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모든 신을 받다-34화 (34/102)

# 34

34. 그냥 사겨라

태석이 한 일은 간단했다.

폭발하는 물질의 스위치가 눌린 상태였고, 그것은 한스 셸의 본신이 들고 있다. 그의 폭탄이 터지는 순간 헌터와 성천주를 제외한 모든 일반인들이 처리당할 것이다. 폭탄이 터지고, 건물이 무너지고, 경기장이 무너지고, 결계는 무너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여동생은 확실히 죽을지도 모른다.

이런, 자신의 여동생은 어째서 남몰래 경기 관람을 한 것일까? 물론 자신의 경기가 궁금하고, 태석의 힘이 궁금했고, 자신의 가족이니까 참여한 것이겠지만…… 적어도 말은 해줬어야지.

그러면 더 열심히 싸울 텐데.

태석은 폭발하기 시작하는 폭발물을 보았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의 눈에 천둥이 번쩍였다. 푸른 전격이 흐르고 몸에 전류가 흘렀다. 심장이 눈에 뜨일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다.

쿵, 쿵, 쿵, 쿵.

빠르게 뛰는 심장이 더욱 빠르게, 심하게 빠르게 뛰기 시작하자 시간이 더욱더 느리게 흐른다. 이것이 토르의 능력을 응용한, 시간의 상대성을 이용한 어떤 능력인 것일까.

[토르가 빨리 사건을 해결하기를 원합니다.]

[폭발물을 하늘 높이 날려보내기를 원합니다.]

[로키가 한 말 거듭니다.]

[어서 묠니르를 통해 폭발물을 천장을 뚫고 하늘에서 터트리기를 원합니다.]

[어서 행동하세요.]

[어서.]

[어서 빨리. 모두를 구하기 위해. 그것을 두 신이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원합니다.]

귀가 아플 정도의 소음이다. 빠른 속도로 메시지창과 음성이 들려왔다. 이 정도로 자신에게 간섭하다니. 신들은 자신에게 바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모두를 구해라.

폭탄을 하늘 높이에 터트려야 한다.

웃기지 마라.

너희들이 시키지 않더라도 할 일이었어.

하나뿐인 여동생이 죽는 꼴은 절대로 보기 싫어. 절대로. 그러니까 반드시 행동할 것이다.

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동안, 기회의 시간 동안 묠니르를 손에 들고 빠르게 집어 던졌다.

쿠-쿠-구-구-구우-.

소리조차 느리게 울려 퍼졌다. 파동의 흐름이 느껴진다.

전기가 흐르면서 요동치는 느낌. 묠니르가 원자 단위로 출렁이는 느낌.

폭발물이 서서히 터지기 시작하는 모습.

겐세 노르도가 기겁한 표정으로 날개를 파닥이려는 정지 자세의 모습과 한스 셸이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스위치의 버튼을 누른 채 있는 모습들이, 모두 사진의 한 장면을 3D 입체 영상으로 표현한 것 마냥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몸은 그곳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그저 평범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느낌이었다.

묠니르가 날아가 한스의 손째로 토막 내어 폭발물을 위로 탁하고 쳤다. 마치 테니스공을 하늘로 한 채 여러 번 튕길 때의 모습 같았다. 태석이 소리쳤다.

“위로 가라!”

우웅-.

묠니르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방향이 틀어져 손잡이 없는 묠니르의 망치 부분이 날아갔다. 폭발물을 자신의 몸체에 붙인 채 하늘 높이로 치솟았다.

천장을 뚫었다.

쿵.

그리고 또다시 더 높은 천장을 뚫는다.

쿵.

미친 듯이 세 개의 층의 천장을 뚫기 시작한다.

쿵. 쿵. 쿵.

그리고 마침내 경기장의 관람석까지 도달.

아직 폭발물은 완전히 터지지 않았다. 터지려고 파편의 형태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묠니르가 더 빨랐다.

하늘 높이로 솟아오르고, 묠니르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뚫은 천장을 입구 삼아 다시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늘 높이에서 거대한 폭발이 울려 퍼졌다.

파아아아앙-!

태석이 침을 삼켰다.

어떻게 된 것일까. 자신은 경기장의 관람객을 구한 것일까? 영웅이 된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일이 마무리된 거지?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뚫린 천장을 비집고 함성이 들려왔다.

와아아아아아아!

그것은 절망의 비명도, 공포의 괴음도 아니었다.

기쁨의 함성이었다.

성공했다. 태석은 확신했다.

폭발물로부터 사람들을 지켰다.

“우와! 저게 뭐야!”

“멋지다!”

“대박!”

사람들이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관람석의 끄트머리 부분을 뚫고 불꽃이 튀어나오더니 여태껏 본 적 없는 푸른 기운을 내뿜는 불꽃이 팡 하고 터졌다.

폭죽일까?

지석과 시연과 함께 관람석에서 간단한 끼니를 해결하던 대한이 생각했다.

“예쁘네요. 이런 건 예정에 없지 않았나요?”

“정말로 없었어. 무슨 일이지?”

지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의구심을 가졌다.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아이언 월드 대회에서 폭죽이 터진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설마하니 자신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일을 진행한 것일까? 하지만 아니었다. 세연이 자신에게 일말의 보고도 없이 일을 행할 리 없다. 한세연은 비록 로맨스에 뇌가 절여진 여자였지만, 일 처리 만큼은 확실했다. 실수 하나 없이 여태껏 길드를 운영해 왔다. 그러니 확신한다.

그렇다면 저 폭죽은 뭘까? 마치 태석의 힘을 연상하는 푸른 천둥을 둘러쓴 붉은 불꽃. 외계 문명이 인류에게 도움을 주는 요즘, 그런 신비한 폭죽이 없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뭔가 기시감이 든다.

마치 태석이 어디선가 싸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니, 진짠가?

“뭔가 수상해.”

“뭐가요?”

대한이 도시락 김밥을 입에 쑤셔 넣으면서 물었다. 도대체 뭣 때문에 심란하신 걸까? 길드장님은? 설마하니 예전에 강당을 청소할 때처럼 이상한 점이 있는 걸까? 길드장 이지석은 그런 이상한 점을 잘 찾아내니 이번에도 뭔가 찾아낸 것일지도 모른다. 아주 중요한 일인 건 확실한 것 같다. 그렇기에 물었고, 지석이 답했다.

“대한, 너에게 임무를 주겠다.”

잠시 생각을 하던 지석은 질문의 대답 대신 대한에게 말했다.

“저 폭죽이 터져 나온 장소로 가라. 그리고 가서 태석을 도와라.”

“갑자기 태석이 얘기는 왜? 그보다 그 녀석, 이제 곧 대회인데 코빼기도 얼굴을 안 보이네요.”

“지금, 태석이 싸우고 있는 모양이다. 그것도 강한 적과.”

“……진짜요? 그렇다면 길드장님이 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대한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투로 말했다. 왜냐면, 대한 입장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지석은 싸움을 잘했고, 대한은 D랭크 헌터에 싸움도 못 하는 편이다. 오늘 처음으로 예선 통과해서 기쁜 와중에 그런 중대한 임무를 맡기다니. 태석을 도우라고? 자신이 도움받을 입장인데.

시연이 고개를 저었다.

“지석 씨에게 들었어요. 지금 테러범들이 있는 것 같다는 보고를 들었다고. 관계자들 중 일부가 이미 테러범일지도 모른다고. 겐세 노르도와 태석을 통해 알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렇습니까?”

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하니 보이지 않는 쪽에서 그런 심각한 일이 있었다니.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지석 형님, 길드장님이 나서야…….”

“아니, 그렇지 않다. 이유는 간단해.”

지석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테러범들은 대회가 정상적이지 않게 진행되는 것을 원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나는 이 대회의 주최자나 다름없고, 태석은 곧 대회 경기를 앞두고 있어. 둘 다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고, 그나마 네가 제일 자유로워. 시연 씨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시연 씨와 대한이 네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아아, 그렇군요.”

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석은 이제 10분쯤 후에 대회에 나가야 한다. 테러범을 막기에는 태석이 필요하지만…… 태석이 대회 경기에 불참하면 테러범들의 목적이 달성된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대한과 시연이 나선다. 대한의 경기는 앞으로 한참 뒤이고, 시연의 경기는 이미 예선 탈락으로 끝났다.

그러니 자신과 시연이 나선다. 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조사에 나서도록 하죠.”

“……?”

시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대한 씨는 겁에 질려서 거절할 줄 알았거든요.”

“저를 뭘로 보는 거예요.”

“재밌는 아저씨……?”

“태석이는 뭘로 보는 데요.”

얼굴이 붉어지고 히죽 웃는다.

아아, 그렇군.

대한은 쓰게 웃었다.

태석아, 그냥 사겨라.

[다음 경기는 무소속 기류의 헌터 태석과, 성천주 겐세 노르도의 헌터 제인의 경기입니다! 5분 후의 시작할 예정입니다!]

5분 후라. 시간이 촉박하다. 태석은 서둘러 겐세에게 외쳤다.

“지금이에요! 지금 어서 아무것도 못 하게 막아야 합니다!”

“나도 안다!”

태석은 현재 강철 길드 소유 건물 지하실에 있었다. 한스는 지하실에서 뭔가 폭탄을 터트릴 준비를 하던 모양이었다. 그런 행동을 하기 위해 악마 추종자들에게서 데빌 메이커의 행세를 하며 가면을 쓰고 아이언 월드 대회 중에 악행을 하던 것이다.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 때문에 대회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은 그들의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다. 그러니 그런 사태는 막아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지? 지금 너의 계획은.”

겐세가 소리쳤다. 겐세는 현재 성천주의 능력으로 손이 잘린 채 고통의 비명을 질러대는 한스의 몸을 묶어 두고 있었다. 중력자를 다루는 힘으로 어떻게 묶어대고 있는 모양인데, 태석으로서는 지석의 능력으로 중력 반지를 써본 적이 있기에 대략 어떤 능력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겐세는 물은 것이다. 태석이 앞으로 뭘 할 거냐고. 지금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기를 바랄 것이다.

태석이 말했다.

“일단 겐세가 한스를 묶어두고 어떻게든 대회가 끝날 때까지 뭔 일을 벌이지 않게 막으시면 됩니다. 녀석을 죽였을 때 한국이 발칵 뒤집힐 테니, 범죄를 입증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지석이구나.”

“그래요, 지석. 지석이 형이 이쪽 업계에서 제법 영향력이 있으니 그 형만 있다면 한스의 악행을 까발릴 수 있고, 합법적으로 제 손으로 죽일 수 있겠죠.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니까 범죄자는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너는?”

“……그리고 저는.”

태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 명확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대회는 코앞이다. 그리고 눈앞에 적이 있다. 눈앞의 적을 내버려두고 가기에는 찜찜하다. 누가 관찰할 사람이 필요하다. 아니, 겐세가 관찰하고 있잖아? 그러면 된 거 아닌가.

하지만 믿을 수가 없다. 겐세는. 그야 만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고, 대화한 것도 없다. 자신은 겐세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른다. 그저 대외적으로 공개된 여색을 밝힌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다. 그런데 그런 그를 믿고 자신이 아는 한 최악의 테러범을 내버려둘 수 있을까? 겐세에게 로키의 능력으로 현혹이라도 시켜야 하나? 그렇게 고민하던 태석이었지만.

쾅!

“으으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엉덩이 겁나 아파!”

대한과 시연이 묠니르로 인해 뚫린 구멍으로 추락해 들어왔다. 태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외쳤다.

“뭐야, 너네! 너희 뭐하는 거야! 시연 씨는 또 뭐고요!”

태석이 당황하여 소리쳤고, 대한이 씨익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말했다.

“너를 구하러 내가 돌아왔도다!”

“개소리 그만하고. 아무튼, 뭔 일이야. 너, 어디까지 알고 있어?”

태석이 입꼬리를 빙긋 올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대한이 왔다. 시연이 왔다.

그들이라면 믿을 만하다. 그러면 그들에게 뭘 설명해줘야 하나. 어디까지 설명해줘야 하나. 간단하다. 모두 설명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의 상황을 전부.

왜냐면, 대한은 어려운 시절의 자신에게 힘이 되어준 착한 녀석이니까. 그 정도로 착한 녀석이라 별명이 부처였다. 태석을 위해 목숨을 바칠 만한 일을 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예전, 학교 학창 시절. 대한은 일진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죽을 뻔했고, 대한이 앞에 나서서 같이 맞아줬다. 물론 대한이 싸우지도 못하고 처맞는 것은 대한답다고 할 수 있지만, 어찌 됐건 아픔을 공유해준 녀석이었다. 그러니 믿을 수 있다.

태석이 말했다.

“일단 설명해줄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아.”

대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폭탄마가 있고 그걸 막기 위해 대회 중에 동분서주하는 히어로의 이야기잖아.”

“뭐야, 알고 있었냐?”

“사실 지석이 형한테 들음.”

“지석이…… 형?”

“아, 음. 그러니까 나 길드장이랑 겁나 친하거든.”

“그 길드장에게 직접 물어보도록 할까.”

“아니, 물어보지 마. 아마 츤데레셔서 친하지 않다고 할 거니까.”

시연이 고개를 저으며 차갑게 말했다.

“망상이겠죠.”

그리고 태석을 보며 싱글벙글 웃는다.

“태석 씨 멋져요. 마치 히어로 같았어요.”

“아…… 네.”

대한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서 자신에게는 망상이라는 둥 나쁜 소리만 삐약삐약 해대고, 태석에게는 히어로 같다고 아부 떠는 거냐. 사랑이 이렇게 무거운 건가. 하지만 자신을 향한 사랑이 아닌 게 무겁다고 느껴지다니. 무섭다, 이 여자. 태석이 주는 거 절대 반대다. 자신은 태석의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니지만, 어쨌든 반대다.

“……나, 이 결혼 반댈세.”

“뭔 헛소리예요, 멍청한 아저씨.”

태석이 흠흠 기침을 하며 말했다.

“뭔가 시연 씨가 점점 고란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

시연의 표정이 굳었다. 고란을 닮아가고 있다고? 무슨 의미지? 자신은 분명 모두에게 평등하게 대하고 있을 텐데? 설마하니 뭔가 실수라도 한 건가.

“착각일 걸 거예요.”

대한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자각이 없네.”

“뭐가 자각이 없다는 거예요, 아저씨.”

“…….”

대한은 더 말해도 자신의 정신력만 깎일 것 같았기에 별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 성천주와 부하 헌터는 닮는다더니 점점 시연의 상태가 악화되는 게 보인다. 이러다가 칼을 들고 사랑해달라고 할 것 같았다. 그 징조가 보인다.

“이야기가 너무 만담 위주로 가는 것 아닌가?”

겐세가 살짝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만담 위주로 이야기를 진행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폭탄마 한스에 대한 이야기를 할 틈이 없다.

그렇기에 겐세가 딱 잘라 말했다.

“한스 셸. 이 녀석이 폭탄마야. 손 잘린 이게 본신이고, 분신으로 대회 참가를 하는 중인 것으로 속이고 있어.”

“한스가 그 짓을 했다고요?”

대한이 살짝 놀랐다. 설마하니 성천주가 그런 짓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한이 그렇기에 놀라서 소리친 것이었고, 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앞으로 대한이랑 시연 씨, 겐세한테 이 일을 잠시 맡아둘 예정이야. 대회는 5분 안에 결판내고 올 테니 이 녀석을 감시하고 있어. 지석이 형에게는 겐세 씨가 연락을 취할 테니까, 아마 지석이 형이 한스의 범죄 행각을 낱낱이 밝힐 증거를 찾아낼 수 있을 거야. 그 형은 유능하지는 않지만, 그 형의 비서, 세연의 경우에는 이쪽 방면으로 훌륭하니까. 아마 금방 찾을 거야.”

“그러면 너는 지금 대회 하러 가는 거냐?”

“마력을 상당수 썼지만, 아마 이기는 데 걸리는 시간은…….”

태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투기가 보이는 미소였다. 싸워서 이기겠다는 전쟁의 신이라도 강신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신은 강신하지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토르에게 카드를 요구하면 된다.

[아직 줄 수 있는 카드가 없다고 토르가 발언합니다.]

그렇군. 아직 없다라. 그러면 언젠가 생긴다는 건가?

[노력하겠다고 합니다.]

그보다 점점 시스템창이 내 속의 생각과 대화를 하는 느낌인데. 인격이라도 있는 건가? 신기하네.

태석은 그리 생각하고는 서둘러 달려가면서 말했다.

“그러면 잘 부탁한다. 대회는 단숨에 끝내고 오도록 할게.”

“그래!”

대한은 부수어진 문을 통해 달리는 그를 잠시 보다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히죽 웃으며 겐세를 보았다.

그리고 주먹으로 뼈 소리를 내고는 붕붕 휘둘렀다.

한스가 외쳤다.

“어쩔 셈이냐! D랭크 헌터 새끼들이 나를 어쩔 셈이지? 약골 새끼들이! 나는 너희를 무시한다! 무시해왔다!”

“무시했다고? 재밌네. 그 무시, 느껴본 적이 없거든. 태석이는 S랭크임에도 나에게 스스럼없이 대하고 믿고 의지하고 있어줬어. 그런데 너는 그런 친구조차 없는 모양이야.”

대한이 히죽 웃으며 외쳤다.

“그러니까 그런 너에게 선물을 주도록 하지! 음하하하하!”

“그 웃음, 진짜 이상한 거 알아요?”

시연이 태클을 걸었고, 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예요.”

“…….”

뭐랄까. 시연은 대한이 상당히 4차원의 성격이라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진지해지면 오히려 헛소리를 하는 타입인가 보다. 시연은 납득하기로 했다.

“그러니 내 손에 있는 흑염룡으로 너를 조지겠다!”

“……으으으으으으음.”

흑염룡? 웃기고 앉았네. 뭐라도 한 말 쏘아붙이고 싶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냥 내버려둬야지.

하지만 이런 시연의 웃기지도 않아서 무표정하게 있는 걸 보고 겐세와 한스는 살짝 놀란 모양이다. 겐세가 잠시 머뭇거리는 듯 있다가 물었다.

“정말로 있는 건가? 대단하군.”

“우오오오오오오!”

흑염룡을 따라 하듯, 용솟음치듯 길게 늘어진 왼팔의 어둠 에너지를 보며 겐세가 감탄했다.

“굉장하군. 역시 헌터들의 가능성은…….”

“사, 살려줘. 무서워. 제발…….”

겐세와 한스가 각자의 상황에 맡게 감탄하거나 공포를 느꼈고, 대한은 더욱 신났다. 이게 먹히잖아? 성천주들, 의외로 바보 아니냐?

대한이 어둠 에너지를 쏘아 한스에게 맞추었다.

치이이이이-.

하지만 형태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위력은 정말 구리다. 게다가 지팡이도 부서진 상태라 더욱.

아프지도 않고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한 한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었다. 겐세 또한 고개를 갸웃했다.

대한은 잠시 입이 바싹 마르는 것을 느꼈다. 큰일 났다. 허세가 전부 드러날 판이다. 어느새 시연은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대한을 보고 있었다. 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말을 더듬다가 소리쳤다.

“방금 흑염룡이 너의 내면의 영혼에, 그러니까 잠식했다! 너는 이제 죽은 목숨이다!”

“이럴 수가…….”

한스가 낙담한 표정을 했다. 겐세가 대단하다는 표정을 했다.

이 녀석들, 정말 바보 아닐까. 적들부터 아군인 대한과 겐세까지 전부.

시연이 머리가 아팠다.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테러범들과 이를 막기 위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이따위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어찌 됐건, 태석은 현재 대회장에 도착한 모양이다.

대회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미친 듯이 울려 퍼졌다. 함성도 천장의 구멍으로 들려왔다.

부디 이기시길.

시연이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태석이 이기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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