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28. 담배
겐세는 고란이 들어간 대기실 문을 가만히 보았다. 그리고는 담배를 꺼내 들고 간단한 기적으로 손가락 끝에 불을 일으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런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극히 사양하는 바겠지만…….’
사람들은 그런 겐세를 모르는 척 지나가고 있었다. 종종 관계자들이 지나갔다. 양복을 입은 기업가부터, 무기를 들고 있는 헌터, 그리고 그들 중에서 유독 뛰어난 강철 길드의 길드원 헌터들…….
많은 이들이 겐세가 담배를 피우든 말든 상관치 않고 지나갔다.
겐세는 성천주였다. 그리고 성천주이기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있는 법이다.
별것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가끔 들이닥치는 불행한 일. 요컨대 자신의 부하 헌터의 죽음 같은 것을 겪으면 담배가 무지 당기기 마련이다.
며칠 전, 겐세는 또 헌터 둘을 잃었다. 본래 성천주는 스무 명에서 삼십 명가량의 헌터들을 이끌고 다닌다. 그리고 겐세에게는 그보다 많은 오십 명가량이 있었고, 전부 여자였다.
전장의 가희. 그것이 유독 외모가 뛰어나고 실력 또한 뛰어난 겐세의 부하 헌터들의 조직명이었다.
‘어쩌면, 이런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고란은 올바른 선택을 한 걸지도 몰라.’
원래라면 겐세는 이 세상의 모든 흑수정을 정화하겠다는 사명을 품고 나서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 겐세는 그 마음이 꺾였다.
나무같이 우직한 마음은 꺾이고 꺾여 풍화되고 갈대처럼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필시 그것이 무너지는 것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이리라.
겐세는 담배를 복도 바닥에 발로 비벼 껐다. 그리고 적당히 치유 기적을 실행해 복도에 남은 그을린 자국을 모두 없앴다.
아무리 겐세가 여욕이 강하고 생각 없이 구는 것 같아도 사소한 예의 정도는 있는 편이다. 그것이 고란보다 살짝 나은 점이라면 나은 점이랄까. 결코 나쁜 점은 아니다.
겐세가 그렇게 정리하고 대기실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등 뒤의 기척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컥, 커억.”
고통스러웠다.
몸속의 모든 것이 쥐어짜지는 느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겐세는 머리가 굳은 듯 사고할 수 없었으나, 겨우겨우 사고를 전개해 상황을 파악한다.
자신의 몸이 움직일 수 없는 것은 필시 기적과 같은 종류의 것으로, 누군가가 막은 것이다.
그리고 몸속의 무언가를 빼내는 것도 필시 기적과 같은 무언가일 것이다.
마력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천주가…… 배신한 건가?’
겐세가 그렇게 의구심을 품고 고개를 삐걱삐걱 돌린다. 고장 난 톱니바퀴처럼 힘겹게 목 근육을 움직여 뒤를 본다.
그리고 그 뒤에는 여자 한 명이 있었다.
아름답다. 지금처럼 긴장 상태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필시 겐세는 어떻게 해보려고 했을 것이다. 육체적인 대화를 나누고자 갖은 노력을 다할 정도로,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였다.
하지만 표정은 차갑다. 차가움과 동시에 상냥했다. 위험한 여자라고 느껴졌다. 이런 여자를 어디서 또 봤을까……. 아마 겐세는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설마…….”
“그래. 색욕의 악마, 스카이 할 블랜드야.”
“악마…… 라고?”
“성천주가 생겨난 지는 꽤 오래되었고, 지구상에 태어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 그리고 헌터들도 지구상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런 존재가 나타난 후, 우주의 외계인들은 너희들에게 흑수정의 위험성을 설명했어. 우주의 외계인들, 오크와 엘프들이 대략적으로 설명해주었기에 너희들은 빠르게 흑수정 정화에 나섰고, 다행히 지구는 무사할 수 있었지. 완전히 무사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은 상황이 됐어.”
“너는…… 정체가…… 뭐…… 냐.”
“악마라고 했잖아?”
악마. 그래, 악마라고는 들었다. 하지만 악마라는 것이 실존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왜냐면, 겐세는 악마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겐세는 손가락을 힘겹게 움직였다. 피가 통하지 않고 신경이 절단되어 괴사한 것 마냥, 고통스럽고 감각이 없다. 하지만 겨우겨우 움직여 손가락으로 조그마한 마법진을 허공에 긋는다.
기적이 실행된다. 손가락의 마법진은 기적을 심상에서 구현하기 위해 펼치는 행위. 그 행위를 통해 기적 하나가 발동된다.
팡!
색욕의 악마, 스카이 할 블랜드에게 하얀빛이 직격했다. 성천주 겐세의 등에서 튀어나와 스카이를 후려치고, 날개의 형태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래, 네가 펼친 이것이 세계의 시스템 조작. 기적이라고 불리는 거지. 세계의 규칙을 뒤흔들어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일어나게 하는 것. 그런 것을 쓸 수 있는 존재는 성천주와 악마가 유일하기에, 너희 성천주들은 이 힘으로 세계의 바이러스, 흑수정 정화가 가능한 거야. 그러니까…… 세계의 위대한 자들이 보낸 백신 같은 존재들이, 너희야.”
겐세의 몸은 여전히 굳어 있다. 기적을 펼쳐 상태이상을 회복하고자 한 것인데, 전혀 효과가 없다. 빛의 날개 또한 겐세의 등에서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대체 이게 무슨……?”
기적이 통하지 않는다고? 기적은 본디 방어책이라고는 다른 기적 외에는 없다. 더 강한 기적이 무조건 이기는 것이다. 그런데…… 스카이는 그 기적을 없애 버렸다. 겐세의 강력한 기적을. 겐세는 황당하면서도 두려운 표정으로 스카이를 노려보았다.
스카이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말했잖아? 기적은 성천주와 악마가 쓸 수 있다고. 너와 나는 각각 성천주와 악마니 기적은 둘 다 쓸 수 있어. 그리고…… 나는 너보다 수 배는 오래 살았단다? 기적의 농도가 달라.”
“…….”
망했다. 겐세는 스카이의 기적에 의해 몸을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체크메이트.
완전한 패배인 것이다.
“나를 어쩔 셈이지.”
“정기를 모두 흡수할 생각이야.”
그리고 겐세의 귓가에 혀가 핥는 느낌이 났다. 혀가 핥아졌을 뿐인데도 온 신경이 요동쳤다. 고통과 쾌락이 뒤섞여 끔찍한 괴감각을 만들어냈다.
겐세가 기적을 계속 발동하기 위해 손가락을 긋지만, 계속 사라진다.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압도당하듯이, 겐세와 스카이의 기적의 힘의 차이는 컸다.
그리고 모든 걸 포기한 그때였다.
파직!
푸른 전격, 아니 천둥이 휘몰아쳤다. 악마, 스카이에게 직격했다.
“끄으으윽!”
스카이가 통증을 느끼며 기적을 해제하고는 뒤로 물러나 천둥이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
겐세가 숨을 헐떡이면서 고통 섞인 호흡을 내뱉었다.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젠장, 꼴이 말이 아니군.
그러고는 스카이 쪽을 훑어 보고 천둥이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
그리고 살짝 놀랐다. 이 녀석도 아이언 월드 대회에 참가하는 것인가? 돈을 노리고 참가한 것인가? 그보다 좋은 타이밍에 나타나 줬다.
엄태석이 등장한 것이다.
엄태석의 등장 덕분에, 천둥을 날려준 덕분에…… 겐세는 스카이의 기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과연…… 고란이 반할 만해.’
고란은 남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지도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연애는커녕 남자와의 뭔가 사건이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태석과 사냥을 했던 순간, 고란은 언제나 말끝마다 태석에 대한 얘기를 했다.
겐세는 태석의 눈가에서 흩날리는 푸른 천둥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스카이가 태석을 보고는 사납게 웃었다. 그 아름답고 고혹적인 얼굴이 엉망으로 찌그려졌다.
“너는 누구지?”
“엄태석. 기류의 헌터야.”
태석이 단검을 역수로 쥔 채 스카이 쪽을 보며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천둥이 일제히 단검으로 모였다. 눈가에는 여전히 푸른 천둥이 파직거리고, 단검은 거의 천둥으로 범벅이 된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찌지지지지지직-!
쇠 긁는 소리가 단검에서 나고 있었다.
스카이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너구나, 태석. 네가 분노의 악마의 악계자를 죽였어.”
“그런가? 분노의 악마의 부하였던 거였군.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태석이 잠시 고민했다. 눈앞의 여자가 뭔가 이상한 짓을 하길래 천둥으로 공격을 했던 것인데, 정말로 안 좋은 행위를 하려던 모양이다. 성천주 겐세 노르도가 숨을 헐떡이며 피를 입가에 내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이 여자는, 강철호와 같이 악인이다.
정체는 모르겠지만…… 아마 악마나 악계자, 둘 중 하나겠지.
그렇기에 천둥을 강하게 휘몰아치고 비바람을 일으켜 자신의 몸 주변에 풍압을 통해 방어벽을 세우고는 말했다.
“너는 누구지?”
“나?”
악마, 스카이 할 블랜드가 자신을 소개했다.
“색욕의 악마, 스카이 할 블랜드다.”
“악마라면…….”
태석은 고민도 않고 즉답했다.
“처리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