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모든 신을 받다-48화 (48/102)

# 48

48. 걸림돌

순간 몸이 균형을 잃었다. 머리가 아프다. 무슨 일이지? 어째서 머리가 아픈 걸까. 태석은 기우뚱거리는 몸을 간신히 쓰러지지 않게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쓰러지고 말았고, 지독한 늪에 빠진 마냥 머리가 천천히 아파 오고, 더욱더 아파 오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파 비명을 지르고, 마침내 의식이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뭘까, 이 느낌.

꿈을 꾸고 있다는 느낌이다. 태석은 꿈속에서 다시 5살의 어린 소년이었다. 그때였다. 괴수 모스키토에게 가족을 잃을 때의 일이다.

매번 이 꿈을 꿔왔다. 모스키토가 정신없이 날갯짓하며 벌레 특유의 징그러운 움직임으로 부모님의 피를 갉아먹고, 태석은 분노하여 근처에 있던 야구 방망이를 들고 전진하고, 여동생 태희는 고함을 치며 하지 말라고 하고.

잠깐, 하지 말라고?

태석은 순간 자신의 눈앞에 있는 부모님을 본다.

부모님은 편하게 웃고 있었다.

모스키토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태석은 의아한 눈으로 부모님과 태희를 번갈아 본다.

태희는 고개를 저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고, 부모님은 미소를 지으며 태석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니?

-뭔가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거니?

태석은 순간 손이 멋대로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야구 방망이를 뒤로 한껏 치켜든 채 부모님에게 내려찍으려고 한다.

-안 돼.

-부모님은 모스키토가 아니다. 평범한 인간이다. 헌터도 아니고, 오크나 엘프, 드워프도 아닌, 평범한 인간.

-그런데 어째서 나는 부모님을 공격하려고 하는 거지?

-대체 어째서?

태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이 멋대로 움직이는 것을 막으려고 하지만, 그때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다. 노인인지 어린이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존재가 인간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존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좋아, 공격해.

-너에게 있어서 최악의 일이 될 테지만.

-이 일은 인류, 아니 전 차원의 모든 존재에게 있어서 최고의 쾌락을 주게 될 테니까.

-강신자, 태석.

-얼마나 멋진 별명이야?

-그 능력으로 관리자를 무찌르기를 바라.

콰직.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모든 꿈이 끝이 나고, 태석은 통제되지 않는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태석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있다. 현지는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당황하고 말았다.

어쩌지. 어쩌지. 무슨 일이지?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는 낭떠러지 밑, 장독이 가득한 장소. 현재 장독을 만들어낸 오크 일당은 모조리 도주한 상황이지만, 아직도 장독의 여파가 남아 있다. 아까보다 장독의 농도가 얕아졌지만, 한때 현지를 기절하게 만들 정도의 강한 독이다. 결코 방심할 수는 없다.

그리고 스카이가 태석 일행을 공격하고, 태석이 놀라운 힘으로 막고, 스카이는 도주한 건지 죽은 건지 알 수 없는 처분을 받았다. 그 후 이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기로 했을 때, 태석이 갑자기 균형을 잃고 쓰러지더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으아, 으아, 으아아아아아아아!”

무슨 고통스러운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방금 전 싸울 때의 타격이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설마하니 정신적인 마법을 걸어 고통을 주고 도주한 것일까? 스카이라는 자는 나쁜 녀석이 틀림없다. 안 그렇다면 태석을 공격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지금은 현지의 행동이 중요하다. 현지가 태석의 상태를 해결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태석의 힘으로 이곳을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야 당연하다. 현지는 다른 헌터들과 달리 극한의 상황에 노출된 적도 없고, 그렇기에 경험도 적다. 태석도 경험이 적지만, 경험의 질적인 면에서는 태석이 오히려 우위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행동해야 태석에게 이로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춰 있을 수는 없다.

무언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

이럴 때는 역시…… 마력의 실이다.

마력의 실은, 현지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유니크한 능력. 그렇기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도 많고, 아직 연구 중인 분야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현지는 마력의 실을 더욱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하는 슈트조차 없었다. 물론 지금도 슈트의 디자인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성능은 발군이다.

그렇다면 이 슈트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해 마력의 실로 태석의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손을 뻗고 마력의 실을 사용할 준비를 한다.

마력의 실은 기본적으로 마력의 형태를 변경하여 실의 형태로 사용하는 것. 실 정도의 얇은 형태가 되면 성질 또한 자유자재로 변경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일단은 마력의 실의 얇디얇은 모습으로 형태 변질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형태 변질 완료.

이제 성질을 변질시키면 된다. 어떻게 변질시킬까? 태석에게 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현 상태를 해결해야 한다.

정신적인 충격 비슷한 것을 제어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회복 마법이 좋을까? 아니면…… 아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태석에게 직접적으로 정신 회복이 불가능하다. 현지는 이를 악물었다. 역시 안 되는 걸까…….

“으아, 으아아아아아!”

태석이 비명을 지른다. 알았어, 알았다고! 지금은 현지가 나서야 할 때인 것을 현지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다시 심호흡을 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결심한다.

“그래, 내가 직접 나서야겠어.”

현지는 자신의 정신의 일부를 태석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마력의 실의 성질을 자신 그 자체로 바꾼다. 그리고 태석의 뇌 속에 마력의 실을 박았다.

푹.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현지는 눈을 감고 마력의 실의 능력을 발동한다.

현지의 정신 중 일부가 태석의 내부로 침입했다.

이제 남은 것은 현지의 말빨이다.

정신적인 문제는 인간과의 대화가 직방이니까. 좋아, 자신의 힘이라면 가능하다.

자신은 자신감 넘치는 신세대 여성이니까. 멍청하다고 많이들 하지만, 현지는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현지의 의식이 태석의 내부로 이동한다.

태석은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태석은 눈앞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자신의 부모님을 보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화가 난다. 왜 태석은 스스로 부모님을 죽였을까. 실제로 그런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환각 속에서 태석은 부모님을 스스로의 손으로 죽였다.

패륜이다.

아니, 태희를 죽인 것과 다름없다.

태석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목소리가 계속 태석에게 말을 건다.

-어때? 이번 일은 어떻게 생각해?

끔찍하다.

태석이 목소리의 목을 비틀고 싶었다.

-고통스럽지? 괴롭지? 슬프지? 후회되지?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이 일은 지극히 현실의 것을 재구성한 것에 불과해.

무슨 소리인 건지 알 수 없다. 현실에서의 태석은 부모님이 모스키토에게 살해당했다. 그렇기에 세희의 언데디에이션을 해결할 때, 모스키토의 영혼이 세희에게 들어와 태석에게 복수를 하고자 했다.

그런 일까지 있었는데 거짓일 리 없다.

-그래? 그렇게까지 증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면 할 수 없지.

목소리는 그렇게 말하고 덧붙였다.

-어서, 어서, 어서 행동해. 이곳에서 벗어나서 이 세상에 큰 획을 그어. 큰 획을 그어서 관리자가 되는 거야. 이 세상의 관리자가. 신이.

싫다.

자신은 그저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을 원한다. 그리고 태석은 설령 그 꿈은 신이 된다 해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미래 따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한 명이 행복해지면, 한 명은 불행해진다. 돈이 제일 많은 사람보다 그보다 약간 적은 사람은 불행한 경우도 있다. 애당초 행복에 기준은 개개인에게 달려 있다. 그렇기에 모두가 행복하다는 것을 사실상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적인 꿈. 이상향이다.

그러니 자신은 신이 될 생각은 없다. 그보다 위, 그보다 위가 대체 어디지? 알 수 없다. 태석은 5살의 어린아이의 몸으로 거실 구석에 쭈그려 앉은 채 울면서 부모님의 몸을 흔드는 태희의 모습을 본다.

하하, 하하. 하하하…….

왜지. 왜 웃음이 나오는 거지? 이게 행복인가? 그래, 이딴 게 행복이라면, 차라리 모두가 불행해지는 편이 좋다. 자신은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 힘이 있다. 신의 힘을 강신하여 모두를 죽이면 된다. 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이다.

애당초 태석의 부모님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태희의 상처도 완전히는 치유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 따위는 다 부수고 처음부터 리셋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태석의 주변 사람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좋아, 결정했다.

그리고 태석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현지의 모습이 보였다. 이십 대 아가씨의 모습을 한 현지가 어느새 어른의 모습이 된 채 싸늘한 표정을 짓는 태석의 앞에 서 있었다.

“어, 그러니까…….”

현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현지가 그렇게 말했다.

태석의 정신 속의 세상에 침범한 상태인 현지가 정말 우습게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인사를 해댄 것이다.

태석이 멀뚱멀뚱 현지를 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지?

태석은 현 상황을 알 수 없기에 그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다. 현지가 눈을 깜박이며 생각했다.

‘뭔가 어색한데.’

현지가 말했다.

“어서 일어나세요.”

“일어나고는 싶은데 말대로 안 됩니다.”

“어째서죠?”

“그야 꿈인 건 인지하고 있는데 일어날 수가 없으니까요.”

“왜죠?”

“제가 어떻게 압니까.”

태석이 쇼파에 걸터앉았다.

“아무래도 제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가 순간 폭발한 모양이에요.”

“방금 전 변신 비슷하게 힘을 발휘한 것 때문인가요?”

현지는 태석이 무언가 새로운 힘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설마하니 그것에 의한 타격일까?

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합니다. 아무래도 그 힘이 정착하면서 제 정신 세계를 많이 뒤흔든 모양이에요. 동기화율이 지나치게 오른 탓이겠죠.”

“좀 더 설명해주세요. 그래야 해결 방법을 알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헬라를 강신했는데.”

“헬라?”

“죽음의 신.”

“어, 벌써부터 이해가 안 되지만 계속 말해주세요.”

“그 녀석을 강신하기 위해 동기화율을 억지로 올렸는데 아무래도 녀석이 죽음을 관장하다 보니까 제가 처음 겪은 부모님의 죽음을 강제로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이 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죠.”

“어떤 상황이죠, 지금 이 풍경은…….”

현지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본다. 여자아이 하나가 울면서 어른 남녀의 시체를 흔들고 있었다. 뭔가 슬프다. 슬픔이 한껏 느껴진다.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한 슬픔…….

“굉장히 슬픈 상황이죠. 제 부모님이 모스키토에게 살해당했을 때의 일이니까.”

“그렇네요. 저도 슬퍼지고 있어요.”

“저는 이 꿈속에서 스스로 부모님을 살해한 남자아이가 되어 있었어요.”

“…….”

“아주 끔찍한 상상이라 벗어날 수가 없어요. 계속 생각이 나서 꿈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그러면 이렇게 하도록 하죠.”

태석에게 현지가 손을 뻗었다. 태석이 그 손을 멀뚱멀뚱 본다.

“이곳은 꿈속이니까. 강제로 행복하게 만들도록 하죠.”

“네?”

“이제부터 상상하는 거예요, 태석 씨.”

“뭐를.”

“행복해지는 상상을.”

태석을 끌어안았다. 태석이 살짝 놀랐고, 현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태석이 푹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순간 마음이 누그러든다. 태석의 속에 있던 고통스러운 비명과도 같은 감정들이 사라져 간다. 아니, 사그라든다는 표현이 맞다. 점점 행복이라는 감각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꿈속의 풍경은 일변한다.

태석의 여동생, 태희가 밥을 준비하고 있다. 대한이 문을 열고 들어와 태석의 등을 손바닥으로 짝치고 들어오고, 이어서 시연이 들어오면서 방 풍경 사진을 찍고 있다. 찍으면서 콜렉션이 추가되었다는 헛소리를 한다. 이어서 고란이 시원하게 욕을 하며 들어오고, 겐세가 이번에는 다른 여자를 끌어안은 채 들어온다. 그리고 주방의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준비한다.

그리고 여동생 태희가 태석에게 말한다.

“어서 와.”

“…….”

현지가 머뭇거리는 태석에게 말한다.

“어서 가세요.”

“……그럼.”

태석이 쓰게 웃으며 천천히 주방 쪽으로 향한다. 식탁에 앉으려 한다.

태석이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은 과거에 얽매여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죽음의 신을 강신하여 동기화율이 높아지자마자 꿈속에 갇혀 고통스러운 비명을 듣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부모님을 죽였다는 망상에 휩싸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것을 잊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는 소중한 인연들이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 나설 수 있다.

그렇게 꿈이 끝이 나고, 태석은 천천히 눈을 떴다.

자신은 누워 있었고, 현지가 꾸벅꾸벅 졸며 무릎베개를 한 채 태석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석이 쓰게 웃으며 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느새 그들이 있는 공간에 장독은 모조리 소멸한 뒤였다.

태석이 천천히 일어났다.

현지가 그 낌새를 눈치채고 잠에서 깨어났다.

태석이 말했다.

“어서 가도록 하죠.”

그래,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자.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파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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