뭘 걱정하는 거지? 태석 또한 마력의 실을 사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거대 거미를 노려보며 사납게 웃었다.
손을 뻗어 마력의 실을 만들고자 한다.
펑!
순간 터져 나와 마력의 실이 아닌 그물의 형태로 거대 거미의 몸에 둘러싸였다. 태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뭔 일이냐, 이게.”
상상한 대로 쓰기에는 마력의 실은 너무 다루기 힘들었다.
“원래 그래요, 처음에는.”
현지가 어색하게 웃고는 마력의 실을 뿜었다. 손끝에서 튀어나온 마력의 실이 갈라져서 거대 거미의 갑주 속으로 파고든다. 태석을 보며 소리쳤다.
“태석 씨!”
“알겠습니다!”
서둘러 로키를 강신한 상태에서 토르까지 함께 강신한다. 푸른 천둥과 녹색의 안개가 뒤섞여 요란한 광채를 만든다.
태석이 손을 뻗어 마력의 실에 천둥을 휘감는다.
치직, 치직, 치지지지지직-.
푸른 전기가 마력의 실을 타고 서서히 흘러 거대 거미의 몸에 직격한다.
카리리리리리리리릭?!
거대 거미가 비명을 지르며 경직했다. 그 상태에서 태석은 돌진했다.
단검을 든 채 하얀 갑주로 속성 단검에 감은 천둥을 그대로 휘둘러 후려친다.
티이이잉-!
순간 공명했다. 천둥이 공명하는 소리 때문에 귀에 이명이 생길 정도였다. 괴롭다. 태석이 머리를 붙잡으며 고통스러워 하는 와중에…….
콰직.
뒷걸음질치자 무언가가 태석의 발에 짓밟혀 터진다.
태석이 고개를 돌려 밑을 보자 그곳에는 놀라운 것이 있었다.
알이다.
알.
생명이 태어나기 전, 부화하기 전의 형태.
주로 곤충이나 새 같은 경우가 알을 통해 탄생한다.
그런 알이, 사람의 무릎 정도 되는 알들이 수십 개가 있다.
도대체 뭐에 쓰려고 있는 알일까?
당연하게도 식용을 위해 인간이 재배했다는 아니다.
알을 밟자 거대 거미가 울부짖었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를-!
마치, 자신의 새끼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 같았다. 태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네 알이냐?”
키리리리리리리릭-!
애석하게도 괴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현지가 태석을 보며 소리쳤다.
“알이 깨어나고 있어요! 태석 씨! 조심해요! 거미 같은 게 튀어나온다고요!”
태석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본다.
“맙소사.”
수십의 알들이 일제히 깨져 나왔다. 태석이 알 하나를 밟자 자신들도 밟히기는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키득, 키득, 키득, 키득키득키득-.
징그러운 벌레 특유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징그럽다. 크기도 다른 벌레의 수배에 달하기에 더 징그럽다. 더 싫은 점은, 이들이 괴수에 속한다는 것.
게다가 괴수이면서 번식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십의 알들이 탄생하여 거대 거미를 보조하기 위해 전투태세를 갖춘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파아앙!
공기 기포 같이, 액체를 쏜다. 그 액체에 닿은 물질은 산성이 강한 것인지, 치이익 소리를 내며 녹아 내려간다. 땅에 구덩이가 생겼다. 태석과 현지는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현지가 소리쳤다.
“어떻게 하면 좋죠?”
어느새 태석과 같이 붙어 있다. 작은 거대 거미들의 독성을 피하느라 둘이 붙게 되었다. 어쩌면 몰이 사냥에 당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대 거미는 가만히 있고, 새끼 거대 거미들만 난동을 부리는 상황.
마치 이미 너는 끝이다, 라고 거대 거미가 웃으면서 지켜보는 느낌이다.
태석이 말했다.
“현지 씨.”
“네.”
“방법은.”
“네, 네, 어서 방법을.”
“그러니까…….”
젠장, 떠오르지 않는다. 태석은 그럼에도 무표정한 모습을 유지했다. 자신까지 모른다고 하면 현지의 불안감은 극도로 오르고, 탈출 성공률은 줄어든다.
그러니까 블리프다.
허세만이 살길, 이라는 것일까. 태석이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아.”
떠올랐다.
현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예요, 갑자기?”
“이 방법으로 합시다.”
“방법, 빨리 말해줘요.”
“일단 마력의 실을 그물 형태로 만들어요.”
“네.”
“그리고 우리한테 휘감아요.”
“네?”
“어서. 참고로 천둥이 통하는 마력의 실로, 그리고 저희 쪽에는 전격 피해가 없도록. 어서.”
“아, 알았어요.”
“참고로 움직임은 편해야 합니다. 우리 둘을 망토처럼 감싸야 하고.”
“정말로 그거면 되는 거예요?”
“네, 당연히. 그러니까 어서.”
“네!”
팡!
현지가 공중으로 손을 뻗고, 마력의 실을 터트려 그물 형태로 만든다. 그것이 붙어 있는 현지와 태석을 감쌌다. 마치 어릴 적 보았던 판타지 소설의 투명 망토처럼, 둘을 덮었다. 태석이 거기에 손을 얹고 토르의 힘으로 천둥을 발생시킨다.
꽈르르르릉-!
하늘에서 천둥이 쏟아져 내려와 태석과 현지의 망토에 천둥을 휘감는다.
치지지지직-.
푸른 전기가 끊임없이 튀어나온다. 파직거리며 난동을 부린다.
태석이 소리쳤다.
“자, 이제부터 달립시다!”
“어, 어디로?!”
“거대 거미 쪽으로. 분명 저 뒤가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일 거예요!”
“네, 네!”
현지가 드디어 이해했다.
그러니까 현지가 이해한 바로는, 일종의 전기 파리채를 둘러싼 채 도주하는 것과 같았다.
실제로, 멋모르고 현지와 태석에게 접근한 새끼 거대 거미들이 모조리 전기에 타들어 가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다리를 오므린 채 거꾸로 눕혀져 죽었다. 태석은 그것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뜻대로 되었다는 표정.
현지가 말했다.
“제대로 되고 있는 것 맞죠?”
“당연히. 보면 알잖아요!”
“그보다 거대 거미는 어떻게 피하게요! 저 공격은 마력의 실이 방어하기 힘들어요!”
거대 거미의 다리를 보며 말했다. 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른 방법을 씁니다.”
“뭔데요?”
“제가 공중으로 날 수 있는 범위는 대략 지상에서 5m 정도 높이. 비바람을 이용해서 가능한 범위죠. 거기서 현지 씨가 50kg이라고 친다면, 4m 정도는 가능할 거예요. 온 힘을 다하면.”
“저 50kg 아니거든요?!”
“아무튼, 그 정도 높이로 공중으로 떠올라 거대 거미를 뛰어넘는다면?”
“그러면…….”
현지가 미소를 지었다.
“도주가 가능하겠네요.”
“그다음에는 로키의 힘을 이용하면 됩니다.”
“로키의 힘이라는 게 뭐죠?”
“변신 능력.”
“네? 네?”
현지가 미처 이해하지 못했을 때였다.
쾅!
태석과 현지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꺄아아악?!”
현지가 비명을 질렀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부유감이 제법 무서웠다. 태석은 사납게 미소를 지으며 현지에게 소리쳤다.
“좋아요! 잘 버티네!”
“아뇨, 지금 무서워서 지릴 것 같거든요오오오오오?!”
현지가 소리쳤다.
아니, 도대체 이렇게 무서운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태석은 얼마나 간이 큰 남자란 말인가. 현지는 솔직히 태석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을 넘어서서 탈착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의구심을 품을 정도였다.
어찌 됐건, 거대 거미의 머리를 가볍게 넘기고 그 뒤편으로 날아가 착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거대 거미는 덩치가 크고 굼뜨기에 태석과 현지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있다.
“어서 되라, 되라, 되라.”
태석이 뛰어가면서 현지를 붙잡고 소리치고 있었다.
뭐가 되라는 거지? 설마하니 작전대로 되라는 걸까? 그렇게 뛰어가면서 태석의 되라는 말을 계속 들을 때였다.
팟.
현지가 순간 이질감이 들었다.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손이 없다.
손은커녕 다리나 몸통도 없다. 아니,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옷째로, 투명인간이 된 것이다.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붙잡고 같이 뛰는 태석 쪽을 본다.
태석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당황스럽지만 이내 이해했다.
이것이 바로 변신 능력이다.
변신하여 투명인간이 된 것이다.
태석이 조용히 말했다.
“어서 뛰어요. 이거 제한 시간 그렇게 안 기니까.”
“네!”
현지가 고개를 끄덕이고,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얼마나 뛰었을까. 현지와 태석은 숨이 찼다. 어느새 육신의 투명도도 떨어진 뒤였다. 변신이 풀렸다. 현지는 숨을 거하게 들이마시고 내뱉고 하다가 주저앉고 말았다.
노란 장독도 완전히 사라진 뒤. 그보다 오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 태석과 현지가 달려간 방향으로 먼저 도망쳤을 텐데.
설마하니 색욕의 악마, 스카이에게 몰살당한 걸까? 뭐, 상관없다.
태석과 현지만 무사하면 된다. 태석은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쓰러진 채 숨을 헐떡이는 현지에게 말했다.
“일단 고비는 넘겼네요.”
태석이 고개를 돌려 동굴의 입구로 보이는 곳을 보았다. 낭떠러지 밑에 이런 동굴이 있을 줄이야. 태석은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법 깊어 보인다. 입구에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 어두컴컴한 것 같이 보였지만, 안은 무언가 불빛이 있는 듯, 사물 분간은 가능했다.
태석이 말했다.
“일단 저기로 가야겠죠?”
다시 태석과 현지가 있는 동굴의 안쪽 입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
시연과 대한, 겐세가 있었다. 그들은 현재 대한의 강철 길드 내부에서 제작한 아이템을 통해 태석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밖으로 달리는 좌표를 볼 수 있었다.
“뭔가 쫓기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대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여기 근처네요.”
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곳에 들어가면 태석 씨를 만날 수 있는 건가요?”
“아마도.”
“그러면 어서 가야 한다.”
겐세가 단호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태석과 함께하고 싶은 모양이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겠지.”
“아무튼, 겐세 님.”
대한이 말했다. 겐세가 고개를 돌려 대한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흑수정 정화, 정말로 저희 다섯 명만 있어도 가능한 겁니까?”
이제 태석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확신하니 겐세에게 묻는 것이다.
우리들의 힘으로, 정확히는 태석의 존재로, 북한 최대 규모 흑수정, TOY를 정화할 수 있냐고.
겐세가 키득키득 웃었다.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네?”
“그 흑수정은 수십의 S랭크 헌터가 덤볐는데도 정화는커녕 그 근처도 가지 못했다. 그런데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당연히…… 아니겠죠. 하지만 그렇게 확신하는 상황에서 어째서 이번 일을 강행한 거죠? 어째서?”
“그야 태석이 그동안 불가능한 일을 해왔기 때문이지.”
“불가능한 일을…….”
“첫 사냥으로 A랭크 괴수를 잡았어. 그리고 천사가 되는 데에 성공했지. 비록 한시적인 능력이고, 위험해서 더는 쓰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어떤 성천주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 것은 분명해.”
겐세가 동굴 입구를 보았다.
안의 사물은 분간이 가능하다. 안쪽에 불빛이라도 있는 걸까.
겐세가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태석을 믿기로 했다. 태석의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믿고 말았다.”
시연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느낌, 이제 알 것 같았다. 시연 또한 천사가 되던 그 장소에서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까. 시연이 말했다.
“그러면 어서 가요. 동굴 내부로.”
“태석이 이 안에 있을 거라는 확신을 품고.”
겐세가 그러면서 한 발자국 발을 들이밀었다.
기나긴 조난이 끝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