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모든 신을 받다-41화 (41/102)

# 41

41. 장난감

대한과 태석은 겐세를 따라 피씨방의 카운터로 향했다. 대한은 비용을 보고는 살짝 입을 벌렸다. 놀란 것이다. 뭐가 이렇게 비싸? 아무리 대회 2등 상금으로 꽤나 돈을 벌었다지만, 아끼는 근성이 있는 그에게 있어서 이 비용은 제법 지출이 컸다.

‘뭐, 살 것도 없으니 그냥 내면 되지만…….’

겐세 노르도를 빤히 보았다. 뭔가 바라는 것은 있지만 염치없기에 말하지 않을 뿐, 의사는 겐세에게 이미 충분히 전달되었다. 겐세가 코웃음을 쳤다.

“나는 남자에게 돈을 내지 않아. 여자만이 나에게서 돈을 가져갈 수 있지.”

“아아, 그러세요.”

대한은 대충 대꾸하고는 비용을 지불했다. 자신의 몫은 전부 지불했다. 이제 태석의 차례이다. 태석은 머리를 긁적였다.

“지폐를 안 들고 왔는데.”

“카드로 내면 되잖아.”

“지갑이 없어. 이거 난감하네…….”

대한이 별수 없어 했다. 태석과 알고 지낸 지 벌써 수년이다. 태석에게 돈을 빌려줘도 잊고 갚지 않을 일은 없었다. 그만큼 신뢰가 두터운 것이다. 그러니 돈을 아끼는 자신일지라도 이 정도 지출은 가볍게 할 수 있다. 그 생각을 하며 손을 들며 자신이 지불하겠다고 말하려 하는데…….

“잔돈은 됐다.”

겐세 노르도가 100만 원권 수표를 가볍게 지불했다. 피씨방 주인은 이 정도 금액의 수표는 처음 본다. 그러니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도 수표를 쥔 손을 놓지 않았다. 겐세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남자에게 돈을 낸 것은 이게 처음이군.”

“아무리 그래도 100만 원을 내는 건 여자였다 해도 조금 망설여질 텐데요…….”

대한이 그렇게 태클을 걸었지만, 태석과 겐세 둘 다 무시할 뿐이다. 대한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겐세 씨의 태석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것은 알겠네요.”

“여자 외에 유일하게 좋아하는 남자지.”

“…….”

뭔가 어감이 이상한데. 대한이 잘못 들었나 생각했는데 겐세가 덧붙였다.

“설령 태석이 게이라 해도 나는 사랑할 자신이 있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겐세의 표정이 진지하다. 태석의 정조가 위험하다! 대한이 겁에 질려 태석과 겐세를 번갈아 보았지만, 태석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건가? 하긴, 태석은 어릴 적부터 이런 쪽으로는 별 반응이 없었다. 여자들이 학창시절 태석에게 얼마나 들이댔는데도 태석은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어쩌면 대의를 위해 여자를 포기하는 그런 삶을 선택한 걸지도 모르겠다…….

겐세가 피씨방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그러면 내 개인 차로 들어가도록 하지.‘

개인 차량이라. 대한은 기대되었다. 성천주는 나라에 지원을 받을 정도로 위대한 인물이다. 현대 사회의 귀족이라고 불러도 문제가 없었다. 다른 행성의 외계인들의 성천주들 중 일부는 나라를 지배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럴 정도니 얼마나 비싼 차를 몰고 다닐지 궁금할 지경이다.

피씨방 밖으로 나와 비싸 보이는 차를 찾고자 머리를 두리번거렸다.

어딨냐, 어딨어! 외제차! 아니면 국산 명차! 나와라. 빨리 내부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려야지.

어라?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대한은 좀 더 바깥 도로에 세웠나 해서 겐세가 가는 방향을 보았으나 겐세는 묵묵히 어느 차량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형차. 솔직히 어른 한 명이 들어가도 답답할 정도로 작은 차이다. 겐세는 어째서 저렇게 작은 차를 타고 있는 걸까? 대한이 안으로 들어갔고, 태석이 뒷좌석에 앉았다. 좁디좁은 네 칸 차량이었기에 숨통이 막힐 지경이다. 봄철인데도 더울 지경이니 말 다했다.

대한이 조심스레 물었다.

“왜 이런 차를……?”

“무슨 소리지?”

“아니 그러니까, 돈도 많으신 분이 이렇게 작은 차를 타시는 이유가…….”

“오히려 플러스 요소거든.”

“네?”

겐세가 낄낄 웃었다.

“몇 가지 장점이 있다.”

그리고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첫째. 소시민들의 삶을 이해하는 성천주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지.”

“과연.”

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도 동의했다. 어쩌면, 영리한 사람일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둘째. 어차피 나는 돈이 많아서 여자 꼬시는 데 차 따위는 필요 없다. 유명인이니까 내 이름만 대면 달려들 여자가 한 트럭이지. 어제도 신나게 놀았어.”

“…….”

과연.

여색을 밝히는 성천주답다. 성욕의 천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자답다. 평소에 남자인 태석과 대한에게 무심하게 대해서 그렇지 언젠가는 시연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가 차이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시연은 이렇게 말했었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물론 대한은 그게 누군지 알고 있다. 시연의 SNS 사진첩에 태석 콜렉션이 있었거든. 소름 끼칠 정도의 집착이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나중에 문제 되면 태석에게 이르려고 스크린 샷도 찍어뒀다.

그보다 여자를 꼬시는 데에 필요가 없어서 작은 차를 탄다라……. 모든 삶의 중심이 여자에게 있다니,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성천주였다.

성천주 겐세 노르도가 손가락 하나를 더 꺼냈다. 뭐야, 더 할 말이 있는 건가?

“셋째. 내 이름만 대면 달려들 여자를 차에 태웠을 때, 밀착할 수 있다. 이게 제일 중요해. 그리고 첫째와 둘째의 장점이 섞여서 여자는 모두 내 것이 되지.”

“시연 씨한테 차였잖아요.”

대한이 그렇게 말했으나 겐세가 고개를 저었다.

“돈으로는 안 되는 것도 있는 법이야.”

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돈으로 안 된다면, 그 돈이 부족한 것 아닌가 생각해보라는 명언이 있잖아요.”

태석의 말에 겐세가 흐음, 고심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돈이 부족하다라……. 인품을 이기는 금전으로 여자를 사로 잡는다라. 흐음, 말이 되는군.”

잠깐만, 태석의 쓸데없는 발언 탓에 겐세에게 이상한 스위치가 들어간 모양이다.

부디 시연이 무사하길. 대한은 시연에게 겐세의 더 이상의 찝쩍거림은 없기를 빌었다.

하지만 그런 건 제쳐 두고, 이제 겐세가 어째서 자신을 불렀는지 대한은 물어야 한다. 태석과 뭔가 의논을 한 모양인데, 대한은 그런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는 몰랐으니까. 4월 중순쯤에 대한에게 할 일이 있을 거라고 태석이 말했지만, 대한에게 내용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국가 기밀이라 최후의 순간에 알려주겠다고 했던가. 참고로 고란의 허가를 받아 시연도 함께하기로 했다는 모양이다.

그러면 이제 내용을 들을 차례였다.

“대한, 너는 내용을 모른다고 했던가?”

“네, 몰라요.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간단히 결론부터 말해서.”

겐세가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 북한의 최대 규모 흑수정, 코드 네임으로는 ‘토이 (TOY, Terror Of the Year)’를 정화했으면 한다.”

“네?”

대한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투로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대체.

100명의 S랭크 헌터를 보유한 중국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것을, 다섯 명이?!

다시 현재.

태석은 흔들거림이 전혀 없는 기차의 좌석에 앉아 있었다. VIP석이라 그런지 넓고 쾌적했다.

태석과 다른 네 명은 현재 이미 망한 북한의 땅이었던 곳으로 향하고 있었고, TOY라고 불리는 흑수정을 정화하기로 했다.

대한이 원카드의 스페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뒤집으며 말했다.

“그런데 굳이 TOY를 정화하려는 이유가 뭔가요?”

겐세에게 묻는 것이다. 그렇군. 대한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저 TOY를 정화하기로 한 것만 알뿐, 그 이유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태석이 찬찬히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북한이 망하고 중국이 그 땅을 차지한 것 알고 있지?”

“당연히.”

“그리고 그 땅에 있는 TOY를 쉽사리 정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것도 당연히 알아.”

“애당초, 그렇다면 애당초 중국은 무슨 논리로 북한이 망하고 땅을 가져간 걸까?”

“……?”

모른다는 눈치였다. 이런, 여기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하긴, 자기 먹고사는 것도 바쁜데 해외 상황을 신경 쓰는 것이 이상하다. 그것은 옛날 사람도 그랬고, 현대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뜻일까. 태석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흑수정 중에서 가장 큰 것이 바로 TOY야. 아마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열 손가락 안에는 드는 크기일 테니까.”

“그렇…… 지?”

대한은 여전히 눈치채지 못했다. 대한이라면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이미 알고 있었기에, 답답한 티를 전혀 내지 않으며 말했다.

“그 TOY를 정화할 만한 힘을 한국이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중국이 그 논리로 북한 땅을 먹었지. 뭐, 말이 되는 일이고 대의적으로 맞는 일이니까. 하지만 겐세는 그 땅을 한국의 소유로 하고자 해.”

“그러니까…… 우리가 흑수정을 정화하여, TOY를 정화해서 북한 땅을 우리의 소유로 할 대의적인 주장을 하겠다?”

“그렇지.”

“하지만 여기서 질문이 있는데 말해도 돼?”

대한이 마치 학창시절 수업을 듣다 질문하듯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학생 시절에 질문은커녕 잠만 잔 주제에 이런 때는 또 잘 든다.

“굳이 흑수정을 정화해서 북한의 땅을 우리 소유로 할 필요 있을까? 물론 자원이 좀 있고, 땅이 많으면 나름대로 좋은 점도 있겠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위험을 무릅쓸 이유는…….”

“있다, 대한.”

겐세가 말을 잘랐다. 그리고 열심히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던 것을 멈추었다. 태석이 슬쩍 보니 어떤 여자와 문자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과연 성욕의 천주. 성욕의 화신이다.

겐세가 말했다.

“그곳에는 성물이 있어.”

“성물?”

“그래, 세상에는 여러 개의 성물이 있고, 그것을 일정 이상 한 사람 손에 전부 들어가게 된다면, 신을 만날 수 있다.”

“아니, 그건 아는데…… 정말로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북한 땅에 성물이 있었다고요?”

“그렇지.”

“그 정보는, 어디서 얻은 거죠?”

겐세가 씨익 웃었다.

“성천주들도 잘 모르는 사실이다. 아이언 월드 대회 예선전 때 정보가 풀렸거든. 아카식 레코드에. 아직 그 정보를 검색해본 사람은 적어. 관심도 없을 테고. 하지만…….”

겐세가 이번에는 똑바로 태석을 본다.

“태석이 싸우던 모습을 보고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태석이 난감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태석은 자의식 과잉이 없기에 자신이라고 해서 똑바른 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 있는 전원이 태석을 믿는 눈치였다. 이래도 자신이 가능하지 않다고 자기 스스로 단정 지어버리면, 다른 이들의 의지를 꺾는 행위가 된다.

그렇기에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말했다.

“당연히 가능하죠.”

그리고는 자신이 말하고도 무안했기에 음료수를 마시던 빨대를 책상에 내려놓고 아예 벌컥벌컥 전부 들이켰다. 달콤쌉싸름한 과일 쥬스의 향이 코를 찌르고, 뒤통수에 삼켜지는 아찔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 후 음료를 내려놓았는데…… 빨대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굴러떨어졌나? 태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창가를 보았고, 시연이 히죽 웃으며 주머니 속을 만지작거렸다.

“태석 콜렉션 획득.”

“…….”

대한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소름이 끼쳤다.

한편 성천주 겐세는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누르고 어떤 여자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대놓고 크게 말하고 있었고, 심지어 스피커폰으로 전환하여 귀에 대고 하고 있었기에, 그 야한 대화 내용이 모두 들렸다. 현지는 별다른 감정 없이 중얼거렸다.

“언제나처럼의 성천주 님이시네요.”

“…….”

대한은 현지도 고생이 많구나 생각하며 왠지 모를 동질감이 들었다. 태석과 함께할 때면 사건이 절로 굴러들어오는 느낌이거든.

현지도 겐세와 다니면서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태석은 멍하니 창가를 보면서 생각했다.

색욕의 악마가 하고자 하는 악행, SYS의 정체, 분노의 악마의 행방 등등.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계속해서 자신을 유혹하는 밑밥만이 깔리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색욕의 악마가 하고자 하는 악행은, 그 악행이 벌어지기 직전 나서서 막으면 된다. 그리고 분노의 악마는 모습을 감춘 상황이니, 나타났을 때만 신경 쓰면 된다.

그러면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SYS인데……. 이게 또 골때린다.

Supervisioning Your Society. 의역하자면, ‘너의 세상을 관리하라’.

세상 혹은 사회를 관리하라니,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다. 애당초 SYS 하면 자연히 시스템창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런 단어를 약자로 만들면서까지 악마 추종자들은 무언가 할 일이 있던 건가? 알 수 없다. 생각해 보아도 알기 힘들다.

일단 그렇다면 이것도 보류이다.

악마 추종자들과 SYS는 연관이 있다. 그게 다다. 그렇다면 이 역시 악마 추종자들을 족치면서 알아내고 해결하면 그만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태석은 그렇게 말하며 현재 자신에게 놓인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태석은 현재 벌칙에 의해 손을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었으며, 딱히 묶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시연의 손에는 왕게임 할 때 쓰이는, 왕이라는 증표인 붉은 칠이 칠해진 막대기를 들고 있었으며 히죽히죽 웃으며 ‘드디어, 드디어 마이 턴이다!’라고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그런데 시연은 예전에는 그저 부끄러움 많이 타는 잠 많은 아가씨라는 이미지였는데, 어느새 변태 아가씨가 되고 말았다.

도대체 고란이 무슨 짓을 한 건지 묻고 싶다. 멱살이라도 잡으면서.

현재 상황을 요약하자면, 대한이 왕게임을 하자고 갑자기 헛소리를 했고, 왠지 모르지만 겐세와 시연이 약속이라도 한 듯 태석을 노려보면서 하자고 소리쳤다. 그리고 시연이 왕게임의 왕으로 당첨. 보통은 번호로 불러야 했는데 당당히 태석보고 벌칙을 수행하라고 주장했다. 뭐야, 룰이라도 지키고 괴롭히라고. 태석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기서부터 시연의 망상이다.

일단 시연은 손을 움직이지 말라고 신호했고, 그대로 행동했다. 그 상태로 시연이 태석의 무릎에 태석과 마주 본 상태로 앉았고, 천천히 다가왔다.

뭐하는 거야? 잠깐, 잠깐…….

이상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었고, 이 상황을 통제해야 할 다른 인물들은 아무런 말도 안 하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 상황. 태석이 당황하여 뭔가 말을 하려 했으나 알게 모르게 자신도 거부하기 힘들었다.

거부를 잘 못하는 성격은 아닌데…… 이상하다. 자신의 무언가가 거부하는 것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입술이 맞닿았다. 부드러운 입술이 시연에게서 느껴졌다. 여기서 끝인가? 좋아 벌칙은 끝…… 나지 않았다. 혀가 들어오고 있다. 잠깐, 이건 너무하잖아. 여기서 애 같은 시연은 냅두고, 어른인 태석이 스탑을 걸어야 한다. 지금 시연은 몹시 흥분한 상태인 듯하니까.

시연의 망상은 여기까지였고, 현실은 그저 무릎 위에 몸을 얹은 채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얼굴은 붉었고, 표정은 몹시 부끄러움을 타는 모습이었다.

“……?”

태석이 멍청한 표정으로 시연을 볼 뿐이다.

시연은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망상으로는 잘만 하던 짓도 실제로 마주하니 하기가 두려웠다. 혹여나 싫어하면 어쩔까. 좋아한다 해도 이 부끄러운 상황을 소심한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래도 그녀는 금남의 구역인 고란의 저택에서 자라왔기에 남자에게 약했다. 그러니 태석과 현재 한 치 앞을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상황이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어떡하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그때, 덜컹하면서 기차가 흔들렸다.

태석의 몸이 떠오르고, 시연의 몸이 땅으로 꽂히듯이 살짝궁 움직였다.

덜컹.

그리고 다시 흔들리며 두 사람의 몸이 흔들리고.

입을 맞추었다.

“?!”

시연이 화들짝 놀랐고, 동시에 저도 모르게 촉감이 한순간에 대뇌피질에 저장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멈춰요! 지금 위험해요!”

현지가 소리쳤다. 키스를 하고 혀까지 쓰는 상황을 멈추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현지가 손으로 창가의 어느 방향을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뭔가, 뭔가 돌진하고 있어요. 기차로! 기차를 부술 기세로!”

태석과 시연이 동작을 멈추고 창가를 보았다. 태석이 서둘러 토르를 강신했고, 시연 또한 빛 마법으로 모두에게 충격을 줄이는 버프를 걸었다. 대한이 지팡이를 꺼내 든 채 돌진하고 있는 무언가에게 어둠 마법을 맞추기 위해 준비를 취했다. 겐세가 기적을 부려 모든 이들의 마력을 증폭시켰다.

마지막으로 현지가 마력의 실을 터트릴 준비를 했다.

태석이 그 장면을 모두 눈여겨 확인하고, 한 손에 천둥을 모으고 소리쳤다.

“돌진하고 있는 녀석에게 공격을!”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대로 저 검은 바윗덩이 같은 것이 기차와 부딪친다면 유혈사태를 피할 수 없으니까. 막아야 한다.

모두가 마법이니 기적이니 마력의 실이니 하는 것을 총동원했다.

쾅! 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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