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4. 대련
[S등급.]
결과를 먼저 본 대한은 덜덜 떨면서 태석을 보고 있었다. 태석은 의아한 표정으로 결과지를 받아 들고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서 S등급이?
그동안 헌터로서의 마력과 흑마력, 차크라가 전혀 검출되지 않았던 그였다. 그런데 돌연 S등급으로 측정된다는 것은 솔직히 말이 안 된다.
태석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결과지가 잘못된 건가?’
다시 헌터 적성 검사를 받을까 생각했지만, 지석이 고개를 저었다.
“결과가 잘못 나올 리 없어. 이것은 정말로 너의 등급이다.”
“정말로요?”
잠시 결과지를 노려보던 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것이 결과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검사에서 등급이 뜨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태석은 지금은 꿈처럼 느껴지는 그때를 떠올렸다.
하얀 벽, 하얀 바닥, 하얀 천장이 있는 곳에 놓여 있는 새하얀 책상.
그 위에 놓여 있는 카드 한 장.
토르의 카드.
눈을 감고 그때의 감각을 떠올려 보았다.
순간적으로 토르의 모습이 얼핏설핏 보였다.
천둥을 몸에 두르고 비바람을 일으키는, 하지만 형체가 보이지 않는 존재.
신인 것일까.
다시 눈을 뜨고 미소를 지었다.
“제 결과지가 맞는 것 같네요.”
태석은 현재 하얀 병실 환자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정밀한 검사를 위해 입었던 것이고, 이제 입을 필요가 없었다. 지석과 대한이 있는 앞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찢어지고 피가 묻어 있지만, 그래도 환자복보다는 나았다.
자신의 손에 꽂혀 있던 능력 검사 전극을 떼고 지석을 보았다.
“이제 저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태석이 물었다. 자신이 할 일을.
지석은 자신의 인중에 손을 얹고 잠시 고민했다.
그가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석이 막았다.
“제가 정하겠습니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정한다. 성인이 된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힘든 일이다.
태석은 대한을 보았다.
“응?”
대한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랑 대련해보자.”
지석이 피식 웃었다.
“그래, 그거 좋군.”
“네? 네?”
대한이 지석과 태석을 번갈아 보다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을 손으로 가리켰다.
정말로 겨루자는 건가? S등급이 E등급한테?
자신을 죽일 속셈인가? 대한이 겁에 질린 채 지석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지석이 말했다.
“비록 S라고 해도 경험이 없어. 경험이 없는 S는 그저 카드 게임의 룰을 모르는 패가 좋은 사람에 불과해. 그러니 둘 다 비슷할 거다.”
“……살려줘요, 좀.”
대한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뱉었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태석을 보며 말했다.
“후회하지 마라. 제법 나 잘 싸우니까. E치고는 꽤 세다고.”
“꽉 찬 E랑 비슷한 거야?”
태석의 말에 대한이 잠시 눈을 꿈벅이다가 말도 안 되는 일을 본 표정을 지었다.
“네가 지금 무슨 드립을 한 건지 아는 거야?”
“응.”
대한은 이곳에 여자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석은 눈을 꿈벅이며 말을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대한은 그런 지석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참, 얼마나 퓨어한 거야.’
헌터 일을 제외하고는 아는 게 거의 없는 지석이었다. 지금의 성적인 농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태석은 드물게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한은 누운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커다란 강당처럼 둥글게 들어간 천장의 전등이 눈을 부시게 했다. 한숨이 덜컥 나왔다.
‘겁나 세잖아.’
벌써 세 번째 날아가 누운 것이다. 이제 일어나기 싫을 정도였다.
“에구구구.”
대한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허리가 빠진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석과 겨룬 직후 5분 동안 세 번 날아가 쓰러졌다. 태석에게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이상한 번개와 비바람이 접근을 불허했다.
‘도대체 무슨 능력이지.’
보통의 마법은 원소 공격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번개를 내리치거나 물을 뿜거나 한 가지만 할 것이었다.
하지만 태석은 달랐다.
날씨 그 자체를 조종한다는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 천둥이란 것과 비바람이라는 것을 동시에 다룬다는 느낌이다.
‘무슨 저런 괴물이.’
대한은 자신의 능력을 확인했다.
츠르르르르-.
대한의 손 위에 둥근 공 안에서 튕기는 검은 구정물처럼, 검은 에너지가 동그랗게 모여 통통 튀었다.
‘어둠.’
대한은 주로 어둠 원소 공격을 한다. 어둠을 모아 접근하여 닿게 하고 그 상태로 폭발시킨다. 그러면 웬만한 E등급 괴수는 한 방에 날아가 떨어진다.
‘접근만 하면 되는데. 저 비바람과 천둥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
비바람이 몰아쳐 대한을 날려버리고, 천둥이 대한의 주변을 터트려 자기장 효과로 인해 대한을 날려버린다.
만약 실수로 잘못 다루어 천둥이 대한을 직격했다면…….
“으으으으.”
대한은 소름이 끼쳐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태석이 말했다.
“다시 안 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것이 소름 끼칠 정도로 공포스럽다. 대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팔을 내던지듯이 소리쳤다.
“얌마! 그런 사기적인 능력으로 어떻게 내가 접근하라는 거야!”
“원거리 공격쯤은 만들어 뒀어야지!”
“원거리……. 미친, 아직 그 정도로 숙련되지는…….”
파지지직!
천둥이 대한의 옆을 스쳤다. 대한의 머리카락 몇 올이 타들어 가 바람에 휘날려 땅으로 깃털처럼 떨어진다. 대한의 특유의 포인트를 준 긴 머리카락이 짤막하게 변했다.
대한이 소리쳤다.
“지, 지금 죽이려고 했냐! 태석아, 좀 살살…….”
파지지직!
“아오, 저 미친 새끼!”
대한이 손을 뻗었다.
날려본다.
어둠 원소 공격을 원거리로 날린 적은 거의 없었다. 가끔 우연히 성공한 것 외에는 맞춘 경험이 없었다.
제어가 힘들기 때문이다.
어둠은 번개나 흙, 물이나 불처럼 물리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대한의 의식에 맞추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한의 의식은…… 솔직히 난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기에 손 위에 모아서 응축시키는 데에만 노력을 쏟았고, 그것만 가능한 처지였다.
‘하지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서야 해.’
대한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어둠을 모으고 일직선으로 날려본다.
콰지지직-!
어둠이 쏜살같이 날아가 태석의 몸에 명중했다.
태석의 몸이 순간 파륵 떨리고, 번개가 멎었다. 비바람도 멎었다.
대한이 기쁜 표정을 지으며 태석에게 정신없이 달려갔다.
마법으로 신체 강화를 하여 인간이 낼 수 없는 속도로 단거리를 달려 거리를 좁혔다.
좋아, 할 수 있다.
대한의 손에 어둠이 응축된다.
그 어둠을 손에 응집시키고 파르르 떨고 있는 태석을 향해 손을 전진, 어둠을 맞추려 한다.
이제…… 끝……?!
그때였다.
태석이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대한을 보았고, 손을 뻗었다.
파직, 파지지직-!
대한의 어둠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모인 천둥이 대한의 몸을 스쳐지나 간다.
“끄아아아악!”
스쳐지나 갔다 해도 전기 에너지다. 대한을 감전시키기에 충분했다.
대한은 쓴 미소를 지으며 몸이 날아가 바닥에 처박히는 것을 느꼈고, 눈을 감았다.
“시발, 존나 강하네…….”
태석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 정도면 어때요?”
태석이 지석을 향해 말했고, 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강당의 관중석에 홀로 앉아 있던 지석이 내부로 들어왔다. 그리고 도복을 고쳐 입고 주먹을 쥔 채 말했다.
“처음부터 이걸 원하던 거였군.”
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을 일으켜 관중석에 앉히면서 말했다.
“형이랑 붙어 보고 싶어서요. 이길 수 있으면 좋고, 지면 그냥 그런 거고. 그 핑계로 대한이를 좀 써먹은 거죠.”
“봐주지 그랬어, 개자슥아…….”
대한이 강철 길드의 힐러들에게 힐을 받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입이 쓰다.
태석이 손을 들어 올리며 사과했다.
“미안하고.”
그리고는 그 손을 돌려 손가락으로 지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랑 붙어 보시죠.”
지석이 눈을 감고 쓰게 웃었다.
“좋아, 한번 겨뤄보자.”
그리고 눈을 떴다.
눈이 불처럼 이글거렸다.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그의 눈에 불꽃이 튀고 있었다. 태석이 식은땀을 흘리며 침을 삼켰다.
이겨야 한다.
태석은 반드시 지석을 넘고 싶었다. 경험은 없었지만, 그를 넘어서야 만족할 수 있었다.
‘내가 이겨야 지석이 진심으로 헌터가 되는 것을 찬성할 거야.’
그러면 지원을 받기에 더 수월해진다. 자신의 든든한 발이 되어줄 것이다.
길드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지만…… 지석은 자신을 어렸을 적부터 취직하기까지 끝없는 지원을 해주었으니까.
이번에는 헌터로서 지원을 받는 거다.
태석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석이 발을 뒤로 주욱 빼고 손을 내밀었다. 어딘가의 무술 같은 자세였다.
그의 반지 하나가 빛났다.
그 순간, 손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와, 개쩐다.”
대한이 관중석에서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