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모든 신을 받다-22화 (22/102)

# 22

22. 유사 고기

집에 도착했다. 태석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전날 밤, 리치를 잡고, 불행한 과거가 있지만 악인에 불과했던 철호를 살해하고, 성천주 고란 홀이 흑수정을 정화하고, 그 흑수정 정화된 것의 50%는 태석의 소유가 되었다.

아주 후한 처사였다. 사실상 태석 혼자 리치와 철호를 다 잡았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보상이었지만, 태석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기분이 좋았다.

보상을 많이 받으면 아무리 힘든 일을 겪었어도 기분 좋고 뿌듯하기 마련이다.

안 좋을 리가 없지.

흑수정 정화된 것은 하얀 크리스탈 같이 반짝였다. 시연의 조언에 따라 그것의 30%는 헌터로서의 숙련도를 쌓기 위해 흡수했었다.

흡수하는 방법을 몰랐지만, 시연이 설명해준 대로 입에 욱여넣어 보니 적당히 몸에 축적되는 느낌이 났다. 태석의 능력인 강신 능력 또한 제법 향상되었고, 마력 총량도 조금 늘었다.

D랭크 괴수 흑수정이었으니 그리 좋은 효과는 보지 못했겠지만…… 아직 초짜 헌터인 태석에게 있어서 아주 좋은 일이었다.

뭐, 그리고 이것저것 술자리에 참석해서 안주나 축내고, 주는 술을 전부 거절하고 대충 고기만 주워 먹다가 몇 명 길드의 한자리 하는 분들의 길드 권유를 거절하고…….

사실상 모두가 포기한 와중에 혼자 나서서 리치를 다잡았으니 영웅으로 다들 볼만했다.

그래,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느낌이다. 솔직히, 나쁜 기분은 아니다.

집에 와서 여동생이 틀어놓은 것으로 보이는 티비를 보니 태석에 대한 이야기로 한가득이었다.

뭐야, 분명 D랭크 괴수였을 텐데. 게다가 한성 놀이공원은 오래된 흑수정으로 오염된 지역이었다. 사냥터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그런 게 아니라, 굳이 정화할 중요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왜냐면, 일반인들은 이미 발길이 끊겼고 더 정화가 시급한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석이 보스 괴수 잡았다고 난리법석이 심하다.

솔직히, 관심을 너무 받아서 도리어 뭔가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하는 기분.

하지만 여동생이 말했다.

“대단하네, 오빠.”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야. 적당히 잘 싸웠다는 느낌이지.”

“그 리치, D랭크가 아니었다던데?”

“뭐?”

“조사 전문 업체에서 괴수의 흔적을 조사하고 뭐시기를 해본 결과, A랭크의 괴수였다고 해. 첫 사냥부터 A랭크를 단숨에 잡다니, 솔직히 내 오빠라고 해도 대단하기보단 경외심이 들 정도야. 오빠가 아니었다면 곧바로 꼬리 쳐서 가능성 믿고 시집갔을 지도.”

그렇구나. 대단한 괴수였구나. 태석은 자신의 능력이 새삼 범상치 않다는 것을 자각하고 말았다.

그보다.

“그런 걸로 시집갔으면, 이미 시집 수십 번은 갔던 거 아니야?”

“하긴, 그렇지.”

여동생 엄태희는 많은 남성들에게 구애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예쁘장한 외모, 무언가 어두운 과거가 있는 생각 깊은 미스테리한 이미지, 나름 친해지면 붙임성 좋고 밝은 성격 등 어느 하나 남자들의 보호 욕구나 연애 욕구를 자극하지 않는 면이 없었다.

그런데 아무하고도 사귀지 않는 것을 보면 여동생의 눈이 너무 높은가 싶다.

전에 물어봤더니 오빠 같은 사람과 사귀고 싶다고 농을 던졌다.

태석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뱉었다.

“아무튼, 그건 뭐 그런 거고.”

“그보다 돈은 꽤 벌었어? 돈 벌어오겠다면서.”

“많이.”

“어느 정도?”

태석이 싱긋 웃었다.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어줄 정도로.”

“……오.”

태희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태희는 여자라면 여자다운 건지 아니면 여자답지 않은 건지, 스테이크를 써는 것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고기 그 자체를 좋아했다.

그래서 자주 고기를 사주고는 했는데, 돈이 없어서 삼겹살도 잘 못 사주었다. 그래서 항상 여동생은 고기에 대한 욕구 불만이 심했다.

이제 그런 불만은 없을 거다. 태석이 헌터가 되었으니까.

태희가 살짝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얼버무리듯이, 하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마, 맛있는 걸로 사줘.”

“걱정할 필요 없어. 오늘 하루 종일 씹어도 다 못 먹을 만큼 사줄 수 있으니까.”

“오오오오…….”

태희가 눈을 빛냈다. 살짝 기뻤다. 왜냐면, 태희가 이 정도로 환하게 웃는 표정은 예전에 태희가 망가트린 인형을 꼬매서 고쳐주었을 때 이후로 거의 처음이거든.

태석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가자. 최대한 비싼 식당으로.”

오늘, 원 없이 고기를 먹는 거다. 태석은 그렇게 결심했고, 태희도 알아들었다. 태희는 정말 환하게 웃으며 후다닥 준비를 하며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태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꼭 먹고 싶던 고기가 있어.”

몇 달 전부터 벼르고 벼르던 고기를, 태희는 드디어 먹을 수 있게 되어 기뻤다. 그렇게 어려운 형편은 아니니 먹을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돈을 아끼는 형편이었기에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지만…… 태석 덕분에 겨우 먹게 되었다. 정말 기쁘다.

고기 최고.

제법 분위기가 좋았다. 태희가 원했던 레스토랑은 제법 운치가 좋았던 것이다. 적당히 촛불이 레스토랑 구석에서 빛나고 있고, 테이블에도 꽃송이와 고풍스러운 음각이 새겨진 천이 얹어있고, 촛불을 가져와 점원이 적당히 불을 피워주고, 촛불에서는 좋은 향기가 나고.

너무 좋은 향기잖아. 뭔가 나긋나긋하고 편안한 향기다. 흑수정에 의해 오염된 대지를 밟을 때의 뭔가 폐부터 썩어들어 가는 공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새삼 리치와 싸우던 때의 일이 아주 먼일이었던 느낌이 든다.

하지만 리치와 싸웠기에, 그리고 이겼기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잊어서는 안 된다.

또 그런 비슷한 곳에 도전할 예정이고.

태석이 그런 생각에 잠겼고, 태희가 말했다.

“왔다.”

스테이크가 지글지글 연기를 뿜으면서 왔다.

와, 침이 줄줄 샌다. 육즙도 줄줄 샌다. 적당히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반으로 가르니 그 안에서 선홍빛 살이 드러나고 그 틈에서 육즙이 가두어져 있다가 터져 나왔다.

최고다.

태석은 그것을 조금 먹을 만하게 잘라 조심히 입에 넣었다. 소스는 찍지 않았다. 태희만큼은 아니지만 고기를 싫어하지는 않는 그였기에, 고기를 처음 먹을 때는 고기 본연의 맛을 위해 소스 같은 것은 일체 찍지 않는다.

뭐, 맛의 차이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냥 기분 삼아 그렇게 하는 습관이 있다고 치면 되겠지.

입에 머금었다. 물주머니를 입에 넣은 기분이다. 그러면서도 고기 특유의 맛있는 질감이 살아 있다. 육즙이 팍 하고 터져 나와 입을 메운다. 침을 먹는 건지 고기를 먹는 건지 모를 정도로, 더 입에 욱여넣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고기는 정말 엄청나다. 이런 맛을 모르는 자들은 솔직히 인생 전부를 손해 본 것이다.

태희도 고기를 입에 넣고 한 조각 해치운 것인지, 아니면 세 조각 해치운 것인지…… 이제 보니 고기의 반절이 이미 비워져 있었다.

이런, 스테이크 인당 2인분씩 먹으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2인분을 더 주문해야겠어.

태석이 손을 들어 스테이크 주문을 추가하려는데 태희가 말했다.

“눈물 나.”

“너무 기뻐서?”

“응, 기뻐서.”

“그래, 나도 기분 좋네.”

태희가 기쁘다면 좋은 것이다. 자신도 고기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느꼈으니까. 태석도 식욕이 채워져서 만족감이 든다. 더 먹고 싶다. 이대로 한 인분 더 해치울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뷔페 레스토랑이지만 스테이크만 먹어도 만족감이 느껴질 정도로, 이곳은 최고였다.

“오빠.”

“왜?”

“사냥터라는 곳 어떤 느낌이었어?”

“사냥터라면…… 한성 놀이공원?”

“응. 이런 걸 묻는 건 실례인 것 같지만, 헌터로서 괴수들과 싸울 때 어떤 느낌이었어?”

좋은 질문이다. 태석도 그 느낌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흠흠 기침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뭐라 표현해야 할까.

음, 이렇게 표현하자.

태석은 적당히 말을 늘어놓았다. 말하면서 생각하는, 뭐 그런 거다.

“게임 같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생전 처음 보는 녀석들이고, 나랑 싸우는 동료들도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걸 쏘아대고, 영국 소녀는 성천주여서 온갖 신기한 기적을 다 행사하고. 정작 나도 번개 쏘고 비바람 쏘고 변신하고 해서…… 지금 내가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써는 게 현실이고, 어제저녁에만 해도 밤새 RPG 게임을 한 그런 기분이야.”

“그렇구나. 현실성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거네.”

“대충 설명하면 그렇지.”

하지만.

태석은 살짝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죽음은 진짜야. 상처 입는 것도 내 몸이 다치는 거고. 힐링팩이나 힐링 마법이 없다면, 나는 평생 상처 입은 채 살아야 할지도 몰라. 게임 같으면서도, 게임이 아니었어. 그런 모순 같은 상황이라 더 미칠 것 같지만…….”

태석은 입꼬리를 올렸다.

“뭐, 나는 괴수를 싫어하니까. 잡는 것만으로도 바퀴벌레를 터트려 죽인 기분이었어.”

“그렇구나……. 하긴.”

태희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기를 썰었다.

“바퀴벌레는 혐오스럽고, 보면 죽이고 싶지만, 죽이면 내장이 터지고, 알을 까고, 뒤처리도 힘들지. 죽여도 죽여도 계속 나오고. 그런 계륵 같은 상황이었다고,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거지?”

“그래. 그렇지만…… 밥 먹는 데 그런 소리는 좀…….”

“뭐, 그런 소리 하나로 밥맛이 떨어지면 그건 고기가 아니야. 유사 고기, 콩고기지.”

“풉.”

태석이 입꼬리를 올렸다. 과연, 태희다운 농담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시시콜콜한 얘기를 종종 나누며 고기 몇 인분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의 인력이 갈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느낌이었다. 점장이나 사장은 정말 기뻐했겠지.

엄청 먹어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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