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42. 악몽
맙소사.
멀쩡하다.
기차칸 벽 전체를 깨부수면서까지 날린 일격이, 두 번을 시도했는데도 막혔다.
다가오고 있었다.
거대한 검은 구형의 물체가 굴러오면서.
콰르르르르-.
그것은 마치 블랙홀의 한 종류 같았다. 검붉은 에너지 형태의 그것은, 굴러오면서 미친 듯이 주변의 나무나 바위, 가축들을 집어삼키면서 그 크기를 불린다. 크기를 불릴수록 더욱더 커지고 위협적이 되어간다. 심지어 태석 일행의 공격에 주춤했던 것도 다시 회복한 듯했다.
태석이 소리쳤다.
“막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뭔가, 뭔가 막을 방법이 다른 건. 생각해봐, 태석! 나는 멍청해서 잘 모르겠다고.”
“없어.”
태석이 차가운 표정으로 대한에게 말했다.
그리고 대한은 믿지 못했다.
없다고? 방법이?
착각하고 있었다. 태석이 최근에 굉장히 큰 사건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해왔기에 대한은 방심하고 있었다.
태석은 신이 아니다. 그러니 전지전능하지 않고, 지극히 인간다웠다. 그렇기에 해결하지 못하는 일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죽을 수도 있는 법.
이대로 끝인가.
대한이 낙담하는 사이, 태석이 외쳤다.
“우리는 방어에 집중한다.”
태석이 마침내 생각이 떠오른 듯 눈에 생기가 돌았고, 지시했다.
“대한, 방어가 가능한 아이템을 전부 사용해. 예비용으로 남겨둔 것도. 지금이 우리가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니까. 강철 길드에서 배분한 모든 아이템을 쓰도록 해.”
“이…… 있어. 좋아, 이걸 쓰면 되는 거지?”
아이템을 보여주었다. 태석은 헌터로서의 경력이 짧기에 그것이 전부 어디에 쓰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쓸모가 있을 거라 여겼다.
태석이 다음으로 시연에게 말했다.
“빛 마법. 빛 마법으로 다시 보호를 걸어요. 이전에 걸었던 게 시간이 지나 사라지고 있으니까.”
“네!”
그리고 겐세에게 말했다.
“기적? 아시죠.”
“당연히.”
“그리고…….”
태석이 다음으로 현지를 보며 말했다.
“마력의 실. 그걸 정성껏, 쓸 만한 방법으로 쓰시길.”
태석이 그리고는 손으로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지석이 20년 전 자신에게 준 아이템, 강철 반지를 사용하려는 것이다.
쿵!
강철 반지가 반경 10m를 전부 회색의 보호막을 만들었다. 시연의 마법이 그들의 몸을 하얗게 후광을 만들었다. 강렬한 후광이었다.
겐세의 마법이 그 모든 효과를 보조했다. 효과가 증폭되었다.
대한이 아이템을 사용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이상한 효과가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태석이 눈을 감고 시선을 현지에게 향했다. 현지의 목부터 발목까지 모두 덮고 있는 검은색의 옷. 용의 하얀 음각이 새겨진 옷은, 잘은 모르지만 마력의 실을 사용할 수 있게끔 해주는 의복이다. 정확히는 마력의 실을 조율할 수 있도록 하여 원래 사용 가능한 걸 더 세밀하게 쓸 수 있다고 한다. 대한의 지팡이와 비슷한 효과가 있는 걸까.
현지가 눈을 감으며 손을 뻗었고, 팡! 마력의 실이 터져 나와 태석 일행의 몸을 덮었다. 단단한 고치처럼 굳어서 그들의 몸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현지가 소리쳤다.
“준비 끝이에요.”
“그러면…….”
태석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모두 살아서 만납시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강-!
검붉은 에너지의 구체가 기차 칸 전체를 습격했다. 기차 칸이 무너지고, 태석의 강철 반지의 보호막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동시에 터져나갔다. 바위가 태석의 몸을 스쳤다. 태석이 순간 손을 뻗어 누군가의 손을 잡으려 했다. 현지의 손이다. 몸은 보지 못했지만, 하얀 음각이 새겨진 용의 문신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건너편을 본다. 시연이 날아가면서 뭐라 뭐라 중얼거리고 있다. 죽지 말라는 의미 같았다. 태석은 쓰게 웃었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는 시연과 부끄러운 짓을 했다. 왠지 모르게 그것이 그나마 현 상황의 지옥 같음을 무마시켜주었다.
좋아, 살아남자.
태석과 토르의 강신이 일순간 끊겼다. 바위에 얻어 맞아 강신력을 잠시 잃었던 것이다. 의식이 끊겼다.
순간 비명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환청인가, 아니면 실제인가.
적어도 자신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어딘가로 구를 거라는 것은 현실이다.
꿈을 꾼 느낌이다.
태석이 어릴 적의 모습으로 있었다. 태석이 손을 뻗었다. 시체가 있었다. 부모님의 시체가. 어쩐지 무언가 둔탁한 것에 얻어맞은 듯한 시체가 있던 것이다. 모스키토가 두들겨 팬 건가? 아니, 녀석은 피를 빠는 흡혈 괴수이다. 둔탁한 물건으로 때릴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일을 벌인 거지? 대체 누가. 태석은 자신의 손에 들린 야구 방망이를 손에서 놓쳤다.
데구르르-.
그것이 굴러가 한 여자아이의 다리에서 멈춘다. 여자아이는 주저앉은 채 울먹이고 있었다. 부모님의 시체를 보며 울고 있다. 그녀는, 태희다. 태석의 동생.
“태, 태희야.”
태석이 말한다. 태희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왜 그러는 거야? 왜 태석을 두려워하는 걸까. 태석은 울먹이면서 태희에게 다가갔다. 태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오, 오지 마, 괴물.”
마치 괴수를 보는 듯한 눈빛. 태석이 순간 경직되었다.
이 기억은…… 대체 뭐지?
태석이 서서히 의식이 깨어났다.
불에 타고 있는 기차였던 것의 고철 덩어리들. 바윗덩어리가 깨부수어져서 연기를 흩날리고 있고, 나뭇가루가 입에 씹혀 더러운 맛을 낸다. 벌레들의 지저귐도 없고, 불에 타들어 가는 타작 소리만이 맴돌았다.
태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주변에는 쓰러진 채 신음을 흘리는 동료들이 있었다. 심지어 겐세까지 몸이 시원찮은 듯 비틀거리며 겨우겨우 일어났다. 제일 먼저 겐세가 태석에게 치료 마법을 걸었다. 태석의 상태가 나름 괜찮아졌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주변을 살핀다.
“대한? 시연 씨? 현지 씨……?”
대한이 비틀거리며 가루 속에서 손을 뻗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녀석은 멀쩡하군. 역시 악운에 강한 녀석답다. 태석이 피식 웃으며 시연을 본다. 시연 또한 인상을 찌푸리며 웃어 보였다. 묘하게 눈가가 시렸다.
태석이 고개를 돌려 현지 쪽을 본다. 낭떠러지 끝자락에 있었지만, 현지는 멀쩡했다.
“저, 저는 멀쩡해요. 겐세 님이 방어 기적을 최대한 펼쳐주셔서…….”
상태는 정말로 멀쩡해 보였다. 허세나 걱정을 덜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위치가 위험하다. 태석이 느그적거리는 걸음으로 걸어와 현지에게 그곳은 위험하다고 말하는 순간.
콰직.
낭떠러지 끝자락, 그러니까 현지가 선 곳의 땅이 무너져 내린다. 이런, 방금 전 폭발에 의한 충격으로 땅이 약해진 탓이다. 태석은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서둘러 현지에게 덤벼들었다. 그리고 현지를 끌어안은 채 현지를 위로 하여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휘이이이-.
바람 스치는 소리와 함께 머리칼이 정신없이 흔들리고, 몸도 디딜 땅을 잃은 채 하염없이 떨어진다.
푸각.
땅으로 태석과 현지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대한과 시연이 소리쳤다.
“태석아아아아아!”
“태석 씨이이이이이이이?!”
사건이 시작되었다.
태석은 눈을 떴다. 젠장,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본다.
우선 기차를 타고 북한의 최대 규모 흑수정, TOY를 정화하고자 했다. 태석, 시연, 대한, 겐세, 현지와 함께 AF 기차를 타고 향하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기차를 습격한 검은 색의 바위 같은, 블랙홀과 닮은 구체가 크기를 키우며 다가왔고, 뭘 어떻게 막을 수도 없이 기차를 덮치고 기차 칸 전체를 무너뜨렸다. 그 기차 내부에 있던 다섯 명은 살았지만…… 그곳에서 운전을 하던 기관사 외 관계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도 싫다.
기차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현지와 함께 어딘가로 추락했다. 거기서 살아남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척 보아도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고, 추락하는 속도는 중력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 가속이 붙고 있었으니까.
몸이 박살 났으려나? 태석은 자신의 몸을 보았다. 멀쩡하다. 다행이네. 그보다 현지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았다. 주변은 불길이 가득했다. 그리고 하늘이 검다. 하늘에는 별 한 점 없었다. 그저 어둠이 그곳을 점령이라도 한 듯이, 느글거리는 어두운 공기가 그의 몸을 가로질렀다.
태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찌뿌둥해서 일어나기 힘들다. 하긴,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는데 이 정도면 다행이다. S랭크 헌터였기에 가능한 일. 그보다 현지는 F다,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 걱정된다. 하지만 현지가 보이지 않는다.
잠깐, 그보다 이곳은 인간이 사는 세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별은 보이지 않고, 불에 타는 그슬리는 냄새만이 맴돌았다.
설마, 설마?
“강신…… 세계?”
자신이 아는 강신 세계는 이렇게 황폐하고 불길이 번지는 잔혹한 곳이 아니다. 도대체 자신의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토르가 다가왔다. 푸른 천둥을 두른 토르가 망치를 든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카드가 있다. 저곳에.”
“토르?”
“미친 짓을 많이 했더군. 낭떠러지에 뛰어들다니. 한창때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재밌었어.”
태석이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없었던 책상이 생겨났다. 자각몽을 꾸는 기분이다. 물리적인 법칙을 모두 어긴 채 없던 것이 생겨나고, 있던 것이 사라진다.
“너는 우리의 구원자다. 신들을 구원하는 자란 소리다. 그러니…… 간단히 죽도록 하지는 않아. 그 카드가 필요할 거다.”
태석은 카드를 집어 들었다. 여자가 그려져 있었다. 검은 갑옷을 둘러싸고 검은 복면을 쓴 여자. 눈과 붉은 머리칼만이 보였다. 이 여자는 대체 무엇일까? 적어도 느낌상 죽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시체처럼 무표정한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토르가 말했다.
“죽음의 신.”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헬라다.”
“헬라…….”
태석의 몸속으로 카드가 쑤셔 박혔다. 고통도 뭣도 없었다. 보통 카드를 습득하거나 동기화율이 올라갈 때 고통을 동반하는데, 이 경우는 평소와 달랐다. 정말로 신을 받아들인 건가? 헬라를? 아무런 체감이 들지 않았고, 토르가 안심시키듯 말했다.
“분명 받아들였어. 하지만 헬라는 보통의 신들과는 달리 특정 조건에서만 강신이 가능하다.”
“그게 언제지? 지금 당장 쓸 수 있어야 해. 지금 현지 씨가 위험한 상황이라…….”
“때가 되면 알 거다.”
그리고 토르는 태석의 몸을 살짝 밀었다. 땅으로 추락하는 느낌이 들었다. 강신 세계가 전체가 뒤집히고, 태석의 육신이 현실로 추락한다.
그리고 눈을 떴다.
화르륵.
뜨거운 감각이 입안을 덮쳤다. 정신이 번쩍 들어 콜록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춤에 장비해둔 속성 단검을 역수로 잡아 꺼내 들었다. 뒤로 물러난 뒤에 속성 단검을 앞으로 한 채 자신의 입속에 무언가를 밀어 넣은 자를 노려본다.
그자, 현지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나무를 깎아 만든 그릇과 숟가락을 든 채 물었다.
“깨어나셨네요?”
“현지 씨였습니까?”
“네, 네. 마, 맞아요.”
현지가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처음 대련 때는 자신만만한 바보라는 느낌인데, 지금은 소심한 겁쟁이라는 느낌이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금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그것을 파악해야 한다. 태석이 그렇기에 물으려고 했다.
“제가 얼마나 쓰러져 있었죠? 그보다 이곳은 대체 어디……?‘
어둡다. 검다.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탓이다. 그리고 묘하게 더러운 냄새가 난다. 심장에 좋지 않을 것 같은, 독성 물질의 맛이 혀끝에서 느껴졌다. 주변을 맴돌고 있는 노란 공기들이 보였다.
현지가 말했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어떤 괴수에 의해 오염된 공간이라는 것은 알 수 있어요. 태석 씨는 저를 돕기 위해 뛰어들면서 이곳으로 추락한 상태예요.”
“대한이랑 다른 사람들은? 시연 씨는요?”
“그, 그게…….”
현지가 살짝 슬픈 눈을 했다. 안 돼, 그 사실을 말하지 마. 좋은 대답을 듣고 싶다. 해피 엔딩에 가까운 대답을. 하지만 현지가 잔혹하게도 말했다.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에요. 정확히는…… 저희 쪽에 연락할 수단이 없어요. 마력을 통해 마법으로 신호를 보내도 지상 어딘가에 결계라도 쳐진 건지…… 연락이 되질 않아요. 휴대폰도 마찬가지고.”
“흠, 별수 없네요.”
태석은 그렇게 뻔뻔스럽게도 걱정 없다는 투로 말했다. 물론 걱정된다. 왜냐면, 연락도 되지 않는 상태로, 최강의 흑수정 TOY가 존재하는 구역에서 현지와 함께 격리된 상태이다. 그러니 걱정이 되지 않을 리가 없다. 오히려 무섭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하지만 이걸 입으로 내뱉는 순간, 현지 또한 의지할 곳을 잃는다. 그렇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상황 파악을 끝마치고,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것이 자신이 할 일.
“어떻게 하면 될지 생각해보도록 하죠.”
해결책을 내놓기 위해 현지와 의논한다. 그것이 첫 번째로 할 일이었다.
“그렇다 해도 생각할 만한 게…… 아.”
태석이 미소를 지었다.
“이럴 때는 정공법입니다. 우리는 이 구역에서 탈출하기 위해 일단 걸을 겁니다. 어차피 연락도 되지 않고, 이곳까지 찾아올 수 있을지가 의문이니까.”
“하지만 괴수들이 있을 건데요. 장독이 심한 걸 보아 괴수들이 꽤나 밀집된 구역일 거예요.”
“저는 A랭크 괴수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할 것 없어요. 그리고 현지 씨에게는 마력의 실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그, 그러면…….”
현지가 살짝 겁에 질린 투로 눈동자를 흔들었다. 동공이 커졌다 작아졌다 요동쳤다. 현지는 두려웠다. 그녀는 F랭크 헌터이다. 여느 헌터들 중에서도 가장 약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자신감도 없었고, 심지어 동료 헌터들에게도 놀림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겐세가 했던 말이 있다.
‘너는 약하기에 오히려 강할 수 있다. 마력의 실이란 것이 있지 않느냐.’
그래, 자신에게는 마력의 실이 있다.
태석이 현지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현지 씨가 그 표정을 하는 걸 보니 나름 힘이 되네요.‘
“힘이 된다고요?”
“네.”
“하지만…….”
현지는 고개를 저었다.
“저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요. 저를 구하려 하지 않았다면 저 혼자 죽고 끝날 일이었고, 태석 씨가 이번 작전의 히든 카드인데 이렇게 실종 처리가 되어버리면 말짱 꽝…….”
“아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지의 말을, 태석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하지만 사실일 텐데. 태석이 자신을 구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설령 자신이 없다 해도 TOY 정화에는 문제가 없을 텐데. 오히려 방해가 될 텐데……! 어째서, 자신 같은 것을 어째서…….
“조금 말도 안 되는 소리일지는 모르지만…… 저는 해피 엔딩을 좋아하니까요. 그 해피 엔딩에는 현지 씨의 행복도 포함되어 있어요.”
“……?”
“뭐, 그러니까 저는 현지 씨를 절대 버리지 않을 거고, 다른 동료와 친구들도 버리지 않을 겁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그게 영웅 놀이를 좋아하는 제가 정한 신념이니까요.”
“그런…… 가요.”
현지가 그렇게 말하고는 웃기 시작했다.
정말 우습다. 아니, 멋지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을 원한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말은 부끄러워서 내뱉지도 못한다. 하지만 태석은 진지하게 내뱉었다. 오히려 대단한 철학을 읊는 것 같다고, 표정만 보면 속을 기세였다.
하지만 오히려 간단한 논리였기에 더욱 애정이 간다. 태석의 논리인 해피 엔딩. 좋아, 이룰 수 있게 해주자.
현지가 일어났다. 이번에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다.
그리고 말했다.
“반드시 살아남아요, 우리.”
“그래, 좋습니다.”
태석이 손을 뻗었다. 악수를 청한 것이다.
현지가 그것을 보고 피식 웃고는 손을 마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