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모든 신을 받다-19화 (19/102)

# 19

19. 파멸의 책

태석은 현재 지석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정확히는 지석의 여성 버전으로 변해 있는 상태였다. 로키를 강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엄청 무겁군.

태석은 자신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지방 덩어리를 보면서 불편하다는 것을 체감했다.

리치의 마법진이 빠르게 완성되고, 어둠 마법이 그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수십 개의 어둠이 마치 빛 덩어리 마냥 여러 갈래로 쏘아져 일제히 태석을 노렸다.

태석은 그 광경을 보면서 피할 방법을 모색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아니면 지석의 능력을 통해 위로 뛰어올라 대쉬를 할까?

그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녀석의 공격을 굳이 피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주먹을 비틀었다.

자신은 이제부터 지석이다. 로키의 힘으로 변신한 이상 지석의 힘 또한 쓸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 치의 의심도 하지 말자.

콰직!

주먹을 휘둘렀다. 폭풍 같은 바람이 소용돌이치고, 공기의 틈새로 불꽃이 튀어나왔다.

어둠을 모조리 가르고, 주먹으로부터 퍼져나간 불꽃이 다시 주먹 위로 모여 화르륵 불타오르고 있었다.

리치가 소리쳤다.

“그게 대체 뭐냐?!”

놀라운 힘이다. 리치는 태석의 주먹의 불꽃이 단순한 불덩어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 아홉 개 중 하나를 보았다.

“그 반지는…….”

“그래, 놀라운 반지지.”

지석은 여러 개의 반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중 강철 반지를 자신에게 주었다.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면 모든 걸 1회 방어할 수 있는 위력의 보호막을 씌워주는 반지였다.

그 반지로 은호의 공격을 한 대 버틴 적이 있었다. 태석은 지석에게 고마워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도 고마워해야 했다.

비록 직접 준 것은 아니었지만, 태석의 로키 강신을 통한 변신으로 지석의 힘을 베끼고 있었으니까.

지석의 힘의 반절도 못 베낀 느낌이었지만, 반지의 힘만큼은 굉장했다.

“이것이 불꽃 반지다.”

태석이 태세를 가다듬었다. 불꽃 반지의 힘을 거두었다.

“그리고 다음 반지는…….”

그는 돌진했다. 지석의 힘을 베껴 한층 더 빨라진 달리기 실력이다. 원래의 속도보다, 심지어 토르의 힘을 강신했을 때보다 살짝 더 빨랐다.

리치가 서둘러 마법진을 그리고 마법을 쏘았다.

“다음 반지가 뭐건 상관없다. 너는 이 마법에 죽을 거니까!”

리치가 사용한 마법은 피할 수 없는 종류였다. 불꽃 반지의 힘으로도 부술 수 없는 종류일 것이다.

맞을 경우 50%의 확률로 즉사하는 형태의 마법, 즉사기였으니까.

리치조차 이 마법을 쓸 때 제약이 있는 편이었다. 3시간에 한 번 쓸 수 있는 것이다. 고로 한 전투에 최대 한 번 쓰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 마법을 사용할 정도라는 것은 꽤나 궁지에 몰렸다는 사실.

그리고 태석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 정도 마법은 자신에게 통하지 않았으니까.

태석의 반지 중 푸른 반지가 요동쳤다.

순식간에 태석을 물로 감쌌다.

“이것이 물의 반지.”

태석의 몸이 그 말과 동시에 물로 변했다. 푸른 물의 덩어리로 변한 태석의 몸은 끊임없이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즉사기의 어두컴컴한 마법의 빛줄기가 태석을 통과하고 지나갔다.

“뭣?!”

리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마법이 통하지 않다니?! 애당초 맞지조차 않았다는 느낌이다. 물의 반지에 의해 물로 변하여 마법을 투과해낸 것이다. 그리 대단한 마법은 아니었지만, 즉사기를 피했으니 리치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마지막 발악이 통하지 않았다는 소리였으니까.

리치는 서둘러 땅에 마법진을 그렸다.

‘도주할 생각인가?’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고 그것이 도주 마법인가 싶어서 태석이 더욱 서둘렀다. 마침내 3m 안쪽까지 접근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리치의 마법진이 거의 완성되기 시작했다.

성천주 고란이 소리쳤다.

“도주 마법을 쓰려고 합니다! 빨리 공격을!”

“네!”

태석이 물의 반지의 힘을 거두었다. 리치의 마법진이 완성되기 3초 전이다.

서둘러 다른 반지의 힘을 발동했다.

“이것이 중력의 반지.”

쿵!

리치는 순간 자신의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몸이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리치가 드물게 패닉에 빠졌다. 도주 마법을 조금만 마법진을 그린다면 쓸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대체 어째서?

태석이 사납게 웃으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이제 굳이 달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리치가 태석을 보았다.

태석의 몸이 아지랑이처럼 구부러지고, 작아지고 하고 있었다. 마치 공간이 일그러져 있다는 느낌이다. 리치는 그것을 보고 경외심을 느꼈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인간을 상대로 이런 느낌은 살아생전 처음이다.

리치가 소리쳤다.

“도대체 뭐냐! 이번에는!”

“말했잖아.”

태석이 주먹을 꽈득 쥐었다. 리치가 바로 앞까지 있었다. 리치의 몸은 여전히 무언가에 막혀 움직이지 못한다.

“중력을 다루는 반지라고.”

“설마……?!”

중력을 다루는 반지의 힘으로 리치의 몸 곳곳에 중력 제어를 걸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인가? 하지만 그 정도의 마법을 쓸려면 상당한 마력이 필요할 텐데? 그렇기에 지석조차 이런 식으로 세밀한 조종은 못 하는 것이 단점이었는데, 태석의 마력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당연한 일이다.

태석은 S랭크의 헌터였으니까. 비록 숙련도가 낮아 약한 상태라고 해도 마력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헌터들 중 상위 3% 안에는 들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많은 마력이었기에, 중력 반지를 여러 곳에 동시에 능력을 발동하여 리치의 몸을 세밀하게 못 움직이게 할 수 있던 것이다.

예를 들자면, 컴퓨터 게임의 그래픽 요구량이 현세대 그래픽 카드로는 통제 못 하더라도 슈퍼컴퓨터 정도라면 144프레임 정도는 거뜬히 넘길 수 있는 것과도 같다.

마력 요구량이 높은 마법을 마찬가지로 많은 마력으로 통제한 것이다.

태석이 주먹을 쥐었다. 중력 반지의 힘을 거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치를 향해 주먹을 뻗고 말했다.

“이것이 이름을 모르는 반지.”

태석의 몸에 붉은 전기가 요동쳤다.

이름을 모른다고 발언한 이유는 간단했다. 지석이 반지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능력만을 발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석의 몸을 흉내 낸 태석은 그 반지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비슷하게나마 사용할 수 있었다.

무슨 능력의 반지인지는 모르지만, 리치의 표정을 보아하니 어떤 힘을 지녔는지는 알 수 있었다.

[사, 살려줘.]

A랭크 괴수라고 알려진 보스 괴수, 리치를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라는 것 정도는.

태석이 그 주먹을 뒤로 주욱 뻗었다. 그리고 리치를 향해 뻗었다.

콰직!

리치의 몸이 종이쪽마냥 터져나갔다. 그때였다. 리치가 무언가를 말하며 천천히 가루의 형태로 분쇄되기 시작했다.

[최후의 마법을 발동하겠다.]

쿵!

그 순간, 리치의 모습이 완전히 소멸되어 죽어 사라지고 리치가 죽은 장소에서 커다란 책이 한 권 나타났다.

도대체 뭐지, 저 책은?

태석이 책을 노려보고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보스 괴수를 죽인다고 해서 책이 나타난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허나 리치가 최후의 마법을 쓴다고 했다.

그렇다는 소리는…… 간단했다.

리치가 무언가 술수를 쓰고 죽었다는 소리였다. 태석이 서둘러 지석으로 변신한 자신의 주먹에 붉은 전기를 끌어모았다. 그리고 책을 향해 채찍처럼 변질된 마법을 휘둘렀다.

쿵!

하지만 무언가 검은 장벽에 가로막혀 리치가 남기고 간 책에 데미지를 입히지 못했다.

태석이 서둘러 성천주 고란을 향해 소리쳤다.

“대체 이게 뭡니까?!”

“파멸의 책.”

“네……?!”

들은 적 있다. 워낙 유명했기 때문이다.

일부 괴수들이 지니고 있는 책이었는데, 파멸의 책의 마법을 쓰면 자신은 죽는 대신 흑수정의 힘이 통하고 있는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 때문에 과거 수십 년 전에 수많은 인명피해를 만든 적이 있었다.

태석은 이를 악물고 파멸의 책을 보았다.

검붉은 오라를 피우고 있는 가죽 책.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언어로 적힌 것들이 있었고, 정신없이 페이지를 바꾸며 무언가 마법진을 듬숭듬숭 빛의 형태로 퍼트려 검은 장벽 안쪽에서 뭔가를 진행하고 있었다.

뭔가 벌어지고 있고, 위험했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무언가 방법은 없는 것인가, 저 책이 하려는 행위를 막을 방법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헌터들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그 책을 보고 있었고, 시연은 고란을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하는 표정이다.

태석이 고란을 보았고 고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 힘든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성천주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성천주가 할 수 있는 일이자 동시에 해야 하는 일.

그것은…….

“바로 흑수정 정화. 혹은 괴수가 남기고 간 저주의 정화.”

고란이 약간 깔보는 표정으로 파멸의 책을 노려보며 손을 뻗었다.

“그것이 설령 파멸의 책일지라도 우리 성천주는 그것을 정화할 수 있으며, 해야 합니다.”

파멸의 책을 정화한다. 그것이 성천주 고란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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