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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모든 신을 받다-15화 (15/102)

# 15

15. 죽은 자

은호에게 죽을 위기를 겪고 신을 강신하게 되면서 헌터로서 각성했을 당시 결심한 것이 있다.

언제고 괴수를 두려워하자고, 그리고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싸우자고. 싸워서 모든 괴수의 씨를 말리자고.

어떻게 보면 제법 잔혹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괴수들의 진위 여부는 모르고, 그들의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가족을 몰살했다. 여동생의 웃음을 잃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태석은 괴수를 모두 죽일 것이다.

파지지지지직-!

태석이 번개를 내뿜었다. 번개가 마치 도화지에 하나의 커다란 선을 남기듯이, 공간을 갈라 단숨에 슬라임을 향해 부딪쳤다.

쾅!

슬라임이 요란한 소음과 함께 터져나가고 부서졌다. 갖가지 분비물과 액체들이 요란하게 퍼져나갔다.

태석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아직 녀석은 죽지 않았다.

이제 분열을 할 차례였다.

슬라임이 꿈틀꿈틀 질척거리는 괴음을 내면서 서서히 중심의 붉고 검은 핵이 분열되고, 그 분열된 핵이 제법 서로가 거리를 벌리고 그 핵을 중심으로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푸시시식-.

그와 동시에 분열된 핵마다 하나의 슬라임이 된다.

끼요오오옷!

동시에 슬라임이 자신의 크기를 늘려 위협적이 되기 위해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녀석이 다시 회복되면 일이 복잡해진다.

“시연 씨!”

“네!”

이번에는 시연이 나설 차례였다.

태석의 힘은 토르의 힘이다. 토르의 힘은 아직 태석으로서는 파괴 위주의 운용밖에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슬라임을 완전히 멸하기 위해서는 비효율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한 마리 잡을 때마다 많이 소요되면, 이 한성 놀이공원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러니 시연이 나설 차례인 것이다. 시연의 마법은 약화된 핵을 소멸시키는 데에 좋았으니까.

정화와 비슷한 능력이 시연의 빛 마법의 진정한 힘이다.

“정화!”

가볍게 스킬의 목적을 밝히고, 마법을 사용한다. 주문이나 마법진 없이 사용된 마법의 빛이 새하얀 포물선을 그으며 갈라져 슬라임의 핵들 하나하나를 전부 노렸다.

팍! 팍! 팍! 팟!

핵이 빛을 맞고 힘을 잃었다. 주변의 뭉치던 액체들이 모두 녹아 사라지고 새하얀 덩어리의 죽은 핵이 되어 주변을 나뒹굴었다.

“이걸로 이쪽은 정리됐어요.”

시연이 슬라임의 죽은 핵을 주워서 주머니에 담았다. 슬라임의 핵은 주로 치료 계통의 아이템을 만들 때 쓰인다. 포션이나 회복 키트 같은 것이 슬라임 계통의 괴수를 잡아 만들 수 있었다.

D랭크 슬라임이기에 그렇게 강한 치료약은 만들 수 없지만, 강하지 않다 해도 잘려나간 단면을 다시 붙여줄 정도의 회복 도구는 만들 수 있었다.

태석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남자 하나가 스켈레톤에게 있는 힘껏 다가와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뒤쪽에서는 여자가 쓰러진 남자를 뒤로 한 채 괴수 진압용 권총을 쏘아댔다. 스켈레톤이 그것에 맞아 까르륵 거리는 뼈 소리를 냈다.

탄환 하나하나가 스켈레톤에게 위력적일 것이다. 허나 헌터들의 능력에 따라 검이나 창 같은 원시적인 도구가 훨씬 위력이 좋을 때도 많았다.

지금도 검을 들고 앞에 나선 헌터의 경우, 검에 검기를 실어 탄환보다 더욱 위력적인 공격을 뿜고 있었다. 총으로는 어쩌지 못한 스켈레톤의 뼈가 검에 닿을 때마다 단면을 녹이며 부수었다.

결국 스켈레톤이 그들 헌터의 힘에 의해 처리되고, 태석이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다가가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려 했을 때였다.

여자와 남자 헌터가 쓰러진 남자 헌터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울먹이면서 쓰러진 헌터에게 소리친다.

“이한솔! 한솔아! 젠장! 누구 도와줄 사람 없어요?!”

“한솔이가, 헌터가 지금 의식이 없어요! 누가 회복 키트를, 빨리 어떻게든 도와주세요!”

주변의 헌터들이 그들을 애써 외면했다. 태석이 서둘러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시연이 막았다.

“왜 막습니까?”

태석이 사나운 눈으로 시연을 보았고, 시연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죽어 있어요. 방금 전에 공격을 맞고 즉사한 뒤였어요.”

“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요. 뭔가, 뭔가 도와줘야…….”

태석이 눈을 돌려 헌터 쪽을 보았다. 그들 두 명은 울면서 이미 죽은 헌터의, 시신의 눈을 감겨 주었다. 울먹이면서 괴성을 질렀다. 그 괴성에 태석이 눈을 질끔 감았다.

이미 죽어 있다. 죽은 자는 살릴 수 없다.

고란이 말했다.

“죽은 자는 살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괴수와 흑수정이 나타나고, 헌터와 성천주가 나타나고, 기묘한 마법과 기적이 판을 치고, 외계에서 오크, 드워프, 엘프들이 와서 외교를 펼쳐도……. 죽은 자를 살리는 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분하군요. 화가 나요.”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저도, 시연도, 태석 씨도,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도…… 죽음은 피할 수 없어요.”

그렇다.

죽은 자는 살릴 수 없다.

태석은 자신의 부모를 잃었다. 그렇기에 그런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는 쓰게 웃으며 시연이 막고 있는 팔을 밀쳤다. 그리고 죽은 헌터와 그를 안고 있는 헌터 두 명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죽은 헌터의 볼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길 빕니다.”

태석이 죽은 헌터를 보았다.

지나친 오지랖일지도 모른다. 죽은 뒤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과 이 헌터는 죽기 전에는 그 어떤 접점도 없었다. 이제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그가 한솔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만…….

죽었다고 해서 그의 시신에 다가가는 것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의 죽음이 너무 씁쓸하지 않겠는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렇기에 태석은 쓴 미소라도 지으면서 죽은 자의 한을 풀 듯이, 그의 죽음에 명복을 빌어줬다.

그렇게 말하고 다시 시연과 고란에게 돌아갔을 때였다.

콰직, 콰직, 콰직.

흑수정 들어내기 작업이 모두 끝이 났다. 충분한 괴수가 죽은 것이다.

태석과 시연, 고란의 앞에 거대한 흑수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지상이 융기하듯이, 검붉고 번쩍이고 정제되지 않은 느낌의 흑수정이 꿈틀꿈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태석은 문득 생각했다.

어둠, 혹은 지옥.

그 흑수정은 그런 끔찍한 단어가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고.

수많은 헌터들이 이 흑수정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그리고 성천주들은 이를 정화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이것을 어찌하지 못해 목숨을 잃는다.

태석이 말했다.

“성천주는 언제고 흑수정을 정화해야 합니다.”

“당연한 일이죠.”

고란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석이 이어서 자신에게 말하듯, 시연을 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저희 헌터들은 언제고 흑수정을 파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니까요.”

“그래요.”

태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흑수정을 노려본다.

“평범한 인간이 비극에 휩싸이지 않는 것. 그것이 제가 원하는 것이자 헌터와 성천주가 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목표입니다.”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그 흑수정에게 거대한 어둠의 장벽이 가로막힌다. 흑색 빛을 내는 방탄유리 같은 것이 흑수정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장벽을 만든 것이다. 그것을 헌터와 성천주, 인간들은 어둠의 장벽이라고 말한다.

어둠의 장벽이 나타나면 흑수정에 접근하지 못한다. 웬만한 S랭크 헌터도 마찬가지, 성천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어둠의 장벽을 부수기 위해서는 보스 괴수를 죽여야 한다.

치지지직-.

어둠의 장벽을 가르고 해골 머리의 스켈레톤과도 같은, 허나 로브와 기다란 마법 지팡이를 들고 있고 어두운 안개 같은 에너지를 흩뿌리고 있는 보스 괴수가 등장한다.

그 보스 괴수를 시연이 이렇게 불렀다.

“리치.”

언데드 괴수들의 보스, 리치의 등장이었다.

태석이 그 리치를 보며 말했다.

“이제 네가 죽을 차례야, 리치.”

사납게 웃으며 안광에서 푸른 전기가 파직 하고 새어나왔다.

토르의 힘을 본격적으로 쓸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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