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프롤로그
외계 종족 오크.
거무튀튀한 두꺼운 가죽을 연상하는 피부에, 도끼나 거대한 대검 같은 보통 인간은 들기도 힘든 무거운 무기를 든 괴물이다.
엄태혁은 그런 괴물을 보면서도 두려운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라면 확실히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몸에는 제법 많은 신이 강림 되어 있다.
번개의 신 토르를 비롯하여 갖가지 신들이 그의 몸에 들어가 있고, 그 신을 강림하여 그의 몸을 베이스로 오크 같은 외계 종족들을 단숨에 처리할 수 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괴된 서울이 보였다. 끔찍할 정도로 잘 파괴되어 있었다. 건물은 무너져서 형체를 잃었고, 죽지 않은 사람들은 도망친 뒤였고 사람들의 시체가 잔인하게 찢겨진 채 있었다. 오크의 입가의 피는 그들이 사람들의 뼈와 살을 씹어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서 못 해.”
엄태혁에게는 트라우마가 있다. 아니, 트라우마라기에는 너무 오래전의 일이다. 오래전의 끔찍한 일을 보통의 사람들은 추억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추억이라기엔 너무 질컹질컹한 느낌이다. 질기게 그를 쫓아간다는 느낌.
엄태혁은 손을 뻗었다.
파직, 파지직.
번개가 몰아친다. 그의 손에 몰아친 번개는 그의 고유의 마법도, 특수한 아이템의 영향으로 일어난 것도 아니다.
그의 헌터로서의 재능, 강신이다.
강신을 통해 그가 받아들이는 신은 지금으로서는 단 한 가지의 신이었다.
토르.
파지지지지지직-!
번개의 신이 그의 몸에 힘을 바친다. 그의 몸에 번개가 가득 찬다.
오크들이 움찔거리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엄태혁은 히죽 웃으며 눈가가 푸르게 변질된 채 소리쳤다.
“너희들이 죽인 만큼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쾅!
그 뒤에 벌어진 일은 많은 이들의 상상과 같이 학살이었다.
1. 은호
이지석은 헌터들이 모여 만든 길드의 길드원이었다. 그의 손가락에는 갖가지 반지들이 착용되어 있으며, 이는 단순히 꾸미기 용도이거나 과시욕이 아니었다.
반지 하나하나에 힘이 새겨져 있었다. 그가 길드에 부탁하여 괴수들의 재료로 만든 힘이 담겨 있다.
“그래서 무슨 사건이지?”
지석의 물음에 길드원이 서둘러 달려와 경례를 하고 말했다.
“그게, F랭크 괴수 모스키토가 가정집에 침입하여 30대 남성과 20대 후반 여성을 살해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부부. 대학 시절 연애 후에 결혼을 하고 8년이 흐른 뒤라고 합니다.”
“그렇군. 자식은 있었나?”
길드원이 지석의 말에 살짝 말을 잃었다.
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건 현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쳐놓은 곳을 위로 들쳐 올려 진입한다.
집은 아수라장이었다.
제법 예쁘게 인테리어한 집이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피아노는 반 토막 나서 부서져 있었으며 온갖 곳에 피가 튀어 있었다. 테이블과 탁자, 각종 가구와 가전용품에 피가 난사되어 있었다.
‘모스키토는 피를 빨아 먹는 녀석이다. 피를 다 먹기 전에 죽은 모양이군.’
안 그렇다면 이렇게 피가 곳곳에 뿌려진 상황에서 모스키토가 피를 먹지 않았을 리 없다.
그 전에 누군가가 모스키토를 죽인 것이다.
지석은 자신이 입은 도복에 피가 닿지 않도록 조심했다. 하지만 결국 도복 끝자락에 피가 묻어 붉게 치장되었다.
‘제길, 빨래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클리닝이라도 맡겨야 하나, 지석은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발견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남자아이의 몸은 검붉은 피로 채색되듯 있었으며,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에게 끌어안겨 울다 잠든 듯,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남자아이의 손에는 야구 방망이가 들려 있었다. 모스키토의 시신과 부모님이 있었던 쪽을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지석이 남자아이에게 다가갔다.
이미 망가진 태엽처럼 가만히 있는 아이가 시선을 돌려 지석을 본다.
지석이 말했다.
“이름이 뭐냐.”
분명 모스키토에게 살해당한 부부의 아이일 것이다.
안쓰럽지만, 지석이 신경 쓸 것이 아닐 것이다. 허나 지석은 굳이 물어보았다.
“엄태석.”
남자아이가 답했다.
지석은 바닥에 주저앉아 태석이라는 8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을 보며 말했다.
“네가 그 괴물을 죽인 거냐?”
“엄마 아빠를 죽이려고 해서, 죽였어.”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살아남았나?”
“…….”
말이 없다.
지석은 무표정한 얼굴로 태석을 보았다. 태석은 울상이 되어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보인다. 지석은 태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손을 내리고 자신의 손가락에서 반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태석이 내려다보는 시선 바닥에 반지를 굴려서 놓았다.
태석이 그 반지를 보다가 지석을 보았다.
“이게 뭐야?”
“강철 반지.”
“강철 반지?”
“반지를 끼고 기도 하는 자세를 취하면, 강철과도 같은 보호막이 너의 주변을 감싼다. 이 반지가 있다면, E랭크 괴수 정도에게는 바로 죽을 일은 없어. 두 대는 버틴다.”
“……주는 거야?”
“그래.”
“하지만 이게 있다고 해도 죽은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아.”
“그러니까 주는 거다.”
지석은 한숨을 푹 내뱉었다.
꼬마 아이가 이해할지는 모르지만, 이 말은 하고 싶었다.
“이 세상에는 좆 같은 일도 너에게 많이 벌어질 거고, 최악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게 시간이 지나면 별거 아니거나, 오히려 엄청 최악의 일이기도 하지. 어떤 쪽이건 좆 같은 건 마찬가지야.”
지석은 태석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태석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증오와 비슷한 강인한 의지는 보였다.
“하지만 좆 같다고 해서 포기하고 주저앉으면, 뒤진다. 그러니까 주는 거야. 좆 같은 상황에서 기도라도 해서 몇 대 버티라고.”
“위로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아저씨는 뭐 하는 사람이야? 다른 아저씨랑 아줌마처럼 길드원?”
“그래. 이지석. 앞으로 전도유망한 헌터다.”
“……헌터.”
태석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어린아이의 표정에서 나올 리 없는 끔찍할 정도로 사나운 미소였다.
“나도 헌터가 될 거야. 내 부모님을 죽인 괴수들을 쳐 죽일 거야.”
“그래. 죽여라. 반드시.”
지석은 8살의 태석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사건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괴수와 헌터가 존재하는 세상은 생각보다 무난하게 흘러갔다.
태석 같은 아이는 여럿 생겼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크게 신경 쓰는 이는 당사자 말고는 없었던 것이다.
28살의 엄태석은 아메리카노 커피를 입에 문 채 주욱 빨아들였다.
쓰다.
쓴 기운에 인상을 크게 찌푸렸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띵한 기분이 들었다.
제길, 아메리카노 아이스 커피는 언제 먹어도 맛대가리가 없군.
태석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입에 머금고 해맑게 웃으며 대화를 반복하고 있다. 몇몇 인물은 노트북을 손에 쥐고 무언가 과제나 인터넷 서핑을 하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보면 헌터나 괴수들이 튀어나오고 외계 종족들이 우리들과 외교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될 정도로 평화로운 광경이야.”
“그래, 그래. 영원한 헌터 지망생 씨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죠.”
태석이 인상을 확 쓰며 자신의 눈앞의 친구, 김대한을 노려보았다.
대한이 뒤로 물러나는 시늉을 하며 손으로 태석에게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진정할 수 있겠냐.
태석은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8살에 부모님을 괴수에게 잃은 남자에게 하기에는 너무 잔혹한 말이라고 생각 안 해?”
“그 일을 겪은 건 정말 안 된 일이기는 한데……. 하지만 헌터 적성 검사에서 매번 무능력자 판정을 받고 있잖아. 벌써 성인이 된 후로 열 번째 아니야?”
“미약하게 마력이나 흑마력, 차크라가 있을 경우에는…… 여러 번 검사 끝에 검출이 되어 헌터로 판정되는 경우도 있잖아.”
“그건 진짜 극소수고. 다니고 있는 회사나 열심히 다녀. 잘해주고 있잖아? 그 회사. 돈도 잘 주고.”
“하지만…… 난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뭐? 헌터 돼서 괴수들 다 때려잡는 거? 복수하고 싶다는 거?”
“둘 다.”
태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아메리카노 아이스 커피의 빨대에 입을 대고 주욱 빨아들였다. 모두 빨아들이자 쓴 감각이 거세게 그의 머리를 휘몰아쳤다.
아플 정도였다.
커피를 잘 못 마시는 그였지만, 가끔은 도전하면서 후회를 하곤 하는 그였다.
술은 잘만 먹으면서 커피 못 마시는 건 어째서인가 싶다.
태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대한을 보며 말했다.
“나는 이만 간다, 헌터 씨.”
“그래. 어찌 된 게 내가 헌터가 되어 버렸네…….”
대한은 E랭크의 헌터이다.
헌터 적성 검사를 받는 태석을 따라 같이 검사를 받게 됐는데, 첫 번에서 바로 헌터로 판정되어 지석이 길드장으로 있는 강철 길드의 길드원이 되었다.
제법 잘 나가는 헌터인 모양이다.
태석은 자신 또한 헌터가 되고 싶다고 종종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20년 전,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괴수를 그는 증오했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를 보며 있는데, 눈이 커졌다.
깜짝 놀라며 서둘러 밖으로 달려갔다.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흑색의 수정이다.
사람 하나 크기의 흑수정은 말 그대로 흑수정이라고 불리는 마법 물질이었다.
어둠을 품고 있고 지구에 가끔 튀어나오는 물질이었으며, 이 물질은 제때 파괴하지 않는다면 괴수를 불러들인다.
그 흑수정이 5분 전만 해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흑수정은 5일 정도는 지나야 괴수가 튀어나오니 그 전에 파괴하면 돼. 빨리 대한이한테 가서 말해야…….’
김대한도 마침 카페 안에 아직 있으니 달려가서 말하면 강철 길드의 손으로 흑수정 파괴가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치직, 치직, 치직.
흑수정이 치직거리는 소음을 내며 깨지려 했다.
“이, 이건…….”
좋지 않은 징조였다.
흑수정에서 검은 연기가 조금씩 터져 나왔다.
태석은 서둘러 주변을 보며 소리쳤다.
“어서 피해요! 어서! 어서! 어서!”
사람들이 서둘러 도망쳤다.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부터 학원을 가는 학생과 무언가 가방을 메고 지나가는 할머니까지.
하지만 할머니는 사람들 중 빠르게 도망치던 사람에게 부딪쳐 넘어졌다.
서둘러 할머니를 부축하기 위해 태석이 달려갔을 때였다.
쾅!
흑수정이 터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괴수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크르르르르르-!
D랭크 괴수, 은호.
은색의 호랑이 같은, 그보다 세 배는 덩치가 큰 괴수가 튀어나와 긴 송곳니를 드러내며 쓰러진 할머니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