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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모든 신을 받다-16화 (16/102)

# 16

16. 도박

리치가 등장한 직후 어둠이 휘몰아쳤다. 태석은 자신의 두 발로 선 채 토르의 힘으로 간신히 버텨냈다. 다른 헌터들 중 몇 명은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시연이 고란의 허리춤을 붙잡고 날아가는 것을 견뎌냈다.

태석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D랭크의 힘인가? D랭크 치고는 너무 강력하다. 솔직히, 인간적으로 은호보다 더욱 위력이 강하다는 느낌이다. 은호는 F랭크의 괴수였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느낌. 결코 좋은 느낌은 아니다.

태석의 몸에서 푸른 천둥이 내려쳤다. 힘이 더욱 늘었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꽈드드드득!

천둥이 얼기설기 모여 하나의 철덩어리를 만들었다. 토르의 신기, 묠니르 해머였다.

묠니르에게는 손잡이가 없었다. 지금 태석의 주먹에 붙은 채 언제고 날아가 리치에게 부딪칠 준비를 끝마친 뒤였다.

태석이 소리쳤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것은 어떤 의미도 담겨 있지 않았다. 하나의 짐승 같은 포효였다.

혹자는 토르라는 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무식한 자라고 했다. 어떤 자는 그렇게까지 무식한 존재는 아니라 했다. 단순히 로키의 지력 탓에 비교가 될 뿐, 멍청하지는 않다고 했다.

다만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한 가지.

그것은, 괴력이다.

묠니르가 날아가 리치의 몸에 박혔다. 리치의 몸이 날아가 바닥에 꽂혔다. 토르의 묠니르가 기이할 정도로 땅으로 수직 낙하하듯 리치의 대가리에 처박히고, 땅으로 대가리를 내려찍은 것이다.

크그그그그그긋-!

리치의 입에서 뼈 소리가 미친 듯이 났다. 녀석도 당황했을 것이다. 소환되자마자 웬 둔기에 얻어맞아 땅에 내리꽂히는 꼴이란!

자신이 이런 일을 겪었다면 어떠했을까?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태석은 서둘러 발을 옮겨 달렸다.

그리고 지석이 자신에게 선물한 단검을 뒷허리의 칼집에서 꺼내 역수로 잡고 천둥을 감았다.

파지지지지지지직-!

천둥이 미친 듯이 단검에 요동쳤다.

끼이이이이이이익-!

단검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당연히 고통스럽겠지.’

이것은 S랭크 헌터의 힘이다. 단순한 속성 단검이 견딜 정도의 힘이 아니다.

하지만 그 위력은 S랭크의 것 그대로일 것이다.

파직!

단검이 리치의 몸에 박혔다. 목의 뼈를 자르고 지나갔다. 푸른 천둥과 같은 색으로, 뼈가 부식된다.

태석이 소리쳤다.

“이걸로! 끝이다!”

노성을 터트리며 리치를 깔고 뭉갠 채 묠니르를 집어 들고 마치 바위로 짐승을 내려찍듯이 양손으로 잡아 팍 하고 내려찍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콱.

막혔다.

리치의 지팡이가 묠니르를 막았다.

[까드득. 그 힘. 무엇인지 알겠다. 강신을 한 것이군.]

리치가 말했다.

괴수가 말을 한다고?

들은 적도 있는 것 같지만, 생소한 일이었기에 태석은 순간 경직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물론 언데드인 나에게 있어서 천둥이나 비바람 같은 ‘토르’의 물리력은 거의 통하지 않아. 하지만…… 신의 힘이다.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그 힘은 필시 나를 소멸시켰겠지. 안타깝게도 너의 성장은 조금 더뎠던 모양이다.]

“뭐라고……?”

리치가 지팡이에 마력을 집중했다. 지팡이가 마력의 실을 흩뿌려 마법진을 그려냈다.

“잠깐……?”

태석이 당황하며 지팡이를 부수기 위해 묠니르와 단검을 동시에 조작했고, 리치가 외쳤다.

[늦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리치의 힘이 폭발했다.

태석의 몸이 날아갔다.

주변의 헌터들의 몸 또한 공중을 휘돌아 치솟았다.

그리고 헌터들의 몸이 땅에 처박히고, 몇몇 헌터들이 의식을 잃었다. 일부는 즉사했다.

태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보았다. 그리고 눈이 커졌다. 동공이 확장됐다.

“아, 아…….”

헌터들 중 일부가 죽었다. 리치가 마법을 사용한 탓에.

아니, 아니다.

그렇게 피해서는 안 된다. 자기 합리화를 해서는 안 된다. 자신 때문에, 리치를 막지 못했기에 헌터들 중 일부가 죽은 것이다.

피가 온갖 곳에서 냄새를 풍기고 있고, 울먹이는 헌터가 있었다.

“죽기 싫어. 싫다고!”

그 헌터는 어딘가에서 날아와 박힌 철근이 몸 정중앙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의식이 끊겼고 차갑게 식어갔다.

태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분노로 입술이 떨렸다. 손이 주먹을 쥐지 못하고 자꾸 휘청였다.

태석이 사납고 맹렬한 기세로 눈을 부릅뜬 채 그 광경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주변을 훑을 때, 시연이 있었다.

시연은 다행히도 죽지 않았다. 팔이 꺾인 듯 왼팔에 힘이 빠져 덜렁이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태석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태석 씨가 말했었죠.”

그녀가 분노한 태석을 향했다. 태석이 무표정한 눈으로 그것을 보았다.

그의 눈은 무표정했지만, 분노하고 있다. 과거의 상처와 오버랩되어 지금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시연은 알고 있다. 태석이 어떤 심리로 그들과 싸워왔는지. 괴수들과.

“두려워한다고, 두려워하기에, 더욱 긴장하여 괴수를 잡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죠.”

“…….”

“태석 씨는 그저 괴수가 미웠던 거예요. 자기 것을 앗아간,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빼앗은 대상을 증오하듯이,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자신의 소중한 것을 앗아간 녀석들을 미워한 거예요. 그런 간단한 이야기였죠.”

“…….”

태석의 표정이 더욱 화가 난 표정이 되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은 제가 가장 싫어하지만, 솔직히 지금은 그 감정을 터트려 주세요.”

“당연히.”

그렇게 말하고.

태석은 발을 딛고 달렸다. 리치를 향해, 온몸에 푸른 천둥을 내뿜으면서.

[그런 힘으로 무엇을 할 테냐? 너의 물리력은 그저 나에게는 개미 새끼만도 못한 힘을 낸다. 나는 언데드. 스켈레톤 같은 나약한 것들에게는 통했을지 몰라도 언데드의 왕인 나에게는 통하지 않아.]

“그럴지도 몰라.”

태석이 사납게 웃었다.

“지금의 내 구식으로는 이길 수 없어. 절대로.”

아아,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태석은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로 했거든.”

그것은 바로 도박이다.

태석은 처음 토르를 강신했던 때를 기억했다. 달려가면서 리치와 끊임없이 가까워지고, 리치가 마법진을 허공에 그리기 시작하는 장면을 보면서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때의 풍경을 떠올린다.

새하얀 벽. 새하얀 천장. 새하얀 책상.

그리고 그 위에 있던 카드들.

거기서 시선을 돌린다.

책상의 옆에 잔뜩 놓인 책을 본다.

책에 손을 뻗는 상상을 한다.

책에 손을 뻗고 책을 집는다.

그리고 펼친다.

그 안에 있는 것은.

거기까지 상상한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처음 토르를 강신했을 때와 같이, 온 세상이 뒤집히고 자신만이 새하얀 공간에 남겨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성공했어.”

그것은 바로 도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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