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14. 폭풍전야
‘오늘은 사람이 많군.’
많은 헌터들이 한성 놀이공원의 입구에서 자신의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갖가지 무기들이 주변에 널려 있었다. 몇몇 상인들은 포션이나 기타 헌터 용품을 팔기 위해 발 벗고 나서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 소리가 시끄러워 문득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인상을 풀었다.
오히려 미소가 흘러나왔다.
이들에게 헌터라는 직업은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보았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혹은 괴수를 잡기 위해, 아니면 자신의 힘을 상승시키기 위해, 그것도 아니면 영웅이 되기 위해…….
다양한 이유로 헌터들은 사냥을 나선다. 그리고 성천주가 축복을 내린 이곳은 헌터들에게 있어서 꿈의 사냥터나 다름없었다.
어떤 이유가 됐건 결국 그들이 보스 괴수를 사냥하고자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태석 씨.”
그때 시연이 말을 걸었다.
“왜 그러시죠?”
시연은 잠시 우물쭈물거렸다. 얼굴을 붉히고 인상을 찡그렸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뜨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성천주님께 들었어요. 태석 씨는 괴수를 증오하기 위해 헌터가 되었다고.”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는 전혀 없을 거라 판단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되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냐고.
그것을 기분이 나빠 찌르는 걸로 느꼈는지 시연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고. 조금 존경스러워서요.”
“존경스럽다? 그게 무슨 의미죠?”
“저는…… 괴수가 두려워요.”
“…….”
태석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괴수가 두렵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시연과 자신은 둘 다 괴수에게 가족을 잃었고, 자신은 기이하게도 괴수를 증오한 것이었고, 시연은 괴수를 두려워한 것이다.
물론 증오도 할 수 있다. 두려워할 수도 있다. 만약의 경우에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만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시연은 지금 괴수를 두렵다고 고백한 것일까.
시연이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잖아요. 괴수가 가족을 모두 죽였고, 저는 어려서 힘조차 쓸 수 없었고…… 결국 도망치고 싶어서, 그저 죽음을 기다리고 도움조차 받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성천주님께서 손길을 내밀었고, 헌터로서 각성했고 훈련을 받아 이제 약한 괴수 정도는 잡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거 잘 된 일이군요.”
태석은 솔직하게 잘되었다 했다. 왜냐면 안 좋게 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두려운 감정이 남아 있었어요. 종종 일이 안 풀릴 때면 도망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태석 씨를 보고 나름대로 결심한 게 있어요.”
“그게 뭐죠?”
태석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지금의 시연의 표정은 나름대로 결의에 찬 모습이다. 태석은 그런 표정을 짓는 자를 예전에 본 것 같았다.
누구였을까……. 그래, 대한이다.
헌터로서 먼저 각성하고, 자신에게 대신 괴수를 잡아 복수해주겠다는 그런 표정.
“저는 태석 씨처럼 더 이상 괴수를 두려워하지 않겠어요. 반드시 용감하게 싸워나갈 거예요.”
“음…….”
태석이 조금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시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자신이 한 말에 기분이 나쁘게 할 요소가 있었는지 되짚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어린아이를 보는 느낌이다. 그것도 제법 똘똘한.
태석이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보통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는 자들이었고, 그 정진하는 옆모습을 볼 때, 묘하게 아이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왠지 모르게 돕고 싶은 감정이 들곤 했다.
지금 고개를 돌린 채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시연을 보며 태석이 말했다.
“저도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괴수를 두려워할 때가 있다.
겁에 질려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자신에게 되뇌었다.
“하지만 여기서 도망치면 영원히 패배하는 거다. 누군가가 그 괴수에 의해 제2의 나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니까 제가 도망쳐서 다른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아직 경력은 미약하지만…… 적어도 제 초심은 그렇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무리죠.”
그러니까.
태석은 결론지었다.
“두려워하되 도망치지 말자. 그리고 그 긴장을 갖고 더욱 신중하게 사냥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태석 씨도 두려워한다라…….”
“제가 안 두려워할 줄 알았던 거예요?”
“그, 그게…….”
시연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뭔가 싸울 때 묘하게 즐긴다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괴수 사냥을 즐기는 타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건 무슨 미친 사람입니까.”
“후후.”
시연이 혀를 내밀며 웃었다. 그 미소가 제법 볼만했다.
햇살이 비추었다. 시연의 모습을 더욱 반짝이게 했다. 그 해는 곧바로 저물었지만, 이제 언데드가 일어날 때이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그러면 이제 언데드 사냥, 보스 괴수 사냥에 나섭시다. 시연 씨.”
“……네!”
그리고 시연이 자신만만하게 외쳤을 때였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고란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헌터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성 놀이공원 입구 쪽에 무대 비슷하게 꾸려진 장소를 보았다. 그곳에는 성천주 고란 홀이 하얀 드레스를 입은 채 검은 천으로 자신의 몸을 대충 가리고는 소리치고 있었다.
[지금부터 단체 사냥에 들어가는 거다, 헌터들!]
고란을 보고는 헌터들이 약간 결의에 찬 표정을 했다. 성천주는 S랭크 헌터 정도의 값어치를 한다. 그리고 성천주 특유의 능력까지 포함하면 S랭크 헌터 열 명, 아니 스무 명이 넘는 값어치를 할 것이다.
그런 고란이 말한 것이다.
[우리는 흑수정을 정화하여 한성 놀이공원을 다시 많은 아이들과 가족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고란이 헌터들을 차례차례 보며 말했다.
[너희들 중에는 돈을 원해서 헌터가 된 놈도 있고, 명예를 위해, 권력을 위해 헌터가 된 녀석도 있을 거다. 또 발정 나서 계집질을 하려고 헌터가 된 녀석도 있을 테지. 하지만 이날 이때! 보스 괴수 사냥을 앞둔 지금, 우리들의 목표는 모두 같다!]
성천주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너희들은 뭘 원하지?]
대답은 단순했다.
헌터들이 모두 대답을 외쳤고, 본격적인 단체 사냥에 나섰다.
고란이 무대에서 내려와 종종걸음으로 태석과 시연에게 돌아왔다. 시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을 너무 크게 만든 감도 있네요. 겨우 D랭크 괴수들인데……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사냥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러는 너는 감성팔이까지 하면서 태석 씨를 꼬시고 있었잖아.”
“들었어요?!”
“처음부터, 전부.”
“……아우우.”
시연이 이상한 짐승 울음 같은 의성어를 냈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때만큼은 시연의 심정을 이해한 듯한 느낌이었다.
감상에 젖어서 자기 속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볼 사람에게 그짓을 했다면 상당히 부끄럽겠지.
태석은 그렇기에 미소를 지으며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 저희도 움직여야죠. 보스 괴수 사냥은 저희가 캐리해야 하니까요.”
“그래요. 반드시 성공하도록 해요.”
시연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소가 제법 아름답다고 여겨졌다.
그때 태석이 문득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흑수정이 또 있나? 아니야, 그런 느낌이 아니다.’
흑수정 같은 기운이 아니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무언가였다. 마치 흑수정의 원액을 마주한 듯한 기분. 하지만 그것이 지금 여기서보다 더욱 멀리 있고, 그 냄새만을 풍기는 무언가가 있는 기분.
도대체 무슨 기운이지? 이건?
태석이 고란도 느꼈나 싶어서 고란을 보았으나 고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죠?”
“아닙니다.”
태석은 자신도 모르는 척했다. 그리고 눈만을 돌려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는 살짝 당황했다. 누군가가 그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머리에 철 같은 헬멧을 착용한 남자였다. 그 남자는 이내 군중의 틈 속으로 흩어지듯이 사라졌다. 기운 또한 사라졌다.
‘뭐지, 저자는?’
뭔가 불길하다. 태석은 보스 괴수 사냥뿐만 아니라 방금 전의 남자 또한 경계하기로 마음먹었다.
치직.
그렇기에 눈에서 푸른 전기가 튀었다. 온몸에 전기의 자극이 느껴졌다.
‘아직 사냥은 시작하지 않았지만…… 언제 저 남자가 습격할지도 몰라. 아니, 습격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본능이 말하고 있다.
저 남자는 위험하다고.
‘그러니까 계속 경계한다. 저 남자가 먼저 행동을 시작하면, 최악의 경우 죽인다.’
헌터는 살아 있는 병기였다. 그렇기에 헌터가 누군가를 죽이려 할 때 막으려면 죽이는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그것을 법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최대한 장려하고 있다.
통제할 수 없는 무기는 무기가 아니라 적일 뿐이다. 그것이 국가의 판단이었고, 태석은 국가의 국민이었다.
“아무튼, 한성 놀이공원 내부로 들어가도록 하죠.”
시연이 살짝 불안한 표정을 했고, 고란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으나 태석은 그것을 모르는 척 넘기고 한성 놀이공원 내부로 성큼 들어왔다.
기운은 아직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폭풍전야. 폭풍이 일어나기 전의 태평한 하늘을 보는 느낌이다.
그것도 검붉은 하늘을.
“좋아, 잘 해보자.”
태석이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 혼잣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