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23. 맑은 밤하늘
식사가 끝났다. 아니, 식사의 범주에 들어갈 정도로 정상적인 식사량은 아니었다. 고기는 인당 6인분에, 여동생은 하나를 더 먹었다. 뷔페 전용 튀김이나 초밥 같은 것을 여러 접시를 비웠다.
스테이크를 잔뜩 시켜 먹었을 때는 뭔가 활기찬 기류까지 느껴졌으나, 뷔페 음식을 열심히 접시에 채워 먹을 때는 뭔가 초상집 같은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많이 먹었거든.
태석은 새삼 뷔페 레스토랑에서 대식가가 왔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다시 한 번 체험할 수 있었다.
어쩌면 블랙리스트에 등재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우리 스테이크는 많이 주문해 먹었잖아.”
태희의 말에 생각을 거두었다. 그러고 보니 미안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비싼 스테이크를 그렇게 주문했으니 사실상 뷔페 레스토랑의 매출에 크게 이바지한 셈이었다.
오히려 당당해질 수 있었다. 태석과 태희는 레스토랑의 밖으로 나왔다. 따스한 실내 공기가 그들의 몸을 덥혔다. 밖의 날씨는 알 수 없었지만, 살짝 더울 정도로 따듯한 실내였다.
음, 몸에 조금 땀이 나는데. 태희도 더울지도 모른다. 태석은 태희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래, 좋아.”
태희는 그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실내에서 실외로 나와 본 광경은 별 하나 없는 밤하늘이었다.
“별이라고는 전혀 없네.”
태석은 한성 놀이공원의 별이 넘치는 풍경을 보았었고,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어느 위치에 어떤 별이 있었나 어림짐작해보았지만, 새삼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별자리 탐방이라니, 솔직히 자신에게 하등 쓸모없는 짓이다.
태석과 태희는 한참을 밤거리를 걸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거나, 학원이 끝나 책가방을 들고 집으로 바삐 향하거나, 차를 몰고 어딘가로 바삐 가고 있었다. 태석과 태희처럼 정처 없이 떠돈다는 느낌은 없다.
뭔가…… 어떻게 된 일인지 언제나처럼 겉돈다는 느낌이었다.
“겉도는 느낌이네.”
“응, 나도 그렇게 느꼈어.”
태석과 태희는 사람들의 풍경과 자신들의 풍경이 동떨어진다고 느꼈다.
“우리는 항상 둘이서 붙어서 뭔가 해결하려고 했었지.”
태석이 문득 그렇게 말했고, 태희가 대꾸했다.
“그랬었어. 예전에는 목욕도 같이하겠다고 했었지. 그때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나 싶지만…….”
“무려 중학생 때 나한테 그랬으니까.”
“풉.”
태희가 어릴 적 생각이 난 것인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 태석은 마주 웃어 보이고, 태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태희는 다 큰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태석이 머리를 쓰다듬게끔 내버려 두었다. 어리광을 피우고 싶었던 걸까. 태석은 한참을 그렇게 쓰다듬다가 말했다.
“이제 헌터가 되었으니 좀 더 우리의 삶이 윤택해지겠지. 먹고 살기 좋아질 거라는 소리야.”
“죽지나 마. 죽으면, 나 울 거니까.”
“그래.”
“정말이야. 왜 죽었냐고 꼬치꼬치 캐물을 거니까.”
그녀가 잠시 뾰루퉁해 있었다. 태석이 멋대로 헌터가 되고 괴수를 잡겠다고 설치는 것에 기분이 나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녀는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겁에 질려 있었다. 예전의 가족처럼, 자신의 친오빠를 잃는 게 아닌가 싶은.
언제라도 심장을 찌르도록 비수 같은 것이 눈앞에 놓여 있다는 느낌이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비수. 그 비수에 맞게 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그런 느낌.
태희는 그렇기에 말했다.
“오빠, 선물이 있어.”
“뭔데?”
“불안해서 안 되겠어. 죽지 않게끔 뭔가 조치를 취해줘야지.”
“조치? 마법 아이템이라도 있는 거냐?”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마법과 담을 쌓는다기보다는 태희는 마법을 쓸 수 없었고 마법을 볼 기회도 없었다. 괴수도 모스키토 이후로는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세상에 흑수정이 많다고 해도 괴수를 한 번도 못 본 평범한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들 중 하나가 태희였을 뿐.태희는 오히려 보지 못한 것이 운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자신의 친오빠는 많은 괴수를 보고, 많은 생명의 위협을 겪고, 많이 싸워 이길 것이다. 이겨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가벼운 선물 외에는 없었다.
미신적인 것이지만, 부적 같은 선물을. 의미를 담아, 오래 살아남도록 하는 마법이 없는 도구 같은 것을 주자.
태희는 태석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손 줘봐.”
“응.”
그녀가 얍 하는 소리를 내며 태석의 손가락에 무언가 동그란 것을 꽂았다. 태석이 자신의 손을 잠시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반지였다.
금반지나 은반지도 아니다. 하물며 금속 종류의 반지도 아니었으며, 비싼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태석은 강철 반지만큼 태희가 끼워준 반지에 절실한 기쁨을 느꼈다.
“이건…….”
“응, 맞아. 어렸을 때 우리가 맞추었던 우정 반지. 오빠와 내가 평생 행복할 수 있도록 기원을 했던 그런 반지야.”
“난 이거 잃어버렸는데.”
“……굳이 나한테 그 사실을 말해줄 필요가 있나 싶지만…… 뭐, 지금 운이 좋아야 하는 건 오빠니까. 오빠는 운 나쁘면 죽는 상황이잖아? 헌터는 그만큼 위험한 직업이니까.”
“그건 그렇지.”
태석이 미소를 지으며 태희를 보았다. 태희가 대견스러웠다. 비싸지도, 희귀하지도 않은 플라스틱 반지였지만, 그 무엇보다 대단한 선물이었다. 솔직히, 지금의 태석에게 누군가 다이아 반지를 주더라도 이보다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반드시 오래 살도록 할게.”
“나보다는 하루 적게 살았으면 하는데.”
태희의 말에 흠흠 기침을 했다. 어쩐지 부끄러운 분위기가 되었다. 태희의 표정도 묘하게 상냥한 것이 더욱 부끄러운 분위기를 가중시켰다.
이 야리꾸리한 분위기를 어쩌면 좋지? 계속 고민해보았지만, 그럴수록 분위기는 더욱 이상하게 변해갔다.
한성 놀이공원에서 살아남아 너무 기분이 좋아진 것일까. 어쩐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산뜻한 분위기로 자신의 기분이 변질되어 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때 전화가 왔다. 태석은 휴대폰을 들고 그 전화기에 적힌 이름을 보았다.
성시연.
그녀가 어째서 전화를 건 것인지 태석은 너무 잘 알았다.
왜냐면, 그녀에게 부탁한 것이 있으니까. 태석은 태희를 보며 말했다.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
태희는 어쩐지 상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석이 조금 먼 거리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 속 상대, 시연은 대답이 잠시 없었다. 어쩌면 전화를 하기에 앞서 무언가 서류 같은 것을 보는지도 모른다. 전화기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한참을 들렸으니까.
그리고 그때, 시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탁하신 거, 잘 처리됐어요.]
태석이 기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된 건가.
[최강 헌터 선발 대회. 강철 길드에서 열고 있는 아이언 월드 대회 예선 신청 접수가 완료되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태석 씨가 고마워할 것 없어요. 태석 씨는 이제 제법 사람들에게 알려진 유명 헌터이고, 강철 길드의 길드장, 지석 씨의 지인인데다가 세상에서 드물게 존재하는 S랭크 헌터이시니까요. 솔직히 능력에 대해서 아직 제대로 밝히시지 않아서…… 사람들은 기류의 헌터라고 부르고 있지만요.]
“기류의 헌터?”
시연이 가볍게 웃음을 내는 소리가 들렸다.
기류의 헌터가 무슨 의미일까. 날씨를 조종한다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토르의 힘을 리치와 싸울 때 자주 쓴 기억이 났다. 어쩌면 그때의 전투 영상이 유출되어 토르의 힘인 것을 모르고 날씨를 조종한다고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
[천둥하고 비바람을 조종하시잖아요. 날씨의 헌터 맞죠. 기류를 조종한다 해서 기류의 헌터라고 별명이 지어졌지만.]
“그렇군요.”
날씨를 조종한다라……. 어쩌면 신들 중에서는 농사꾼들의 마음의 안정을 위해 날씨를 조종한다는 신화가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많은 신화에서 날씨를 조종하는 신은 많았다. 대부분 농사를 지었고, 날씨를 종잡을 수 없기에 신에게 기대어 농사에 좋은 날씨가 되도록 신에게 빌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신의 능력을 다루는 자신의 힘은 궁극적으로 날씨와 연관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지도.
태석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날짜는 언제죠?”
4일 후, 오전 10시요. 강철 길드가 어딘지는 아시죠?”
“당연히.”
태석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4일 후 아침, 헌터 대회에 참석한다.
그 이유는,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헌터로서 대중들에게 유명해진 지금이 대회에 나가기에 최고의 시점이었으니까. 태석의 분석이었고, 성천주 고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 추천했던 것이다.
“반드시 우승하도록 하죠.”
지금의 그라면 가능할 것이다. 태석은 자신의 힘을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속에서 느껴지는 두 명의 신을 느꼈다.
토르와 로키, 두 형제의 힘을. 그 힘이 있다면 두려울 것은 전혀 없었다.
밤하늘의 공기가 차다. 전화를 끊으니 여동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절로 걸음이 빨라졌다. 여동생이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여동생과 함께 집에 가서 푹 쉬도록 하자.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