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3. 도복을 입은 남자
은색의 거대 호랑이 괴수, 은호.
그런 은호를 눈앞에 둔 경험을 하고 있는 태석은 의외로 겁에 질린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야 자신에게 무언가 힘 같은 것이 넘쳐 흐르고 있고, 은호를 단숨에 무찌를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은호가 일단 뒤로 물러났다.
파직, 파직.
태석의 몸에서 번개가 파직거렸다. 대한은 그런 태석을 보면서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야?’
태석의 몸이 은호에게 꿰뚫리고 5초도 지나지 않아 천둥과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그 천둥과 비가 태석의 몸에 쏜살같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태석은 일어났고, 계속해서 번갯불이 태석의 몸 주위를 감돌았던 것이다.
‘뭔지 모르겠지만, 확신은 들어.’
지금의 태석이 강해졌다는 것.
그리고 은호가 겁에 질린 채 태석을 경계하고 있다.
대한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안전한 거야?!”
태석이 엄지손가락을 척 하고 들었다.
“저 미친놈.”
대한은 한숨을 푹 내뱉으며 벽에 기대어 은호와 태석을 보았다.
태석이 씨익 웃는 모습이 보였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 모르겠어.’
대한의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태석은 자신의 손을 뻗었다. 그리고 사고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 몸에는 지금 토르의 힘이 있다.’
천둥의 신, 토르.
태석은 머릿속에 파고드는 정보들을 모으고 정리했다. 이것도 능력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토르에 관한 모든 정보가 머릿속에 차곡차곡 들어와 정리되는 감각. 그 감각과 함께 태석이 손을 뻗어 천둥을 일으켰다.
콰지지직-!
천둥이 순식간에 일직선으로 뻗어 나와 은호의 몸을 꿰뚫었다.
끄어어어어엉-!
은호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부르르 떤다. 대한이 걸었던 마법인 마비보다 더욱 심한 충격에 은호가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좋아. 이거면 된다.
태석이 다시 손을 거두어 번개를 손에 모았다.
토르의 힘의 극히 일부분을 쓰고 있음에도 은호를 경직시키거나 피해를 입히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온전히 다룰 수는 없지만, 승산이 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번개 다루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네!’
콰직, 콰직.
순간순간 경직처럼, 아니 힘을 제때제때 받아들이지 못해 몸이 비명을 지르는 느낌이 들었다.
심한 통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쇠 손잡이나 쇠로 된 물체를 겨울에 잡을 때 겪는 정전기 같은 충격이 그의 정신을 소란스럽게 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 하지만 어떻게든 쓸 수는 있다.’
다시 손을 뻗어 천둥을 일으켰다.
콰르르르륵-!
은호의 몸을 다시 일직선으로 꿰뚫는다. 은호의 몸에서 검은 피가 솟아 나왔다.
은호답지 않게 더러운 피다. 태석은 그리 생각하며 곧장 다음 일격을 노렸다.
녀석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서둘러 아픈 발을 괴성을 지르며 움직여 태석의 몸을 꿰뚫으려 한다.
하지만 느리다.
토르의 힘을 받아들인 태석에게는 그 움직임, 그 목적이 전부 보인다.
‘토르는 단순히 천둥만을 일으키는 신이 아니다.’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며, 비와 천둥을 같이 일으키기에 서민들에게 있어서 희망이 되어주는 신이었다.
농사를 돕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로키에게 속아 땅을 내려찍었을 때 계곡이 생길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닌 신이었다.
그런 힘의 극히 일부분을 담고 있어도 신체의 강화는 제법 크게 일어난 상태였다.
태석이 번개와 같이 빠른 몸놀림으로 은호의 둔한 공격을 가볍게 피해냈고, 서둘러 번개를 손에 모아 은호의 옆구리를 찔렀다.
콰직!
손이 은호의 몸의 반절을 뚫고 팔까지 들어갔다. 태석이 서둘러 손을 빼고 은호와 거리를 벌린다.
크르르르르릉-!
은호가 괴성을 지르며 울부짖었고, 몸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덜컹.
은호가 제대로 발을 딛지 못하고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바닥을 허우적거릴 뿐이다.
태석은 그런 은호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은호의 눈에서 눈물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태석은 그런 것에 죄책감을 품지 않았다. 그저 그는 은호를 어떻게 하면 더욱 잘 죽일 수 있을지 그것을 고민할 뿐이었다.
은호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다.
그때의 기억이 난다.
모스키토, 모기 형태의 거대 괴수에게 가족을 잃은 적이 있다.
그때 어떤 남자에게 반지를 받은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남자는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자신은 답했다.
“죽일 거야.”
지금은 은호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태석은 손을 들어 올렸다. 번개가 콰르르릉! 하고 내려쳐 자신의 손에 박힌다.
그리고 그 손에 번개의 푸른 기운이 미친 듯이 솟아 나왔다. 태석은 그 손을 잠시 보다가 은호를 보았다.
캬르릉-.
은호가 포기한 듯 눈을 감았다.
죽이라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태석은 그렇지 않다 해도 죽일 생각으로 만발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괴수는 죽여야 하는 존재이며, 자신의 소중한 것을 앗아간 괴수였으니까.
그러니 고한다.
“깔끔하게 죽여주도록 하지.”
푹.
그는 은호의 몸을 정확히 반 토막 내고 머리까지 잘라냈다.
푸시시시시식-.
그리고 은호의 숨이 완전히 끊긴 그때, 태석은 자신의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토르의 힘이 일시적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토르의 힘이, 나에게 귀속되었어.’
언제든 꺼낼 수 있을 정도로, 토르의 힘과 자신이 강하게 결속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석은 잠시 은호의 시체를 내려다보다가 대한을 보았다.
어느새 대한의 뒤편으로 강철 길드의 길드원 몇 명과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당신은…….”
하얀 도복을 입은 남자가 천천히 걸어와 태석에게 다가간다. 남자의 손가락에는 손가락 한 개를 제외한 모든 곳에 반지가 씌워져 있었다.
그 반지가 무엇인지 태석은 잘 안다.
단순한 장식이나 과시용이 아니었다. 그 반지 하나하나에는 무언가 힘이 담겨져 있었다.
20년 전, 태석에게 벌어진 참극을 조사한 길드원. 하지만 지금은 강철 길드의 길드장이 되어 훌륭한 헌터로서 활약하고 있는 자.
“이지석이다. 엄태석, 많이 컸군.”
이지석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엄태석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지석 또한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 말했다.
“어렸을 적에 본 이후로 오랜만인가.”
“형에게 있어서 오랜만에 연락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태석은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대꾸했다.
태석에게 있어서 은인 같은 존재였다. 자신이 부모를 잃던 사건 이후로 여동생과 단둘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야 했다.
막막했고, 두려웠다.
그때 지석은 길드의 이름으로 태석에게 계속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돈으로 대학을 갈 수 있었고, 집세를 낼 수 있었으며, 여동생의 대학 비용을 태석이 취직하기 전까지 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취직 이후에는 그 돈이 모두 끊겼지만, 여동생이 가끔 병원이라도 입원했다 하면 어김없이 치료비가 전액 지불된 뒤였다.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지석이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태석은 피식 웃었다. 지석의 표정은 워낙 부끄러워 보였으며, 불안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이 이미 자신이 선행을 했음을 밝히고 있었다.
“저도 나름 조사해봤다고요, 형.”
“……그건 됐고.”
지석이 태석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드디어 헌터가 된 모양이군. 그것도 이례적인 방식으로.”
“그런 모양입니다.”
태석이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저 기쁜 것이다. 자신 또한 헌터가 되었고, 그것은 오랫동안 바라던 꿈 같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지석은 탐탁지 않았다.
“위험할 거다.”
“그런 것 같더군요. 은호에게 무력하게 당할 때는 정말 끔찍했어요.”
“그런데도 헌터가 될 생각인가?”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제가 원하던 부모님에 대한 복수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지석이 형이 어렸을 때 말했잖아요? 한 번 해보라고, 헌터.”
“그렇긴 하지만…….”
지석은 오랫동안 몰래 지원해온 태석이 헌터가 되는 것이 불안했다.
‘하지만 재능이 있어.’
뛰어난 헌터인 지석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태석에게는 강한 힘이 있었다.
그동안의 헌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 그 힘을 잘 가꾸고 제련한다면…… 자신을 뛰어넘는 헌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석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아들을 둔 느낌이 이런 건가 싶군.’
헌터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결혼은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결혼하더라도 헌터로서 평생 먹고살 돈을 벌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기에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의 자식은 없는 지석이었다.
하지만…… 태석이 자라가는 모습을 길드 권한으로 지켜보고, 이제 정말로 헌터가 되어 싸우려는 녀석을 보니…… 솔직히 두렵다.
다칠까 봐.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녀석은, 말리더라도 할 녀석이다. 그러니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겠지.’
이왕 헌터 생활하게 만들 거 정말 제대로 키우고 싶었다.
“내 길드에 들어와라.”
태석은 눈을 꿈벅였다.
“제가요?”
“그래.”
지석이 미소를 지었다.
“설령 들어가기 싫다고 해도 지원 정도는 해주도록 하지.”
태석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러면 길드에 들어가지 않고 지원만 받는 걸로.”
“……뭐, 그래도 좋고.”
지석은 고개를 돌려 길드원들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렸다. 태석은 은호의 시체를 툭툭 건드리며 그 지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정말로 자신이 잡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위협적으로 생긴 녀석은 만신창이로 찢겨져 있었던 것이다.
태석이 그런 은호의 시체를 신기한 눈으로 보는데 지석이 말했다.
“일단 강철 길드의 길드 건물로 와라. 몇 가지 헌터 절차를 밟아야 하니 내가 도와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