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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모든 신을 받다-12화 (12/102)

# 12

12. 필요 없는 데다 짜증 나는 놈

“크으!”

남자 둘이 소주를 병째로 입에 들이붓고 있었다. 일반인이 보기에 미친 짓이었고, 금방 곯아떨어져 다음 날의 숙취에 비명을 지르게 될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헌터였고, 헌터들의 경우 신진대사량이 활발했기에 술의 독소를 분해하는 간 또한 튼튼했다. 그렇기에 소주를 마시고 취한 느낌을 가지려면 병째로 들이붓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맛있군, 맛있어!

남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술을 다시 입에 들이부으려 했고, 이미 바닥나 있었다.

“술 더 내놔!”

한성 놀이공원 근처 술집은 장사가 제법 잘 되는 편이었다. 지금의 남자 둘, 헌터들에 의해 술이 많이 팔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리 준비해둔 술이 바닥나기 마련이었다.

“술이 다 떨어져서…….”

“뭐?”

남자가 눈을 부라리며 여자를 보았다. 분노한 표정이다. 원래 인간은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못할 경우 욕구 불만이 오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약간의 분노를 느끼게 된다. 지금의 남자는 사리분별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 화를 터트리기 위해 상을 엎었다.

“술이 없다고?! 이 개!”

남자가 욕을 하며 상을 엎자 술병, 양꼬치 남은 것, 술잔, 접시, 젓가락 등등이 모두 땅에 엎어져 깨지거나 망가졌고,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남자가 여자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헌터인 그들은 힘이 제법 강했다. 대부분의 남녀 헌터들은 그 광경을 못 본 체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여자가 울먹이며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저 여자를 노려보며 인상을 더 험악하게 할 뿐이다.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 죽지 않더라도 죽도록 얻어맞는다. 사리분별이 안 되는 취한 헌터에게 얻어맞아 죽다니, 이렇게 비참한 최후가 어디 있을까.

여자가 자신이 술집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에 자책을 느끼며 죽음을 확신했을 때였다.

“그만둬라.”

남자, 그것도 강철 머리띠를 착용한 인상을 험악하게 찡그린 남자였다. 남자의 이름은 강철호. 이 근방에서 유명하지는 않은 헌터였다.

쉽게 말해, 신참 나부랭이 정도의 취급을 받는다는 소리였다.

강철호의 그만두라는 말에 사리분별 못 하는 남자가 여자를 집어 던지려 했다. 강철호에게 집어 던지려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순간 철호의 모습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남자와 여자를 떼어 놓고 여자 쪽에서 천천히 의자에 앉힌 다음 말했다.

“일단 여기 있어라.”

“네? 네…….”

여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도운 철호를 빤히 보았다.

철호가 주먹에서 뼈 소리를 내며 남자를 보았다.

“네 이름은 뭐냐?”

“그걸 알아서 뭐하게?”

남자는 쉽게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철호가 피식 웃었다. 정말 어이없는 녀석이군. 자신이 강한 줄 알고 난동을 부리는 꼴이 우습다.

“하긴, 몰라도 상관없지. 너는 그저 나한테 두들겨 맞아서 나를 띄워주는 역할만 하면 될 뿐이니까.”

“뭐라고? 이 개자식이. 그렇게 나를 업신여긴다면 이름을 알려줘야겠군. 나는 이 근방에서 알 사람들은 다 아는 불꽃 주먹 공성철이다!”

“공성철…… 기억해두겠다. 어차피 여기서 처맞고 질질 짤 테지만.”

공성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철호는 한숨을 뱉으며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도 여자에게 취했다고 손찌검을 하는 녀석은 유명하다 해도 쳐죽여 마땅하다. 철호가 아무리 악의 편에 선 자라 하더라도 성철 같은 쓰레기는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다.

악인과 범죄자는 다른 법이다.

그것이 철호의 생각이었고, 철호가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성철을 해치고자 한 것이다.

성철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주먹에서 불꽃이 튀어나와 감쌌다.

“흠.”

철호는 성철의 주먹에서 튀어나온 불꽃이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헌터로서의 재능이다.

주먹에서 불이 튀어나오는 것을 일반인 관점에서 보자면 참신한 능력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치게 평범한 능력이었다. 헌터의 관점에서 저 정도 능력은 능력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서도 습득 가능한 마법에 불과했다.

성철은 그런 별 볼 일 없는 능력을 자신만만하게 선보이며 주먹을 휘둘렀다.

철호는 가볍게 그것을 피했다.

느리다.

지나치게 느렸다.

그렇기에 피하기에 쉬웠고, 반대로 반격을 날리기에는 더 쉬웠다.

제발 반격을 놓아주세요! 라고 외치는 듯한 움직임이라 오히려 함정이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

철호의 손이 성철의 팔에 닿았다. 그리고 약간의 마력을 송출하여 폭발시켰다.

콰직.

그 순간이었다.

성철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느껴진 것은 팔의 감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어째서 팔에 감각이 없는 거지?

성철은 자신의 팔 쪽에 시선을 옮겼고, 비명을 질렀다.

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 아무것도!

“끄, 끄아아아아아아!”

성철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뒤늦게 쫓아온 고통이 그의 몸과 정신을 망가트렸다.

철호는 한숨을 뱉으며 그 꼴을 보았다.

쓸모없는 녀석이군.

성철의 몸통을 발로 지그시 밟은 채 몸을 기울여 성철을 보며 말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타입의 사람이 있어. 필요하지만 짜증 나는 녀석, 그리고 필요하지 않고 짜증 나는 녀석. 대체로 모든 인간은 나에게 있어서 짜증과 분노를 유발시키기 때문이야.”

성철은 그저 울먹이면서 그 목소리를 들을 뿐이다. 피를 너무 흘려서 기운이 없고 머리가 아팠다.

철호가 성철의 팔의 잘린 단면을 손가락으로 후벼 팠다. 핏줄을 발견하고 재미가 들린 것인지 핏줄을 조금 뽑아 꼬아 보았다. 고무줄을 꼬는 느낌이라 제법 재미있다.

“필요하지만 짜증 나는 녀석은 비위를 맞춰준다. 그래야 내가 얻을 게 있으니까. 하지만 필요하지 않고 짜증만 나는 녀석…… 그래, 마치 네놈 같은 녀석은 어떻게 하는지 아나?”

“그, 그런 걸 알 리가…… 그보다 내 팔, 내 팔…….”

“존나 고통스럽게 하는 거야. 왜냐면, 괴롭혀도 나에게 손해될 게 없거든. 게다가 너는 다른 일반인을 괴롭히고 있었잖아? 헌터로서 그런 짓을 하는 자는 죽여도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없어. 왜냐면 헌터는 살아 돌아다니는 인간 병기. 이런 사건을 너에게 최대한 불리하도록 판결을 내려야 하거든. 그래야 사회가 너 같은 놈 없이 잘 굴러갈 테니까. 그러니까…….”

콰지지지직…….

철호가 성철의 머리를 비비 꼬아 똑하고 떼어냈다. 그리고 입꼬리를 올렸다. 머리가 아이스크림처럼 빙빙 돌아가 뽑혀서 척추가 같이 딸려 나온 꼴이 보기에 우스웠기 때문이다. 그가 좋아하는 광경이기도 했고.

“죽어라. 그게 너에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일 테니까.”

주변은 조용했다. 사람들이 모두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철호가 한 짓은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크게 없었기 때문이다. 성철이 먼저 다른 일반인을 죽이려 했으니 죽여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잔인했다. 그것 때문에 지금의 미친 것처럼 보이는 녀석에게 눈길을 끌려서 불똥 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조용히 있는 것이다.

철호는 침을 퉤 하고 뱉고 오만 원권 열 장 정도를 여자의 가슴팍에 꽂았다.

“자, 이거 받아라. 어차피 죽을 목숨 살려준 거, 이 정도 성희롱은 용납해줄 테지?”

“아, 아, 어, 으…….”

여자는 패닉에 빠져 자신의 가슴팍에 꽂힌 오만 원권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그녀의 눈에는 자신이 죽을 뻔했던 사건의 플래시백만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철호는 고개를 저었다.

“맛이 갔구만.”

휘휘.

손으로 여자의 눈가를 휘휘 흔들어 보고는 한숨을 뱉었다.

“그러면 이만 가봐야겠군.”

철호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굴러다니는 반지를 손으로 만져 보았다.

자신의 주인이 시킨 일이 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한성 놀이공원에 가야 했다.

‘뭐, 조금만 느긋하게 굴어도 되겠지.’

이제 한성 놀이공원은 본격적인 공략 대상이 됐다. 고란 홀이 성천주 의식을 했기 때문이다. 며칠 후면 성천주의 축복에 힘입어 많은 헌터들이 본격적인 사냥에 나서겠지.

그 직전에 해결하면 되는 일이다. 자신의 주인이 그리 말했다.

철호는 바닥에 나뒹구는 성철의 살점을 입에 넣고 씹었다. 제법 맛있는 육회였다.

“흐음.”

철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일진이 좋다.

태석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한성 놀이공원의 끝자락에 도달했다. 그리고 주변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괴수의 느낌이 아니었다. 그보다 본질적인 기운이었다. 태석은 눈을 감고 그 기운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모든 감각이 총동원되어 기운을 쫓았다.

“이건…….”

은호를 잡기 직전, 그때 느꼈던 기운이다.

“흑수정이 가까이에 있다.”

고란이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이것은 흑수정의 기운이었다.

“어느 정도 길 뚫기 작업은 마무리됐네요.”

시연이 수첩에 마지막 지도 필기를 마치며 말했다.

태석과 시연, 고란은 휴식을 취하면서 한성 놀이공원을 샅샅이 수색하는 방향으로 스켈레톤이나 슬라임 등의 언데드 괴수들을 잡는 데에 온 힘을 집중했고, 불과 반나절 만에 흑수정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 흑수정의 위치만 파악한 겁니다. 흑수정을 들어내기 위한 보스 잡이가 남아 있으니까요.”

고란이 태석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 군요.”

태석은 흑수정이 은호 때처럼 모습을 바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들어내기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숨어 있는 흑수정을 끄집어내는 느낌의 작업이었는데, 어떤 조건을 만족하면 흑수정을 만지고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보통은 근처의 보스 괴수를 잡으면 드러나는 식이다.

“이곳의 보스는 누구일까요.”

“글쎄요. 하지만…… 그렇게 강할 것 같지는 않아요. 지금까지 괴수들이 워낙 약했으니.”

“방심하지 마라, 시연.”

고란이 확 쏘아붙였다.

“이전 사냥을 잊은 건 아니겠지.”

“당연히 기억하죠.”

태석이 시연과 고란을 보며 물었다.

“무슨 사냥인데요?”

“그게…… 예전에 거대 늑대 사냥을 할 때, 거대 늑대들이 약했거든요. 그리고 보스 괴수를 사냥할 때, 보스 괴수가 비정상적으로 힘이 셌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

“스켈레톤이나 슬라임이 약했더라도 보스는 지독하게 강할 수 있다, 이 소리군요.”

“그래요. 맞습니다.”

태석은 콧잔등에 손을 얹은 채 생각했다.

확실히 이곳의 괴수들은 지나칠 정도로 약했다. 물론 자신이 S랭크이고 성천주와 함께 사냥을 했으니 더 쉬웠겠지만…… 그렇다 해도 약한 편이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보스 괴수가 지나치게 강하다는 소리 아닐까.

살짝 긴장되었다. 팔과 다리가 떨리는 기분이다.

“보스는 어디서 만날 수 있나요?”

“어느 정도 괴수들을 정리하면 스폰 될 거예요.”

“스폰이라…….”

예전에, 어릴 적하던 게임에서 몬스터가 스폰 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태석은 지나치게 게임 같은 현실이 오히려 익숙하게 느껴진다는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면 일단…… 숙소로 돌아갈까요.”

“윽…….”

시연이 순간 신음을 흘렸다.

또다시 이 청년과 같은 방을 써야 하는 걸까. 불편하고 뭔가 불안한 느낌이었다. 동시에 뭔가 야릇한 기분이 드는 것이 아주 수치스러웠다.

그런데도 나쁘지 않은, 오묘한 느낌.

그 느낌을 놓치지 않고 잡아낸 고란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좋아, 좋아. 이걸로 시연도 남자에 대해서 알게 되는 건가…….”

“방금 생각만 하려는 걸 입 밖에 내신 거죠? 맞죠?”

“뭐 병신아. 닥쳐.”

“…….”

훌쩍.

고란이 험악하게 말하자 살짝 상처받은 그녀였다. 태석은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일단 여기 계속 있기도 좀 그러니까…… 돌아가죠?”

그렇게 오늘의 사냥은 끝이 났다.

사냥으로 얻은 아이템의 정산 작업은 다음에 하자.

귀찮으니까.

태석은 돈을 받는 작업이 귀찮을 정도로 제법 여유가 생긴 자신의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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