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들의 세계 (258)화 (258/274)

따끔합니다

콰과광!

느닷없이 울린 정체불명의 굉음. 레이의 일행은 움찔 놀라며 경계를 끌어올렸으나, 대형 꼬투리를 덮치는 충격은 없었다.

마른하늘에 떨어지는 날벼락을 감지한 레이가 순식간에 그 경로를 비틀어버린 덕분이었다.

그것은 머리로 상황을 인지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마치 눈앞에 날파리가 나타나면 손이 먼저 나가 듯이.

한편, 일행은 홀로 침착한 레이를 보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즉각 이해했다.

“발각되었군요.”

“그리고 저쪽에도 번개를 내리칠 수 있는 초능력자가 있는 모양이고요.”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결코 가볍게 넘길 만한 일은 아니었으나, 일행 중에 크게 동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초능력을 증폭시키는 연구를 하는 곳인 만큼,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미리 상정하고 왔기 때문.

그 대신, 다들 순식간에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레이의 지시를 기다렸다.

“헤이든 씨, 현재 3시 방향으로 두 명의 사람이 있습니다. 정확한 위치가 파악되십니까?”

“예, 파악됩니다.”

헤이든은 지체 없이 긍정했다. 적들이 잔디밭 위에 서있는 이상, 그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방금 초능력을 쓴 것은 둘 중 왼쪽에 있는 자입니다. 그는 제가 위에 올라가서 상대할 테니, 헤이든 씨는 오른쪽 사람을 제압해 주세요. 그리고···.”

레이는 이번엔 제이슨과 페니, 그리고 리암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다른 경비원들이 몰려오기 전에 원래 계획했던 대로 먼저 건물 환풍구로 진입해서 움직여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리암이 대표로 대답했다. 그의 눈빛에는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 내겠다는 결의가 엿보였다.

레이는 그 믿음직스러운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뒤, 복면과 선글라스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다들 제가 신호하면 움직이는 겁니다.”

기척을 통해 바깥 상황을 살피던 그는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카운트다운하기 시작했다.

“셋··· 둘··· 하나··· 지금!”

번쩍!

콰아앙!

콰장창!

눈부신 빛이 시야를 어지럽히는 가운데, 일대에 존재하는 CCTV와 가로등, 심지어 창문까지 모조리 터져 나가며 요란한 소리가 이어졌다.

그사이 경비원 중 한 명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땅 속으로 끌려들어왔고, 반면에 리암 일행은 마치 발사되듯 하늘로 솟구쳤다.

“이게, 무슨···! 아악!”

그리고 마침내 지상으로 나온 레이는, 새하얀 불빛 속에서 눈을 가리며 뒷걸음질 치는 초능력자 경비에게 접근했다.

“누, 누구냐!”

번쩍!

콰앙!

잔뜩 겁에 질린 외침과 함께 또 한 번의 벼락이 레이를 향해 떨어졌다.

‘역시, 보이지 않아도 내 움직임이 느껴지는 모양이군.’

경비는 눈을 질끈 감은 상태에서도 제법 정확하게 견제 공격을 날리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순순히 맞아줄 레이가 아니었지만.

콰앙!

쾅!

레이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번개들을 손쉽게 흘려버렸고, 그렇게 튕겨 나간 공격들은 애꿎은 나무나 가로등에 가 부딪혔다.

번쩍!

쾅···!

‘벌써 힘이 떨어진 건가?’

몇 번 되지도 않았는데 처음보다 확연히 줄어든 번개의 크기와 위력에, 레이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처음으로 방심할 수 없는 같은 계열의 초능력자를 만난 건가 싶었는데, 어딘가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어쨌든 겨우 이 정도 수준이라면 제대로 공방을 벌일 것도 없었기에, 레이는 상대방을 찬찬히 관찰했다. 그리고 곧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되었다.

‘···힘을 쓰는 게 미숙해. 아무리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도, 무언가 지나치게 부자연스러워.’

한편, 경비원은 자신의 초능력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인지, 급하게 품에서 총을 빼 들었다.

“으, 흐윽··· 머, 멈춰! 다, 다가오면 쏜다!”

경비원은 악을 쓰며 위협했으나, 총을 잡은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라 별 효과는 없었다.

탓!

레이는 길게 생각할 것 없이 경비원에게 세차게 달려들었다.

‘쏘려면 미리 쐈어야지.’

이 경비원은 초능력을 다루는 것도, 침입자에 대처하는 것도 지나치게 미숙했다.

일단 첫 공격부터 너무 힘 조절을 못했다. 만약 이쪽이 전기 초능력자가 아니었다면 바로 죽어버렸을 정도로.

그러면 심문의 기회도 날아가 버리는 것이니, 보통은 생포하려 드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자를 왜···.’

속으로 의문을 품었던 레이는 이내 혀를 찼다. 가까이에서 확인한 경비원의 외양이 생각보다 어려 보였던 것.

‘그냥 일반인을 데려다 놓았군.’

그는 레이가 지금껏 본 초능력자들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힘을 가진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니었다.

힘을 다루는 것이 미숙할뿐더러, 갑작스러운 비상 상황에 대처할 깜냥도 없었던 것. 그리고 이런 상황에 대한 면역이 없는 일반인에게 파괴적인 초능력이 있어봤자, 그것은 본인을 포함한 주변에게는 그저 재앙에 불과했다.

실제로, 이 어린 청년은 지금 공황 상태에 빠진 나머지 그저 되는대로 힘을 남발하고 있었다. 정작 목표물인 레이는 전부 비껴가고 주변만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지만.

그러나 경비원은 빠르게 한계에 부딪혔고, ‘신들의 놀이터’에서 난무하던 번개들은 점차 사라져갔다.

상대방이 눈을 뜨지 못하도록 눈부신 빛을 유지하던 레이는 이내 그 빛 속에서 손을 치켜들었다.

* * *

초능력 강화 시술을 받고 적응 훈련을 할 때만 해도, 청년은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커다란 힘을 마음껏 휘두르다 보면 마치 신이라도 된 듯한 기분에, 절로 고양감과 흥분이 차올랐으니까. 그러나 그건 아무런 위협도 존재하지 않는 연구실 안에서의 이야기였다.

갑자기 실제 상황이 벌어지자, 그 모든 것은 허무하리 만치 순식간에 공포와 경악으로 변해버렸다.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그가 날린 공격은 전부 무위로 돌아갔다. 반면 고막이 터져 나갈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침입자의 손에서 솟구친 힘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휩쓸린다.’

분명 같은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침입자와 자신이 다룰 수 있는 힘의 크기는 천지 차이였다.

만약 자신이 돌멩이 몇 개를 던지는 것이 전부라면, 침입자는 집채 만한 바위를 날리는 꼴이랄까.

심지어 자신은 한 번 힘을 쓸 때마다 체력이 훅훅 깎여 나가는데, 상대는 그저 가벼운 손짓만으로 그 모든 것을 해내고 있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그리고 청년은 거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항거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질투나 시기 따위의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저 받아들일 뿐.

더불어, 그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얻은 인공적인 힘은, 눈앞에 나타난 이 거대한 자연적인 힘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은 마치 아무리 밝은 조명이라도 햇빛 아래서는 존재감이 미약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하아··· 하아···.”

청년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마구잡이로 번개를 뿌려 댄 탓에 체력도 바닥났고, 이제는 정신을 똑바로 붙잡고 있는 것조차 한계였다.

침입자의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다만, 눈부신 빛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향해 다가오는 새하얀 손 하나가 보였다. 그것은 꼭 목숨을 취하러 온 사신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순간 일대의 모든 전기가 자신에게 내리 꽂히는 착각이 든 청년은 절망했다. 아마도 자신은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겠지. 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충격에 대비했다.

“······!”

곧 눈앞이 번쩍일 만큼 찌릿한 감각이 그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그러나 그것은 청년이 예상했던, 죽음에 이르는 고통까지는 아니었다.

“······?”

그리고 잠시 후, 무언가 포근한 감각이 뒤따랐다. 마치 억지로 뒤엉켜 있던 것들이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그것은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이었고, 그의 머릿속은 물론이고 온몸에 서서히 퍼져 나갔다.

그 알 수 없는 현상에, 청년은 여전히 세상을 희게 물들인 빛 속에서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이내 땅속으로 몸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과 동시에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 *

콰과광!

“어우, 오늘 비 온다는 얘기가 있었나? 왜 이렇게 하늘이 난리 법석이야?”

창문 하나 없는 지하에서도 선명하게 들릴 만큼 요란한 천둥소리에, 비밀 연구소에 있는 이들은 새하얀 천장을 괜히 한 번씩 힐끔 올려다보았다. 그런다고 무언가 보일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던 중, 환자복을 입은 한 젊은 여성이 자신의 맥박을 재고 있는 연구원을 향해 물었다.

“선생님, 저 가끔씩은 바깥에 나가봐도 괜찮지 않을까요? 딱히 어디가 아프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가벼운 산책 정도는 무리될 것도 없잖아요.”

“맥박은 정상··· 그런데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몸 상태를 기록하는 것 외에는 무관심해 보이는 연구원의 태도에, 여성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더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자신의 답답함을 호소했다.

“밖에 좀 나가봐도 되냐고요. 천둥이 저렇게 요란할 정도면 비도 꽤나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을 텐데, 구경 좀 하게요. 바깥 공기를 맡은지도 벌써 오래된 것 같아서요.”

“아, 지금 기분이 답답하신 모양이군요? 답답함을 느끼는 정도를 0에서 10까지의 수치로 나타낸다면···.”

“아니,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잖아요.”

여성은 자신의 말은 들은 체도 않고 익숙하게 주사기부터 찾으려 드는 연구원의 태도에 오늘따라 짜증이 치밀었다. 자연스레 따지는 목소리도 높아지려던 찰나, 누군가 그녀의 뒤에서 소리쳤다.

“어? 선생님, 저기 전선에 불이 붙었어요!”

“그건 그냥 일시적인 환각···.”

연구원은 불이 붙었다는 말에도 별일 아니라는 듯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다가, 정말로 노랗고 붉은 화염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것을 보고 기겁하며 소리쳤다.

“아니 이게 갑자기 왜 이래?! 여기, 누가 이것 좀 꺼봐요!”

연구원의 새된 외침에, 근처에 있던 직원들이 서둘러 소화기를 가져와 작은 화재를 진압했다.

덕분에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곧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캐한 연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뭐야? 이 연기는 또 어디서 나는 거야?”

“저쪽 기기들 뒤편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데?”

“전선에 불이 붙었나 봅니다!”

“아니, 갑자기 왜?!”

삐이이이!

솨아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술렁이는 사이, 화재 경보음이 울리면서 천장 곳곳에 설치된 스프링클러들이 작동하며 물을 뿌려댔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갈수록 연기만 더욱 자욱해질 뿐이었다.

“꺄아악! 이거 밖으로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조금 전까지 산책 타령을 하던 여성이 자신의 팔에 꽂힌 링거 주사를 냅다 뽑아내며 소리쳤다.

“잠깐, 진정하세요! 여기 경비원!”

“진정하긴 뭘 진정해?! 난 당장 나갈 거니까 얼른 비켜!”

퍼엉!

“으악!”

화염계 초능력자였던 여성의 손끝에서 작은 폭발이 터졌고, 그녀를 말리려던 연구원은 급하게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곳곳에서 이것과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 평소에는 ‘임상 시험’에 얌전히 협조하던 사람들, 특히나 이곳에 온 지 오래되지 않은 사람들부터 실험실을 탈출하기 시작한 것.

그렇게 점점 거세지는 불길과 짙어지는 연기, 그리고 겁을 먹고 흥분한 사람들 때문에, 카엘레스티아 컨트리 클럽 지하에 위치한 비밀 연구소는 금세 난장판이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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