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38. 천사로
“도대체 무슨 방법을 쓸 생각이지?”
겐세 노르도는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아무리 정화가 성천주들의 기본적인 기적이라고 해도 언데디에이션 같은 불치병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정화 쪽으로 재능이 있던 한스 셸 정도가 유일하게 완화 가능했다.
그렇기에 겐세는 세희를 죽일 마음까지 먹은 상태였다. 정령술사에 언데디에이션의 S랭크 헌터는 언데디에이션에 의해 사악하게 변질하면 처리하기 곤란해지니까 죽여야 한다.
그런데 태석은 자신이 죽지 않게 할 거라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이라는 거지? 무슨 방법일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태석이 눈을 감고 미소를 지었다.
“카드는 있나?”
주변의 그 누구에게도 묻는 게 아니었다. 태석을 의아하게 보는 동료들이었지만, 태석은 신경 쓰지 않고 내면의 신들에게 묻는다.
토르와 로키는 대답했다.
[토르가 없다고 대답합니다.]
[로키도 그런 카드는 없다고 대답합니다.]
역시…… 일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새로운 카드를 얻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새로운 카드로는 세희의 언데디에이션을 완치할 수 없다. 그렇기에 가능한 방법은 단 한 가지로 압축된다.
여태껏 자신이 얻은 두 신, 로키와 토르를 이용하는 방법.
토르의 신화를 살펴본다.
누군가를 구해준 적은 있지만, 누군가의 질병을 고친 적은 드물다. 몇몇 설화를 뒤져보면 나올지도 모르지만, 태석은 토르의 힘을 천둥과 비바람 정도로만 쓸 수 있다. 더 세세하게 쓴다 해도 파괴 용도인 묠니르를 소환하는 정도가 다였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로키다.
로키는 변신을 한다. 그 외에 다양한 기술을 더 쓸 수 있는 듯했지만, 아직 익숙지 않았기에 변신 외에 다른 것은 쓸 수 없었다.
그 변신은 형태가 단순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직접 보고 겪은 자로 변신이 가능하다. 그리고 대부분 여성체로 변신한다. 그리고…… 옷이나 여러 가지를 커스텀하여 원본과 다르게 변신도 가능하다.
그러니까 변신의 범위가 너무 넓어 변신하기에 애로사항이 많으니 실제 인물을 베이스로 조금씩 수정하여 변신하는 느낌이다.
‘변신. 변신을 통해서 세희를 구해야 한다.’
세희가 입꼬리를 올렸다.
“고민하는 모습이 보여…… 요. 분…… 명 답이 없…… 겠지…… 요.”
“답은 있습니다. 제 눈앞에 답이 보여요.”
“죽는다는 거…… 요?”
“아니요. 당신이 살 수 있다는 거. 확실히, 분명히, 명백하게.”
“저는 자신의 주인을 죽였습니다. 성천주를 죽인 거…… 예요.”
“그건 성천주가 당신을 괴롭혔기 때문이고, 최악의 행동을 막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기뻤어요. 죽인 것이 즐거…… 웠어요.”
“당연히 즐겁지.”
태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은 선행을 한 거니까.”
“선행…… 이라고?”
세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선행이라고? 자신이 선행을 한 거라고? 물론 성천주를 죽인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성천주가 타락하여 수백의 인간을 죽이려 했으니 죽인 것이 잘한 일이 되었다. 그러니 세희는 선행을 한 것일까? 분명 눈앞의 사내, 태석은 세희가 선행을 했다고 말해주었다.
하하, 웃기지도 않는다.
죽어가는 와중에 선행인지 악행인지 고민하는 게.
죽으면 끝인데. 소중한 무엇이 있건 끝인데.
눈앞이 흐려진다. 언데디에이션에 의해 검은 기화가 피어오르는 게 눈에서부터 느껴졌다.
몸이 점점 가벼워진다. 서서히 몸의 통증이 잦아들려고 했다.
이제 끝인가.
그래, 나쁘지 않은 삶이었어.
비록 반평생을 건강치 못하고, 성천주에게 폭력을 당했다지만…… 적어도 끝은 좋았다. 선행을 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그러니 당신을 죽게 내두지 않아. 선한 사람은 언제고 행복해야 해.”
무슨 소리일까. 눈앞의 태석이라는 남자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어째서 자신을 도우려는 걸까.
자신을 좋아해서? 그런 간단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비록 세희의 외모가 아름답더라도 예쁘니까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
태석은 이미 말했다.
세희가 선행을 했다고.
아아, 겨우 그런 이유로 자신을 구하려 한 것인가.
선한 사람을 구한다는 이유로? 악한 자는 죽이고, 선한 자는 살린다는 간단한 권선징악의 논리로?
그렇다면 만족이다.
어디 살려봐라.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팟.
태석의 몸이 환하게 빛났다.
변신을 시작했다.
녹색의 기화가 피어오르고 이내 새하얀 연기가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 연기가 거두어지고, 태석의 모습이 보였다.
태석은 금장발의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한스 셸을 닮았으나, 한스 셸은 아니었다. 한스와는 다르게 그 누구보다 선해 보였다.
“대, 대체…….”
겐세가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태석이 한 행동은 기적으로도 설명하기 힘들다. 모습만 변한 게 아니라 능력까지 변했기 때문이다. 마치 한스 셸의 능력을 복제한 마냥 정화의 기적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종류의 마법은 듣도 보도 못했다. 설마하니 태석의 헌터로서의 능력인 것일까? 그렇다 쳐도 대단하다.
‘말도 안 돼.’
기적보다 더 기적이다.
마치 신의 권능 같다, 변신은.
“이것이 변신입니다.”
한스의 능력을 따라 할 수 있다. 손을 뻗어 새하얀 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며 태석은 알 수 있었다.
‘일순간 성천주가 되었어.’
태석은 손을 뻗어 손가락을 드래그하듯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아카식 레코드에 접근할 수 있었다.
‘로키의 변신으로 아카식 레코드에 접근이 가능하군.’
그렇다면 일단 정화의 능력으로 언데디에이션을 막기 전, 빠르게 검색하도록 하자.
변신이 언제고 가능하다는 보장은 없기에, 그리고 알고 싶은 정보가 있기에.
약간의 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세희는 아직 30분 정도 살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까.
서둘러 검색을 진행했다.
‘어디 보자…….’
키워드를 고민했다. 키워드를 입력해야 검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워낙 방대한 정보들이 시스템 창에 떠올라 있었기에 검색 없이 찾으려면 반나절은 걸린다.
‘먼저…… 악마 추종자.’
악마 추종자들에 대해 검색했다. 곧이어 정보가 좌르륵 떠올랐다. 태석이 알고 있는 정보들이 대부분이었다. 딱히 겐세가 숨긴 것은 없는 듯했다.
더 중요한 정보, 어디에 없을까?
겐세가 검색할 당시 몰랐던 정보를 키워드에 추가하면 될 것 같았다. 태석은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다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그 키워드를 추가하면 될 것이다.
태석이 한스 셸이라는 명령어를 악마 추종자와 함께 검색했다.
그러자 놀라운 정보가 떠올랐다.
[S.Y.S.]
SYS에 대한 정보였다. 태석은 서둘러 그것을 클릭했다. 엄청난 분량의 논문 같은 내용이 좌르륵 튀어나왔다. 태석은 난감했다. 이걸 다 읽으려면 30분은 넘게 걸릴 것 같은데? 그러면 세희가 위험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그거, 프린트 가능해.”
“그렇습니까?”
겐세의 말에 태석이 곧장 대답했다.
뭐야, 프린트까지 가능하다니 완전 컴퓨터잖아? 아카식 레코드라는 것은 결국에는 프로그래밍 된 언어와 비슷한 면이 많은 것인가? 게다가 검색을 하는 식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비슷한 형식인 것에다가 프린트까지 가능하다니……. 컴퓨터를 좋아하던 인간이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다.
물론 평범한 인간은 접근조차 불가능하니 뜬구름 잡는 소리겠지만.
태석은 서둘러 프린트를 했다. 시스템창에서 종이 뭉치가 책의 형태로 튀어나왔다. 태석은 그것을 뒷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한스 셸의 여성체의 모습인 채로 세희를 보았다.
세희는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태석이 손을 뻗어 언데디에이션을 정화하기 위한 기적을 준비한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서서히 빛이 모이고, 기적이 손쉽게 쓸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하게 느껴졌지만…… 부족하다. 이 정도로는 언데디에이션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좀더 상위의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스는 성천주였다. 헌터보다도 강한 성천주. 그런데…… 그것보다 상위가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언데디에이션을 치료할 수 없는 걸까?
“포기하지 않아.”
태석이 자신에게 주문을 외우듯 그렇게 말하고 사고를 가속한다.
한스가 불가능하다면 그보다 상위의 힘을 활용하면 될 뿐이다. 분명 상위의 힘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대체 뭐지? 감도 안 잡힌다.
그러니 성천주의 개념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성천주는 허공에서 생겨난다는 느낌으로, 그렇게 태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아카식 레코드에 의해 이 세계의 기본 상식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 성천주가 자연발생체인 것 같지만, 사실 아니다.
이론상에 의하면 성천주들은 각자 자신에게 어울리는 천사에게 선택받아 생겨난다고 한다. 마치 흙에서 인간을 빚어내듯이, 허공에서 천사에 의해 빚어져 탄생한다.
잠깐, 거기서 생각이 확 하고 튀어 들어왔다.
천사에 의해서…… 천사, 천사? 그래, 그거다.
천사.
천사로 변신하면 된다.
한스 셸의 상위 개체인 천사로.
하지만 무슨 수로? 가능할까? 자신이?
아니, 가능하다.
자신은 신까지 다루는 강신자다. 고작해야 신의 하수인인 천사로 변신하지 못할 리 없다.
자신은 로키의 힘을 믿는다. 동시에 신을 다룰 수 있는 자신을 믿는다.
태석이 눈을 감고 변신을 시작한다.
천사로.
성천주로 변신한 것도 모자라 천사로 변신이라…….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는 것 아닐까 싶었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흐, 끄르르륵…….”
세희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검은 기운의 정체는 언데디에이션으로 인한 괴수의 기운일 것이다. 이전에 새하얀 빛은 빛의 정령을 이용한 것이었고, 이와 같은 빛 계통 능력을 고의로 사용하여 언데디에이션을 더욱 억제하는 역할도 같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정도로는 소용없었다.
언데디에이션을 막으려면 태석의 능력이 필요했다. 로키의 변신 능력 말이다. 지금은 한스로 변신한 상황이었고, 사실 여자 모습의 한스였지만…… 어쨌든 세희에게 간단한 언데디에이션 억제 기적을 사용했다.
정화의 기적을 사용하기 위해 눈을 감고 새하얀 빛의 덩어리를 모았다.
과연, 이게 기적이라는 것인가. 세상의 시스템 중 일부를 가져온다는 느낌이다. 마력을 사용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다는 감각은 전혀 없었다. 단순히 치트키를 치기 위해 시스템창에 몇 가지 영단어를 치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런 느낌으로 태석은 능력을 활용했고, 새하얀 빛이 세희에게 적중했다.
“허, 허억…….”
호흡이 거칠다. 된 건가? 어쨌든 된 거겠지? 왜냐면, 세희도 아까보다 숨이 낫고 검은 기운은 여전했지만 적어도 괴로운 표정은 아니고, 무엇보다 몸을 가눌 수 있는 듯 천천히 일어나려고 했으니까. 괜찮을 것이다. 괜찮을…… 거다.
“으아아아아아아아!”
하지만 그때였다.
세희가 비명을 질렀다.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뒤에 서 있던 대한과 시연이 그 기백에 놀라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곧이어 검은 기운이 팍 하고 세희의 주변에서 터져 나와 겐세가 정통으로 맞아 벽에 맞고 나가떨어졌다.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면서 기적을 사용하려 했다.
“윽!”
화르륵!
흡사 불길이라도 되는 양 검붉은 기운을 덮어쓴, 세희의 손길에 스쳐나간 검은 기운이 겐세 노르도의 기적을 막고 부딪쳐 부수어버렸다.
팡!
기적이 터져나가고, 겐세에게 검은 기운이 적중. 겐세의 의식이 간당간당했다. 겨우겨우 누워서 상황을 지켜보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태석은 순간 당황했다. 저게 뭐지? 하지만 태석의 뇌를 직격하고 정보의 홍수가 쏟아져 들어왔다. 임시 성천주나 다름없는 상황이기에 아카식 레코드의 정보 중 필요한 것들이 태석의 뇌 속을 침투한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현재, 세희의 육신은 언데디에이션의 여파로 괴수 하나가 점령한 상태였다. 언데드화 된다고 해서 언데디에이션이라고 부르는 질병의 이름은, 사실 죽은 괴수들의 영혼을 볼 수 있게 되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괴수 하나든 둘이든 몇 마리의 괴수에게 동화되어 광기에 휩싸이고, 심하면 괴수로서의 힘을 얻게 된다고 한다.
지금 세희는 죽은 괴수의 영혼이 안에 들어온 상황. 자신이 막는다면 세희는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천사로 변신하여 세희의 언데디에이션을 완치하면 끝나는 일.
자신이 가능할까? 정말로?
의구심이 든다. 자신이 실패하고 세희가 죽고, 슬피 울면서 장례식을 치르는 그런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하지만 고개를 젓는다.
“해내야만 해.”
발을 한 걸음 내딛는다.
세희를 노려본다. 세희의 눈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검붉은 귀기가 주변을 맴돌았다. 세희의 뒤편으로 거대한 괴수의 눈이 희번덕거린다는 착각이 든다. 착각은 아니겠지. 실제로 세희의 육신에는 괴수가 들어있는 상황이니까.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뭘까?
웃기지도 않는 생각이다. 간단하잖아?
“세희의 속에 있는 괴수를 묵사발 낸다.”
정화의 기적을 몸에 머금고, 동시에 속성 단검을 역수로 든 채 정화의 기적을 속성 단검에 싣는다.
새하얀 빛이 그곳에 담겼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 비싼 단검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이대로 가다간 내구도가 다 터져나가겠어.
뭐, 상관없다.
세희와의 싸움 동안에만 멀쩡하면 된다.
그러면 대결 시작이다.
세희가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지하실 전체가 울렸다. 괴수의 비명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실제로 괴수가 지르고 있는 것일 테니까. 인간에게 죽은 어떤 괴수가.
세희의 손에서 검붉은 기운이 흩날렸다. 그것을 모으고 있었다. 제기랄, 모으게 내버려 두면 안 된다. 태석이 서둘러 돌진했다. 달린 것이다. 성천주는 S랭크 헌터와 능력이 같다. 그렇기에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빠르게 이동이 가능했다.
문제는 세희 또한 S랭크 헌터의 육신이었고, 실제로 성천주 한스 셸을 간단히 처리했으니까. 위험하다.
세희의 몸이 빠르게 움직여 접근한 태석의 단검을 스치듯 피했다. 하지만 태석이 미소를 지었다. 됐다. 스치기만 하면 된다.
하얀빛이 스친 상황. 세희가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 했다. 스치기만 했는데 아프다니, 끔찍할 거야. 태석이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세희의 육신을 빼앗은 괴수에게 소리친 것이다.
“이봐, 괴수. 제법 아플 거야. 정화의 기적이 담긴 단검이니까. 그 기적에 스치기만 해도 정화의 대상인 사악 그 자체인 괴수인 너에게는 끔찍한 고통이겠지.”
“끄아아아아아아?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이 제법 고통스럽다. 세희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검붉은 기운이 반절 깎여 나갔다. 순간순간 세희의 본래의 몸이 보였다가 말았다가 했다. 그 정도로 충분하다. 어느 정도 괴수에게 타격을 줬다는 소리니까.
세희가 괴성을 지르며 돌진했다. 태석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이제 검은 기운을 날릴 정도의 기운도 없나 보군. 태석은 적당히 공격을 피했다. 피하고, 피하고, 피했다. 세희는 휘두르고, 휘두르고, 넘어졌다.
넘어진 채로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려 했고, 입을 움직여 말을 지어낸다.
“으, 아, 아.”
“뭔 말을 하려는 거지?”
“내, 부모를, 죽였어, 너는.”
“?”
태석은 순간 튀어나온 목소리에서 누군가가 겹쳐 보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렇군. 그런 거였어. 굳이 세희의 몸을 빼앗으면서까지 태석을 노리는 괴수라면, 단 하나뿐 아니겠는가. 5살 어린 시절에 괴수 하나가 자신을 덮쳤으니까. 정확히는 자신의 부모를 죽였으니까. 자신은 그 괴수를 죽였다.
모스키토.
그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자신의 부모를 죽인 태석에게 화를 내면서 세희의 육신을 빼앗아 차지한 것이다.
“줄곧 노린 거야? 나를?”
“그렇, 다.”
모스키토가 세희의 입을 빌려 대답했다. 태석이 고개를 저으며 넘어진 채 허우적거리는 세희의 몸에 기적을 담은 속성 단검을 스치듯 살짝 베었다. 그러자 세희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고, 순간 검은 기운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리는 착각이 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귀에서 울려 퍼졌으니까.
그것은 5살 그때의 상황에 대한 환청일까, 아니면 실제 소리일까.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대한이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정말로 끝난 거겠지? 내가 플래그 드립 하려는 벌로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적어도 대한 씨 헛소리를 올곧게 듣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것도 슬픈데.”
시연과 대한을 보며 씁쓸하게 웃고, 태석은 겐세를 보았다. 겐세가 물었다.
“이제 어쩔 셈인가?”
“간단합니다. 천사로 변신하여 세희의 육신에 남아 있는 언데디에이션을 완전히 제거할 겁니다.”
“천사로…… 변신한다고? 그게 가능 할 리가…….”
“제가 해온 일들을 보면 가능할까요, 불가능할까요?”
“으음…….”
가능할 것 같다. 태석은 여태껏 듣도보도 못한 신기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으니까. 가능할 것이다. 가능은 한 데…….
“정말이지 계속 놀라게 하는군.”
어쩐지 태석과 활동하면 재미없는 날이 없을 듯싶었다.
태석이 가만히 쓰러진 세희를 보았다. 눈을 감고 천사처럼 잠들어 있었다. 천사처럼이라……. 예전과 달리 조금 신박하게 들리는 단어였다. 왜냐면, 이제 변신할 거잖아? 천사로. 태석이 손을 뻗고 누워있는 세희를 향해 말했다.
“그동안 고통받아 왔을 겁니다. 앞으로도 이 일이 해결된 이후에도 계속 고통이 있겠지요.”
태석이 미소를 지었다. 상냥한 미소였다.
“하지만 당신은 강하니까 언제든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꿈틀.
착각일까.
기절한 세희가 웃는 것 같은 기분은.
뭐, 착각이어도 된다.
이제부터 태석은 변신을 시작할 것이었다.
눈을 감고, 로키의 능력을 쓰기 위해 모든 기운을 집중했다.
그리고 의식이 뒤집힌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 느꼈던 것일까……? 익숙하다는 느낌이다. 그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신의 능력을 얻었을 때, 토르와 로키의 힘을 얻었을 때 도달했던 장소.
강신 세계.
그 세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