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2화
화륵. 화륵. 화륵.
미처 시야가 닿지 않았던 어둠 속에서 불이 일렁였다.
- [──────.]
모티스가 웃으며 속삭였다.
그러나 포켓의 번역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건 인간의 귀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다.
“망할…….”
유라는 사라진 배에 손을 얹었다. 바람구멍이 생겨 뻥 뚫려버린 배를 보고 있으니 헛웃음이 나왔다.
“헌터라도…… 결국은 인간이야. 악신을 어떻게 이기겠어?”
유라의 패색이 짙어지자 모티스의 안광은 더욱 붉은 빛을 발했다. 마치 유라에 응답하듯 모티스는 거대한 대못과 짚 인형을 꺼내 들었다.
“그냥, 도망쳐! 저주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거라고!”
모티스가 손을 번쩍 들자 신유성은 저주를 저지하기 위해 마나를 담아 내뿜었다.
투신류 5장 파류공명(波流共鳴)
파류공명은 되치는 힘이다.
만약 상대가 사용하는 게 마나였다면 서로의 형태가 합쳐지며 일그러졌을 것이다.
아무런 영향도 없이 팔을 내리쳤다. 그건 모티스가 사용하는 촉매가 마나가 아니라는 뜻이었으며 신유성의 특기인 마나 공명이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콰악-!
대못이 짚 인형의 팔을 내려찍자 신유성의 오른팔이 날카로운 무기에 당한 듯 피분수를 뿜었다.
“흐윽!”
유라는 이 모든 일이 자신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죄책감에 고개를 돌렸다. 이건 철없던 시절의 호기심이 불러온 파국이었으니까.
아무런 죄도 없는 루키가 자신 때문에 죽게 생겼으니 도저히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차라리 몇 번이라도 좋으니 자신이 대신 당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 [──────?]
모티스는 공포에 떨지 않는 신유성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자신을 마주한 인간들 중 똑바로 자신을 노려보는 건 신유성이 유일했다.
- [──────. ──.]
모티스는 계속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언어는 점점 형태를 찾아가더니 유라와 신유성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었다.
- [넌. 곧, 저주. 죽는다. 죽음. 두려운가?]
고장 난 번역기 같은 언어였지만 의도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모티스와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여전히 패닉 상태인 유라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말씀드렸죠. 선배님? 피할 수 없는 공격이란 없다고.”
신유성은 팔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마저 냉정을 잃을 순 없었다. 모티스를 이기기 위해선 꼭 지켜져야 하는 약속이 있었다.
“……피할 수 없는 공격이란 없는 것처럼,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건 없어요.”
깡-!
모티스가 다시 대못을 내려쳤다. 이번에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신유성의 반대편 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모티스가 그렇게 강대한 존재라면 이런 귀찮은 의식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요?”
그러나 이미 패닉이 온 유라에게 신유성의 이야기는 닿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러다 죽겠어……. 널 데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나 때문에 죄 없는 루키까지…….”
“선배님이라면 본질을 볼 수 있어요. 모티스가 왜 저에게는 약한 저주를 내렸는지, 저를 죽이지 못하는지.”
신유성이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모티스는 다시 팔을 들어 대못을 내려쳤다.
깡!
이번에는 왼쪽 다리였다.
저주가 향한 곳이 심장이었다면 신유성은 곧바로 죽음으로 향하겠지만 모티스는 그러지 못했다.
고리타분한 약속처럼 천천히 신유성을 갉아먹었다.
‘……본질?’
패닉에 온 유라의 머릿속에서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본래 모티스가 있던 차원이라면 이렇게 귀찮은 저주가 아니라 적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저주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티스가 사용한 건.
‘그래……. 이상하긴 해.’
상대의 신체를 행방불명 시키는 카미카쿠시(神隠し)와 짚 인형에 대못을 박아 넣어 상대를 저주하는 축시의 참배였다.
‘모티스는 왜 우리 세계의 저주를 사용했을까?’
공포에 질려있던 유라의 뇌가 서서히 이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모티스는 차원을 넘어오기 위해 필요한 제물은 왜 하필 유라였을까? 우연이나 운명 같은 말을 가져다 붙이면 상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기 마련이다.
모티스가 유라를 택한 건 운명적인 만남 같은 게 아니다. 유라를 제물로 삼아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었다.
“아-!”
유라는 유레카를 외치듯, 탄식처럼 감탄사를 뱉었다.
“……운명 같은 게 아니야. 모티스가 나를 제물로 삼으려 했던 건 내가 그 조건에 해당하기 때문이었어. ……맞지?”
이 모든 현상이 냉정한 머리로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추론이 필요하진 않았다.
“깨달으셨군요. 선배님.”
“……생각해보면 이상했어. 모티스는 왜 내가 알고 있는 저주만을 사용했을까?”
그건 제약 때문이겠지.
절대 이유가 없는 현상이란 없다. 공포로 이성이 마비가 되었을 땐 보이지 않았던 진실의 빛이 유라의 머릿속을 밝혔다.
“정확히는 그런 저주밖에는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아무리 악신이라 하여도 모티스의 저주는 여기서 사용할 수 없어.”
저주는 믿는 사람이 많을수록 힘이 강해진다. 여신이었던 모티스가 악신이 된 건 모티스를 믿는 사람들 중 악인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여긴 차원의 틈새일 뿐, 우리가 있던 세계도 모티스가 있던 차원이 아니니까.”
그러니 여기선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모티스는 본디에 인간의 원망(怨望)이 낳은 악신이었다.
여긴 인류가 악신 모티스를 모시고 있는 세상이 아닌, 그저 차원의 틈새다.
“이 틈새에선 저와 선배님뿐이에요. 유라 선배님이 세상의 절반이고 다른 절반은 저죠.”
많은 인간들이 믿을수록, 많은 악의가 모일수록 강해지는 악신에겐 최악의 장소다. 그러니 유라의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럼 우리가 살아 있는 건 모두 네 덕분이구나. 나와 달리 넌 모티스를 보고 절망이나 공포에 휩싸이지 않았으니까.”
유라가 모든 진실을 알아채자 모티스는 내려치려던 팔을 멈췄다. 더 이상 모티스는 저주를 내릴 수 없었다.
유라는 신유성을 보며 여러 의문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진실을 알아낸 거야?”
6급 헌터인 신유성은 자신보다 훨씬 냉정하게 대처했다. 유라가 지금 상황에서 모티스의 본질을 파악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신유성의 대처 덕분이었다.
유라는 신유성에게서 베테랑인 자신조차 뛰어넘은 노련함을 느꼈다. 어떻게 경험도 적은 학생이 이런 실력을 가지게 된 걸까?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존재도 피할 수 없는 공격 같은 건 없지다……. 하지만 그렇게 믿는다면 그 순간이 끝이다. 스승님이 해주신 말씀이에요.”
그 정체는 권왕이었다.
모든 헌터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이자 헌터계에 새로운 세계를 연 인물이었다.
“넌, 혼자라도 혼자가 아니구나?”
유라는 깨달았다.
전설의 헌터인 권왕의 경험은 신유성을 통해 이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본래보다 더욱 단단하고 굳건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이 나무가 자라나고 결국 꽃을 피울 때 어떤 결실이 맺어질까?
“음, 정말…… 마음먹기 나름인가 보네. 이런 낡은 구호로 승기를 잡게 될 줄은 몰랐는데.”
자신의 배를 내려다본 유라는 어렴풋한 미소를 지었다. 유라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신유성의 상처 입었던 팔과 다리도 원래의 상태 그대로 회복되어 있었다.
“선배님. 이번에는 모티스가 아니라 저를 믿어보세요.”
자세를 잡은 신유성이 말하자 유라는 정장을 탈탈 털고 일어나 웃었다.
“어떻게 믿으면 될까?”
“제 공격이 닿을 거라고, 제가 이길 거라고. 그렇게 믿어주세요.”
참 부끄러운 일이다.
오래도록 묵은 숙원을 이런 식으로 후배에게 맡기게 되다니 선배로서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유라가 본 신유성에겐 그럴 힘이 있었다. 보는 이를 응원하게 만들고 의지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응. 믿어.”
거대한 몸체를 가진 모티스를 향해 한 뼘 정도 되는 크기의 신유성이 달려들었다.
콰작!
신유성이 영체처럼 보이던 모티스의 팔을 물리적으로 뜯어내자 유라는 결계를 발판처럼 만들어주었다.
탁!
신유성이 결계를 밟고 모티스의 머리를 향해 도약했다.
투신류 1장 낙월각(落月脚)
가속을 실은 신유성이 다리를 내려찍어 정면에서 가격하자 모티스의 머리는 인형 탈처럼 떨어졌다.
다른 차원의 악신(惡神) 모티스였다면 이길 수 없었겠지만 이건 겉모습만 비슷한 가짜일 뿐이다.
투신류 3장 파천권격(破天拳擊)
신유성의 주먹이 뼈다귀로 된 몸을 때리자 모티스는 풍선 인형처럼 힘없이 무너졌다.
- ──────.
모티스의 떨어진 머리가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스켈레톤처럼 뼈가 해체되는 와중에도 모티스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지직, 지직!
- [아깝다. 방해꾼.]
모티스의 머리가 액체가 되어 녹아내렸다. 대신 머리가 있던 곳에 자리한 건 황금으로 된 잔이었다.
모티스는 재림을 포기했다. 대신 다른 차원의 악신은 신유성과 유라에게 복수하기를 택했다.
드드득!
황금 잔이 모습을 드러내자 모티스가 남긴 피와 뼈의 잔해가 순식간에 흡수됐다.
잔해를 머금은 황금 잔속에선 용암처럼 거품이 끓어오르더니 이내 검은 액체를 뿜어냈다.
분명 유라는 들은 적이 있었다.
[돌이켜보라, 여왕의 강림, 영원한 밤의 축제를……. 타고 건너라, 돌아 올 수 없는 약속의 강을.]
모티스의 문헌 속에서 등장한 약속의 강. 그건 망자들이 명계에 가기 전 건넌다는 망각의 강이었다.
저 망자의 강물에 닿는다면 모든 게 끝이다. 기억은 물론 자신의 존재마저 잊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영원한 죽음이다.
“신유성-!”
결심을 다진 유라가 신유성을 불렀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단 한 번도 부른 적이 없던 이름이지만 기억하고 있었다.
유라는 못난 선배지만 마지막으로 신유성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다.
사아아-!
유라는 결계로 신유성과 자신을 가뒀다.
“선배님!”
서로의 목소리는 결계에 막혀 들리지 않았다. 유라는 넘쳐흐르는 망각의 강물을 결계로 막아냈다. 점점 힘에 부치고 망각의 힘에 결계가 부식 되는 게 느껴졌지만.
‘……너만큼은.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설령 내가 모든 걸 잊더라도…… 지켜줄게.’
몸에 남은 모든 마나를 쏟아내며 끝없이 다짐했다.