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40. 기차 여행
스카이 할 블랜드.
그녀는 색욕의 악마였다. 색욕의 악마라는 언뜻 보면 요상한 명칭이 무엇인지 궁금해할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만약 스카이에게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말이다.
우선 성천주라는 것을 아는가.
성천주는 천사의 사도이다. 흔히 말해 부하라는 소리였다. 더 위로 올라가 천사는 신의 사도이다. 그렇다면 신은 누구를 사도로 두고 있을까? 성천주 이외에 신은 천사와 악마를 사도로 두고 있다. 더 밑으로 내려가 악마는 악계자라는 사도를 두고 있고.
그러니까 결국 천사와 악마는 그 뿌리가 같았다. 성천주와 악계자도 뿌리는 같은 것이다. 웃긴 일이다. 닮은 것들은 서로를 혐오하기 따름일 것인가. 물론 스카이도 천사가 싫다. 혐오스럽다. 그리고 성천주도 싫었다. 천사의 사도니까.
그렇기에 자신의 눈앞에 있는 시체인 한스 셸도 싫다. 성천주의 육신이니까.
하지만 이용할 것이다. 어떻게 이용할까? 스카이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사지를 쪼개어 고기로 구워먹는다, 같은 시시한 짓은 하지 않는다. 먹는 것은 악마인 그녀에게 있어서 필요 없는 기호 행위였고, 그런 기호에 중독되는 것은 식탐의 악마 외에는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보다 그 녀석, 엄청 말랐던데. 전에 보니까 거기서 더 말랐단 말이야. 강해질수록 말라지는 능력이라니…… 솔직히 부럽다. 색욕의 악마인 스카이는 닮고 싶었다. 물론 그 이유는 더 많은 남자를 따먹기 위해서였지만. 왜 외모가 좋으면 남자가 더 잘 꼬이냐고? 남자는 눈으로 보는 것에 약하니까.
어쨌든, 눈앞에 있는 한스 셸, 지금은 남자를 먹는 행위보다 이 시체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더 고민이다.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모텔이다. 어디 모텔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하도 모텔을 많이 다녔어야지. 물론 침대에는 남자가 지쳐서 쓰러져 있다. 하도 쥐어짜 낸 탓인지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아마 정말로 죽을 것이다. 스카이가 본심을 다해 먹어 치웠기 때문이다. 성적인 의미로. 색욕의 악마는 흡사 상위급의 서큐버스와 동등한 에너지 드레인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남자를 죽일 정도로 하는 짓도 가능하다.
남자에게 있어서 행복한 죽음이겠지, 하고 색욕의 악마는 죽어가는 남자를 히죽 웃으며 보곤 혀로 입술을 핥았다.
한스 셸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이미 정했다. 그렇기에 딴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좋아, 인형으로 쓰도록 하자.
비유나 표현이 아닌, 정말로 인형으로.
인형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마력의 실로.
태석은 기차 안에 있었다. 아시아 패스티스트(Asia Fastest). 줄여서 AF라는 기차였다.
아시아의 서쪽부터 러시아를 거쳐서 한국까지 연결되는 이 기차는 10년 전에 설비를 시작했고, 5년 전에 완공되어 최근 들어 운행을 시작했다. 아시아 전역을 횡단하는 이전에는 꿈도 꿀 수 없던 기차였다고 한다. 비용도 위상에 비해 저렴한 편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기차 전체가 단 다섯 명을 위해 운행되고 있다. 게다가 갖가지 음식들과 음료들이 지속적으로 지급되고 있었다.
탄 인원은 겐세, 태석, 대한, 시연, 현지로 다섯 명.
겐세는 성천주였다. 이전에 태석과 아이언 월드 대회에서 인연이 있었던 인물이고, 현재 기차를 타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대한은 태석의 친구고, 시연은 성천주 고란의 부하 헌터로, 이전에 놀이공원에서 리치를 잡을 때 인연이 닿았다.
견현지라는 인물이 조금 생소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회에서 한 번 만나 싸운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몰려 있어서 누군지도 모르고 싸웠는데 지금 기억나는 특징으로는 마력의 실이라는 기묘한 능력을 쓴다. 겐세의 부하 헌터였다.
그보다 마력의 실은 대체 뭘까? 물어봐도 대답은 모호할 뿐이다. 비밀이라는 건가.
하긴 자신의 전력이나 다름없으니 말 안 해주는 것도 이해해준다. 자신도 강신에 대한 능력을 아무에게나 밝히지 않으니까.
전력은 숨겨야 하니까. 안 그러면 약점을 잡혀 죽을 수도 있다. 헌터나 다른 인물들에게.
대한은 원카드를 들고 있었고, 도둑 잡기 게임 중이었다. 태석은 일찌감치 모든 카드를 패에서 빼낼 수 있었고, 현재 남은 인물은 현지, 대한, 시연이었다.
누가 조커를 들고 있을까……. 아하, 표정을 보니 알겠다. 대한이 가지고 있다. 묘하게 불안하면 대한은 입술을 깨물거든. 입술을 깨물지는 않았지만, 포커페이스는 아니었다. 덜덜 떨면서 입술이 이빨에 다가가려고 난장판이었다. 하지만 눈치챈 자는 없었다.
“오호.”
아니, 있다. 시연이 눈치챈 듯, 대한의 카드를 뽑을 때 조심해서 뽑았다.
“너무 표정에서 잘 드러나잖아요.”
시연은 모든 카드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면서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2등은 시연인가. 태석은 1등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대한이랑 현지 씨가 남았네. 현지 씨, 잘해봐요.”
“현지 씨, 파이팅.”
“왜 아무도 나를 응원하지 않는 건데?”
대한이 억울한 표정으로 있었고, 견현지에게 패를 들이밀었다. 현지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조커를 뽑지 않고자 조심했다.
어디 보자, 지금 잡으려고 하는 카드를 보는 대한의 표정은…… 일반 카드네. 표정이 불안하고 울먹이는 게 딱 그런 표정이다.
이 정도면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어도 눈치챌 수 있다. ‘그 카드 뽑지마아아아!’라는 에너지를 풀풀 풍기고 있다. 솔직히, 너무 뻔한 표정이라 웃길 정도였다.
하지만 현지는…… 정말로 눈치 못 챈 건가? 손을 다른 쪽으로 옮긴다. 대한이 표정이 밝아졌다. 조커라는 것이구나. 제발 뽑아달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현지도 이 정도면 눈치챌 듯한데……. 어라? 정말 모르는 거야? 고민을 하는 표정인데? 답답하다.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알려주지 않는 게 더 즐겁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길이겠지.
현지가 눈을 질끈 감고 뽑았다.
“으아아아아아.”
현지가 울먹이는 표정을 지었다.
조커를 뽑은 것이다. 대한이 이후에 조커가 아닌 것을 뽑고 게임은 끝. 대한의 3등. 꼴지는 현지.
현지에게 대한이 벌칙으로 딱밤을 때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후하하하! 이겼다! 이겼어!”
“3등이잖아요.”
시연의 타박을 무시하고 대한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벌칙은 꼴지만 받으니까.”
“우우우우.”
현지가 이마가 아픈 듯 손으로 쥐고 있었다. 하긴, 아플 만하다. 현지는 F랭크 헌터였고, 대한과 시연, 태석은 D, D, S니까. 툭 건드려도 아픈 데 딱밤을 때렸으니…… 정말 아프겠네. 왠지 미안하다. 태석은 재밌을 것 같아서 분위기에 휩쓸려 세게 때리고 말았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약하게 때리지는 않았다.
태석이 하품을 하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기차에 타게 된 계기가 뭐였더라?’
이런 잠시 잊고 말았다.
자신은 단순히 놀기 위해 이미 망한 북한 땅을 밟으려는 것이 아니다. 태석은 겐세에게 요청받은 의뢰를 완료하기 위해, 북한 땅을 밟기 위해 AF 기차에 탑승한 것이다.
과거에 대한 회상을 시작했다.
며칠 전.
“야, 대한아. 이번 판은 제대로 좀 하자.”
“네가 못한 거잖아.”
“……꼼수란 꼼수는 다 써놓고서는.”
“꼼수라니. 이건 명백히 게임에서 이 방식을 권장하고 만든 시스템일 뿐이라고.”
대한과 태석은 피씨방에서 라면 하나를 먹으면서 피씨에서 실행되고 있는 게임 ‘문 오브 워 크래프트’의 화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수군수군거리고 있었다.
“뭐야, 저 사람들. 뭔가 낯이 익는데?”
“어디서 봤더라. 기억 나냐?”
“내가 어떻게 알아. 그보다 우리, 시험 기간에 이래도 되는 걸까?”
대한과 태석을 보며 혹여 유명인이 아닐까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태석과 대한이 수염이 덥수룩하고 머리도 제대로 깎지 않은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폐인 같은 복장의 사람들이 유명인일 리 없다는 걸까.
특히 헌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때는 4월 초반. 중학생과 고등학생, 대학생 등등 여러 학생들이 시험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피씨방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저마다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저씨들 게임 중에서도 아저씨들 게임인 문 오브 워 크래프트를 하는 자들은 대한과 태석뿐이었다.
대한과 태석은 아이언 월드 대회를 무사히 끝마치고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훈련은 필요한 만큼만 하고, 조용히 지내고 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한과 태석은 목숨을 거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답게, 휴식기에 접어들자 수염도 안 깎고, 머리도 안 밀고, 매일매일 놀자판이었다.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목숨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순간에 상상 이상으로 게을러지기 마련이다.
어쨌든, 문 오브 워 크래프트는 서로 대전을 하는 대전 격투 게임이었고, 해외 게임답게 과금 유도는 적은 편이었다. 다만, 실력이라고 하는 ‘피지컬’이 중요한 게임이었으며, 의외로 대한이 게임에서 승리를 많이 했다.
자존심 상하네. 왜 이리 잘해? 태석은 어려서부터 대한에게 게임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존심이 상했다. 몇 날 며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도전한 것인데, 이렇게 패배만 거듭하다니. 도전 욕구가 불타올랐다.
좀 더, 좀 더 몰두해야 한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야, 대한.”
“왜?”
“한 판 더.”
“그래.”
“내기를 걸자.”
“……뭘 걸 건데?”
대한은 돈이 많은 부자가 되어버린 태석이 걸 것이 무엇인지 기대했다. 어차피 자신이 이길 테니까, 뭘 걸든 자신의 것이나 마찬가지다. 태석이 입을 열었다.
“지금 피씨방 후불 이용 시간이 몇 시간이지?”
“52시간 되었나.”
“3일 내내 한 건가. 아무튼, 그 후불 이용 시간 비용을 걸고 내기하자. 진 사람이 두 사람 몫을 내는 거다.”
꿀꺽.
지면 정말 자존심 상하겠군. 그보다 52시간이나 게임을 하다니, 대한과 태석은 정말로 미친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하면 헌터라도 힘이 부친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피곤해서 마력 보충제를 서너 개 먹었는데. 헌터가 되다 보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시간이 흐른 것도 모르고 미친 듯이 게임에 몰두한 모양이다.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에너지를 이상한 데에 낭비하고 있는 느낌이다.
“좋아. 그러면 이것이 문 오브 워 크래프트, 대한과 태석의 결승전이다.”
“또, 또 그 중2병 같은 발언. 어떻게 안 되는 거야?”
“신경꺼.”
태석이 그렇게 말하고 손가락으로 버튼을 클릭했다.
게임이 시작됐다.
그리고 졌다.
대한이 킥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날 채비를 했다.
“또 내가 이겼네. 그러니까 돈은 네가 내는 거…….”
파직.
태석의 눈에서 푸른 안광이 튀어나왔다. 감정 절제가 되지 않았던 탓일까. 분한 탓에 모르고 토르를 강신해버렸다. 이런, 강신을 풀어야겠다. 그보다 로키가 미친 듯이 시스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다시 싸우라고 난리였다. 지는 게 분한 건가. 태석도 분했으니 다시 경기를 요청할까, 협상할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데.
파지지직.
“으아아아아아아! 이게 뭐야!”
“아나! 이겨가고 있었는데!”
“뭐야? 방송국 실험이라도 하고 있는 거야?”
갑자기 피씨방이 정전되었다. 어째서이지? 정말로 방송국 실험이 시작된 건가? 어쨌든 태석과 대한은 할 만큼 게임을 했고, 마무리도 지었으니 문제없다. 다른 이들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자신에게 피해만 없으면 된다. 그러면 정전이 풀리기를 기다리고, 태석이 돈을 지불하고 나가면 된다. 그렇게 대한은 생각했지만…….
태석이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설마?!
“설마 너…….”
“실수로 정전시켜버렸어.”
“이럴 수가.”
말도 안 되는, 태석이 사고를 쳤다. 가끔 충전기 대용으로 휴대폰에 전력을 넣을 정도로, 인간 전기 발전기가 되어 버린 태석이었는데, 문제는 힘 조절을 잘 못하면 가전 기기를 망가트린다는 것이다. 변신은 자주 쓰지 않는 모양이지만, 천둥 같은 경우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올 정도로 거의 패시브로 튀어나온다고 했다. 태석은 그것이 동기화율이 높다고 했는데, 그 동기화는 무슨 뜻일까?
아무튼, 지금은 그런 쓸데없는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이 정전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한으로서는 떠오르는 것이 없다. 젠장, 지석 찬스를 써야 하나? 지석이라면 대한의 문제라면 몰라도 태석의 문제라면 반드시 해결해줄 것이다. 그러면 휴대폰으로 연락을…….
팟.
전기가 들어왔다. 대한이 한숨을 푹 내쉬며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고 안심했으나…….
“안녕하신가.”
순간, 암전됐을 때는 보지 못한 1m 90cm의 거구의 남자의 모습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대한이 화들짝 놀랐고, 태석은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겐세 노르도. 오셨군요.”
“그래, 태석. 전에 얘기했던 제안은 결정 내렸나?”
“당연히요.”
“그러면…….”
겐세는 태석과 대한을 차례로 보고 고개를 저었다. 수염이 산발되어 있고, 머리카락도 더럽게 길러서 장발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갑작스런 성천주의 등장에 웅성거리고 있었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태석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더욱 놀란 모양이다.
“여기서는 대화가 안 되겠군. 적당히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도록 하자.”
“네.”
대한과 태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보다…….”
겐세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꼴은 대체 뭔가? 노숙자 코스프레라도 되는 거야?”
“아…… 하하.”
대한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이미지 체인지라고 해야 할까요.”
“이미지 체인지라기에는…… 그냥 자연인 같다만.”
겐세의 비꼼에 태석이 단호하게 답했다.
“내츄럴한 감성이 좋지 않나요?”
“너도 김대한 같은 면이 있군.”
“……말이 심하네요.”
“미안하다. 고개 숙여 사과하지.”
“…….”
대한이 자연스럽게 자신 같다는 것을 욕이라고 받아들이는 오랜 친구와 성천주를 보며 심정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