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모든 신을 받다-21화 (21/102)

# 21

21. 붉은 악마

분노의 악마의 악계자.

무슨 의미일까. 아직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강철호의 강철 머리띠가 녹아서 바닥에 흐물흐물거리며 흘러 날아가고, 철호의 몸 뒤편으로 검붉은 안개 같은 사람 형태의 에너지 형체가 철호의 몸에 파묻혀 들어갔다.

그리고 그 검붉은 안개가 고체의 형태로 응집되어 뿔이 난 악마의 형태로 철호의 몸을 감쌌다.

그야말로 악마의 강림을 보는 느낌이었다. 태석이 고란을 보았다.

“저게 무슨 일입니까?”

“악계자의 소행이군요. 철호라는 저 사람은 악마의, 일종의 사역마에 속하는 자였습니다. 악계자라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의 직책이지요. 악마의 노예나 다름없습니다.”

“악계자…….”

태석은 그 단어를 입에 다시 되뇌어 보았다. 잊어서는 안 되는 단어 같았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요컨대, 악계자라는 녀석들은 악마의 부하로서 뭔가 나쁜 일을 꿈꾸고 있는 집단인 모양이다. 잘못된 사상으로 인류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그런 사악한 집단을 의미하는 모양이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쓰레기 집단이다.

세상은 괴수들에 의해 정신없이 싸우는 곳이다. 괴수들 탓에 가족을 잃는 사람, 친구를 잃는 사람, 소중한 무언가를 잃는 사람 등등 상처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비록 헌터로 각성하면 돈 벌기에 아주 최적의 인간에, 어느 군대도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는 인간 병기가 된다지만 그래도 사회적으로 안 좋은 일이었다. 헌터 같은 괴물들이 있어야 유지되는 사회는 헌터들에게는 최고였지만, 사회에 있어서는 끔찍한 혼란이다.

그런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악마 따위에게 복종하는 쓰레기까지 있다고?

죽여야 한다.

태석은 마음먹었다.

사지를 절단하고 죽여서 이 세상에 더 이상 악행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태석의 천둥이 더욱 강렬하게 움직였다. 마치 신을 보는 느낌이다.

아니, 신 맞잖아? 태석은 토르라는 북유럽 신화의 신의 힘을 강신한 상태니까.

[강신 지수가 올라갑니다!]

[더욱 천둥이 강렬해집니다!]

[비바람을 더욱 내릴 수 있습니다!]

[토르의 힘의 이해도가 올라갑니다!]

[더욱더 활용력이 증가합니다!]

좋아. 기분 좋은 고양감이다. 힘이 자신에게 더욱 충족되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느낌이냐면, 삼겹살 삼 인분을 통째로 먹어치우고 느껴지는 배의 포만감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는 기분이다.

태석이 주먹을 쥐었다.

“철호 씨. 철호 씨에게 묻겠어.”

“뭘 말이지?”

이제는 사람이라고 보기 힘든, 붉은 악마다운 모습의 괴물에게 물었다. 이제 더 이상 그는 사람이 아니다. 태석이 보기에 그는 괴수나 다름없었다.

“어째서 악계자가 된 거야?”

“그야…….”

붉은 악마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사탄을 실제로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러고 보니 자신에게도 예수와 같은 힘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마 죽더라도 부활하는 능력이 있지 않을까?

다음에 신을 강신할 때는 예수로 부탁해볼까?

붉은 악마가 생각을 정리한 모양인지 말했다.

“나는 헌터와 괴수, 모두의 파멸을 원한다. 괴수도 죽고, 헌터도 죽고, 성천주도 이왕이면 죽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째서지? 헌터들이 너한테 원수라도 졌어?”

“헌터들은, 정확히 나에게는 원수를 지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원수를 진 것과 다름없지.”

“뭐?”

“나에게는 딸이 있어. 내가 사랑하고 애지중지 키우던 딸이지. 그때는 헌터로 각성한 상태였고, F랭크 괴수들을 겨우 잡으며 입에 풀칠하며, 와이프는 헌터 관련 기업에서 사원으로서 일하면서, 맞벌이하면서 매일 밤새 야근하고 와도 내가 하겠다는 집안일을 굳이 같이 도우면서, 힘들어서 울 것 같아도, 딸이 재롱 피면서 귀엽게 굴면 금세 기분 좋아져서 다음 날에도 힘차게 사냥하고, 와이프는 회사에서 일하고. 그런 삶이 반복되었어. 비록 내가 언젠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슬퍼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딸과 와이프의 미소를 보면서 웃었지.”

붉은 악마의 말을 끝까지 듣는다. 길었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그의 감정이 절실히 느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조하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붉은 악마가 말했다.

“어느 날, 내 딸이 산책가는 김에 루트를 바꿔본 모양이야. 매일 같은 길로만 가는 게 지겨웠던 모양이지. 근데 문제는, 그 길이 제법 위험한 길이라는 거야. 알지, 너? 헌터들이 머무르는 사냥터 근처에는 수많은 기이한 업소나 깡패들이 모여있다는 거. 힘 좀 센 녀석들이 자신의 힘으로 나쁜 짓을 벌이는 그런 곳이 있다는 거. 하필이면 순진한 내 딸이 거기가 멋져 보였던 건지 들어갔다는 거야. 그러면 여기서 질문.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설마…….”

태석이 입을 벌렸다. 상상하기 싫었다. 철호의 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몸속을 벌레가 파고들어 ‘이래도 죽일 거야? 이렇게 불쌍한데?’ 하고 지껄이면서 내장이고 뭐고 파먹는 느낌이다.

붉은 악마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살해당했어. 죽이고 싶었던 모양이야. 조그맣고 귀여워서 한번 짓밟고 싶었다나. 결국, 내 딸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음에도 입학식 한 번 겪지 못하고 죽었어. 헌터 나부랭이들한테.”

그런 끔찍한 말을 남의 일인 양 말하면서도 감정이 마모된 듯한 녀석이 두려웠다. 태석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의 과거는 들었어. 제법 불행한 과거야. 하지만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짓은 뭐지?”

“복수, 그리고 증오의 폭발. 나는 이 힘으로 모든 괴수와 헌터들을 몰살할 거다.”

“나도 너의 일을 겪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너의 일은 너의 일이고, 나의 일은 나의 일이다. 나는 네가 내 전우이자 헌터들을 모조리 죽이려고 하는 일에 반발을 가지고 있고, 네가 그 어떤 불행한 일을 겪었건 지금은 위험한 병기나 다름없는 너를 죽이면 되는 거야.”

태석은 그러고는 위선적인 발언을 했다.

“악에 맞서기 위해 악이 되는 것은 결국 똑같은 악을 양산할 뿐이야.”

자신이 말해도 되는 말일까? 자신 또한 괴수라는 악에 맞서기 위해 모든 괴수를 죽이는 짓을 하고 있는데. 하지만 그것은 악이 아니다. 선행이다.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확신한다. 자신은 결코 악은 되지 않는다.

태석의 손에 천둥이 모였다. 붉은 악마의 손에 붉은 에너지의 구체가 모인다.

태석이 달렸다. 비바람의 조율을 받으며 빛과도 같은 속도로 돌진한다. 붉은 악마의 붉은 에너지가 빠르게 날아가 유도탄처럼 빙 돌아 태석을 노렸다.

겨우 이 정도인가. 실망스럽군.

태석은 전격을 내뿜어 붉은 악마의 에너지를 부수었다.

창!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나며 붉은 에너지가 허공에 폭발한다. 태석의 천둥과 부딪쳐서 그런 것이다. 태석이 사납게 웃었다.

철호는 분명 불행한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석은 철호의 악행을 변호할 생각이 없다.

그는 악을 당했고, 악을 행했고, 악이 되었다. 그러니 죽인다. 악을 죽인다.

태석의 천둥이 철호, 아니 붉은 악마의 몸을 꿰뚫었다. 푸른 천둥이 일직선의 형태로 뻗어져 나가 붉은 악마의 몸을 반절 구멍 냈다. 구멍이라기보다 갉아 먹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붉은 악마의 몸이 소멸해 사라졌으니까 소멸이라는 게 맞겠지.

붉은 악마는 사라졌다. 흑수정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태석이 잠시 멍하니 사라진 장소를 보다가 쓰게 웃었다. 고란을 보며 말했다.

“이제 흑수정의 정화를 시작하시죠.”

“……알겠습니다.”

고란은 태석의 표정이 묘하게 슬퍼 보인다고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개운해 보였다. 고란은 입꼬리를 올려 상냥하게 웃어 보이고는 흑수정의 정화를 시작했다.

한성 놀이공원 공략이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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