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37. 허락 못 해
크르르르르르-.
한스의 육신은 검붉은 기운을 흩뿌리고 있었다. 금발의 아름다운 외모의 청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흉악한 짐승 같은 표정에 괴물이 서 있을 뿐이다.
역시나, 악계자가 된 녀석들은 모조리 미친놈이 된다. 눈앞의 한스는 호흡을 길게 내뱉었다. 징그럽게도 검붉은 연기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입 냄새가 심하게 날 것 같았다. 입 냄새라기보다는 저주라도 걸릴 것 같다. 저 연기에 맞으면.
대한은 살짝 겁에 질린 채로 태석을 보았다. 시연 또한 태석을 보았다. 겐세는 악계자 한스를 노려보았다.
대한이 말했다.
“그보다 어쩌지. 뭔가 만화 같아.”
“이 와중에 만화 생각이신가요.”
시연이 경멸하는 표정으로 대한을 보았다.
대한이 허둥지둥거리며 말했다.
“그야 그렇잖아. 만화에서는 보통 악인이 처음에는 멋지게 나오다가 발린 뒤에 다시 부활할 때 못생겨져서 부활하거든.”
“그 말을 하는 저의가 뭔지 궁금한데요.”
“그러니까…….”
대한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한스 끝이라고.”
“잡담은 거기까지다, 인간들.”
겐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대화를 잘라내었다. 그리고 태석에게 말했다.
“태석, 여기서는 리더 격인 사람이 너뿐인 것 같으니 묻겠다.”
“물으시죠.”
“이제 어쩔 거지?”
“간단합니다.”
한스는 그저 검붉은 연기를 뿜으며 태석 쪽에서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석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저 혼자 다합니다.”
“뭐?”
겐세가 무슨 의미냐고 묻기도 전이었다.
팟!
태석이 발을 내딛으며 한스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한스는 재빠르게 몸을 뒤틀어 공격을 피했다. 예측했다. 이쯤은! 태석이 미리 응축해둔 전격을 한스를 향해 뻗었다. 한스의 육신에 전격이 파묻혔다.
파지직!
깔끔하게 전격이 쑤셔 들어간 타격음이 들렸다. 태석이 미소를 지으며 시연에게 외쳤다.
“이제 빛 속성 마법을!”
“네? 네!”
혼자 다 한다면서! 시연은 아까와는 말이 다른 태석을 살짝 원망했지만, 하긴 적 앞에서 모든 정보를 말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럭저럭 괜찮은 지시였기도 했고.
시연이 빛 마법을 빠르게 준비하고, 쏘았다.
빛 마법이 빠르게 날아가 일직선의 형태로 빛의 선을 그었다. 그리고 한스에게 깔끔하게 슛.
“농구 같네.”
대한의 말이 맞았다. 깔끔한 농구공의 슈팅을 보는 기분. 제법 먼 거리에서 돌진하는 한스를 잘 맞추었다. 대한의 실력으로는 아직 불가능한 일이었고, 시연은 성공했다.
만약 대한에게 빛 마법이 있었고, 지시했다면, 성공했을까?
했을 거야. 대한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 안 되더라도 나중에라도 그렇게 되게 만들면 된다.
대한은 낙담하지 않는다. 비록 D랭크더라도 성장하고 말 것이다.
대한이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는 식으로 생각했지만, 끝은 나지 않았다.
크르르르르르르!
한스가 돌진했다. 아니, 돌진하고 있다고? 어째서? 전격 마법도 꽂혀 들어갔고, 악마의 약점인 빛 마법도 깔끔하게 꽂혔다. 그런데 어째서?
아아, 잊고 있었다.
“성천주였잖아!”
대한이 소리쳤다.
한스는 성천주였다. 외양이 악계자와 비슷해져 있었지만, 선한 면이 많은 존재였다. 천성적으로 선하나 성격은 악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런 성천주가 악계자처럼 변한다면? 속성은 어떻게 변할까.
무다. 없다는 소리다. 속성이 전혀 없는 존재, 그야말로 약점이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존재는 어떠한 공격도 통하고,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애당초 위력이 강해야만 한다.
전격 마법과 빛 마법으로는 부족했던 걸까.
어서 공격을! 대한이 어둠 마법을 준비하고 쏘려고 했지만, 이미 한스는 근거리까지 접근했고 거대한 검은 손톱을 만들어 휘갈기려 했다. 손이 마치 곰의 그것처럼 거대하게 변질했다. 그것을 휘둘러 대한과 시연을 단숨에 덮치려고 했고…….
쾅!
그것을 막는 이가 있었다.
“……!?”
“사, 살았다…….”
대한이 숨을 들이켜며 눈앞의 등을 보이고 한스를 막고 있는 존재를 보았다.
그 존재는 예전에 본 적 있다. 정확히는, 대회 때 태석과 붙는 모습을 보며 본 적이 있었다. 그런 그녀가 어째서 이 자리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예측할 수 있었다.
성천주였던 한스 셸의 부하 헌터였기 때문이다.
세희.
그녀가 대한과 시연에게 등을 보인 채 한스의 공격을 막으며 태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세희가 얄미운 것을 보는 표정으로 한스를 보았다.
“이제 복수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세희의 몸에 새하얀 아우라 요동쳤다.
그 무엇보다 새하얗고 순수한 빛이었다. 이전에 태석과 싸울 때 보이는 검은 아우라와는 다른 느낌으로 강해 보였다. 태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시던가.”
세희는 어렸을 적 불행한 질병에 걸렸었다.
언데디에이션.
오크와의 성행위에 의해 감염된 언데디에이션의 보균자였던 어머니를 두었고, 그 딸로서 언데디에이션이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하여, 폐기 처분 비슷하게 죽음이 선고된 뒤였다.
그런 그녀를 내버려둘 수 없던 부모는 그녀를 어떤 남자에게 맡겼다.
정화의 성천주, 한스 셸이 바로 그 남자였다.
한스는 언제고 세희에게 말했다.
[너는 정말 아름다워.]
항상, 항상, 듣기 싫다고 해도 계속해서 그렇게 아름답다고 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왜냐고? 칭찬을 하는 데 싫어하는 자는 없잖아. 자신은 그런 한스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느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기념일이나 기분 같은 것을 모두 신경 써주며 사랑해주었다. 한스는 그렇게 자상하고 멋진 남자였다. 완벽해 보이는 남자였다. 살짝 나르시스트인 것 같았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잘해주니 다행이다. 자신의 저주 또한 어느 정도 억제시켜주고 있고, 헌터로 각성하니 이제 완전히 그에게 예쁨받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헌터로 각성하자 한스는 화를 냈다. 그날 두들겨 맞은 것은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한스가 말했다.
[어째서, 네가 헌터가 된 거지? 너는 내 것이야. 남의 것이 될 수 없어.]
그때는 어째서 자신이 헌터가 된 것을 미워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이해했다.
이 남자는 영원히 세희가 자신에게만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길 원한 것이다. 헌터라는 신분 상승 같은 일은 세희에게는 절대 없어야 하는 일이라고, 남자는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자신에게만 의지하는, 그런 애완동물 같은 여자. 그런 것을 한스는 원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두들겨 맞고, 훈련받고, 괴로웠다. 죽고 싶다. 그때부터 자신의 인생은 무채색이었다.
그리고 그 인생이 반복되고 지금에 이르러서 세희는 한스를 죽일 기회를 얻었다.
세희가 말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쓸모없는 존재가 된 기분은.”
세희가 비꼬면서 말했다.
한스의 목은 잘려나가 있었다. 정령술을 적당히 잘 사용하여 목을 잘라낸 것이다. 태석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세희는 한스를 죽일 수 있었다.
기분? 너무 좋았다.
그야 자신을 거의 반평생 괴롭히던 남자가 자신의 손에 의해 죽었다. 너무 속이 후련하다. 백오십 년은 묵은 체증이 훅 내려가 소화되는 기분이다. 그 정도로 좋았다.
“후우, 정말 좋네.”
숨을 들이켜며 말했다. 괜히 더 말해본 것이다. 이미 아는 데도 어째서 자신은 그런 사실을 속없게 드러내면서까지 말한 것일까. 애당초 어째서 자신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까. 세희가 발에 힘이 풀렸다. 몸이 휘청하고 쓰러져 주저앉았다. 태석이 그런 세희를 보며 말했다.
“허탈하죠?”
“당신이 뭘 안다고…….”
“나도 허탈했거든. 그때, 5살 때.”
“……?”
그때 세희가 눈을 꿈벅였다. 그리고 쓰게 웃었다. 그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어렸을 적 친구들의 인터뷰 방송을 통해 알고 있었다. 왜냐면, 태석은 유명 인물이고, 많은 이들이 알고 싶어 하던 사실이니까.
5살 때, 가족이 F급 괴수 모스키토에게 살해당하고, 5살의 몸으로 모스키토를 죽인 녀석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헌터의 자질을 보였다고, 부럽다고. 그런 인터뷰가 있었다.
부럽기는 뭐가 부럽단 말인가. 세희는 눈앞에 태석이 슬픈 표정으로 있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이 자도 만만치 않게 불행하다. 기연을 얻어 이제 인생이 피고 있지만, 불행하기로는 자신과 매한가지였다.
같은 S랭크가 똑같이 불행하다라, 뭔가 말이 되는 이야기였다.
속설로, 괴수를 증오하는 마음이 클수록 더욱 강한 헌터가 된다는 것이니까. 그러면 자신은 괴수를 증오하지는 않았는데 어째서? 아아, 언데디에이션 때문인가. 그러면 말이 된다.
세희가 말했다.
“그때, 기분 어땠어요?”
세희가 물었다.
무슨 의미지? 태석이 물었다.
“뭔 소립니까?”
“지금 위로할 게 필요하거든요. 저보다 불행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 기분이에요.”
“정말 성격 나쁘시군요.”
“어렸을 때부터 학대받다 보면, 그나마 이게 좋은 성격이란 걸 알 거예요.”
“하긴, 그렇겠네.”
태석이 쓰게 웃었다.
세희와 자신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정말이지 혼자 남은 기분이었죠. 저에게 유일한 가족, 여동생이 없었다면 망가졌을지도 몰라요.”
“그렇다는 말은…….”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가 가능하다는 말이겠죠.”
태석이 손을 뻗었다.
“지금 세희 씨에게 필요한 건 또 다른 사냥 동료입니다.”
“그걸 누가 확정하는 거죠? 제 인생은 제가…….”
“그러니까 선택권을 드린다는 겁니다.”
“선택권…….”
묘하게 낯선 단어이다. 왜냐면, 한스 셸은 자신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든 그의 생각대로 해야 했고, 생각만큼의 성과를 내야 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안 되었다.
하지만 눈앞의 청년은 말하고 있었다.
선택권을 주겠다고.
세희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조금 생각해볼게요. 물론 대답은…… 긍정적일 수밖에 없지만요.”
“대답으로 듣겠습니다.”
태석이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으며 쓰게 웃었다. 대한이 문득 어색하게 물으며 말했다.
“끝난 건…… 가………… 라고 말하면 안 되는구나.”
쿵.
대한이 농담으로 플래그 발언이었다는 부연 설명을 하려 할 때였다.
정말로 플래그가 발생했다.
“끄, 끄으으윽.”
세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몸에서 흑색의 기화가 피어올랐다. 태석이 겐세를 보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일이죠?!”
“언데디에이션! 언데디에이션이 발생하고 있는 거다!”
“갑자기 왜…… 아!”
언데디에이션을 막고 있던 한스가 죽었다. 그렇다는 말은, 언데디에이션의 억제가 끝났다는 소리였다.
세희는 그걸 알면서도 한스를 죽인 건가? 대체 어째서? 설마 까먹고 있었다던가……. 아니다.
세희는 그걸 잊고 있던 게 아니다. 알고 있어도 죽인 것이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 이유는 단순할 것이다.
“당신은…… 이제 괴로운 걸 끝내려고…….”
그녀가 쓰게 웃었다. 기운 없는 미소였다. 하지만 행복해 보였다.
“어차피 괴롭게 사나 죽으나 똑같거든요. 아쉽게도 저의 상처는 그 누구도 회복시킬 수 없을 지도. 언데디에이션…… 망할 오크 새끼들…….”
“안 됩니다.”
“뭐가…… 요. 저는… 이미 죽을 건데…… 죽…… 은 거나 다름…… 없는데…….”
“내가 죽지 않게 할 거니까.”
태석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힘이라면 가능하다.
신의 힘이라면.
태석이 눈을 감고 집중했다.
자, 이제 어떤 힘을 꺼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