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39. 천사의 강림
태석은 멍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 것은 알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전에 리치를 잡다가 궁지에 몰렸을 때도, 은호에게 궁지에 몰렸을 때도, 도달했던 장소였다.
처음에는 새하얀 방안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하늘의 별들이 정신없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원형의 곡선의 선을 그리는 장소였다. 땅은 모래가 흩날리고 건물이 폐건물처럼 부수어져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아 황량한 장소였지만…….
“뭔가 멋지네.”
그래, 태석의 한마디 평가는 바로 ‘멋지다’이다. 도저히 객관적으로 보아 멋진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나름대로 볼만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태석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토르는 어디에 있을까? 내친김에 로키도 만나 볼까.
이 공간에 있는 만큼은 현실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왜냐면, 강신 세계, 이른바 태석의 내면의 세상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자신만 있는 공간에서 시간까지 흐른다면, 참으로 기분 나쁘지 않겠는가. 아무튼, 태석은 걸어가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큰일 난다고. 길이라도 잃으면.”
태석이 고개를 돌려 남자를 쳐다보았다. 얄상한 외모에 초록빛 갑옷을 입은 남자였다. 키는 대략 2m 정도 되었으며, 토르에 비해 더 컸다. 태석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로키?”
“뭐, 그렇다고 하면 되지.”
“카드라도 주려는 거야?”
“아니.”
“…….”
“정말로 아닌데?”
태석이 불쌍한 얼굴로 쳐다보았지만, 로키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젠장, 그러면 쓸모없는데. 어서 돌아가자. 지금 천사로 변신하기 직전에 이곳으로 불려 와서 당황스러운 와중인데 카드도 안 준다니. 토르가 더 좋은 녀석이었다. 로키는 나쁘다.
로키가 말했다.
“너는 죽을 뻔했어.”
“세희의 몸을 점령했던 괴수를 말하는 거라면, 위험하지 않았어. 한스도 위험하지 않았고.”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멍청한 새끼야.”
“……?”
“너는 천사로 변신하려고 했지. 그건 인간의 육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런 관계로 변신 직전에 죽을 뻔한 너에게 접촉을 시도한 거고.”
“천사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신의 직속 사도니까. 성천주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지. 헌터로 따지면 랭크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다.”
“하지만 천사로 변신하지 않는다면 세희를 구할 수 없어.”
“그러니까 힘을 주려는 거다, 이 멍청한 놈.”
“묘하게 욕하면서 다 해주는구나?”
“어쩌라고.”
로키가 퉁명스럽게 말하고, 태석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뭘 하려는 거지?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로키가 생각이라도 읽은 건지 먼저 말했다.
“너는 우리 신들을 구해준 강신자다. 이 정도 포상은 주어도 되겠지.”
“뭘 하려는 거지?”
“이제부터 동기화율을 올리려고 한다. 그러니까 내 힘을 더 잘 쓸 수 있도록 이해도를 높여주려는 거지.”
“그래, 고마워.”
“……그러면.”
로키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 아플 테니까 견디도록.”
“어느 정도 아픔은 이제 견딜 수 있어. 익숙하니까.”
“아닐걸?”
쿡.
그 순간이었다.
무언가 충격이 느껴졌다. 뇌를 바늘로 쿡 쑤시는 기분이다.
겨우 이 정도야? 태석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이 정도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리치나 다른 녀석들에게 얻어맞았을 때에 비하자면 바늘로 살짝 살을 찌른 정도의 통증이잖아? 로키도 많이 엄살이 심한 체질인가?
하지만 그때였다.
콰직.
뇌를 으깨는 기분이 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크하하하하하하!”
로키가 기분 좋은 듯 웃었다.
이 사악한 자식! 태석이 괴성을 지르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강신 세계에서 풀려나 현실로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태석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세희는 어느새 정신을 차려 눈을 뜨기 시작했고, 태석이 환하게 빛나는 모습을 보았다.
언젠가 본 기억이 있는데, 이 장면 언제 봤던 거지?
그래, 어렸을 적에 보았다. 한스가 자신에게 기적을 행사하던 장면. 환하게 빛이 나는 장면을 보았던 것 같았다.
그때의 한스는 정말로 상냥했는데. 지금처럼 폭군은 아니었는데. 물론 그때의 모습은 연기였고, 죽기 직전 보여준 모습이 진심이었겠지. 그렇다면 자신은 한스가 연기한 모습을 사랑했다는 것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자신은 태석이 좋다.
세희는 태석이 좋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냥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픔을 잘 이해할 정도로 같은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목숨을 걸어서라도 자신을 구해주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이유에 한스의 폭탄을 막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었지만, 뭐 그건 그거고, 자신을 구해주려 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그렇기에 세희는…….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태석의 몸에서 새하얀 연기가 흘러나왔다. 얼굴에는 하얀 비늘이 살짝 덮여 있었으며, 눈은 노란색에 짐승처럼 쭉 째진 동공이었다. 그리고 더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아름답다.
순간 세희는 그것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면, 날개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등에서부터 사람 한 명 크기의 날개가 한 쌍. 각각 환하게 펼쳐져 하얀 깃털을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태석의 몸의 뒤편에서 후광이 비추어졌다.
멋있었다.
세희가 문득 손을 뻗었다. 손가락까지 길게 뻗어 태석을 향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쯤 엎드린 채로 내민 손을 태석은 손을 길게 뻗어 갖다 대었다.
후광이 빛나는 얼굴은 마치 천사 같았다. 현실에 천사가 강림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하지만 태석은 정말로 천사였다. 겐세가 문득 그 광경을 보며 말했다.
“이것이 천사…….”
태석은 미소를 지으며 세희에게 말했다. 세희의 손과 마주 잡아 포개며 말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앞으로 제가 천사화 할 수 있는 시간은 30초. 그러니 이제부터입니다.”
뭐가 이제부터라는 것일까?
“당신의 오랜 저주가 끝날 날이.”
세희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태석이 천사로 변신한 이유이기도 하니까. 바로 자신을 구해준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기분이 좋았다. 자신을 구하려 한다는 사실이, 이런 멋진 남자가 구해준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좋았다.
세희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좋아요.”
“그러면…….”
태석의 몸에서 새하얀 기적이 흘러나왔다. 눈이 부셔서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빛이었다. 세희는 눈이 점멸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눈을 감지 않았다. 너무나도 기분 좋은 빛이라 계속 달려들고 싶었다. 몸만 가능하다면 당장 태석에게 안기고 싶을 정도였다.
화악-.
성천주와는 비교도 안 되는 기적이 세희를 덮쳤다.
이제 저주가 끝이 났다.
전설이 여기서 시작한다.
대한은 그런 문구가 참으로 멋있는 문구라고 생각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 문구가 나올 때면 여태까지 고생고생하여 성장한 주인공이 피투성이로 일어나 노성을 터트리며 무언가 각성을 했기 때문이다.
각성은 정말로 좋은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순간에서의 각성은 주인공의 멋있음을 한결 끌어 올려준다.
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대한은 자신다운 생각이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그런 생각을 지금 결승전에 올라온 시점에서 하는 것은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좋은 조에 걸려서 간신히 이겨서 이제 결승전에 올랐는데…… 뭐랄까, 자신은 영원한 콩이 될 것 같았다.
왜냐면, 지금 자신의 앞에는 전투 대기 중인 태석이 있거든. 서 있는 채로 대회장에서 대회가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는 태석이.
노력하면 되지 않냐고? 결승전에 올라올 정도의 실력이 있었으니 태석과 비등대등하지 않겠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그런 소리를 한다면 한 대 치면서 정신 차리라고 할 거다. 물론 겁쟁이라 대한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태석은 겐세에 의해 소문이 퍼진 상황이었다. 천사로 변신했다는 소문 말이다.
성천주 내부 커뮤니티를 아카식 레코드에 구축해놓았는데, 그곳에서는 어느새 태석이 유명인이었다. 천사를 강신한 위대한 인물이라고 말이다. 벌써 우주의 몇몇 이종족 성천주들은 태석을 만나고자 준비하고 있다고 하고 있었다.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란은 어느새 태석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고, 시연은 더욱 집착이 심해져서 이제는 태석 콜렉션으로 무언가를 모으기 시작했고, 겐세도 처음으로 남자가 멋져 보인다고 한다. 뭐야, 이런 멋있는 남자. 이런 남자가 정말로 자신의 친구인가? 믿기지 않는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도 대회는 계속 진행되었고, 일반인들은 태석이 지하실에서 한스를 죽였다는 사실도, 변신했다는 사실도 모른다.
그러니 대회는 속행되었고, 태석과 대한이 나란히 결승에 올라온 상황이다.
태석이 푸른 안광을 휘날리고 있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저거 능력을 사용하면 자동으로 생기는 거야, 아니면 태석 특유의 중2병 탓에 안광을 일부러 휘날리고 있는 거야? 후자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태석은 중2병은 맞지만, 대한이 알고 싶은 사실은 아니니까.
태석이 말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네. 결승전.”
“그래, 꽤나 길었던 날인 것 같아.”
“나는 언제나 모두가 해피 엔딩이었으면 해.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거야. 그게 꿈이야.”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대한은 일부러 비꼬는 것이 아니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야 눈앞의 태석부터가 불행의 아이콘이었고 이제 인생이 피기 시작한 것인데, 태석이 해피 엔딩을 원한다니까 웃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는 하고 싶지 않지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가능하지 않으니까 원하는 거야. 그러니까 싸우자.”
“그래.”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설마하니 네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당연히 아니죠. 아니고 말고요.
태석이 진심으로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돌진했고, 대한은 생각했다.
아아, 즐거운 경기였다.
모두 안녕. 대한이는 이제 끝입니다.
대한이 패배했다.
패배했지만, 묘하게 만족스러웠다. 정말 빠르게 경기가 끝난 기분이었고, 요약하면 한 줄 요약 외에는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덧없는 경기였지만, 대한은 만족했다.
왜냐면, 친구와의 경쟁은 즐거우니까. 무엇보다 한스 같은 악인에 의해 사람 수백 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은 아니니까.
아아, 괴수 사냥이 이렇게 리스크 없이 즐거웠으면. 애당초 괴수가 없었으면, 그래서 자신의 친구인 태석이 안전한 삶을 누리고, 괴수 사냥에 미쳐서 날뛰지 않았다면…….
그것은 해피한 삶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대한은 문득 생각한다.
괴수가 없었다면, 지금의 태석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그보다 겐세가 태석에게 뭔가 부탁이 있다고 했는데, 무슨 일이었을까?
태석은 이제 어디서 날뛰게 되는 걸까?
왠지 자신은 잠시 태석의 일대기에서 퇴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태석의 1등으로 경기는 끝이 났다. 1등을 하여 트로피를 받았고, 상금도 넉넉히 입금되었다. 한스에 대한 사태의 법적인 마무리도 끝이 났고, 정당방위로 끝맺었다. 또한, 발견된 폭탄은 50개 정도로, 도시 일대가 날아갈 정도의 규모였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아니 정말 끔찍한 일이 일어날 뻔했구나, 하고 실감하게 된다.
어찌 됐건, 태석은 집으로 향했고, 여동생이 차량의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언제나처럼의 태희였다. 태석은 잠금을 풀고 문을 열라고 신호했다. 태희가 입꼬리를 올리며 차에 탔고 태석에게 말했다.
“1등이더라.”
“그래, 1등이지.”
태석이 액셀을 밟아 전진했다. 천천히 안전하게 운행한다. 태희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히. 자신은 헌터니 괜찮을지 몰라도 태희는 일반인이니까. 작은 생채기에도 죽는 존재가 인간이다.
태희 어두운 하늘을 보고 있었다. 별이 밝았다. 그러고 보니 태희와 있을 때는 항상 별이 밝았다. 태석은 살짝 시선을 돌려 별을 보다가 다시 앞을 보았다.
태희가 말했다.
“뭔가 몰린 것 같았는데. 지금은 또 여유로워 보이네.”
“경기가 끝났으니까.”
“경기가 끝났다라……. 경기 말고 다른 게 또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인데.”
“왜 그렇게 생각해?”
“경기 따위는 집어치우고 뭔가 하기 위해 달려가고 싶다, 이런 심정이 목소리에서 느껴졌었거든.”
“예리하구나.”
이래서 숨길 수 없다니까. 어렸을 때부터 태희는 자신의 속마음을 너무 잘 눈치챘다.
언젠가 태희가 살이 찔까 봐 과자를 감추었을 때도 태희는 잘도 찾아내서 먹었지. 뭐, 그런 것과는 관계가 없으려나? 태석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고, 말을 시작했다.
겐세와 만난 이야기, 뭔지 모를 색욕의 악마와 마주한 이야기. 한스라는 성천주와 싸운 이야기, 폭탄의 존재 유무 등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태희는 동요나 불안한 기색 없이 그저 기분 좋게 웃었다.
“나름 잘 마무리된 모양이야. 정말 다행이네.”
“그보다 대회 구경하러 온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뭐, 오빠가 나서는 대회인데 말 안 해도 가야지.”
“그러냐…….”
“그렇지.”
태석한 하품을 길게 했다. 졸립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운전 중이니까. 마력 소모가 너무 커서 그랬나.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태석은 마력 보충제를 입에 넣고 씹었다. 알약 형태의 마력 보충제는 마력을 잠시나마 보충해준다. 헌터들에게 있어서 피로 회복에 직방이다.
태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있어.”
“뭔데?”
“색욕의 악마. 그 사람에 대한 일은 아직 뭔가 남아 있지 않아?”
“그렇지.”
태석과 태희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아무리 친밀하다 해도 가족이다. 이미 할 얘기는 살면서 많이 해서 더 할 이야기도 없다.
태석은 문득 생각했다.
그렇지…… 색욕의 악마에 대한 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겐세가 자신을 불러 무언가 요청을 했고, 수락했다.
태석은 미소를 지으며 그때를 잠깐 회상했고, 확신했다.
그 녀석이 어떤 존재인지는 몰라도 무찌를 수 있었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 녀석이 어떤 나쁜 짓을 구상하는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막아내고 영웅이 될 것이다.
영웅이 되는 게 목표인지, 막는 것이 목표인지 이제는 태석도 잘 모르겠지만.
차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태석이 이야기도 끊임없이 나아갔다.
어느새 태희가 꾸벅꾸벅 졸다가 완전히 잠에 들었다. 태석은 그것을 차량 거울로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목적지까지는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