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져가는 세력
덜그럭.
인적이 뜸한 어두운 골목 안.
한 무리의 사람들이 CCTV의 사각지역에서 비밀스레 어떤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 위로, 돌연 눈부신 손전등 불빛이 쏟아졌다.
“어이, 거기서 뭣들 하시나? 쥐새끼들처럼.”
건들건들한 말투와 험상궂은 인상, 그리고 단체로 맞춰 입은 듯한 검은 정장까지. 누가 봐도 폭력 조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의 등장에, 작업 중이던 이들이 욕을 뱉으며 벌떡 일어섰다.
“젠장, 튀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도주를 선택한 그들은 당장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연막탄을 터뜨렸다. 그리고 바이크에 올라타 그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것들이!”
“야, 빨리 신호 보내!”
“진작에 했어!”
여기서 조직원들이 말하는 신호란, 서혜리를 필두로 한 오퍼레이터들에게 목표물을 찾았다고 알리는 것을 뜻했다.
[도주방향 확인. 각자 위치로.]
즉각적으로 일대에 있는 모든 감시원들에게 등대, 멜리사의 지시가 내려지기 시작했다.
초능력을 내세워 자잘한 사고를 일으키고 다니는 범인들. 그들을 몰이사냥처럼 한쪽으로 몰아가는 작전이 펼쳐졌다.
부아아앙!
한편, 몰이를 당하게 된 이들은 밤길을 질주하며 울분을 토해야 했다.
[젠장, 젠장!]
[아니, 어떻게 감시가 느슨한 곳이 없어?!]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실질적인 감시원을 늘리기로 한 레이의 작전은 꽤나 효과적이었다.
류양의 패밀리원들과 바네사의 부하들은 레이가 부탁한지 겨우 며칠 만에 촘촘한 감시망을 완성해냈던 것.
하루 종일 곳곳을 돌아다니는 택배기사들, 시비 걸 빌미를 찾아 눈을 희번덕거리며 구역 순찰을 하는 조직원들, 그리고 할 일 없이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백수들까지.
곳곳에 깔려 있는 감시원들의 눈을 피해서 무언가를 몰래 꾸민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상한 움직임이 보일라치면, 감시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던 것. 그 탓에 범인들은 무언가를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금방 흩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레이 측도 답답한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지 잡힌 이가 한 명도 없었던 것.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그들이 마치 잡히면 끝이라는 것처럼 거침없이 도망쳤기 때문이다.
건물이 무너지고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고 초능력이나 폭탄 같은 무기를 거리낌 없이 썼던 것.
그러나 이쪽에서는 그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할 수 없었다.
초능력을 남발하다가 민간인 피해를 일으키면, 결국 저들이 바라는 대로 초능력자 이미지 실추에 기여하는 꼴이 될 테니까.
두 번째 이유는, 일렉티가 아닌 일반인 감시원들이 초능력자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거리를 순찰하며 수상한 자들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일렉티 단원이 있는 외진 장소로 그들을 몰아가는 것 정도가 일반인들의 역할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온다!”
화르르! 퍼어엉!
빠르게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 제이콥이 기다렸다는 듯 뜨거운 불덩이를 쏘아냈다.
그러나 상대 쪽에도 화염계 능력자가 있었는지, 불덩이는 그들에게 닿지 못하고 꺼졌다.
하지만 전투는 이제 시작이었다. 양측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공격을 퍼부었고, 반대로 상대방의 공격은 튕겨내거나 소멸시켰다.
여기저기 매캐한 연기와 그슬림이 난무하는 와중에, 양측은 막상막하의 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개개인의 순수한 능력은 범인들 측이 조금 더 뛰어났으나, 일렉티 단원들에게는 비정상적인 출력을 가진 테이저건과 화염방사기 등의 무기가 있었던 것.
스벤이 자신감을 내비칠 만큼, 과연 그가 새롭게 개발한 특수 장비들은 발군의 성능을 보였다.
그러나 근처 루프탑 바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레이는 작게 혀를 찼다.
“예전보다 배는 더 위험해 보이는데··· 그 녀석은 대체 뭘 만들어 낸 건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레이가 마티니를 한 모금 마시는 사이, 쉴 새 없이 터지는 눈부신 폭발을 목격한 경찰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출동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두 초능력자 집단의 대치는 끝이 났다.
양쪽 모두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마자 쏜살같이 달아나더니, 곧 감쪽같이 시야에서 사라졌던 것.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와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가득한 도시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이는 이내 혀를 차며 못마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애들에게 이런 일을 시킬 줄이야···.”
방금 전까지 복면을 쓰고 날뛰던 범인 중 몇 명은 세드릭 알무스에 의해 초능력자 아카데미에 다니게 된 학생들이었다.
아마 저들은 잡히지만 않는다면 정체가 탄로날 일은 없을 것이라 믿었겠지만, 그런 얄팍한 변장 따윈 레이에게 무용지물이었다.
그에게는 사람들이 가진 고유의 기운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저 불량학생들의 처벌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때 얘기한 것처럼 멱살 잡고 끌고 오려고?”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있던 제이슨이 레이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에 레이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대답했다.
“···일단은, 그렇습니다.”
명색이 초능력자 아카데미의 이사장인데, 불량학생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개과천선 시켜줘야지.’
물론 갑자기 손은 내민다고 레이를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일렉티를 길들였을 때처럼, 저들을 강제로라도 거둘 생각이었다.
‘물론 상황이 다르기는 한데···.’
레이가 일렉티를 별 탈 없이 흡수할 수 있었던 건, 그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바람을 레이가 충분히 들어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고.
하지만 조금 전 저 소년 소녀들은 도대체 왜 저런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일까. 혹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일까.
그러나 레이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그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으니.
“제가 일단 저들의 멱살을 잡고 이쪽으로 끌어다 놓으면, 다른 전문가분들이 조금 더 세련된 방식으로 교육과 훈육을 맡아주시겠죠.”
“음.”
제이슨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잠시 멈칫하며 꽤나 상식적으로 느껴지는 질문을 건넸다.
“거, 주변인들에 대한 신뢰가 너무 과한 것 아닌가?”
“글쎄요. 제이슨 씨도 저와 주변인들을 만난 후로 인생이 잘 풀리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긴 한데··· 솔직히 중간에 내가 신세 한탄을 좀 많이 했던지라.”
유리방에 처박혀서 연구만 해야 했을 때라던가, 그 무시무시한 양반하고 독대를 해야 했을 때라든가.
제이슨의 넋두리를 가만히 들어주던 레이는, 이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뭐든지 결과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 뻔뻔한 미소를 보며, 제이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그로부터 또다시 약 보름이 지난 어느 날, 제이콥의 스튜디오.
모두가 모인 가운데, 스크린 위로 그동안 확보한 영상이 재생되었다.
[콰아아아!]
소화전에서 세차게 뿜어져 나온 물기둥이 뱀처럼 뒤틀리며 사람들을 공격했다.
[펑! 퍼펑!]
[으아악!]
춤추는 물대포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바이크에서 떨어지거나, 자꾸만 얼굴로 튀는 물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어 급하게 몸을 피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 난리 속에서, 적들은 빠르게 몸을 내뺐다.
“흠, 저 같았으면 저기서 더 밀어붙였을 텐데··· 적어도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말이죠. 그런데 저들은 가능하면 무조건 뒤로 빼는군요.”
“네. 가끔 공방이 길어질 때도 있지만, 그건 빠져나갈 타이밍을 잡지 못해서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다른 것보다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는 것을 최우선 사항으로 두는 것 같죠?”
그들이 가장 단합력을 보여주는 순간이 도주할 때라는 점도 눈에 띄었다. 그 외에는 딱히 조직적인 행동이 관찰되지 않았던 것.
“개개인이 가진 초능력으로만 보자면, 저들이 우리 일렉티보다 더 뛰어난 것은 사실입니다만··· 따로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오합지졸이자 천둥벌거숭이 같던 초창기 시절 일렉티의 상위 버전이라고 보면 되는 거네.”
“···말씀을 해도 꼭 그렇게 하셔야겠습니까?”
다들 방금 본 영상에 대해 각자의 감상을 나누고 있는데, 바네사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쟤들을 언제까지 그냥 보내줄 건데? 쟤네가 얘네 상위 호환 버전이든 뭐든, 나나 자기한테 덤빌 수준은 아니잖아?”
쉽게 처리할 수 있으면서 왜 봐주고 있냐는 질문. 여기에 대답한 것은 레이가 아니라 애런이었다.
“들어오는 정보들을 조합해 보면, 거의 때가 됐습니다.”
“흐음? 들어오는 정보에 의하면?”
바네사가 한쪽 눈썹을 슬쩍 들어 올렸다.
비록 오래되지는 않았더라도, 그녀는 슈베린에서와 비슷한 형태로 자신만의 플루투스를 다시 세웠다.
그런데 자신이 알지 못하는 정보를 애런은 쥐고 있다고 하니, 놀라우면서도 살짝 거슬렸던 것.
이러한 그녀의 의문을 기민하게 눈치챈 애런은, 한껏 뻐기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희 백작님께서 워낙 인망이 높으신지라, 이제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정보가 끊임없이 흘러 들어와서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레이는 제국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꾸준히 양지와 음지를 아우르는 정보망을 구축해왔다.
여기에 류양의 패밀리와 바네사의 플루투스, 그리고 백작가로 승격된 루체스가에 줄을 대려고 달려드는 새로운 파벌들까지 합세하며 루체스 백작가로 몰려드는 정보의 양이 어마어마해진 것.
그래서 지금 애런의 어깨가 하늘 높이 치솟으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레이는 그의 어깨를 툭툭 쳐서 진정시킨 뒤, 테이블에 앉은 모든 이들에게 말했다.
“모두가 열심히 노력해 준 덕분이지. 뛰어난 인재들이 다 함께 잘 살자고 힘을 모았으니, 양질의 정보가 모일 수밖에.”
“오오, 역시 마스터이십니다!”
레이는 제이콥의 과도한 충성심에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으나, 어쨌건 그가 한 말은 진심이었다.
이제 적어도 세레누스 안에서만큼은 자신들의 눈과 귀를 피해 갈 수 있는 이들이 몇 없다고 봐야 했으니까.
그리고 세레누스가 가이아의 가장 강대국인 룩스 제국의 수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실로 어마어마한 권력이었다. 아직 다들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
그는 한 번 더 자신의 주변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말은 안 해도,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영 신통치 않았다.
“어우, 소름 돋았어요 사장님!”
“사람이 안 하던 말을 하면 큰일 난다던데···.”
“···그렇게 말해 놓고 이번에도 어딘가를 날리고 오라고 시키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이 모든 반응을 깔끔히 무시한 이들의 수장 겸 친구는 오늘 자 회의를 이어갔다.
“저들 뒤의 배후와 그들이 벌이고 있는 일의 목적과 규모를 제대로 파악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일 겁니다.”
“그러면 다음 계획은 뭐지?”
류양이 건넨 질문에, 레이는 진중한 얼굴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일단, 클레노디움 박물관을 털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