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7. 전설의 시작
철컥.
강철 길드의 길드장 이지석은 도복이 아닌 체육복을 입은 채 강당이었던 다 무너진 건물에서 커다란 철근을 들어 올렸다.
무겁군.
지석은 자신이 들고 있는 철근이 제법 무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반인들과의 무거움으로 비교하자면, 지석의 입장에서 10킬로짜리 아령을 드는 것과 비슷한 고통이었다.
들고 뛸 수는 있지만, 오래 들면 팔이 저릴 듯했다.
철근을 적당히 옮겨 놓고 지석이 크게 숨을 뱉었다.
“피로하군.”
“그러게 대련은 되도록 공터에서 하라니까요.”
뾰족한 안경을 쓴 여자가 말했다. 윗 라인이 두껍게 하이라이트가 있어서 제법 강한 인상을 주었지만, 안경을 벗는다면 제법 미녀일 얼굴이었다.
지석이 쓴 미소를 지으며 여자에게 말했다.
“갑자기 결정된 사항이라 말이야. 대한과 태석의 대련 직후 즉흥적으로 정해졌거든. 미쳐 생각을 못 했어.”
“뭐, 별수 없죠. 제가 미리 눈치 못 챈 걸 탓해야지.”
여자는 허공에 손을 뻗은 채 마법을 발동했다.
우웅-.
진동음 같은 것이 그녀의 손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치 염동력이라도 쓰는 것인지, 철근이 허공에 붕붕 떠서 자리를 옮기고 천천히 낙하했다. 올바른 곳에 옮긴 것인지 여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진동 능력은 편리하군.”
지석이 간단히 그 상황을 평했다.
여자의 이름은 한세연. C랭크 헌터이며, 진동 능력자였다. 아직 능력의 개발이 덜 되었기에 공기의 진동과 액체의 진동을 일으키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발전한다면 여느 능력자들처럼 더욱더 커다란 스케일의 능력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석은 그렇기에 세연을 자신의 길드의 부장으로 정했고, 그녀는 사무적인 일에도 능했기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세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짝하고 쳤다.
“그러면 오늘 할당량은 채웠고, 다음에 이어서 하도록 해요.”
“그런데 괜찮을지 모르겠군.”
“뭐가요?”
“우리가 직접 짓는 거 말이야. 건축업자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지만 세연 씨도 처음이잖아. 불안하지 않아? 좀 더 공부를 한 뒤에 시작하는 것도 늦지 않을 텐데.”
세연은 눈을 꿈벅이다가 씨익 웃었다.
“뭐예요? 은근슬쩍 저 걱정해주기? 그렇지 않아도 저의 길드장님을 향한 애정은 넘쳐흐른답니다~.”
세연이 대놓고 지석에게 애정이 줄줄 새어 흐르는 발언을 했다. 지석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확실한 거지? 네가 공부한 건축 관련 내용.”
“확실해요. 제 공부 실력을 무시하지 마요. 이래 봬도 건축학과니까.”
“그렇다 해도 자격증 하나 없으면서.”
“졸업 직전에 헌터로 각성했으니까요.”
“그리고…… 영화를 보고 감명받아서 고른 학과잖아. 애정은 없었을 텐데.”
“……음.”
세연이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그녀는 로맨스에 대한 동경이 많았다. 그렇기에 로맨스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의 학과였던 건축학과로 진로를 정한 것이고, 그러던 도중 헌터로 각성하고, 또한 지석에게 눈에 띄어 바로 길드원이 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건축학과에 대한 실질적인 애정은 별로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지석은 종종 생각했었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잖아요? 걱정 마요.”
“걱정은 안 해. 네가 하는 일이니까 확실할 거라 믿어.”
세연이 얼굴이 붉어졌다. 순간 고개를 숙이고 아주 작게 말했다.
“네…….”
지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태석이 벌였던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몰고 왔다.
이번 사건은 달달하고 야릇한, 그런 사건일 것이다.
‘뭔가 찌릿찌릿한 기분인데. 큰 사고를 친 것 같아.’
태석은 눈을 뜨고 창가에서 들어오는 차가운 푸른 햇살을 보면서 생각했다.
무언가 사건을 벌인 것 같았다. 간접적으로 큰일이 일어난 느낌이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기분 탓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태석은 기지개를 켜고 저리는 팔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둥을 많이 쓰면 저리구나. 하긴, 끊임없이 진동감이 느껴지는데 저릴 수밖에.’
그래도 다행이었다. 예전 헌터 관련 신문 기사에서 본 바로는 능력을 쓰면 쓸수록 신체의 일부분이 퇴화하는 경우도 있다는 데, 그런 형태의 능력은 아닌 모양이다.
그는 양치를 간단히 하고 목욕을 했다.
뜨거운 물을 맞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어제 하루는 푹 쉬었고. 그저께는 대한이랑 지석이 형이랑 대련했고. 오늘은…… 언데드를 잡아야 하는구나.’
지석이 미리 손을 써준 덕분에 한성 놀이공원에 진입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현재 한성 놀이공원은 반 정도 던전이 된 상태. 언데드들이 흑수정에서 튀어나와 공원을 점령했기에…… 놀이공원으로서의 기능을 전부 잃은 상태였다.
한성 그룹은 그 탓에 막심한 손해를 입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관심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괴수를 잡을 수 있다는 것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지석이 형한테 이것저것 갉아 먹을 수는 없는 법이지.’
성인이 된 뒤로 결심한 것이 있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일을 해결한다. 그런 간단한 결심을 했던 것이다.
뜨거운 물을 끄고 태석은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일찍 일어났네?”
여동생, 엄태희가 말을 걸었다.
태희는 자고 일어나서 꾸밈없는 모습이었다. 큰 박스티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모두 태석이 어린 시절 입던 옷이었다.
태석은 문득 그것이 신경 쓰여 말했다.
“너 옷도 있잖아. 어째서 내가 예전에 입던 옷을 입는 거야?”
“뭐, 느긋느긋한 익숙한 향기가 난다, 라고 하면 되겠네.”
“…….”
태석이 쓴 미소를 지었다. 태희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많이 의지하며 살아왔다. 힘들 때도 기쁠 때도 모두 태석에게 말했고, 그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때 생각나네. 어렸을 때, 태희 너…… 남자애들한테 맞아 가지고 왔잖아.”
“아, 그 새끼들. 기억나.”
“그때 나한테 와서 울면서 모든 사실을 말했고, 내가 야구 방망이를 들고 찾아가서 위협했었고.”
“그때 꽤 멋졌어.”
태희는 후라이팬 근처에 손을 대 온도를 대충 재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적당히 기름을 두르고 계란 세 개를 깠다.
“그런데 어디 갈 거야?”
“당연히 회사지.”
태희에게는 자신이 헌터가 되었다는 사실을 숨기기로 했다. 그렇기에 그저께 대련 때 찢어진 옷을 모두 새 옷으로 갈아입고 집에 들어왔다. 대중목욕탕에서 몸을 씻은 것은 물론이다.
그렇기에 회사에 갔다고 말했고.
“아닌데.”
태희는 계란 두 개를 접시에 담아 태석에게 건넸다.
“딱 봐도 나 헌터 돼서 위험한 일 하러 갈 건데, 라고 하는 얼굴인데.”
“아…….”
알고 있었나.
태석이 이제야 숨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그보다 나만 왜 계란이 두 개야?”
“헌터로서 일 잘해오라고. 죽지 말고 잘 싸워서 이겨.”
태희는 그렇게 간접적으로 태석이 하려는 일을 수락했다. 태석은 계란을 입에 넣어 씹었다. 조금 탔지만, 여동생이 해준 음식이었기에 나름 맛있고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었다.
모두 먹어치운 태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갔다.
차갑고 푸르고, 새벽 특유의 앳된 바람이 느껴졌다.
태석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세상에 고하듯 조용히 말했다.
“자, 전설의 시작이다.”
그렇게 말하고 절로 부끄러워진 태석이 흠흠 기침을 했다.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