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32. 하얀 가면
[다음 경기는 강철 길드 소속 대한과 성천주 고란 소속 시연의 경기입니다! 10분 후에 대회를 시작합니다!]
‘다음은 대한이 차례인가.’
부디 잘 싸우길.
태석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기실에 있는 이온 음료를 싹 비웠다. 페트병 하나를 다 먹은 직후 숨을 몇 번 가다듬었다. 세희와의 싸움은 제법 재밌었다. 나름 배울 점도 있었다.
‘정령의 속성은 일반 속성 마법보다 더 강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단점이든 장점이든 극대화되어 있는 거야.’
그렇기에 어둠 마법을 사용했을 때 술사조차 어둠에 먹힌 기색을 보였다. 간신히 기절시켜 부정적인 무언가가 세희를 완전히 잡아먹지는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위험한 상황은 분명했다.
태석은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흠, 역시 후덥지근하군.
대회의 열기가 대기실 복도까지 뻗친 탓일까. 더워서 티셔츠가 온통 땀에 젖을 판이다. 이미 땀투성이에 피투성이였지만, 여기서 더 더러워지는 것은 극히 사양이다. 샤워실이 없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남자 하나가 다가왔다.
성천주 겐세 노르도였다.
“겐세.”
“태석, 할 말이 있다.”
겐세가 서둘러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죠?”
태석은 그것이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왜냐면, 여자를 밝히기로 유명한 겐세가 남자인 자신을 찾아올 정도로 큰일이라는 것이었고, 겐세의 표정이 여느 때처럼 능청맞지 않고 어두운 것을 보아 나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불길한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좋지 않은 일이야.”
겐세가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대회장 어딘가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
“네?”
태석이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폭탄이라니, 솔직히 말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이번 대회가 제법 국내에서는 유명하고 참여자가 많다고 해도 폭탄이라니. 그보다 폭탄으로 헌터들을 어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인가?
헌터들은 인간 병기였다. 폭탄 따위로 헌터들을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헌터를 죽일 수 있는 것은 같은 헌터가 거의 유일무이 했다. 아니면 성천주나 괴수. 그 정도가 다였다.
더 멀리 보자면 엘프나 오크, 드워프 정도? 그런데 그런 헌터들이 모인 곳에 폭탄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오던 도중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헌터를 노리는 것이 아닌가?
“헌터 주변에 있는 관객, 일반인들을 노리는 겁니까?”
“그래, 아마 일반인을 노리는 걸 거야. 인명 피해를 막는 것이 우선이다.”
태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 거라면 말이 된다. 헌터들이 모인 이곳에는 구경을 나온 일반인 관객 또한 많았다. 그렇기에 위험한 일이 없도록 대회장과 관중석 사이에 고성능 분석 특화 기기 에덴을 통해 결계를 세워둘 정도였다.
그런 일반인들을 처리하기 위해 폭탄을 설치했다면? 그리고 그 폭탄이 실재하여 터진다면?
큰일 났다. 인명 피해 수준이 아니다. 이건 학살이다.
어서 막아야 한다.
“그 증거는 어디 있습니까?”
그 전에 팩트 체크가 우선이었다.
대한은 시연을 보고 있었다. 대회 예선전이었지만, 긴장감이 남달랐다.
참고로 대한의 이전 성적은 예선 탈락. 그러니 여기서 이기면 신기록 갱신이다.
‘좋아, 이기면 돼. 이기면.’
지극히 긍정적인 회로를 돌리고 있는 그였다. 그리고 그조차도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시연은 성천주 고란의 전속 부하 헌터이다. 강철 길드 소속의 말단인 자신과는 차원이 달랐다. 성장 속도도, 겪어온 경험도, 성천주에게 배울 수 있는 것도, 모든 것이 대한보다 우수했다.
“내가 지는 건가?”
태석을 생각했다. 태석은 S랭크 헌터를 상대로도 잘만 싸워 이겼지. 그도 S랭크였기 때문도 있지만…… 태석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대한은 자신이 질 것이라고 은연중에 확신하고 말았다. 이번에도 예선 탈락일 것이다.
하지만 시연이 말했다.
“그런 시시한 건 싫어요.”
“시시한 거?”
대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이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시시하게 그녀가 이기는 게 싫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원한단 말인가.
대회에서 승리를 원하는 것은 모든 이들의 희망 사항일 텐데, 이기는 게 싫다고?
“최대한 치열하게 싸워서 승리하고 싶어요. 그게 제가 원하는 거예요. 그러니 최선을 다해 싸워요.”
“아아.”
대한이 고개를 내린 채 히죽 웃었다. 입꼬리가 쓰게 올라갔다.
치열하게, 치열하게 이겨낸다라.
태석 또한 언제나 그렇게 이겨온 것일까. 그런 재미를 누리면서 살아온 것일까.
치사하잖아. 왜 그렇게 재밌는 걸 혼자 누려온 건데.
대한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한 손을 뒤로 한 채 지팡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마법 지팡이. 흔히 마법이 나오는 판타지 만화에나 나올 법한 구불구불하게 휘어진 손바닥 한 뼘 길이의 지팡이였다. 그 지팡이를 꺼내 든 채 손을 휘저어 마법진을 빠르게 만들었다.
대한이 행한 마법은 언제나처럼 어둠 마법. 하지만 그간의 훈련을 통해 그 위력은 남달랐다.
“?!”
D랭크 마법이 저 정도라고? 시연은 당황했다. D랭크 마법 수준이 아니다. 사람 하나 크기의 거대한 어둠이 드러난 와중 시연은 저 마법이 적어도 A랭크는 된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수로 훈련을 한 건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대한이 킥킥거렸다.
‘아이템과 훈련을 열심히 행하면 이렇게 되지. 성천주들은 모를 거다. 아이템을 이용해서 훈련하면 얼마만큼의 효율을 발현하는지 말이야.’
훈련용 아이템을 착용하고 훈련하고, 마법을 실제로 행할 때 또한 위력 강화 아이템을 이용한다. 그것이 아홉 개의 반지를 낀 지석의 길드, 강철 길드의 방식이었다.
“템빨이 최고거든.”
콰가가가가-쾅!
어둠 마법이 빠르게 날아가 시연을 향한다. 시연이 서둘러 몸을 비틀어 피했다. 결계에 부딪쳐 터졌다. 그리고 주변이 거무스름한 안개에 휩싸였다.
대한이 사납게 웃으며 소리쳤다.
“어떠냐?!”
“뭐, 나쁘진 않네요.”
시연이 손을 뻗어 빛의 마법을 펼쳤다. 위력은 대한보다 한참이나 낮았다. 하지만 새하얀 빛의 마법 특유의 빛을 보고는 대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속성으로 따졌을 때 벌써부터 내가 패배네.’
이기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어둠은 빛에 약하니까.
하지만 질 수 없다.
대한이 서둘러 마법의 시전을 준비하며 몸을 움직였다. 저 망할 빛만 피하고 다음 공격을 시작하자.
대한과 시연이 싸우는 와중에 태석은 관중석의 사람들을 비집고 어떠한 것을 찾고 있었다.
그가 찾는 것은 위험한 물건, 폭탄이었다. 누군가가 폭탄을 설치했다는 확연한 증거를 보고 난 직후 행동을 취한 것이다.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굴러다니던 폭탄을 우연히 발견해서 폭탄이 있다는 걸 알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우연히 발견한 것도 웃기다. 우연히 발견한 덕분에 인명 피해를 막을 방도를 찾았지만, 폭탄이 얼마만큼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답답했다.
하물며 폭탄을 설치한 장본인을 발견한다면…….
그때 생각난 인물이 있었다.
‘스카이 할 블랜드. 설마 그 여자인가?’
스카이가 벌인 일일까? 하지만 태석은 고개를 저었다. 스카이의 힘으로는, 지금 당장 기적을 행사하면 여기 사람의 반절은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폭탄을 설치하는 수고를 벌일 리 없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 여자가 재미를 위해 폭탄을 설치했다면? 좌절하는 자신을 보기 위한, 흔한 이야기 속 악마처럼 행동한 거라면?
뭐가 됐건 좋지 못한 상황이다.
그때였다.
태석이 수상한 검은 모자를 쓰고 검은 후드티 모자까지 눌러쓴 남자를 발견했다. 서둘러 어깨를 잡아 몸을 돌리고 모자 두 개를 벗겼다.
그리고 소리쳤다.
“말해. 폭탄은 어디에 숨겼지?!”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니었다. 헛것을 잡고 말았다. 이 자는 범인이 아니다.
남자는 치킨 닭다리를 마저 씹어 먹고 말했다.
“폭탄이라니 무슨 소리예요? 그보다 당신은…… 태석 씨?! 아, 팬입니다, 태석 씨. 그보다 폭탄이라는 소리는…… 설마…….”
“아, 아니, 그건 그러니까…….”
태석이 서둘러 눈짓으로 겐세 노르도에게 구조 요청을 보냈다. 하지만 겐세는 무시하고 범인 찾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태석이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빠져나가고자 했다.
“그러니까…… 이벤트…….”
“이벤트? 그러니까 제가 무슨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거죠? 태석 씨랑 면담할 수 있는 이벤트요. 어쩐지 오늘 운이 좋네요. 사인 부탁드려요.”
“네? 네…….”
태석이 사인을 요청하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펜을 얼떨결에 받아 들고는 종이를 본 채 뇌가 블랙아웃되는 느낌을 받았다.
사인……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자신의 사인을 만든 적이 없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떠오를 턱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습해둘걸.
하지만 유명해지는 걸 대비하는 경우는 없기에 별수 없이 지금 당장 창작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발견했다, 범인을.
틀림없이 범인이었다.
하얀 가면을 쓰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손목과 가방의 손잡이를 수갑으로 연결한 남자는, 분명 범인이다.
그 가면을 쓴 범인은 태석보다 한참이나 먼 거리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태석을 발견하고는 복도 쪽으로 가기 위해 관중석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태석은 사인을 적당히 동그라미 몇 개를 연달아 그려놓고 건네주곤 서둘러 뛰어갔다.
겐세가 그 신호를 알아듣고 똑같이 이동했다.
어서 잡아야 한다. 태석은 마음이 급했다. 범인을 잡아 인명 피해를 없애야 했기 때문일까. 어쩌면 영웅이 되고자 하는 심리 탓일지도 모른다.
치지직-.
태석의 안광에서 푸른 천둥이 휘몰아쳤다.
“끄에에에에엑!”
대한은 비명을 질렀다.
빛 마법이 자신의 엉덩이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몸을 뒤로 내빼서 피하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진짜로 죽는다고. 지금 진짜로 죽이려고 한 거야?
그는 연이어 날아오는 빛 마법을 기괴한 자세로 간신히 피해냈다.
곧이어 빛 덩어리가 다시 한 번 날아왔다.
다시 날아오는 빛 덩어리를 피할 수 없다고 직감했다. 피할 수 없는 궤도에서 피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날아왔으니까.
시연이 생각했다.
‘좋아. 우연찮게 얻어걸린 거지만…… 이걸로 1승은 따낸다!’
시연은 빛 마법에 더욱 속도를 걸었다. 각종 버프를 빠르게 걸어 대한을 확실하게 처리할 준비를 모두 마친 뒤였다.
대한은 손을 뻗었다. 지팡이가 꺾였다.
‘뭐야. 뭐야아아아아?!’
내구도가 전부 깎였다. 어둠 마법의 위력이 급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왜냐면, 지팡이 덕분에 위력이 상승한 채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팡이가 중고라 그런지 내구도가 상당히 낮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비싼 거 쓸걸!
대한은 더 이상 생각을 거듭할 시간이 없음을 직감했다. 서둘러 손가락으로 마법진을 그리고 손바닥으로 마법진을 후려쳤다. 연이어 발로 밀어냈다.
쾅!
어둠이 흩어져 나와 파편처럼 날아가 빛 덩어리를 쪼았다. 빛 덩어리가 크기가 조금씩 작아지고 흩어졌다.
속도 또한 느려졌다. 덕분에 대한은 몸을 간신히 눕히듯이 옆으로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연의 다음 공격이 직행했다.
“으. 아? 어?!”
이상한 소리였다. 대한은 마침내 피하지 못하고 빛 마법에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지켜보던 관중들도 알 수 있었고, 시연도 확신했다. 대한 또한 확신했다.
대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서 지는 건가. 예선전에서 또 탈락이야? 자신이 무슨 전투력 측정기인 줄 아는 건가, 이 사람들은?
그보다 왜 아무도 안타깝다는 표정이 없이 웃고 있는 건데?
대한은 자신이 우스꽝스러운 꼴이라는 것을 미소 짓고 있는 관중들을 보며 알 수 있었다.
“웃기지 마.”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기도를 하듯 두 손을 맞잡았다. 동시에 마력을 흩뿌렸다.
“나는 피에로가 아니라고.”
대한은 어릴 적부터 남들에게 웃음을 주고자 노력했다.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여 태석을 웃게끔 했다. 왜냐면, 태석이 언제나 시무룩한 표정으로 세상 다 산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그를 웃게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남들에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 멋진 모습. 그러니까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싸움에서 이기는 것. 그것이 대한이 원하는 것이다.
1승이라도 따자!
대한의 마법이 마침내 전개됐다. 맞잡은 손을 중심으로 은은한 회색의 에너지가 그를 감쌌다.
“?!”
시연이 놀랐다. 저 기술은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언제였지?
기억났다.
태석이 방어를 잠깐 펼칠 때 종종 쓰곤 했다. 잘 쓰지는 않았지만, 리치와 싸울 때가 아닌 약한 괴수들과 싸울 때는 줄곧 손을 맞잡아 반지의 힘을 썼다. 그 도구를 강철 반지라 불렀던 건가.
효과가 뭐였지? 분명…… 모든 공격을 1회에 한하여 방어하는 능력이라고 들었다.
“방어막?”
시연이 누구에게 묻는 것은 아니었지만, 방어막이 아닐까 생각하며 말했고, 대한이 소리쳤다.
“반사다! 이 자슥아!”
팅!
빛 마법이 대한에게 부딪쳤고, 궤도가 틀어졌다. 아니, 이것은 틀어진 정도가 아니었다. 주변 온갖 곳에 산발하여 퍼졌고, 대한에게는 일체 영향이 없었다. 그리고 그 빛 마법이 이곳저곳으로 분산되어 퍼지며 땅에 맞아 사라지고, 결계에 맞아 튕겨 나가고, 다시 대한의 반사막에 맞아 튕겨 나가고 하고 있다.
동시에 몇 개의 빛이 빛 마법을 쏜 시연에게 부딪쳤다.
쾅! 콰강! 콰강!
“큭, 끄으으윽!”
시연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마법에 자신이 맞다니. 치욕스러웠다. 대한의 반사막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모든 빛 마법을 반사하고, 그 반사막의 각도에 따라 반사시켜 여러 갈래로 온갖 곳에 퍼지게 했다. 그 빛의 줄기는 가히 수백 개가 넘게 흩어졌고, 몇 가지가 시연에게 맞아 큰 데미지를 주었다.
대한이 비틀거리며 반사막을 거두었다. 빛 마법이 모두 소멸하여 사라진 뒤였다. 대한이 엄지 손가락을 위로 척 올리며 말했다.
“좋아, 반격의 시작이다.”
왜인지 멋있다.
대한은 자신의 상태를 그렇게 어림짐작했다. 너무 멋져서 자신에게 자신이 반할 정도였다.
시연이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하지?’
하지만 미소를 지었다. 대한의 마력은 척 보기에도 부족해 보였다. 방금 전 반사막이 마력 소모를 크게 한 모양이다. 호흡이 거칠었고 두 발로 서 있는 것도 힘든지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반면에 시연은 멀쩡했다. 빛 마법도 아직 몇 차례 더 쏠 수 있고, 호흡도 양호했다. 몸의 상태도 멀쩡했다. 비록 몇 군데가 아리고 피가 나왔지만. 아무래도 빛 마법에 자신이 맞은 것이 문제인 모양이다.
시연이 두 발을 적당히 벌려 전투 자세를 취했다. 고란에게 배운 격투술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대한 또한 덜덜 떨리는 몸을 가다듬고 주먹을 쥐어 싸울 자세를 취했다.
이제부터 남은 것은 개싸움이다. 대한은 비록 여자일지라도 이기기 위해 때릴 각오를 마친 뒤였다.
“으아아아아!”
대한이 달려갔다. 시연 또한 대한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두 D랭크 헌터가 격돌한다.
태석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가면을 쓴 남자를 추격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꽤 많고 혼잡하여 지나가기조차 힘들었다. 가면을 쓴 남자는 그 사이에 꽤 멀리까지 도망가고 말았다.
‘젠장. 어쩌면 좋지?’
[토르가 자신의 힘을 쓸 것을 재촉합니다.]
[로키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하품을 합니다.]
일단 토르의 힘을 강신했다. 푸른 천둥이 안광을 스치고 지나갔다. 태석은 서둘러 자신의 몸에 비바람을 둘렀다. 그러자 사람들이 적당한 세기로 밀쳐져 지나가기 수월해졌다. 태석이 재빠르게 달려가 빠르게 가면을 쓴 남자를 추격했다.
반면 겐세 노르도는 성천주답게 천장 쪽으로 발을 부착하여 달리고 있었다. 중력이 반전되었나 싶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태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겐세를 보며 뛰는데 겐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왜 그러는가?”
“아니요. 성천주답구나 싶어서요.”
“어서 쫓아가자. 한눈팔 시간 없다.”
태석이 가면을 쓴 남자에게 완전히 근접했다. 가면을 쓴 남자는 서둘러 몸을 돌리며 무언가를 집어 던졌다. 그것을 보고 겐세가 소리쳤다.
“폭탄이다!”
“역시, 저 녀석이 폭탄과 관련이 있는 건가!?”
그보다 폭탄이 떨어졌다. 터질지도 모른다. 겐세가 서둘러 폭탄 쪽으로 몸을 날렸다.
“이 폭탄은 내가 막을 테니, 너는 어서 쫓아라!”
“네!”
태석이 폭탄을 지나쳐 달렸고, 겐세는 폭탄을 몸으로 감싸 터지게 했다. 겐세의 육신에만 폭탄의 파편이 맞아 들어갔고, 겐세는 상처 하나 없이, 다만 옷의 일부가 찢어진 채로 뒤따라 달렸다.
태석은 가면을 쓴 남자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남자가 단숨에 쓰러졌다. 뇌진탕이 살짝 온 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태석이 입을 다문 채 가면을 쓴 남자의 가면을 벗겼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얼굴이 없다. 아니, 없다기보다는 화상에 의해 눈코입의 구멍을 제외한 모든 것이 짓뭉개져 있다는 느낌이다.
대체 이 녀석은 정체가 뭐지?
“너는 누구냐.”
궁금했기에 물었다.
가면을 쓴 남자가 히죽 웃으며 소리쳤다.
“헌터가 없는 세상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입을 꽉 깨물었다.
콰득.
무언가 속에서 터지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