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33. 음모
헌터가 없는 세상을 위하여.
무슨 의미인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이 하얀 가면을 쓴 자는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석은 하얀 가면을 쓴 살아 있었던 시체를 쳐다보았다.
짓뭉개져서 눈코입의 구멍만 간신히 보이는 얼굴이 더욱 흉하게 짓뭉개졌다. 안쪽의 폭발물이 터진 느낌으로, 온몸이 퉁퉁 부어 검게 변질되어 있었다.
설마하니 자신의 속에 언제든 자폭할 수 있는 폭탄을 둔 건가? 그걸 어떤 행동을 통해서 기폭시키는 것인가? 그 방법이 대체 뭐지?
태석은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헌터가 없는 세상을 위하여, 그것이 폭탄 기폭 스위치였던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특정한 문장으로 폭발시키는 것은 최근의 외계 문명에서 들여온 도구로는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거야.”
“그보다 이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압니까?”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거라고,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네.”
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가면을 쓴 사람은 조직원일 것이다. 안 그렇다면 이렇게 자폭까지 하면서 대의를 이루고자 할 리가 없다. 아니, 대의가 아니지. 이건 그저 테러 행위일 뿐이다. 그들은 민간인들을 인질로 하여 헌터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할 뿐이다.
겐세 노르도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있었다.
일단, 검색해볼까. 아카식 레코드를 통해서.
“잠시 아카식 레코드에서 자료를 조사해보겠다.”
“그러세요.”
태석은 겐세를 쳐다보았다. 겐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뻗어 하나의 창을 띄웠다. 마치 게임에서 상태창을 띄우는 것 마냥, 무언가 창을 꺼내고 그곳에서 검색을 시작했다.
성천주들만이 고유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카식 레코드. 세상의 모든 지식이 모이는 우주적인 현상을 이용하여 그 정보들을 캐내는 방식이다. 이걸 통해서 웬만한 정보는 캐낼 수 있었다.
문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캐낼 수 없는 정보도 많았다. 주로 진리 같은, 인간이 알면 큰일 나는 것들이 그것이다.
물론 하얀 가면을 쓴 테러범들의 조직에 대해서는 간단히 조사가 가능하다.
성천주 겐세가 상태창을 끄고 잠시 눈을 감고 팔짱을 꼈다. 손가락을 까딱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거 큰일이군.
말했다.
“녀석들은 악마 추종자들. 악마를 도와 헌터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녀석들이다. 이제 보니 전 우주적으로 이 조직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하는군. 당연하지. 악마들이 온갖 사람들을 현혹해서 세뇌하여 이 조직을 만들고 있으니까. 주로 일반인들로 구성되어 있고, 목적을 위해 자살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
“그래서 묻겠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걸 자신에게 굳이 묻는 이유를 모르겠다. 태석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대회장의 민간인들이 위험에 처했고, 자신은 그 테러 조직의 정체를 안다. 그리고 신의 능력을 강신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할 일은 간단하지 않은가?
“당연히 간단합니다.”
태석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 당연한 이야기의 해답을 내놓는다.
“이제부터 악마 추종자들을 족칠 겁니다.”
겐세가 피식 웃었다.
역시, 성천주 고란 홀이 반할 만하다. 이 남자는 그릇이 크다. 대의를 위해 기꺼이 영웅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손해 볼 짓은 안 하는, 영리한 사내였다.
아마 이 대회장을 테러로부터 지키는 것이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헌터들의 세상을 더욱더 좋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그것은 곧 자신의 이득을 뜻할 수 있었다.
악마 추종자들이 헌터 때문에 테러가 일어난다는 프레임을 씌워 세상에 헌터들의 입지를 줄이고자 하는 게 목적이라는 걸 이 남자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겐세가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며 말했다.
“그러면 앞으로 할 일은 간단하다.”
무슨 일일까? 태석이 똑바로 노려보았다.
겐세가 그 눈빛에 답했다.
“아카식 레코드에 다행히도 악마 추종자들 중 세뇌가 약하게 걸린 사람에 의해 정보가 새어 들어왔다. 당연히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이었고, 내가 습득 가능한 레벨의 정보였기에 알 수 있었던 것이겠지.”
“그 정보는 뭡니까?”
“대회장 지하실. 그곳에 뭐가 있는지 모르지만, 악마 추종자들의 현 목적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있다는 모양이야. 어서 가자.”
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세! 이겼다! 해냈다! 기분 최고야!
대한이 손을 활짝 펼치며 함성을 질렀다. 시연은 완전히 리타이어 되었다. 다친 팔의 붕대를 풀고 억지로 움직이던 시연은 대한의 어둠 공격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아마 크게 약해진 부분을 맞은 모양인데, 자신이 상당히 비겁하다고 느껴진 대한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아니면 이길 수 없었다고. 그보다 다친 상태로 대회에 들어간 자기 관리가 부족한 자신을 탓해야지 대한을 탓하는 것은 잘못된 일일 거다. 아무렴 정말로 그런 거야.
대한은 쓰러진 시연을 내려다보았다. 대회의 사인은 이미 났다. 대한의 승리라고 전광판에 크게 써져 있다.
어째서인지 태석과 세희의 경기보다 함성이 지나치게 작은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자신의 경기도 제법 흥미진진했다. 왜냐면, 허접끼리의 싸움이 고수끼리의 싸움보다 예측 불허에 재밌으니까. 우연에 우연으로 대한이 이긴 것에 불과하다. 비등대등했으니, 어쩌면 자신이 한 끗 차이로 졌을 수도 있다.
물론 이겼으니 된 거지만.
대한은 손을 뻗어 시연에게 다가갔다. 시연은 피식 웃으며 누운 채로 말했다.
“이기셨네요.”
“운 좋게 이긴 모양이야. 뭐, 내가 뛰어난 이유도 있지만.”
“잘난 척하고는. 태석 씨를 좀 본받으세요, 대한 씨.”
“그 녀석은 넘을 수 없는 벽이고. 나는 솔직히 예선 통과만으로도 기쁜 상황이거든? 그러니까 태석이 생각은 안 할 거야.”
“정말 그럭저럭 대충대충 사시는 것 같네요, 대한 씨는.”
“너무 말이 심한데.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겼잖아. 이 경기,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갑이야."
"을이던 사람이 갑이 되면 더 무섭다더니.“
시연은 대한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래서 다음 경기는 언제예요? 구경 좀 할게요.”
대한과 시연은 같은 대기실로 들어갔다. 어차피 이제 점심시간이었다. 이제 경기는 30분 정도 휴식 후에 본 경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예선은 이미 끝났다. 오전 경기는 예선들로 이루어져 있고, 본선은 오후부터. 그러니 지금까지는 튜토리얼이었다는 소리였다.
대한이 말했다.
“아마 오후 정도에 시작할걸? 30분 뒤쯤에.”
“구경해야겠네요. 첫 경기는 누구죠?”
“태석이.”
“반드시 구경해야겠어요.”
반드시에 악센트가 붙어 있는 것은 왜일까. 소름 끼치는 집착을 느낀 것 같아 대한은 시연을 부축하면서도 부축하기 싫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태석에 대한 애정에 자신이 겁을 먹어야 하는 걸까. 정작 태석은 이 상황을 알지도 못하는 데.
그러고 보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대회 전에 칸타로스에서 햄버거를 먹은 이후로 도통 보지를 못했다. 아마 어디서 바쁘게 인터뷰라도 하는 걸까? 하긴, 그 녀석 유명해졌으니까.
부럽다.
대한은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 음료수를 축내려 했다. 하지만 누가 다 먹은 것인지 페트병이 비어 있다. 대한은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다.
“누가 다 먹은 거지? 태석이한테 혼내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인데.”
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예의라고는 없는 쓰레기일 거예요. 태석 씨한테 해결해달라고 말해야겠어요.”
물론 태석이 다 먹은 거라는 건 이 두 사람은 알지 못했고, 알더라도 그리 좋은 경험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대한과 시연의 경기는 대한의 승리로 끝났다.
그들이 그토록 아끼는 태석은 현재 테러범, 악마 추종자들을 막기 위해 경기장 지하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성천주, 겐세 노르도와 함께.
가면을 쓴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에게 연락을 취하면서 작전 정보를 전달하던 다른 가면을 쓴 남자, 악마 추종자 하나가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연락이 끊긴 악마 추종자에게는 쓸 만한 정보를 일체 알려주지 않았고, 그저 체스판의 말을 부리듯이 쓰는, 그런 필요에 의해서만 쓰이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지금 지하실 내부에 있는 그 가면을 쓴 남자는 악마 추종자들의 리더였다. 통칭, 데빌 메이커라고 불리는 존재였다. 그 존재의 맨얼굴을 본 사람은 악마 추종자들 중에서는 전무했고, 그의 실체를 아는 지인도 없었다.
제기랄. 뭔가 불길한데.
데빌 메이커는 연락이 끊긴 이유가 태석에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통제하고 있는 분노의 악마, 데리안의 뜻에 따라 악마 추종자들의 리더가 되어 폭탄 설치 작업을 하는 중이었는 데, 폭탄을 설치하던 자들 중 하나가 태석에게 당한 거라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태석과 시연의 대회를 간접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뛰어난 천둥을 다루는 능력과 비바람을 다루는 능력은 우수했다. 솔직히 시연보다 더욱 잘 싸웠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아아, 시연이 지다니.
데빌 메이커는 한숨을 뱉으며 그것에 탄식하고, 악마 추종자 하나의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대장님.”
“왜 그러지?”
변조된 목소리가 가면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악마 추종자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지하실 내부로 접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구지?”
누가 이곳에 온다는 것이지? 자신은 이 지하실의 통제권을 습득하고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도록 악마 추종자들을 부려 지하실 접근자들을 일일이 자연스레 차단하여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대회 관계자들 중 일부는 악마 추종자였다. 얼굴이 짓뭉개져 있기에 그들 중 일부 관계자 역들은 피부 가죽을 덮어씌워 속이고 있었다.
그러니 이곳에는 악마 추종자와 데빌 메이커, 분노의 악마 데리안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을 터이다.
그런데도 접근한 자가 있다고? 궁금했다. 악마 추종자가 말했다.
“아마 최근 S랭크 헌터가 된 자와 성천주 겐세 노르도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성천주 겐세와 S랭크 헌터라……. 정말 기묘한 조합이군. 겐세에게는 S랭크 헌터가 부하로 없을 텐데?”
“상하관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평등한 관계인 듯합니다.”
“평등한 관계라? 헌터와 성천주가?"
말도 안 된다. 그보다 겐세는 성천주 실격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여색을 밝히고 변태 같은 성적 취향이 있다고 해도…… 겐세는 성천주였다. 성천주는 헌터를 잘 부릴 줄 알아야 했다. 헌터에게 끌려다니는 순간 성천주는 자격 박탈이다. 그 누구도 정한 규칙은 아니지만, 적어도 데빌 메이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 겐세는 성천주 실격. 죽여버리자. 철저히. 자신을 괴롭힌 것보다 더한 고통을 주도록 하자.
성천주 새끼들. 다 죽어 버려. 자신 빼고 전부 죽었으면 한다.
데빌 메이커는 흠흠 기침을 하고 고개를 저은 후에 생각을 가다듬었다.
이러면 안 된다. 자신은 분노의 악마는 아니다. 그저 자신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성천주들을 죽이고 싶을 뿐이다. 분노를 했지만, 정도 이상의 분노는 오히려 해가 된다.
완벽하게 죽이기 위해 완벽하게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데빌 메이커는 그런 감정 통제에 익숙하지 않았다.
쿵.
지하실의 굳게 잠겨진 문에서 쿵 소리가 났다.
덜컹.
지하실의 잠금장치가 무너졌다. 데빌 메이커는 침을 삼켰다.
성천주일까? 헌터일까? 역시 악마 추종자들의 말대로 둘 다 일까?
답은 간단했다.
천둥을 두르고 푸른 전격을 내뿜고 있는 남자, 태석과 중력을 조종하여 공중에 떠오른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겐세 노르도.
두 명의 헌터와 성천주가 지하실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그들 중 헌터 태석이 사나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한스 셸, 너를 잡으러 왔다.”
데빌 메이커는 한스 셸이다. 성천주이며 분노의 악마를 따르고 있는 악마 추종자이다. 천사들의 사도라고 불리는 성천주 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타락하고 말았다. 타락 천사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한스 셸의 분신은 현재 고란 홀에게 다친 채로 있었다. 고란이 한스 셸의 분신을 마구잡이로 공격한 이유는 간단했다. 한스 셸의 본체가 아니기에 분쟁이 일어나도 문제가 없을 거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한스 셸의 본체는 이곳 지하실에서 가면을 쓴 채 데빌 메이커로서 악마 추종자들과 함께 폭탄 설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석은 이를 단숨에 눈치챘다. 그리고 소리쳤다.
“너의 악행을 막으러 왔다.”
한스가 낄낄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성천주인 자신을 막겠다고? 헌터가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녀석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녀석이? 자신을?
웃기는 소리. 헛소리. 고란 홀이 자신에게 헛소리를 할 때보다 더 웃음이 튀어나온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자신을 무시하거나 두려워하는, 자신이 사랑하는 세희, 그리고 자신을 경멸하는 고란 등의 성천주들.
모두 자신을 이렇게 만든 존재들이다. 잘못된 것은 세상이다. 자신이 아니다.
한스 셸이 그런 생각을 하며 태석에게 소리쳤다.
“웃기지 마라, 엄태석. 너를 이 자리에서 처리해주겠다.”
기류의 헌터, 엄태석과 비상의 성천주, 겐세 노르도.
정화의 성천주, 한스 셸과 악마 추종자 여럿.
두 집단이 충돌하기 직전이었다. 엄태석은 생각을 가다듬었다.
현재 상황은 비등대등한 상황. 성천주가 각자의 편에 붙어 대립하고 있고, 엄태석은 S랭크 헌터, 다른 녀석들은 헌터는 아닌 악마 추종자라는 이색적인 존재들이었다.
일단 성천주들은 S랭크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 테고…… 변수가 되는 것은 역시 악마 추종자들이겠지. 허나 자신의 힘으로 세 명 정도는 처리할 수 있을 테고, 때마침 눈앞의 악마 추종자들은 셋이다.
제일 큰 문제는 악마 추종자들과 한스가 폭탄을 폭발시킬 때가 문제인데…… 그건 어떻게든 잘 막으면 되겠지.
너무 적당주의 같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실패해도 별수 없다. 인간들이 제법 죽겠지만, 만약 벌어진다면 납득할 자신이 있다. 그저 막을 수 있는 상황이기에 노력해볼 뿐이다.
태석의 손에서 토르의 묠니르가 생겨났다. 그 묠니르를 땅에 내려찍었다. 땅이 쩌적 하고 갈라지면서 한스를 향해 그 균열이 전진했다.
그 균열이 한스에게 1초도 안 되는 순간 닿았고, 파직 하고 전기가 솟았다.
콰지지지직-!
“끄으으으으으윽!”
한스 셸의 몸에서 푸른 전격이 돌았고, 괴로움에 비명을 질렀다. 아픔이 강하게 그의 몸을 적셨다. 성천주이기에 어정쩡하게 튼튼한 몸은 멀쩡했지만, 정신적인 아픔이 더 강했다. 고통스러웠다. 눈물이 튀어나왔다.
이게 태석의 능력인가?
한스는 이를 악물고 버텨내고, 악마 추종자들에게 손짓했다.
“공격해!”
악마 추종자들이 일제히 태석의 약점을 노리고 전진했다. 태석이 간신히 악마 추종자들의 공격을 피하고, 오히려 반격을 가하는 등 육탄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악마 추종자들이 아무리 악마들의 사도라고 해도 태석의 토르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다.
신화 속 토르는 몸이 튼튼하기로 유명했으니까. 더욱이 북유럽 쪽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당시 토르를 정말 좋아했다. 신화 속에서 날씨를 다룰 수 있기에 농사에 도움이 되기에 좋아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농사가 성공할 거라는 미신이 있었으니까. 물론 농사를 망치면 로키가 토르를 속였다며 욕하기 마련이었다.
결국, 토르는 만인의 호감, 로키는 만인의 미움의 대상이다.
그렇기에 그 둘의 힘은 상반되었고, 로키는 주로 정신, 토르는 주로 힘을 다루는 능력을 강신하면서 쓸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토르의 힘으로 악마 추종자들 중 둘을 무력화했고, 남은 하나를 처리할 때였다.
“헌터가 없는 세…….”
큰일 났다. 폭발하려 한다. 가미카제 특공대 마냥 자살하여 적을 공격하려 한 것이다. 태석에게 폭발이 튈 확률이 있다. 아직 강신이 완벽하지 않기에 다칠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겐세 노르도가 가만히 멍청하게 있지는 않았다. 그도 성천주니까. 이 정도 공격은 대처할 수단이 있다.
겐세가 손을 뻗어 빠르게 원형의 마법을, 그리고 손으로 그것을 후려쳤다.
퉁!
겐세의 비상의 능력이 발동했다. 중력을 제어하여 악마 추종자의 몸은 폭발했지만, 그 파편 조각이 튀거나 하지 않았다. 한곳에 둥둥 떤 채 진동하다가 힘이 딸려 바닥에 나뒹굴었다. 태석이 그것을 보았다가 고개를 돌려 성천주 한스 셸을 노려보았다.
“이제 너만 남았어.”
“쉽게 잡히지는 않을 거다, 인간 새끼야.”
한스 셸이 히죽 웃으며 소리쳤다.
그리고 리모컨 스위치를 보여준 채 폭발물 하나를 들고 있었다. 폭발물의 모양이 심상치 않았다. 핵 경고 표시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아 위험한 폭발물이 틀림없다.
저것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태석이 확신했다.
한스가 말했다.
“이 폭탄은, 지금 이 자리에서 터진다면 경기장과 관람석이 모두 폭발에 휩싸일 거다. 그 정도의 위력을 지닌 핵과 비슷한 폭발물이니까.”
“그걸 터트릴 생각인가?”
“물론 헌터들이 죽을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관람석에 있는 평범한 인간들은 어떻게 될까? 분명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지. 인간들의 시체가 나뒹굴 거야. 게다가 여동생이 있었다고 들었어. 그 여동생도 이번 대회를 관람 중이라는 모양이야. 너의 여동생은 어떻게 될까?”
“…….”
태석이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지나치게 매서운 표정이었기에 한스는 두려움을 느꼈다.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이 폭탄이 터지건 말건 한스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만약 여동생이 죽는다면, 너는 평범하게 죽지 않을 거야. 온 힘을 동원해 괴롭게 죽게 해주마. 그리고…….”
태석이 씨익 웃었다.
“그 폭탄을 막을 방법은 존재해. 하나에서 두 개 정도.”
한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띡.
리모컨 스위치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