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30. 준비의 끝
스카이 할 블랜드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녀가 있는 곳은 강철 길드 건물 근처 호텔의 어느 스위트룸이었다. 스카이는 제법 돈이 많은 편이었고, 그 돈을 흥청망청 남김없이 쓰는 여자였다. 그러니 제법 방값이 비싼 시기에도 스위트룸을 사서 쓸 정도로 부유한 것이다.
아쉽게 됐네.
스카이는 태석이라는 헌터와의 싸움이 아쉽다고 느꼈다. 전력을 다했음에도 패배한 것이 아쉬웠던 것일까.
녀석은 너무 강해. 지금의 나로는 이길 수 없어. 어쩌면…… 악마 여러 명이서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을지도…….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힘으로도 부족했다. 게다가 악마들이 힘을 합친다는 사이 좋은 일 따위는 여태껏 없었다. 그리고 악마들이 힘을 합친다 해도 태석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태석이 강한 탓도 있다. 하지만 상성 문제가 컸다.
신은 예로부터 악마를 처리하는 데에 특화된 존재들이다. 불을 끌 수 있는 것이 산소가 없는 물이듯이, 악마를 없앨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바람이 만들어낸 신이라는 존재들이다. 신화 속의 그들은 언제나 악을 처리하는 입장이었다. 악신을 제외하고는.
그러니 이길 수 없다. 자신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필요하다. 이기지 않고 살아남는, 그런 방법이.
멍청한 분노의 악마가 이미 태석을 자신의 적으로 삼았다. 그러니 악마로서 태석을 적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예를 들어…… 태석의 편이 된다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닥쳐오지 않을까. 그리 생각한 것이다.
스카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분노의 악마 데리안이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한숨을 내뱉고는 벗어 던진 옷을 대충 기워 입었다. 그래 봤자 속옷뿐이었지만.
그녀가 문을 열고 남자를 보았다. 예상대로 분노의 악마, 데리안이었다. 스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길게 즐길 거야? 아니면 짧게?”
“시끄러. 그보다 뭘 하고 다녔던 거냐.”
“뭐가? 여기서 밥 먹고 있었는데.”
스카이가 먹다 남은 밥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스카이 나름대로 알리바이를 준비해둔 것일 터였지만, 데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속이는 것에도 정도가 있지. 뻔히 같은 악마이면서도 능청맞게 알리바이를 주장하는 꼴이 우스웠다.
“아바타를 이용한 걸 텐데. 본신이 뭘 하든 아바타는 활동할 수 있잖아. 그러니 알리바이는 소용없어.”
“재미없게.”
스카이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데리안에게 침대를 텅텅 두드리며 말했다.
“옆에 앉아.”
“…….”
앉지 않는다. 데리안은 어서 스카이가 자신이 한 일을 서둘러 말하기를 바랄 뿐이다.
재미없기는.
스카이는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태석을 만나고 왔어. 정확히는 태석과 관련 있는 성천주의 정기를 빼앗고자 했어.”
“성공했나?”
“실패했어.”
“꼴이 우습군.”
끌끌대며 데리안이 비웃었다.
스카이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왜냐면, 진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태석은 너무 강하다. 스카이가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데리안의 악계자가 단숨에 당할 정도로. 그런 녀석을 도대체 어떻게 이긴다는 말인가? 설령 스카이가 데리안의 악계자 후보를 데려다 놓는다 해도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S랭크 헌터라도 악계자가 되는 이상 태석의 신을 다루는 능력에 약점이 되고 만다. 악마와 비슷해지기 때문에 신에게 약해지는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스카이가 악계자 후보를 데려다 놓는다 해도 얻는 것은 없다. 손해만 있을 뿐이다.
바로 태석이 악계자와 싸우면서 경험까지 쌓게 해주는 손해만 있었다.
그렇기에 스카이가 말했다.
“당분간 악계자 후보 만들 생각은 하지 마.”
“뭐? 무슨 개소리냐.”
데리안이 화를 터트렸다. 어째서 악계자 후보를 내놓지 않겠다는 거지? 데리안은 나름의 거래를 했다. 자신이 준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말을 바꾸다니? 말도 안 되는 짓이다. 역시 이년을 믿는 것이 아니었다.
스카이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악계자 후보를 만들면 뭘 할 생각이야? 그것부터 좀 묻자.”
“당연히 태석을 족친다.”
“그러니 안 된다는 거야.”
“뭐?”
“이길 수 없어. 그건 알지?”
“그, 그건…….”
사실이었다. 데리안은 마음속 깊이에서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악계자를 얻는다 해도, 태석과 싸운다 해도, 이길 수 없다. 그건 알고 있었다.
제길, 자존심 상하는군.
데리안이 인상을 찌푸리며 살짝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분노의 악마치고는 소심한 분노였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 그 영향이었을까. 스카이가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같이 몸의 대화나 나누자고, 오빠.”
“…….”
쾅.
데리안이 문을 쾅 하고 열고 나갔다. 스카이가 침대에 돌아누우면서 말했다.
“재미없어.”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짜증을 터트렸다. 하고 싶은 상대와 하지 못하는 기분은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다른 평범한 인간의 경우는 몰랐지만, 확실히 색욕의 악마로서 욕구 불만은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스카이가 침대에 누운 채로, 이번에는 천장을 바라보며 혼자 말했다.
“그러면 태석, 활약을 기대하겠어.”
자신도 나름대로 준비한 것이 있다. 아주 놀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준비한 것에 태석이 어떻게 행동하느냐, 어떤 일을 해내느냐에 따라 자신의 행보가 결정된다. 지금은 그저 기다릴 뿐. 그저 누워서 잠을 자면 될 뿐이다.
스카이가 눈을 감았다.
태석은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직전 대기실이었다.
기본 무기 여러 개가 대기실 벽에 배치되어 있었고, 아무래도 무기를 안 쓰는 사람도 한 번 써보라는 식으로 보여주기식 배치인 듯했다.
태석은 자신이 들고 있는 속성 단검을 보았다. 지석이 줬던 것이다. 이걸 쓰기로 했다. 다른 건 손에 감기지 않았으니.
자신의 상대는 누구일까. 궁금해서 성천주 겐세 노르도에게 물었고, 답변이 있었다.
‘녀석은 정령술사다. 성천주 한스 셸에게 정령술을 어려서부터 배워서 쓰고 있지. 다양한 정령을 부리는 게 특기. 다만 한스에게 어려서부터 학대를 받았다는 소문이 있어. 제정신은 아닐 거야. 이름은 세희. 꽤나 예쁘지. 크흐흐.’
······솔직히, 겐세 노르도는 생긴 것만 멀쩡하지 변태였다.
사실 태석은 온전히 대회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겐세에게 들은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수락했고, 하나는 거절했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그 수락한 제안에 대해서 고민할 게 있었기 때문이다.
수락하든 거절하든 고민할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태석은 자신에게 온 제안을 되새겼다.
‘태석, 나, 성천주 겐세 노르도의 헌터가 될 생각은 없나?’
이 제안은 거절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성천주의 헌터가 되는 순간 자유로운 행동은 할 수 없었다. 물론 성천주의 배움을 받아 강해질 수 있고, 흑수정 정화 작업도 편하게 잘할 수 있었지만, 태석에게는 자유가 없다는 것이 더 큰 단점이었다. 게다가 이미 태석은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 신의 능력을 강신하고, 그 강신하는 신의 개수를 어떻게든 늘리면 강해질 수 있었다. 굳이 성천주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거절.
‘스카이 할 블랜드 살해 작전에 동참할 생각은 없나?’
수락했다.
스카이는 악마였다. 그것도 성천주를 살해하려고 한 전적이 있는 악마. 그러니 죽어 마땅하다. 남을 죽이는 존재. 그것도 세상을 망가트리려는 악마나 악계자는 이상하게도 거부감이 들고 혐오감이 들었다. 그러니 수락한 것인데…… 자신이 가능할까?
녀석은 분명 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처리할 방법도 없다. 미꾸라지같이 이번에는 아바타를 이용했다는 둥 하면서 도망쳤다. 다음번에도 안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뭔가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태석이 아까부터 고민해봤지만, 답은 없었다.
태석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지금 고민해도 소용없어. 일단은 대회에 집중하자.
눈앞에 닥친 것은 대회니까 대회에만 온 힘을 쏟자. 그래야만 한다.
태석이 그렇게 생각했고, 곧이어 방송이 들렸다.
[다음 경기는 날씨를 다루는, A랭크 리치를 단신으로 잡은 기류의 헌터, 태석! 그리고 상대는 정령을 다루는 한스 셸 성천주 소속 정령술사, 세진! 둘 다 S랭크의 헌터들이죠! 나름 멋있는 경기를 보여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면 이제 곧 경기를 시작합니다!]
시작했다. 드디어.
태석은 침을 삼켰다. 살짝 긴장되었다. 하지만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고자 했다.
놀랍게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편안했다.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던 무언가가 전부 사라진 기분이었다.
[토르가 자기 나름대로 당신의 복잡한 마음을 정리해주었습니다!]
그런 것도 가능한 건가. 하긴, 신인데 그런 신기한 일을 하지 못할 것은 또 없다. 태석은 마음속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아이언 월드 대회 예선전. 그 대회의, 태석의 첫 경기가 시작된다.
세희는 눈가가 축 처진 반면 눈꼬리가 올라가 있어 약하면서도 강해 보이는, 그런 모순적인 면모를 보이는 미모의 여성이었다.
아이언 월드 대회 예선전 직전, 세희는 불안감이 극도로 달해 있었다.
가슴 한켠이 무언가 바늘 같은 것으로 지속적으로 톱니바퀴 마냥 일정 패턴으로 찌르는 느낌이다. 흔히 말해 긴장 탓에 고통까지 느끼는 상황이라는 소리였다.
‘지면 안 돼, 지면 안 돼.’
지게 되면 큰일 난다. 자신의 자존심이나 우승 상금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의 그런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다.
지면, 한스 셸에게 고통을 받는다. 그녀가 상상도 못 할 방법으로 한스는 고문 할 것이 분명했다.
퉁.
무언가 철판이 퉁퉁거리는 소리에 세희가 히익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벽 쪽으로 달려가 붙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지? 설마 한스가 또다시 무기를 들고 온 것일까? 대회 전에 긴장을 풀기 위한 매질이라면서? 그러면 안 된다. 무서우니까. 죽기 싫으니까. 살고 싶으니까.
평화롭게,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즐겁게 지내고 싶은 것이 세희의 소망이자 이룰 수 없는 꿈이었으니까.
한스가 들어왔다. 세희는 직전 대기실 벽 구석에 붙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왜 오셨어요?”
마치 책망하는 것 같았다. 세희는 자신이 말하고도 불안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것 같았다. 설마하니 책망하는 말투라면서 때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고민이 든 것이다.
한스가 가만히 세희를 노려보았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로맨스 소설에서 첫눈에 반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겁에 질려, 죽음을 예측하여, 주마등이 스칠 것만 같은 그런 감정이다.
“제대로 해라, 새끼야.”
한스는 고개를 저었다.
세희가 다행히 주먹이 날아온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왜냐면, 한스는 저렇게 말을 하기보다는 행동, 주먹을 휘둘러 의사표현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벌써 온몸에 멍 자국이 가득하다. 이 이상 멍이 들 장소도 없을 정도였다.
한스는 세희를 때릴 때 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부분만 때리는 취미가 있었다. 그래야 걸리지 않고 학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스가 말했다.
“대답은? 대답은 없는 거야? 또 때려줄까?”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하면 다야?”
한스가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인간은 안 된다. 자신 또한 지구가 아닌 외계 행성에서 태어났다면, 하다못해 성천주로서 오크들의 행성에 태어났다면, 그나마 나은 녀석을 자신의 부하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인간 헌터 따위 나약하고 성가시다. 신경 쓸 것이 많았다. 금방 죽고, 금방 다치기 때문이다.
그는 한숨을 푹 내뱉으며 발로 땅을 몇 번 헤집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세희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세희가 겁에 질려 덜덜 떠는 모습을 보았다.
보기 좋군. 은근히 섹시해.
한스는 혀로 입가를 핥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자신 같은 쓰레기라고 해도 인간 따위를 범할 정도로 궁하지는 않았다. 그는 성천주였으며, 뭐든지 할 수 있었으니까.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씹질 정도는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당장 어제만 해도…….
“아무튼.”
한스가 자신의 생각을 일축했다. 그리고는 세희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반드시 이겨라. 진다면 고문이 있을 거야. 반드시 이겨.”
“네, 네!”
“그래, 대답은 괜찮군. 흠…….”
한스가 세희를 보다가 천천히 다가갔다. 세희는 겁에 질려 눈까지 질끔 감았다. 한스는 세희에게 근접한 채 고개를 내렸다 올리며 신체의 전 부위를 훑어 보았다. 핥듯이 본 것이다. 성희롱이다.
하지만 그 성희롱은 한스가 의도한 것이다. 한스는 세희를 사랑했다. 사랑하니까 고문한 것이다. 그런 비틀린 행동으로 한스는 세희에게 사랑을 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플라토닉 러브로 할 것을 한스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물론 다른 여자를 먹는 것은 세희를 먹는 것이 아니니 예외였다. 한스는 세희의 턱을 잡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감상했다. 그리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먹음직스럽다. 정말 아름답다.
아아, 자신은 역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한스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자신의 자리, 성천주들이 앉는 곳으로 돌아가려는 심산이었다.
참고로 세희의 상대는 성천주도 모시지 않는 S랭크 헌터 태석. 세희가 이길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걸리는군.’
뭐 어때. 지게 되면 세희를 흠씬 두들겨 패면 될 일이다. 한스는 그렇게 생각하고 직전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세희는 그가 나간 것을 확신하고 난 뒤에야 주저앉았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두렵다. 개미들이 온몸을 파고들어 심장까지 뚫고 들어온 느낌이다. 심장 속에 여왕개미라도 있는 것인지, 계속 쿵쿵거렸다.
한 차례 크게 운 세희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볼로 자신의 얼굴을 탁탁 두드렸다.
‘이기자. 이기면 되는 거야.’
하지만 그 승리가 작금의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다. 세희의 승리 뒤에 남은 것은 더 큰 승리의 기원일 뿐이다. 한스는 세희가 최고의 헌터가 되어야만 만족하는 것일까. 애당초 그럴 거면 자신 같은 평범한 헌터를 어째서 부하로 받아들인 걸까. 심지어 어릴 때는 헌터도 아니었는데, 어째서…….
세희는 몸을 일으켰다.
대회 준비를 하라는 방송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대회가 여기서 시작된다.
태석과 세희의 대련이 시작된다.
태석은 대회가 펼쳐지는 중심에 서 있었다. 거대한 돔 형태의 경기장이다. 그리고 경기장과 관중석은 반투명한, 그리고 푸르스름한 결계로 막혀 있다. 아무리 강한 마법이나 기적이 솟구친다 해도 웬만하면 저 결계가 막아줄 것이다.
태석은 자세히 몰랐지만, 사실 결계는 고성능 분석 특화 기기 ‘에덴’에 의해 개발된 최고급 방어 결계였다. 방어 면에 있어서는 최고급의 성능을 자랑했다. 하지만 방어 면에서만 뛰어났기에 소리나 내부의 모습은 오히려 잘 보였다. 그러니 방송용으로 쓰기에 적합한 것이다.
‘에덴…… 그러고 보니 뉴스에서만 보고 직접 본 적은 없네.’
당연했다. 에덴은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자세히 알려질 수 없는 종류의 물건이니까.
지구인들의 유일한 장점이라 보면 된다. 외계의 오크나 엘프, 드워프들은 에덴 같은 물건을 가지지 못했으니까.
에덴에 대해 자세히 모르니 태석으로서는 뭐라 평가할 수 없었지만……. 태석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팔을 각각 손으로 툭툭 쳤다.
그리고 눈가에 푸른 천둥이 스쳐 지나갔다. 토르의 힘을 받아들인 것이다.
[토르가 만족한 듯 울부짖습니다.]
[토르의 힘을 더욱 잘 활용할 수 있습니다.]
[로키가 자신의 힘을 쓸 것을 재촉합니다.]
‘신이 많으니…… 난리법석이네.’
앞으로 신이 더 늘어난다면 제법 볼 만한 광경일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머리 아프다.
태석이 이것저것 생각하며 상대를 기다리는 사이 경기장 반대편에서 여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저 녀석이…… 세희.’
한스 셸이라는 성천주의 부하 헌터, 세희.
정령술사라고 들었다.
보아하니 벌써부터 몸에서 푸른 기운이 흘러나왔다. 정령술사가 힘을 개방했을 때 보이는 것일까. 얼핏 보면 토르의 천둥과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색상이 유독 비슷했다.
세희가 5m 정도 거리를 벌린 채 태석을 노려보았다.
경기장 밖에서 뭐라 뭐라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방송 소리 같았다. 아마 태석과 세희에 대해 이것저것 지껄이는 것이 틀림없다. 방송의 재미를 위해서겠지.
태석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세희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지금은 시연도, 고란도, 스카이도, 겐세도, 대한도,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는다.
태석은 세희를 보았던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매섭게 째려보았다.
“네가 세희군.”
“네가 태석이야?”
“응.”
태석은 예상외로 나긋나긋하고 감정 없는 말투의 세희의 목소리를 듣고 당황했다.
뭐 저리 차분해? 감정이 전혀 없다는 느낌이잖아.
태석의 생각을 뒤로하고, 세희는 말한다.
“뭐, 리치와의 전투에서 네가 꽤나 큰 힘을 보여줬다는 것은 알고 있어.”
“그래, 그러면 항복할 건가?”
“아니, 절대로 안 해. 아니, 못해.”
“……그건…….”
“동정하지 마.”
세희가 인상을 찌푸리며 노려본다. 그리고 이어서 소리쳤다.
“내가 질 일은 없어. 그동안 잘 이겨왔으니까. 두들겨 맞으면서도 버텨왔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너를 이번에도 이길 거야!”
세희의 말은 뭔가…… 슬프게 느껴졌다. 말하는 쪽이 슬프다는 것이 아니다. 듣는 자신 쪽에서 슬픔이 느껴졌다. 세희의 목소리가 갈라지고 비틀리며 덜덜 떨린 것이, 마치 겁먹은 토끼를 보는 것 같았다.
토끼가 스트레스를 받아 자신의 새끼 토끼를 잡아먹는 것……. 왜인지 그 장면이 떠올렸다. 어째서 떠오른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태석은 세희에게 말했다.
“동정하지 않아. 네가 무슨 일을 겪건 내 상관이 아니야.”
태석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면 실력을 볼까?”
태석이 곧바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몽둥이 같은 손잡이가 손에서 튀어나왔다. 그것을 탁 하고 놓치지 않고 잡았다.
스카이에게 전에 야구 방망이 같은 이것을 묠니르라고 속였지만, 사실 속인 것도 속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묠니르의 손잡이.’
묠니르를 더 잘 다루기 위한 손잡이. 그러니 이것은 묠니르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곧이어 하늘에서 천둥이 내려쳤다.
꽈르르릉!
천둥이 태석에게 정통으로 맞았다.
“꺄아아악!”
세희가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세희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바람의 정령을 불러들였다. 바람이 세희의 주변을 소용돌이치며 풍압을 만들었다. 그것은 갑옷 대용이었다. 갑옷보다 유용했다. 자신의 행동을 더 빠르게 하도록, 바람을 통해 몸을 세부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으니까.
방어와 민첩을 둘 다 잡은 정령술이다.
세희는 태석을 노려보았다. 태석의 천둥에 의해 생긴 사철 안개가 거두어지고, 태석이 들고 있던 야구 방망이 같은 묠니르의 손잡이에 거대한 둔기가 붙어 있었다.
원통형의 거대한 둔기, 묠니르의 본체였다.
태석이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자, 시작해볼까?”
세희가 침을 삼켰다.
왠지 모르게 불길하다. 하지만 동시에 고양감이 솟아올랐다.
즐거운 대련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